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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12/17 20:39:02
Name   삼공파일
Subject   근대의 종말
민족주의 사학이 도리어 역사를 전진시키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가하면 주류 역사학계는 항상 억울해 합니다. 그런 단계는 지난 지 오래이고 이미 역사학계 내부의 언어는 실증주의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죠.

충분히 그럴법한 이야기지만 한국의 모든 학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그러니까 지적 불성실함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주류 학계는 사이비가 판을 치고 있는 현실을 언제나 한탄하지만 그들의 의무를 다하지는 않지요. 학문적 언어를 활용하여 대중과 소통하는 일, 실천적으로 요약하자면 교과서를 쓰는 일, 한국어로 학문하는 일은 기어코 하지 않은 채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권위가 지식을 독점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 마냥 행동합니다. 제대로 말한 적도 없으면서 너희는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우길 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확장해나가면 의사, 법관, 과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하나 하나 비판할 것들이 산더미 같지만 역사로 돌아와서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주류 학계가 어쨌든 상관 없이 지금 한국 사람들은 민족주의 사관을 거의 문화적 토양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똑같이 사이비라고 해도 이덕일과 환단고기는 빠르게 퍼져나가지만 뉴라이트는 극렬한 저항을 받는 이유이죠. 사실 이러한 배경에 학교에서 배우는 국사 교과서가 있긴 합니다. 정치사를 위주로 편성될 수 밖에 없고 그 연장선 상에서 근현대사를 조명하다 보니 일관된 방향으로 기술하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한계를 충분히 인정하면 모든 역사는 좌파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세기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역사입니다. 여기까지는 대체로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의 큰 범주에서 동의를 얻지만 20세기를 해석하는데서 갈라지죠.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역사를 극복하는 방법이 인민주의(민주주의)이며 민족이 자기 민족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는 해석이 민족주의 역사관이고 주류 역사학계가 현재 어떤 상황인지와 관계 없이 한국 대중의 문화적 토양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지요.

그리고 4.19혁명부터 6월 항쟁까지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역시 이 연장선 상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지금 정치인들 역시 이 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87년 6월 항쟁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가 커다란 태극기를 들고 절규하는 모습을 담은 것인데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NL계열이라는 특수한 정파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보수 정당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범 YS계열조차도 그들 개별적으로 이러한 이해를 공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역사적 맥락 위에 본인들이 놓여 있고 벗어날 수 없지요.

DJ가 김정일과 악수를 한 것은 이러한 역사의 승리였습니다. 소련이 무너졌더라도 역사는 살아 있었지요. 그런데 그 이후에 국제 정세는 빠르게 바뀌었습니다. 911테러가 일어나고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당연하기도 하고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유럽 좌파의 제2의 부흥기가 되었죠.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미국이 시리아에 지상군을 투입해야 할까요? 국제 정세의 현실 속에 역사는 그 흐름이 종말한 것이 아니라 그 가치가 소멸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인들의 생각을 쫓아가다 보면 조금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기는 커녕 87년 6월 항쟁조차 따라가기 버거워 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지금 촛불시위를 87년 6월 항쟁과 똑같이 생각하고 있지요. 박근혜만 빼고...) 생각에서 책곰팡내가 나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죠. 대충 이런 흐름이 있구나 어디서 줏어듣고 최신 용어를 떠드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얼마나 얕은지 초등학생 수준의 이해에 머물러 있고요. 이런 사람들이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가면 혼란과 불행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공부한 것을 마음껏 펼칠 세상이 올테니 나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죠.

근대는 종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지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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