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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03/21 05:11:33 |
Name | 三公 |
Subject | . |
작성자가 본문을 삭제한 글입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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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없이 들리겠지만 제 주변에는 똥이 많이 없어서 도대체 삼공 님 주변에는 어떤 똥이 그렇게 사람을 괴롭히나 의아해요. 물론 한국의 직장생활, 거기서 직면하는 각종 부조리와, 인간 사이의 갈등에 대해 많이 들어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인간애를 발견하고 살지 않나요.
타넌바움 님의 아래 글이 피지알에서는 세속적인 공감을 샀는데 여기 공기랑 거기 공기랑 같지 않은 건 맞는 것 같아요. Banality of Evil이라고 하죠. 가게를 맡겨 놨더니 장부를 조작해서 돈을 빼돌리더라는 식의 에피소드는 껄렁한 멕시칸직원의 범죄행... 더 보기
타넌바움 님의 아래 글이 피지알에서는 세속적인 공감을 샀는데 여기 공기랑 거기 공기랑 같지 않은 건 맞는 것 같아요. Banality of Evil이라고 하죠. 가게를 맡겨 놨더니 장부를 조작해서 돈을 빼돌리더라는 식의 에피소드는 껄렁한 멕시칸직원의 범죄행... 더 보기
재수없이 들리겠지만 제 주변에는 똥이 많이 없어서 도대체 삼공 님 주변에는 어떤 똥이 그렇게 사람을 괴롭히나 의아해요. 물론 한국의 직장생활, 거기서 직면하는 각종 부조리와, 인간 사이의 갈등에 대해 많이 들어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인간애를 발견하고 살지 않나요.
타넌바움 님의 아래 글이 피지알에서는 세속적인 공감을 샀는데 여기 공기랑 거기 공기랑 같지 않은 건 맞는 것 같아요. Banality of Evil이라고 하죠. 가게를 맡겨 놨더니 장부를 조작해서 돈을 빼돌리더라는 식의 에피소드는 껄렁한 멕시칸직원의 범죄행위를 몰래카메라로 확인하고 그 사람을 어떻게 적법하게 잘라낼 것이냐를 고민하는 한국인 고용주를 연상케 하는데 그런 멕시칸 직원의 미래는 보통 끝까지 빛을 보는 일이 없죠. 그가 대단한 야심가여서 양심을 속이고 벌어들인 종잣돈으로 종국에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다면 이제 사는 것이 풍요로운 그가 정승같이 돈을 쓰더라 정도로 이야기가 연결이 되어야지만 그나마 까짓 거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란 공감을 불러내지 싶어요.
타넌바움 님의 이야기에 나온 등장인물은 수단을 가리지 않는 방법으로 장사수완이 좋은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어떤 방식으로든 칭송의 여지를 두는 댓글반응들은 생경해요. 제가 심하게 온실 속의 화초인가요.
타넌바움 님의 아래 글이 피지알에서는 세속적인 공감을 샀는데 여기 공기랑 거기 공기랑 같지 않은 건 맞는 것 같아요. Banality of Evil이라고 하죠. 가게를 맡겨 놨더니 장부를 조작해서 돈을 빼돌리더라는 식의 에피소드는 껄렁한 멕시칸직원의 범죄행위를 몰래카메라로 확인하고 그 사람을 어떻게 적법하게 잘라낼 것이냐를 고민하는 한국인 고용주를 연상케 하는데 그런 멕시칸 직원의 미래는 보통 끝까지 빛을 보는 일이 없죠. 그가 대단한 야심가여서 양심을 속이고 벌어들인 종잣돈으로 종국에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다면 이제 사는 것이 풍요로운 그가 정승같이 돈을 쓰더라 정도로 이야기가 연결이 되어야지만 그나마 까짓 거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란 공감을 불러내지 싶어요.
타넌바움 님의 이야기에 나온 등장인물은 수단을 가리지 않는 방법으로 장사수완이 좋은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어떤 방식으로든 칭송의 여지를 두는 댓글반응들은 생경해요. 제가 심하게 온실 속의 화초인가요.
