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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9/23 02:42:36
Name   알료사
File #1   00503585_20170629.jpg (284.1 KB), Download : 3
Subject   애견 소설


얼마전 김애란의 단편 <노찬성과 에반>을 읽었습니다.

열살 먹은 초등학생이 길에 버려진 늙은 개를 데려다 키우며 일어나는 일을 그렸는데

한번이라도 개를 길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며 가슴 한켠이 저려올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었어요.  

무거운 감동과 함께 오래 전에 읽었던 비슷한 종류의 소설 둘이 떠올라 간단히 함께 소개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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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 미친 사랑의 노래

연.애.소.설 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문열도 연애 소설을 썼습니다. 아주 슬픈 연애 소설을.

이것은 남자 인간이 여자 인간을 사랑했던 이야기입니다. 비뚤어진 사랑이었어요.

여자를 사랑한다는게 어떤 건지 모를 만큼 어렸던 시절, 남자는 개를 좋아했어요.

개에 대한 과도한 애정은 그가 좋아한 개들을 힘들게 했고 개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를 피했습니다.

어린 강아지의 경우 집을 나가거나 병에 걸려 죽었어요. 부모님께서 들여오시는 강아지들는 대부분 혈통 좋은 비싼 녀석들이어서 그때마다 크게 혼나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남자는 예외적인 강아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의 고급 애완견과는 달리 이번에는 음식 찌꺼기를 처리해 준다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데려온 잡종이었습니다. 이름은 '포기'였어요.

남자는 포기에게 앞뒤 없이 몰입했습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숨이 막히도록 껴안고 다녔고 자신의 몸에서 개 냄새가 떠나지 않게 될 정도로 부벼댔어요.

토할 정도로 음식을 많이 주고 밤에 안고 자다가 몸에 깔리게 만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포기는 그전의 개들과는 전혀 달랐어요.

고통스러우면서도 그 모든 것이 자신에 대한 애정이라는걸 알고 있다는 듯이 다소곳이 참아냈습니다.

남자가 다른 일로 바빠 잠시 포기를 잊고 있을 때면 스스로 찾아와 그 고통스러운 사랑을 구할 때도 있었어요.

다른 개들에게 배신감만 맛보아온 남자에게 포기의 그러한 태도는 감동 그 자체였고

더욱더 포기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포기에게는 재앙이 되어버렸습니다.

갈수록 털이 까칠해지고 군데군데 빠지기까지 했습니다. 눈에는 눈꼽이 자주 꼈고 점점 움직이기를 꺼려했어요.

그런 포기의 상태는 가족 모두의 분노를 샀습니다. 아버지의 불호령과 함께 남자에게는 포기 접근 금지령이 내려졌어요.

포기는 점점 쇠약해져 갔습니다. 그러다고 보름 정도 지나서 포기는 한겨울 아궁이에 들어가 숨을 거두었어요.

왜 포기가 아궁이에 들어갔는지는 참 의문이었습니다.

포기가 죽은 후 집에서는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았습니다. . . . . .  

남자가 성장해 여자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의 사랑은 어린 시절 개들을 대할 때의 방식과 비슷했어요.

당연히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런 식의 사랑을 받아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운좋게도 남자는 그의 마지막 사랑이었던 '포기'같은 여자를 만납니다.

그리고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되었을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소설의 마지막에 여자는 언젠가 남자가 얘기해준 포기를 언급합니다.

포기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느냐고. 포기가 왜 아궁이로 들어갔는지 아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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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 개 이야기

주인공은 개가 싫습니다.

개한테 물릴까봐 겁납니다.

친구 한 놈이 개한테 물렸는데 삼주동안 치료하느라 고생도 고생이었고 병원비도 엄청 깨졌어요.

개한테 안 물리려고 개만 보면 적이 아님을 보려주려 거짓 웃음을 짓고 개가 싫어할 만한 용모와 행동을 삼가합니다

그런데 이런! 개들이 주인공을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주인공의 연극이 개들의 마음에 들어버렸나봐요!

거리에서 만나는 개들마다 온통 꼬리를 흔들며 주인공을 따라오는 통에 곤욕을 치르던 터에

급기야 그중 한 마리가 주인공의 집까지 쫓아들어와 버렸습니다.  

괴로운 하루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개와 지내면 지낼수록 개라는 비굴한 짐승에 대한 혐오가 심해졌습니다.

포치(이상하게 이름이 비슷하네요.. 설마 이문열이 표절? ㅋ) 라고 이름지은 이 개는 같이 산책을 나가면 다른 개들에게 꼭 시비를 걸어 싸웁니다.

주인공은 포치가 싸우는 상대 개가 열받아서 자신에게 덤벼들진 않을까 걱정입니다.

