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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2/22 04:30:55
Name   눈시
Subject   붉은 건 [ ]다
https://redtea.kr/pb/view.php?id=timeline&no=17812
계기는 이거


(...)

각 색들은 다른 느낌을 줍니다. 그 중 가장 강렬하다고 할 건 역시 빨강, 붉은색이죠. 피가 빨갛기에 생명을 상징했고, 새빨간 색을 만들기 어렵기에 (원색 계열이 다 그렇지만) 높으신 분들이 쓰는 색이기도 했습니다. 중국에서 아주 환장하는 색이기도 합니다. 남자는 파랑 여자는 빨강이라면서 여자의 이미지로 쓰기도 하지만, 반대로 폭력의 이미지로 쓰기도 하죠. 모든 걸 다 뒤엎은 혁명을 한 공산주의에서 빨강을 쓴 건 어찌보면 당연하겠습니다. 그런 빨갱이를 싫어하는 한국에서도 붉은 악마가 있죠. 아 동양에서야 음양을 보면 알 수 있듯 남자의 색이라는 게 전통이었네요.

정치, 군사 쪽으로 가면 역시 강함을 뜻합니다. 전대물에서 리더가 빨강이 아닌 건 찾기 힘들죠. 옛날부터 대장급만 특별히 붉은색으로 치장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고 합니다. 그 특유의 강한 느낌, 염료를 만들기 어려워서 레어한 것도 있죠. 이래서 소수의 최정예부대에게 붉은색을 허락하기도 했습니다.

자... 제가 아는 세 가지를 써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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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다 신겐은 일본 전국시대의 유명한 다이묘입니다. 노부나가-히데요시-이에야스 다음으로 유명하죠. 아버지를 몰아내 정권을 차지했고, 산이라서 못 살던 동네를 주변 정복과 금광 개발을 통해 강국으로 키워냈죠. 오죽 강했으면 다케다군 1 = 도쿠가와군 3, 도쿠가와군 1 = 오다군 3이라 했다 합니다.  손자병법을 좋아해서 이동할 때는 바람같이, 멈출 때는 숲같이, 공격할 때는 불같이, 방어할 때는 산같이라는 풍림화산을 깃발에 써 놓을 정도였습니다. 다만 이걸 풍림화산 네글자로 줄인 건 후대의 일이라고 합니다.


이 풍림화산과 함께 유명한 게 바로 아카조나에, 적비대입니다.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이끄는 최정예병력의 투구와 갑옷 등을 모두 붉은색으로 칠하게 한 거죠. 무시무시하죠.


신겐의 마지막 전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붙었던 미가타가하라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병력 차이도 세 배나 나긴 했지만) 이에야스는 전멸, 부하가 이에야스의 갑옷을 입고 도망치게 했다고 합니다. 도망치면서도 적들이 쫓아와서 직접 활을 쏘며 싸워야 했고, 말에 탄 채로 똥까지 쌌다고 하죠. 비상식량으로 둔 된장이 뭉개진 거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렇게 대승을 거둔 후 드디어 오다를 치느냐 하는데 신겐이 죽어버립니다. 노부나가 인생 최대의 위기가 지나간 거죠. 사실 국력은 노부나가가 훨 나았습니다. 사방이 적이라서 (노부나가 포위망이라고 부르죠) 제 힘을 다 할 수 없었던 거구요. 그래도 무서운 존재긴 해서, 신겐이라는 최대의 적이 죽자 신나게 포위망을 무찔러버립니다. 이후 나가시노 전투에서 다케다군을 전멸시키구요. 기마대에 맞서 다수의 조총+3교대로 끝없이 쏘는 삼단철포 전법으로 대승을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노부나가의 이미지인 혁신을 보여주는 전투인데... 후대의 창작으로 봅니다.


이에야스는 다케다가를 무너뜨리면서 그 전법을 최대한 흡수하려고 합니다. 아카조나에 역시 마찬가지였죠. 그는 이이 나오마사의 부대를 자신만의 아카조나에로 만듭니다. 이후 이이 가문은 막부가 무너지기까지 이 전통을 지켰죠.


실제 이이 나오마사의 투구와 갑옷. 전쟁에서 눈에 잘 띄어야 하기 때문에 이 시대 투구들은 참 희한하게=눈에 잘 띄게 생겼습니다.


전국시대 최후의 전투인 오사카 전투에서는 아카조나에끼리의 대결도 벌어집니다. 이 전투 하나로 전국시대 최고의 무장으로 평가받게 된, 인생 한방을 보여 준 남자 사나다 유키무라. (자세한 건 세자매 다음편을 봐주세요 ^^;) 그의 가문은 원래 다케다가의 부하가문이었습니다. 그 역시 신겐의(+아버지의) 전법을 배웠죠. 오사카 전투에서 그의 부하들도 아카조나에로 만들었고, 이이군과 한번 붙기도 했습니다. 승자는 유키무라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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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가 오면서 서양의 전쟁은 더 이상 기사들만의 것이 아니게 됐습니다. 생산력이 늘어나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그 인구를 무장시킬 무기도 많아졌죠. 관료제가 발전하면서 이들을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전쟁에 동원되는 병력이 늘어만 갔습니다. 글자도 모르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교육이라도 시키기 위해 의무교육이 생겼고, 이들에게 나라를 위해 죽어야 할 이유를 만들기 위해 민족주의가 생겼습니다. 자세히 얘기하면 복잡하니 이 정도로 하죠. '-'a 이렇게 유럽의 근대는 국민개병제=징병제를 낳게 됩니다.