누구나 똥을 간직하고 사는건 문제없음이지요.
문제는 그 똥을 길바닥에 뿌직뿌직하는거겠죠.
남이 싼 똥을 친절하게 치워주고 닦아주는 이는 흔치 않아요.
오히려 누군가 나를 쳐다보면서 똥을 쌀 때, 그 사람의 허벅지 위에 앉아서 똥을 싸려는게 보다 흔한 감정이지요.
그 결과는 세상에 똥을 뿌리는데 한스푼씩 보태게 되는 것이고.
누군가 자신의 똥을 세상에 흩뿌리는 것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은 일종의 적응실패, 또는 교육실패라고 봐요.
물론, 세상에 똥이 그득한 것은 그런 개개인의 실패만이 원인은 아니니 조금은 다른 층위... 더 보기
문제는 그 똥을 길바닥에 뿌직뿌직하는거겠죠.
남이 싼 똥을 친절하게 치워주고 닦아주는 이는 흔치 않아요.
오히려 누군가 나를 쳐다보면서 똥을 쌀 때, 그 사람의 허벅지 위에 앉아서 똥을 싸려는게 보다 흔한 감정이지요.
그 결과는 세상에 똥을 뿌리는데 한스푼씩 보태게 되는 것이고.
누군가 자신의 똥을 세상에 흩뿌리는 것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은 일종의 적응실패, 또는 교육실패라고 봐요.
물론, 세상에 똥이 그득한 것은 그런 개개인의 실패만이 원인은 아니니 조금은 다른 층위... 더 보기
누구나 똥을 간직하고 사는건 문제없음이지요.
문제는 그 똥을 길바닥에 뿌직뿌직하는거겠죠.
남이 싼 똥을 친절하게 치워주고 닦아주는 이는 흔치 않아요.
오히려 누군가 나를 쳐다보면서 똥을 쌀 때, 그 사람의 허벅지 위에 앉아서 똥을 싸려는게 보다 흔한 감정이지요.
그 결과는 세상에 똥을 뿌리는데 한스푼씩 보태게 되는 것이고.
누군가 자신의 똥을 세상에 흩뿌리는 것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은 일종의 적응실패, 또는 교육실패라고 봐요.
물론, 세상에 똥이 그득한 것은 그런 개개인의 실패만이 원인은 아니니 조금은 다른 층위의 문제를 언급한거 같은데,
그래도 똥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개개인의 내제된 똥, 표출된 똥, 세상의 똥이 끈끈하게 이어져있다는 말씀은 드리고 싶었어요.
문제는 그 똥을 길바닥에 뿌직뿌직하는거겠죠.
남이 싼 똥을 친절하게 치워주고 닦아주는 이는 흔치 않아요.
오히려 누군가 나를 쳐다보면서 똥을 쌀 때, 그 사람의 허벅지 위에 앉아서 똥을 싸려는게 보다 흔한 감정이지요.
그 결과는 세상에 똥을 뿌리는데 한스푼씩 보태게 되는 것이고.
누군가 자신의 똥을 세상에 흩뿌리는 것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은 일종의 적응실패, 또는 교육실패라고 봐요.
물론, 세상에 똥이 그득한 것은 그런 개개인의 실패만이 원인은 아니니 조금은 다른 층위의 문제를 언급한거 같은데,
그래도 똥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개개인의 내제된 똥, 표출된 똥, 세상의 똥이 끈끈하게 이어져있다는 말씀은 드리고 싶었어요.
저는 학창 시절에 기침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기침을 하고 나면 목 안에서 나왔는지, 위에서 나왔는지 구역질나는 냄새가 남거든요. 그럴 때마다 생물이기에 공유하는, 고상한 체하는 우리를 발가벗기는 무언가를 생각하고는 했어요. 저기 저 지나가는 멋지고 이쁜 사람도 내장을 끄집어 내 냄새를 맡으면 똑같겠지 하는 생각이요. 말씀하셨던 X를 나에게서 보든 남에게서 보든 그 냄새를 떠올리게 되요.
