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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7/27 18:27:42
Name   프렉
Subject   뱅은 어떻게 욕을 먹게 되었나.
어떤 종목의 프로스포츠 선수가 된다는 것은 아마추어 시절 뛰어난 기량으로 프로구단 관계자들에게 가능성을 인정 받았다는 뜻이다.
관계자들이 선수를 살피는 기준은 "해당 종목에서 얼마나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가"에 집중되며 그들의 기준에 맞는다면 드래프트 된다.

즉, 선수들을 살필 때는 하드웨어(기능) 기준으로 살피는 것이 최우선이고 이후 소프트웨어(인품) 는 보강하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여타 구기 종목들이나 격투기 등등 세상엔 많은 프로스포츠들이 존재하고 그 리그에서 뛰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정기적으로 교육을 받는다.
앞서 언급한 소프트웨어 보충교육이다. 말하는 것도 뻔하고, 커리큘럼도 뻔하기에 대부분의 선수들은 지루하다며 싫어하지만 어쨌든 이수한다.

이후 선수 교육이 끝나도 신입 선수들은 지속적으로 선배나 구단 직원들을 통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 끊임없이 주입 받는다.
그리고 멀리 갈 필요없이 누르지 말아야 할 버튼을 눌러서 망가지거나 선수 생활을 오래 지속하지 못한 사람들의 케이스를 수도 없이 접한다.

본인이 조금 더 철이 들었다면 스스로의 행동과 언행에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거의 스무 해를 넘도록 운동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온 사람이 한 마디의 말 실수, 한 번의 행동으로 기량을 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장외로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그 무엇보다 큰 것이다. 허나 그들도 사람이고 잔실수가 들불처럼 커져 어느 순간 큰 실수가 되어있는 사건에 맞딱뜨리게 된다.

여기서 온건한 상식과 생각을 가진 선수라면 우선 구단에 도움을 청할 것이다. 한 소리 듣겠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장외의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두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부외자가 된다는 것,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선수는 어떻게든 전후사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상황에 따른 대처를 구단에 상의한다.

구단도 마찬가지로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 전력감이 안되는 인간이라면 방출해버리고 구단 명의로 성명서를 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면 된다.
하지만 팀의 스타급 선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우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고 언론 통제, 엠바고를 걸어서 시간을 번다.
프런트 내부에선 어떤 형식으로 사과를 하면 좋을지, 사건에 대한 부분은 어느 선까지 밝히는게 좋을지, 사건은 어떻게 수습할지 다각도로 궁리한다.

그렇게 선수와 프런트가 내밀한 회의를 거쳐서 팀과 프런트, 선수 삼자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정식으로 사과의 형식을 띄게 되는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의 눈물을 보며 시청자들은 혀를 차겠지만 거기까지의 과정엔 수많은 프로세스와 세련된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쓰여진다.

프로의 사과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럼 요새 화제의 중심에 서있는 SKT T1팀 소속의 원딜러 'bang' 배준식의 사과 프로세스를 한 번 따라가 보자.

배준식 선수에 대한 논란은 우선 리프트 라이벌즈(LCK/LPL/LMS) 결승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소속 팀은 결승전까지는 무난하게 올라왔지만 이후 이어지는 결승전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밴픽"과 "무모한 플레이"로 인해 크게 패배했고, 이는 세계 최고 팀이라는 명성엔 걸맞지 않은 졸전이었다. 커뮤니티에선 당연히 이에 대한 성토가 쏟아지고 온통 난리였던 상황.

설상가상으로 후반기 시즌이 시작되자 팀은 내리 4연패를 하며 팀의 분위기는 최악의 국면을 맞이했다.

이 와중에 팀의 상황과는 전혀 무관한 곳에서 SKT의 악성 팬들이 억지를 내세워 팀의 실수를 덮기위해 커뮤니티들을 시끄럽게 했고, 기존의 팬들은 여기에 응수하며 토론이 아닌 키배의 장으로 변질되어갔다.  이 중에 익명의 팬이 배준식의 개인 스트리밍에서 나온 이른바 "연봉 언급" 영상을 올렸다. 그들의 목적은 "그들의 기준"에서 선수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놓으려는 목적으로 업로드한 영상이었지만, 영상 속에서 배준식은 해서는 안되는 말을 하고 있었다. 팬들을 직접적으로, 아주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프로 선수가 프로 선수로 있게 만들어주는 팬이라는 존재를 비하한 것은 어떤 종목에서도 똑같이 중대한 실수로 취급된다.

그러나 이 연봉 발언 이후에 배준식 선수의 행보는 의아함 그 자체였다. 개인의 트위터에 사과 비슷한 무엇인가를 몇 줄 적어놓고 손을 놔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습을 했어야하는 사람들 모두 손을 놓고 배준식 선수가 굴린 스노우볼이 얼마나 커지는가 그냥 멀뚱히 보고 있었을 뿐이다. 수습을 위한 그 어떤 행동도 없이 사건은 커졌고 그제서야 자신의 실수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팀의 경기가 있었고, 그 경기에서 승자 인터뷰를 겸해 해당 사건에 대한 소회, 사과를 짧게 이야기 했을 뿐이다.

앞서 언급했던 타 종목 선수들의 사과 프로세스에 비해 무언가 한참 생략되었으며, 결론나지도 않았고, 여론도 수습되지 않았다.
형식적인 사과가 오히려 팬들을 자극할 뿐이라는 사실을 본인과 코칭 스태프, 프런트가 아직도 모르고 있다면 SKT T1이란 팀의 기량은 거기까지일 뿐이다.

뱅이 어떻게 욕을 먹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하자. "방치해서 욕을 먹었다. 지금도 방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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