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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5/22 21:01:42
Name   Moira
Subject   일베와 메갈리아
여성인 제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어요.
어째서 많은 남성들은 메갈리아/워마드라는 소수 극단적인 여성들의 언어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들을 증오하고, 그들의 영향력을 과장하고, 틈만 나면 입에 올리고,
일베보다 그들이 더 위험한 집단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하는 걸까?
정말 메갈리아의 소위 '남성혐오'가
일베의 여성혐오, 호남혐오보다 현실적으로 더 위험하며 선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일까?

밤을 새고 오늘 아침에 약간 우울한 기분으로 잠들었다 깨니 머리가 약간 맑아졌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 사회의 남성들은 '여성이 일베를 경험하는 방식'으로 일베를 경험한 적은 한 번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
제가 처음으로 일베와 일베 담론을 접했을 때 느꼈던 생리적인 고통, 전인격적인 모독은
이야, 잊지 못할 충격이었어요.
이런 인간들이 이제 내 주변에 마구 태어나고 있구나.
그런데 막을 길이 없구나.

삼사 년 전쯤에 일베를 몇 주간 꾸준히 모니터링해 본 경험이 있어요.
열심히 들어갔죠. 보다가 구역질이 나서 창을 닫고, 그리고 몇 분 후에 진정이 된 다음 다시 들어가고 했어요.
첫 화면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죠. 'OO아치'니 'OO러'니 그곳 특유의 슬랭들이 모든 게시물 제목에 꽉꽉 차 있잖아요.
게시물을 눌러서 들어가보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적개심과 현란한 혐오의 언어유희가 난무하고.
그들은 바로 '나'라는 실존적 존재를 낄낄거리며 모욕하고 있었어요.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왜 그렇게 열심히 들어갔는가 하면, 당연히 저의 호기심 때문이고
'인간의 일로 나와 무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저 오래된 경구가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베를 알지 못하면 시대에 뒤쳐질 것 같은? 그런 느낌 때문이기도 했어요.
몇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글을 써보려고 시도했는데, 실수로 파일을 날려 버리는 바람에 포기.
(제가 일베를 들어가던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박가분 씨가 <일베의 사상>이라는 책을 썼더군요. 읽지는 않았어요.)

나중에는 좀 익숙해져서, 그곳 특유의 단어나 밈들 때문에 겪던 통증은 줄어들었어요.
인간들이 좀 귀여워지기도 했죠. 어차피 대다수가 오프에서 보면 평범한 녀석들일 텐데.
개중에는 가슴이 찡한 글도 있었어요. 초보 농부가 자신의 일상을 재미있게 풀어쓴 글이었는데
육체노동에 적응해 가는 힘든 과정과 시골 생활의 소소하고도 막막한 어려움이
잔잔하고 유머러스하게 펼쳐지는, 일베식 자기비하의 형식을 입고 있지만 그 특유의 문체와는 거리가 먼.
누구를 원망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적개심을 표출하지도 않는.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라면 소수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글.

그런데 글 중간에 갑자기 이런 문장이 나와요. 노트를 날려버려서 정확하게 옮기지는 못하겠지만
고무 호스로 밭에 물을 대는 모습을 묘사하는데
"ㅂㅈ물 흘리듯이 손가락으로 살살 만져준다"
당장 홍차넷에서 활동해도 좋을 만큼 지극히 온순하고 선량해 보이는 화자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자연스럽고 천진하게.
그 부분만 없었다면 교과서에 실어도 좋을 만큼 좋은 글이었는데 말이죠.

아마 일베는 이미 많은 성인 남성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의 일부였을지도 몰라요.
어렸을 때부터 접해온 폭력적이고 여성비하적인 담론들은
자신들에게 실존적인 위협을 가하는 것이 전혀 아니었을 테니까.
그들은 메갈리아/워마드의 언어를 보고 비로소 처음으로 느꼈을 거 같아요.
옛적에 이미 제가 일베를 경험하고 받은 충격을 말이죠.
이런 인간들이 내 주변에 태어나고 있구나,
내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이렇게 모욕을 받을 수 있구나,라는 전율을.
그렇게 남성들의 생경한 분노를 나름대로 이해했어요.
어, 당신들은 너무 늦게 그 생리적 통증을 깨달았구나,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아니면 아니라고 댓글 달아 주세요)

그러나 일베를 이미 경험한 여성으로서, 저한테는 메갈리아에 대한 호들갑이 여전히 잘 와닿지 않아요.
어차피 메갈리아의 혐오발언은 일베의 미러링에 불과하고
그 원조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어째서 파생물을 더 미워하는지.
왜 일베는 '산업쓰레기'이고 메갈리아는 '핵쓰레기'인지.
일베의 조상 사이트들을 줄줄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역사 속에서 메갈리아의 파생을 예측하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단지 '여자들이 설마 그럴 줄 몰랐다'는 이유 말고 또 다른 것이 있을까요?

일베에 들어가 눈팅했던 저처럼, 메갈리아/워마드에 들어가 눈팅하고
이들을 공격이나 찬양의 대상이 아닌 연구 대상으로서 보고
간혹은 귀여운 인간들을 발견하고, 기막힌 조어법이나 문학적 표현을 보고 낄낄거리고
그렇게 익숙해진 남성들도 바라건대 아마 꽤 있겠죠.
'난 좀 다른 인간이야' 하고 자부심을 느끼면서.
뭐, 좋은 자부심이라고 생각해요.

