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3/11 09:35:36
Name   烏鳳
Subject   막말 변론의 이유
#0. 들어가면서

법정에서 방청석의 절반 이상을 채우는 것은 대개 변호사들입니다.
예정된 재판 시간보다 5분 정도 미리 도착해서 자기 차례의 재판을 기다리는 변호사.
재판 진행이 늦어져서 원래 예정된 시간에 재판을 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변호사.
앞 사건 재판을 마치고 재판부의 지적사항, 상대의 변론 요지 같은 걸 메모 중인 변호사.
때문에 이런저런 이유로... 송무변호사는 자기 사건 말고 다른 사건 재판도 참관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는 법정에서 판사들과 [싸우자]는 식으로 막말 변론을 하는 변호사는 드물게 봤습니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087145&plink=ORI

어제 이 뉴스꼭지를 접하신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간단히 줄이자면, 박근혜의 탄핵심판 대리인단의 변론이 자신들의 의뢰인인 박근혜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쟁쟁한 전관 및 전 대한변협 회장 등이 포함되어 있는 변호인단이 과연 이를 몰랐을까 싶습니다.
어떻게든 사실관계를 잘 버무려서 [합리]적인 [법리]전개로 헌법재판관들을 설득하는 것이 재판의 정도인데 말이지요.


#1. 상대방과 뜨는 키보드 배틀

뭐... 때로는 상대방 대리인의 준비서면을 읽고서는, 상대 대리인을 비아냥대거나 꾸짖는 서면이야 자주 나오기는 합니다.

[원고 대리인은 ~~~라는 전제 하에 OOO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을제X호증 및 원고의 갑제X호증을 보면,
원고 대리인의 전제가 원고가 제출한 증거로도 반박가능한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히 위와 같은 원고의 주장 역시, 상당하지 아니합니다.]
라고 하는 게 일반적인 말하기라고 한다면요.

[원고 대리인은 ~~~라는 전제 하에 OOO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고가 제출한 을제X호증은 제쳐두고서라도,
원고 대리인 자신이 제출한 갑제X호증만 보더라도 원고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주장임은 자명합니다.
대체 어떠한 논리전개 끝에 자신이 제출한 증거와도 모순되는 사실관계에 입각하여 주장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취지의 원고 변론이야말로 본 법정을 우롱할 의도 하에 작성된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됩니다.]
하는 식이지요.

네... 서면 가지고 키배를 뜨는 광경을 생각해보시면 쉽습니다.
키배를 인터넷 게시판에서 하는게 아니라, 서로의 준비서면에서 뜨는 것에 불과하죠.

그런데... 상대방과 이렇게 키배를 뜨는 것이야... 정말 심하지만 않으면야 대개는 못 본 척 하고 넘어갑니다.
다만, 양측 대리인 사이에 이런 키배가 계속되면 판사가 그만 좀 싸우시고 변론에 집중해주세요.. 하는 식으로 주의를 주는 정도이지요.


#2. 재판부와 뜨는 키보드 배틀

변호사들끼리의 싸움이 아니라, 한 쪽 변호사가 판사 개인이나 재판부에게 극언을 내뱉기 시작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재판부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지지요.
상대측 변호사는 기쁨에 겨워 만세...를 부르고 싶지만 역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도록 애쓰게 되고요.

이게 보통... 재판에서는 증거와 증거가 부딪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요.
원고 측 증인 갑순이는 원고가 피고한테 일방적으로 얻어맞았어요... 라고 증언한다면,
피고 측 증인 을순이는 원고가 피고를 두들겨패다가 자기가 균형을 잃더니 계단에서 굴러떨어졌어요.. 라고 증언하는 식이지요.

대개는... 이렇게 서로 배치되는 증언 중 한 쪽 증언은 거짓말이겠지요?
때문에 재판부는 주변의 정황, 서면 증거 등으로 누구의 증언이 사실인지를 가리는데요.
때로는 두 증언의 신빙성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엔 서로 배치되는 두 증언 중에 누구 증언에 손을 들어줄지는 판사 마음입니다. 자유심증주의라고 하지요.

자... 이런 상황에서... 한 쪽 변호사가 재판부에 막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면? 그건 재판에서 지겠다는 이야깁니다.
그러면 재판장님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잘 알겠습니다"고 한 다음, 변론을 마치고서는...
재판부는 막말한 쪽이 패소하는 쪽으로 판결을 내리게 되지요. -_-;;;


#3. 이번 사건에서의 막말 변론

판사에 대한 극언이 의뢰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때로는 판사 앞에서는 대리인 또는 변호인이 약간 비굴한 모습을 보이면서까지 앓는 소리를 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또 궁극적으로 의뢰인을 위한 길이 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잘 아시는 분들일겁니다.
(안면이 있는... 나이많은 학부 동기가 박근혜 변호인단 중의 한 명이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위와 같은 막말 변론이 나오는가 하면요.

