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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07/25 04:57:01 |
Name | 쩡 |
Subject | 지나간 당신에게 |
안녕. 나 얼마 전 당신을 봤어요. 그리고 그동안의 긴 공백을 채워 넣듯 한참을 바라봤어요. 하지만 내가 고개를 돌려 버리고 만 것은 당신이 그저 지나간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니었어요. 나는 두려웠어요.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보다 더 많이 흘러버린 세월이, 당신을 내가 모르는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을까 두려웠어요. 때 묻고 얼룩져버린 내 모습을 당신에게 보이는 것도 두려웠어요. 당신과 마주치고 나는 며칠간 당신을 떨쳐 낼 수 없었어요. 다가가 웃으며 건낼 수 있었던 말들, 어쩌면 건내야만 했던 말들이 마음속 가득 흙탕쳐 날 혼란스럽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나는 짧은 편지를 쓰려고 해요. 이젠 당신에게 부칠 수 없지만, 마음속에 파도치는 이 말들을 게워내지 않고는 나는 잠들 수 없어요. 당신에게 처음 편지 쓰던 날을 기억해요. 당신을 그리던 마음만큼 붉게 물들였던 단풍, 높아지던 하늘과 가을 냄새, 그 시월을 춘천을 기억해요. 나는 오랫동안 당신의 마음을 두드렸어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자유를 박탈당한 생활 속에서 당신과의 편지는 내 전부였어요. 우리는 연인이 되고, 살을 에는 긴 겨울의 추위와 칠흑 같던 어두움도 전부 당신으로 견뎌 낼 수 있었어요. 나는 행복을 연기하는 사람들과 비싼 차와 멋진 물건들을 봐요. 당신을 알기 전, 그것들은 오랫동안 내 삶을 지배했어요. 그리고 그것들로 나를 타인에게 보여야 했을때, 내 삶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이었을까요. 당신을 만나고 나는 세상을, 사물을 다르게 보기 시작 했어요. 당신의 따뜻함은 이기적인 나를 변화시키고, 상처를 사랑으로 덮어 주었어요. 그것은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삶의 일부가 되었어요. 그러니 당신, 미안하다고 말하지 말아요. 현실은 우리를 갈라놓았고, 우리의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지만, 우리가 앉았던 자리에는 매년 같은 꽃이 피고 있어요. 당신도 알고 있나요? 나 이제 당신의 얼굴이 예전처럼 잘 떠오르지 않아요.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의 모든 날이 허무한 것이었다고,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는 못 할 거에요. 우리의 사랑은 운명적이지도, 영화 같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연애였지만 내 사랑은 때 묻지 않은 순백의 것이었고, 소년을 남자로 만드는 열병을 앓게 한, 내 인생에서 일어난 가장 영화 같은 일일 거에요. 세월은 우릴 바꾸어 놓았고, 또 바꾸어 나가겠죠. 하지만 당신, 당신 그림 속의 내 모습으로, 행복했던 그때로, 날 기억해주세요. 나는 그걸로 충분해요.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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