속으로 포치를 경멸하고 아내에게도 포치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습니다.

헌데 포치는 이런 주인공의 기색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한층 풀이 죽었고

어느날 큰 개와 싸워 굴욕적으로 패하더니 그 이후로는 다른 개들과 만나도 싸움을 피하네요.

그러다가 주인공은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 기회를 통해 포치를 버리고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침 포치는 악성 피부병에 걸리는 바람에 냄새를 풍기며 쇄약해져 가요.

아내는 이웃애 피해를 주면 안된다며 포치를 죽이자고 제안하고 주인공도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동의합니다.

고기를 사 독약을 묻힌 후 포치를 외딴 공터로 데려가는 주인공...

피부병에 걸려 한동안 부끄러운듯 주인공에게 살갑게 다가오지 못했던 포치는 이날만은 선선히 따라오고...

공터로 가는 도중에 붉은 털의 사나운 개가 포치에게 시비를 거는데...

과연 포치의 운명은...?

다자이 오사무는 가만보면 약간 츤데레스러운데가 있는데 그런 면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소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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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 노찬성과 에반

위에 적었듯 초등학생이 길에서 늙은 개를 데려다 키운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 이름이 노찬성이에요. 처음에 제목만 보고 무슨 NO찬성 이런 뜻인줄 알았는데 사람 이름이었어요 ㅋ 에반은 찬성이가 지어준 개 이름이구요 ㅎ

찬성이는 할머니랑 둘이 사는데 처음에 에반을 집에 데려왔을때 할머니는 완강하게 반대하며 다시 내다 버리라고 했습니다.

개 한마리 키우는건 사람 한 명 보살피는 일과 같은 공이 든다면서요.

찬성이는 에반을 키워야 할 이런저런 이유를 대가며 할머니를 설득시키려 했지만 할머니는 꿈쩍도 안했어요.

다급해진 찬성이는 어떤 말을 내뱉았는데 그 말을 하고 자신도 깜짝 놀랐습니다.

"에반 내가 <책임>질께요"

태어나 처음 해본 말이었어요.

아버지를 사고로 여의었던 찬성이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는데 에반이를 데려오면서 꿈 없이 깊이 잠들수 있게 되었어요.

찬성이는 에반이 자신을 지켜준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도 에반을 꼭 보호해줘야겠다고 다짐합니다.

2년 정도 시간이 흘렀어요.

데려올 때부터 늙은 개였던 에반은 수명이 거의 다 되어 갑니다.

아파하는 에반을 할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몰래 동물병원에 데리고 갑니다.

종양이 온몸에 퍼져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노견이라 수술을 하는게 더 안 좋을수도 있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안락사를 설명해 주는 의사 선생님.

아픈 친구를 편안하게 해주는 주사를 놓아준대요.

고민끝에 찬성이는 나이를 속이고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에반의 안락사 비용 십만원을 벌기 위해서요.

다리에 알이 배어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힘들때면 주문처럼 '한장에 이십원, 천장에 이만원...'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버텼어요.

목표한 돈을 다 모았고, <그 날>이 왔어요.

찬성이는 에반을 씻겨 주고 옷장에서 가장 단정해 보이는 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어요.

지갑 속 현금을 한번 더 확인하고 할머니의 신분증도 몰래 챙겼습니다. 안락사 동의서를 작성할 때 어른 신분증이 필요할까봐서요.

목욕 후 털이 부풀어 보송보송해진 에반을 사랑스럽게 바라봅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지만 마지막 순간을 도울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찬성이는 중요한 일을 치를 것이고, 그 모든 걸 오로지 혼자 준비했다는 생각에 경건해졌습니다.

찬성이는 에반을 잘 떠나보낼수 있을까요..

슬픈 듯 따뜻한 듯 하면서도 잔혹 동화 같은 이야기였어요.. 잔인했습니다.. 김애란 소설을 읽을 때 예전에 비해 점점 웃음기를 잃게 만들어요.. 나름 스타일 변화로 보여서 좋기도 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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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개들을 통해 사랑과 그 가능성에 경의를 표한다.

사랑하는 기계가 아니라면 개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개에게 인간 존재를 제시하고 그를 사랑하라는 임무를 부여하면

아무리 보기 흉하고 사악하고 멍청해도 개는 그를 사랑한다.

인간들에게는 그 특성이 너무나 놀랍고 충격적이어서 그들 대부분도 개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개는,

훈련 효과를 가진 사랑 기계였다.

하지만 그렇게 배운 사랑은 개들에게 한정되었을 뿐 결코 다른 인간들에게 퍼져 나가지 못했다.

미셸 우엘벡 / 어느 섬의 가능성 中



3
  • 춫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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