첫째로...[잃을 게 없는 경우]입니다.
어차피 질 재판이니... 의뢰인을 위한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죠.
다시말해서.... 우리 쪽 증거가 어차피 부족하거나, 신빙성이 없어서 재판부가 안 믿을 듯 하니...
의뢰인 속풀이나 좀 하시라고 마구 지르는 거지요.
(보통 이럴 때엔 변호사 옆에 의뢰인이 앉아있거나, 의뢰인의 친인척이 방청석에 앉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번째는.. [의뢰인이 요구하는 경우]입니다.
1) 변호사님 이야기 들어보니 안 되는 거 알겠다. 그런데 어차피 안 될 거라면 속 시원하게 좀 질러달라... 하는 경우이거나,
2) 변호사님 왜 이렇게 서면에 메가리가 없나. 변론기일에서라도 빵빵 질러달라. 우리가 세게 나가면 판사가 깨갱할 거다...라고 요구하시거나,
3) 나도 입장이란게 있다. 보는 눈이 있으니 말이라도 좀 쎄게 해 달라... 는 경우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이번 박근혜 대리인단의 변론은 첫번째 유형과... 두번째 유형의 3)번이 결합된 케이스가 아닌가 합니다.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차단되어 있으니.. 어차피 잃을 게 없다고 판단하고서는,
박근혜 지지자들의 '보는 눈'을 감안해서 일부러 쎄게 나간게 아닌가 싶습니다.



#4. 서성건 변호사님의 인터뷰


제가 이렇게 판단하게 된 것은... 박근혜 대리인단 중 한 명이었던 서성건 변호사님의 인터뷰 기사 때문입니다.

http://www.nocutnews.co.kr/news/4747777

제가 주목하는 대목은 아래의 두 부분입니다.

◆ 서성건> 이게 지금 전체 판결의 맥락에서 보면 결국 피청구인께서 헌법적 질서를 중대위반했다, 그 사유를 갖고 결국 파면에 이르게 됐다, 이렇게 서술을 하고 오전에 이유를 낭독을 했었는데요.

그런데 막상 내용들을 살펴보면 [헌법적 질서의 중대한 위배보다는 최서원 등이라든가 어떤 관련자들의 형사처벌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은 그게 형사 관련자들의 처벌 자체가 현재 재판도 제대로 채 종료되지 않은 상태인데 어떻게 이러한 사실을 갖고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정되거나 또는 판결에서 규명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냥 추상적인 헌법적 질서의 중대한 위배로 의율을 해서 판단하게 되었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판결 선고 현장에서 직접 들으면서도 앞부분하고 뒷부분이 모순된다는 느낌을 많이 가졌습니다.  

그리고 더욱이 이 판결 이후에 서술을 하면서 듣던 중에 검찰이나 특검의 불출석 등 사실 규명에 비협조적이었다라는 점이라든가 어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적절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런 내용들이 판단 이유에 아주 비중 있게 판단 이유로 들어지고 있습니다.

◆ 서성건> 그 소추에 대해서 저희들이 [상대방의 피청구인에 대해서는 그것에 대한 방어를 펴서 과연 소추 내용이 정당한가, 안 한가를 판단하는 것이지 헌법재판소에서 소추 내용에 덧붙여서 하거나 이렇게 판단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들이 그 부분이 언뜻 법률적으로 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인터뷰 내용을 짧게 축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최순실의 혐의에 관하여 법원에서 구체적인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최순실의 혐의를 근거로 박근혜를 탄핵하는 것은 부당하다.
2) 탄핵 결정은 소추의 당/부당에 관하여만 판단하여야 하는데, 왜 주변 정황(검찰, 특검 수사에 불응한 사정)에 따라 결정이 이루어졌는지 납득할 수 없다.


그런데 이미 여러 학자, 실무가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1) 헌법재판소가 서울중앙지방법원 및 나아가 대법원의 사실인정과 법리해석에 구속되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별개의 헌법기관이니까요. 헌법재판소가 최순실의 혐의에 관하여 유죄라고 인정한다면 얼마든지 탄핵이 가능한 것이죠. 통진당 해산 당시, 아직 이석기에 관하여 법원의 재판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헌재가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렸던 것처럼요.