이 때의 총은 우리가 아는 따발총이 아니었습니다. 조총의 다음세대 정도였죠. 한 번 쏘고 총알 하나를 앞으로 넣어서 꼬질대로 꾹꾹 눌러주고 뭐 그래야 했습니다. 연기도 많이 났고, 명중률도 낮았구요. 지금처럼 막 숨어서 쏘고 그런 게 너무 어려웠고, 많은 병력을 그렇게 훈련시키기엔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 어이없는 방식이 나옵니다.

http://pgr21.com/?b=8&n=44935
자세한 건 여길 봐주세요 ( '-')

일렬로 서서 적에게 천천히 걸어간 후 명령에 따라 한번에 쏘는 거였죠. 이게 이 때의 최선이었습니다. 이걸 위해 줄을 맞추는 것으로 시작하는 제식훈련이 강조됐고, 적에게 다가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끝없는 세뇌와 체벌이 동원되었습니다.


영국군은 여기서 남들보다 더 강한 모습을 보입니다. 다른 나라는 보통 3열로 움직였습니다. 반면 영국은 2열로 움직였죠. 이러면 앞에 더 많은 병력이 있는 거고, 한번에 쏠 수 있는 총알도 더 많아집니다. 이렇게 해서 수적 열세임에도 이긴 전투가 있구요. 왜 다른 나라는 그렇게 못 했냐 하면... 좌우로 길어질수록 통제하기 힘드니까요. 거기다 얇은만큼 뚫리면 더 위험하구요. 영국군은 그만큼 이들을 통제하는 간부들의 교육+훈련이 잘 돼 있던 거고 사병들의 훈련 역시 잘 돼 있던 거죠. 남들은 비싸다고 실탄 훈련을 못 했는데 영국은 했다고 합니다. 이러니 세계 최강이 될 수 있었던 거죠. 물론 섬나라기에 소수정예화할 수 있었던 것도 있지만요

터기vs러시아에서 영프가 터키편으로 참전했던 크림 전쟁. 여기서 영국군은 소수로 잘 싸웠고, 러시아군이 오히려 적이 다수인 줄 알고 물러난 적이 있습니다. 한 종군 기자가 이걸 보고 기사를 썼고 여기서 "Thin red line"이라는 별명이 나옵니다. 얇지만 뚫리지 않는 붉은 선이라는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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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은 전쟁의 낭만을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지옥같은 참호전, 끝이 없는 소모전으로 말이죠. 하지만 그 때도 기사를 꿈꾸던 이는 있었습니다.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독일의 귀족입니다. 처음에는 기병으로 시작했지만 그 설 자리가 많이 줄어있었죠. 그 때 그의 눈에 띄었던 게 이제 막 시작된 공군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공군은 급속도로 발전합니다. 그저 정찰만 하다가 상대를 공격하기 시작했죠. 상대에게 권총을 쏘거나 들고 온 폭탄을 떨어뜨리는 정도였던 게 전투기와 폭격기로 발전합니다. 이렇게 되자 순수하게 전투만을 목적으로 하는 부대가 생겨났죠. 이걸 이끈 게 오스발트 뵐케였고 리히트호펜은 여기 발탁됩니다. 그에게 하늘은 아직도 1대 1로 싸우는 기사도의 낭만이 남아있던 곳이었죠. 그는 그리도 원하던 곳에 갔고, 그렇게 그의 전설이 시작됩니다.

독일은 물론 영국도 프랑스도 에이스가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두각을 보이는 건 역시 리히트호펜이었죠. 그 능력을 인정받고 새로운 부대인 야스트 11을 이끌게 됩니다. 그의 지휘하에 무려 450기를 격추했다고 하죠. 중간에 한 번 머리를 맞아 쉬긴 했지만, 돌아와서 또 엄청난 활약을 합니다.


그는 자신의 전투기를 [붉은 색]으로 칠합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붉은 남작이죠. 연합군은 빨갛길래 설마 파일럿이 여자인가 했다고 합니다. 네, 이것이 저 위의 붉은 혜성을 비롯한 수많은 붉은 파일럿들의 기원이죠.

시간이 지나면서 독일 국민들부터 연합군에게까지 그의 명성이 퍼집니다. 자서전까지 쓸 중도였죠. 1918년 봄 그가 죽자 정말 전 독일이 울었죠. 그를 격추한 게 누구인지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고 하고, 추락한 그의 전투기는 서로 한 조각이라도 가져가겠다고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가 격추한 적기의 부분을 집에 전시하는 악취미가 있었습니다. 나름 인과응보일지도요) 이후 그의 시신이 독일에 돌아오자 베를린이 생긴 후 가장 긴 장례행렬이 생겼다고 하죠.

총 80기 격추, 1차대전 최고의 전과였습니다. 이렇게 붉은 남작은 공군의 전설이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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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입니다 '-')/ 세자매 3편은 좀만 더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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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성스러운 재미난 글에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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