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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2/16 02:33:09
Name   알료사
Subject   귀요미
타임라인에 쓰다가 900자가 넘어가 버려 또 티게로 건너옵니다..

직장 후배중에 키가 멀대같이 크고 몸도 좀 후덕한 여자아이가 있습니다. 제가 뒤에서 이런 얘기하는거 알면 상처받을지도 모르는데 첫인상은 '아니 무슨 여자가... '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처음에 들어왔을때는 열심히 배우느라 정신 없어보이더니 어느정도 앞뒤 분간이 된다 싶자 제 쪽을 지나갈 때면 저를 빤히 쳐다보더군요. 제가 '무슨 용건 있냐' 하는 표정으로 맞받아 보면 그냥 지나가고..  한달 정도 지나니까 멀리서 올때부터 작정하고 눈 마주치겠다는 의도로 보고 있다가 눈 마주치면 생글거렸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안어울리게...'  라는 생각이 한구석에 있었어요. 한번은 순간적으로 짖궂은 마음이 들어 "뭐 좋다고 웃어 임마" 라고 쏘아붙였는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왜그래~ 쟤 웃는게 얼마나 이쁜데~" 라고 하고, 그 아이가 "그럼요~ 저는 ㅇㅇㅇ (직장이름)의 행복 바이러스랍니다~" 라고 너무 득의 양양하게 애교를 부리더라는 겁니다. 그 근자감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는데, 알고보니 저뿐만 아니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직원들에게 그러고 다니는 거였습니다. 제가 웃는걸 보고 뭔가 자신을 얻었는지 갈수록 애교가 표정뿐 아니라 말이나 몸짓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뿌잉뿌잉 귀요미 같은건 기본이고 막 정체불명의  춤을 추질 않나..  

이런 일들이 한 육개월에 걸쳐서 진행되었는데.. 정확히 언제부터 제 태도가 바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가 보이면 제가 먼저 웃음이 나와요. 그 아이가 다가오면 '또 나를 쳐다보겠지?' 하는 심리로 제가 먼저 이미 그 아이를 보고 있습니다. 가끔씩 '내가 쟤를 여자답지 않다고 생각했었나? 저정도면 그렇게 나쁘지도 않잖아?'라는 생각이 들더니 그게 '괜찮은 축이지' 에서 '얘가 이렇게 이뻤었나?'로 변해 가더랍니다.. 분명 외모는 그대론데..

그러다가 제 심경변화에 쐐기를 박는 일이 생겼습니다. 제가 뭘 하다가 손목이 꽤 아플만하게 까졌는데 그 아이가 상처를 보더니 소독해주겠다면서 알콜솜으로 엄청 쎄게 문지르는 겁니다. 너무 아파서 "악-! 아아아악-!" 하고 비명이 나올 정도로 ; "야이 xx지금 뭐하는거야 !" 라고 했더니 이렇게 해야 소독이 제대로 되고 깨끗한 새살이 나온답니다;  다음날 보더니 또 소독하쟤요. "미쳤냐 죽어도 너한테 소독 안받아" 했더니 삐져서 갔어요. 한달정도 지나서 또 제 상처를 보여달라기에 다 낫다고 소매를 걷어 보여주었습니다. 검붉은 흉터가 아직 있어요. "거봐! 소독 안하니까 제대로 안낫잖아!" 랍니다.. 나이차가 띠동갑도 넘는데 반은 반말이에요.. 소독 안해서 그런거 아냐.. 나이들어서 피부재생이 잘 안돼.. 라고 했더니 "ㅋㅋㅋ 알료사님 늙었어" 랍니다. 뭐? ... 하고 벙쪄 있었는데.. 당황한 것도 잠시, 저를 늙었다고 놀리며 웃고 있는 그 아이 앞에서 어떤 익숙한 위축감을 느끼고 놀랐습니다. 미녀 앞에서 움츠러드는 그런 기분이요. 물론 그 아이가 쌩쌩한 20대 초반이긴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그냥 순수 외모로만 제가 그 앞에서 초라해지는 느낌?

최근에 좀 힘든 일이 있어서 웃을 일이 거의 없는데 유일하게 그 아이만 보면 웃습니다. 이런 생각 하면 안되는데 남친만 없으면 쉬는날 불러다 같이 쏘주라도 한잔 하고 싶어요.

탐라에 잘생긴 카페 알바 이야기 보고 생각나서 적었는데 약간 걱정이 되는게.. 저는 개인적으로 '여성스러움'을 어떤 식으로든 규정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요즘 시대에는 확실히 좋지 않은 태도이고 얼마전 탐라에서 많은 분들과 의견대립이 있기도 했구요. 지나치게 외모를 중심으로 제 심리변화를 묘사해서 껄끄럽기도 하구요.  하지만 지금 쓴 '그 아이'가 보여주는 애교는 전형적인 여성스러움 뭐 이런거랑은 완전 거리가 멉니다. 그런 거리가 먼 사람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니 조금 관대히 봐주셨으면 합니다.. 오히려 겉으로 보이는 외모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의도로 썼다는게 맞습니다. 제대로 전달될지는 의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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