2) 탄핵절차에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는데요. 그 근거는 헌법재판소법입니다.
제40조(준용규정) ① 헌법재판소의 심판절차에 관하여는 이 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민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한다. [이 경우 탄핵심판의 경우에는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하고, 권한쟁의심판 및 헌법소원심판의 경우에는 「행정소송법」을 함께 준용한다.

서성건 변호사님이 문제삼는 부분은,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 및 그 부속증거들에서 [박근혜가 검찰이나 특검 수사에 불응한 사정]이 제출되지도 않았는데.. 왜 피청구인의 방어권 보장에 반하는 식으로 헌법재판소가 그런 정황을 증거로 들어 탄핵을 했느냐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는 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의 수식어,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논리입니다. 검사가 공소장 및 재판부에 제출된 증거[만]으로 형사재판에 임하도록 제약을 두는 것은 국가권력의 대행자인만큼, [자연인]인 피고인의 한계를 감안하여, 국가권력에 제한을 걸어두겠다는 취지거든요.

그런데 탄핵심판, 그것도 헌법기관으로서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탄핵심판에 있어서 대통령은 [자연인]이라고 볼 수 없지요. 때문에 대통령의 탄핵심판에 관한한은, 일반 형사소송에서와 같이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규정을 적용하기에는 적합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하지요.



#5. 결론

위와 같은 이유로... 박근혜의 변호인단은 여러 가지로 무리수를 던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법리적으로 따져볼 때... 사실 다퉈볼 여지가 별로 없거든요.
때문에 재판부가 구성에 장애가 발생할 때까지 의도적으로 시간을 지연시키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시간 지연전략마저 차질이 생기자, 결국에는 막말 변론에까지 이르지 않았나... 이렇게 추측해 봅니다.



19
  • 동종업계인으로 재밌게 봤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분석은 추천
  • 설명이 재밌어요!!
  • 알기위우며 논리적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9904 4
6646 음악레드벨벳 앨범 수록곡 추천 [2] + 은우59 17/11/24 59 0
6645 일상/생각꼬꼬마 시절의 살빼기 [5] + 알료사235 17/11/24 235 3
6644 일상/생각아이 유치원 소식지에 보낸 글 [5] CONTAXS2363 17/11/24 363 8
6643 의료/건강2012년으로 돌아가 살펴보는 이국종의 정치성 [12] 구밀복검668 17/11/24 668 7
6642 창작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영역 가형(홀수) 대충 풀어봄. [35] 캡틴매쓰매티카650 17/11/24 650 5
6641 스포츠171123 오늘의 NBA(러셀 웨스트브룩 34득점 10리바운드 9어시스트) 김치찌개69 17/11/24 69 0
6640 게임[자작게임 공유홍보] - 네모와 디오(Nemo_D.O) (판매를 시작하였습니다.) [9] mathematicgirl237 17/11/23 237 0
6639 기타이제 8일 정도 남았군요. [5] 1hour10minuteidw540 17/11/23 540 0
6638 육아/가정아들의 장난감 [4] 빈둥빈둥374 17/11/23 374 6
6637 영화이번 주 CGV 흥행 순위 [1] 홍차봇184 17/11/23 184 0
6636 스포츠171121 오늘의 NBA(러셀 웨스트브룩 22득점 16리바운드 12어시스트) 김치찌개59 17/11/22 59 0
6635 일상/생각괌 다녀왔습니다~ [10] elena354 17/11/22 354 8
6634 일상/생각홍차넷의 정체성 [42] 알료사1299 17/11/22 1299 37
6633 기타돈 준 만큼 일하는 편이야~ [18] 세인트929 17/11/22 929 6
6632 게임[LOL] 11월 21일자 기준 LCK 이적시장 현황 [5] Leeka335 17/11/21 335 0
6631 기타이문열 사찰받은 썰 [8] 알료사734 17/11/21 734 0
6630 여행23박24일 전국일주여행 [9] 모모스336 17/11/21 336 14
6629 일상/생각커피클럽을 꿈꾸며 [11] DrCuddy449 17/11/21 449 11
6628 일상/생각고3, 그 봄, 그 겨울 [18] aqua560 17/11/21 560 47
6627 음악요즘 듣고 있는 올드 팝송들3.swf [2] 김치찌개92 17/11/21 92 0
6626 문화/예술칸딘스키의 초창기 작품들 [8] 나단472 17/11/20 472 5
6625 역사아우슈비츠로부터의 편지 [11] droysen395 17/11/20 395 15
6624 영화춘몽 (A Quiet Dream, 2016) [3] 리니시아138 17/11/20 138 1
6623 도서/문학생각정리를 위한 "노트의 기술" [1] 기쁨평안385 17/11/20 385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포럼형 정렬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