부심은 버리고 대화를 한다면, 좀 솔직하게, I-메시지로 먼저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어설프게 일반화시키거나 이것저것 다른 데서 논리를 가져와 꿰어맞추지 말고요.
"일베의 'ㅂ-word'는 솔직히 나한테 별로 아프지 않다.
그런데 메갈리아의 ㅎㄴㅊ은 정말 아프다.
그래서 메갈리아가 더 싫다" 라고.
물론 저는 ㅎㄴㅊ이 아프거나 잘 와닿지 않아요.
ㅂ-word는 엄청나게 싫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단계고요.
남성과 여성이 개인 대 개인으로 대화를 하려면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론이야 어찌됐건 자기가 비어 있는 부분이 뭔지 정직하게 알아보는 것부터 말예요.

집친구가 그러더군요.
"나도 내가 한국 남자인 게 진짜 싫어.
그런데 나한테 한국 남자라고 욕하면 엄청 기분나쁘거든. 내가 어쩌라고?"
그래 인정...!
한국 남자에게 한국 남자라는 것이 얼마나 초라하고 멍에 같은 범주로 느껴질 수 있는지 미처 몰랐음을 인정.
하지만 현실의 억압은 다른 문제. 그건 따로 이야기하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툭 하면 벌어지는 일이
어떤 특이한 사람을 ㅇㅂㅊ으로 낙인찍고 다굴을 놓는 일이었는데
그게 강남역에서 현실화된 모습을 보고
저는 사람들이 조금은 후회하는 모습을 보일 줄 알았거든요.
아 우리가 하던 짓이 이런 짓이었구나.
내가 이런 짓을 그때는 방관했었구나.
물론 그런 사람들은 웹상에서 잘 안 보였어요.
여기서도 안 보였죠. 코끼리 청년에 가해진 여성들의 린치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있었는데.

저는 개개인의 반성이나 각성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잠재적 가해자입니다'
'내 안에 잠재해 있을 여성혐오를 반성합니다'
본인도 온전히 납득이 안 되는 반성문을 쓰는 일, 그런 글을 쓰도록 강요하는 일은
인간의 양심을 땅에 떨어뜨리는 반문명적이고 추악한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아무도 검증하지 못할 고백은 하느님에게나 하는 걸로...

그렇다 해도 가끔씩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연습은 필요하다고 봐요.
순간적으로 나를 돌이켜볼 수 있는 근력을 기르는 거요.
그렇게 키워낸 근육으로 자신의 맥락과 기억을 붙들고 있어야
공동체의 역사에서도 공허하게 겉돌지 않을 수 있는 거니까.
최소한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몰랐다고 애매한 젊은 여성을 잡기 전에
한번쯤 '나는 여성 독립투사를 한 사람이라도 알고 있나?'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한 사회의 고통의 총량은 감소시켜 가야 하는 것이죠.
메갈리아/워마드는 현존하는 고통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고통의 영역을 의식적으로 개척하여
고통의 총량을 늘리는 기이한 방식을 택했죠.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다만 어차피 그들의 생명력이 그다지 길지 않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거죠.
일베의 생명력이 다해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메갈리아/워마드는 다를까요?

아마 많은 남성들은 ㅎㄴㅊ의 희석된 언어적 용법에 익숙해져 갈 거예요.
제가 ㅂ-word에 익숙해졌듯이.
어린애들이 ㅇㅈ를 천진하게 외치는 게 그렇게 섬뜩한 일이 아닌 날이 올 수도 있겠죠.
그 와중에 싸울 사람들은 열심히 싸우겠죠. 자신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적의 힘을 과대평가하면서.
그래야 전쟁 예산을 더 따낼 수 있을 테니까.

우울한 마음을 떨쳐 버리려고 가볍디 가볍게 써봤고요.
이미 많은 분들은 제가 겪고 있는 단계를 예전에 지나왔을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남초인 이곳에 여성의 목소리가 너무 없으면
안그래도 소수인 여성 클러들이 실망할 거 같아서 뻘짓을 해봤음.

내가 일베나 메갈리아나 워마드 때문에 현실생활에 고통을 겪은 적이 있다!!
온라인에서 기분나쁜 거 말고, 남들이 카던데, 그런 거 말고.
그런 분 있으면 제보 좀 해주세요. 저도 업데이트 좀 하게.
nickyo님은 그런 경험이 많을 거 같아 음...;;


여담.
워마드 카페에 가입하려면 몇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1단계로 '한국남자 못생겼다'를 빈칸에 쳐넣으라고 하더군요?
흠... 한참 동안 망설였어요. 차마 못 쳐넣겠더라고요. 이것들이...
그래도 대의?를 위해서 쳐넣었음. 회원수는 현재 16305명.
굉장 굉장히 궁금한 여성시대는 가입 포기. 이것들이...



  • 공감이 갔고, 미처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좋았다.
  • 여성이 바라보는 사안에 대한 관점. 우리 커뮤니티에 필요한 부분 중 하나였던거 같네요.감사합니다.
  • 글솜씨에 매번 크러쉬. 뇌진탕으로 죽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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