미움 받기 싫어하는 경우 남의 감정과 불화를 피하고자 하기도 한다만, 저는 나와 남의 감정에 대해 숙고하고 한... 더 보기
미움 받기 싫어하는 경우 남의 감정과 불화를 피하고자 하기도 한다만, 저는 나와 남의 감정에 대해 숙고하고 한... 더 보기
저는 학창 시절에 기침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기침을 하고 나면 목 안에서 나왔는지, 위에서 나왔는지 구역질나는 냄새가 남거든요. 그럴 때마다 생물이기에 공유하는, 고상한 체하는 우리를 발가벗기는 무언가를 생각하고는 했어요. 저기 저 지나가는 멋지고 이쁜 사람도 내장을 끄집어 내 냄새를 맡으면 똑같겠지 하는 생각이요. 말씀하셨던 X를 나에게서 보든 남에게서 보든 그 냄새를 떠올리게 되요.
미움 받기 싫어하는 경우 남의 감정과 불화를 피하고자 하기도 한다만, 저는 나와 남의 감정에 대해 숙고하고 한 걸음 뒤에서 보려고 했었어요. 재미있게도 그러면 그런 관점들이 대화에 스며들고는 하는데, 자칫하면 상대를 매우 불쾌하게 만들더라고요. 나와 상대안의 X를 짚는다는 게 우리 모두의 행동을 X로 일반화 해버리는 그게 있으니까요. 그게 문제라는 뜻이 아니라고 항변한들 이미 취한 관점이 상대에 대한 대상화를 피할 수가 없고요. 기실 사람들 간의 차이는 X를 어떻게 다루고/안고 살아가는지에 있는데 말이지요. 설령 자기기만이라 느껴지는 부분이 있더라도 타인의 자기준거 틀을 조심성 없이 다룬다는 건... 분노한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해보니 알겠더라고요. 반대로 X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에게 반영해서 살아가면 주변과 미끄러지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되는 경우가 많고요. 그러다가 내가 아니라고 노력했던 부분에서 너는 X야!라는 말을 듣기라도 하면 맨붕이 ㅋㅋ 아마 내가 나의/남의 X와 맺는 관계는 계속해서 변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고 변증법 같은 모델은 아닐테지만요. 개인적으로는 보다 따뜻해지고 싶어요. 개별적인 특수성을 중요시하고, 다양한 렌즈를 이용하는 것이 한 시작이 아닌가 싶고요. 중층기술이라 할 수 있겠지요.
미움 받기 싫어하는 경우 남의 감정과 불화를 피하고자 하기도 한다만, 저는 나와 남의 감정에 대해 숙고하고 한 걸음 뒤에서 보려고 했었어요. 재미있게도 그러면 그런 관점들이 대화에 스며들고는 하는데, 자칫하면 상대를 매우 불쾌하게 만들더라고요. 나와 상대안의 X를 짚는다는 게 우리 모두의 행동을 X로 일반화 해버리는 그게 있으니까요. 그게 문제라는 뜻이 아니라고 항변한들 이미 취한 관점이 상대에 대한 대상화를 피할 수가 없고요. 기실 사람들 간의 차이는 X를 어떻게 다루고/안고 살아가는지에 있는데 말이지요. 설령 자기기만이라 느껴지는 부분이 있더라도 타인의 자기준거 틀을 조심성 없이 다룬다는 건... 분노한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해보니 알겠더라고요. 반대로 X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에게 반영해서 살아가면 주변과 미끄러지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되는 경우가 많고요. 그러다가 내가 아니라고 노력했던 부분에서 너는 X야!라는 말을 듣기라도 하면 맨붕이 ㅋㅋ 아마 내가 나의/남의 X와 맺는 관계는 계속해서 변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고 변증법 같은 모델은 아닐테지만요. 개인적으로는 보다 따뜻해지고 싶어요. 개별적인 특수성을 중요시하고, 다양한 렌즈를 이용하는 것이 한 시작이 아닌가 싶고요. 중층기술이라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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