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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10/18 18:17:37
Name   烏鳳
Subject   모 배우의 강제추행 사건에 관하여
#0. 들어가면서

아침에 타임라인에도 짧게 언급하였습니다만.. 한 영화배우가 영화촬영 중 상대 배우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는 중입니다.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2심에서는 결과가 뒤집혀 유죄판결을 받았지요.
즉각 상고를 했으므로, 곧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가겠고,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피고인(가해자)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데요.
- 피해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피해자의 하의 속옷 안에 손을 집어넣거나 한 일은 없었고,
- 자신이 피해자의 상의를 찢기로 한 것은 모두 합의된 상태에서 그에 따라 연기한 것이고,
- 영화의 맥락상, 외도한 아내를 강간하는 장면의 촬영이었던 탓에, 그에 따라 감독의 연기 디렉팅에 따른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심에서는 피고인의 항변을 받아들여서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 재판부는 반대로 판단하여 유죄를 선고했는데요.
옆 동네나 여기저기서 나오는 의문들을 정리해서 설명해볼까 합니다.


#1. 범죄의 성립 -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책임

일반적으로 '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하려면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첫째 조건인 [구성요건해당성], 둘째 조건인 [위법성], 마지막 조건인 [책임]인데요.
살인죄를 예를 들어서 설명해보지요.

우리 형법에서 살인죄라는 항목 하에, "사람을 살해한 자"는 5년 이상의 징역, 무기징역 또는 사형에 처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살해하다"라는 것이 바로 첫째 조건에서의 '구성요건'입니다.
즉, XX죄에서 금지하고 있는 행위의 유형을 통칭해서 '구성요건'이라고 뭉뚱그려서 부르고 있는데요.

위의 살인죄에서는 '사람을 살해한 행위'
사기죄라면 '타인을 기망하여 재물을 편취한 행위'
상해죄라면 '타인에게 상해를 가한 행위'
같은 것들을 '구성요건'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그리고 누군가의 행위가 형법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면 [구성요건해당성]의 조건을 충족한 것이 됩니다.


그 다음 조건은 [위법성]입니다. 누군가의 행위가 구성요건해당성의 조건은 충족했는데...
이게 전체적인 법 질서가 금지하고 있는 위법한 행위는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예를 들어... 복싱 경기를 생각해보지요.
경기장에서 갑돌이와 을수, 선수 두명이 열심히 치고 받습니다.
때론, 갑돌이가 을수한테 얻어맞은 끝에... 얼굴에 시퍼렇게 피멍이 들기도 하고, 뇌손상을 입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하죠.
그런데.. 이 때 가해자(?)인 을수를 처벌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을수는 형법상 상해죄에 해당하는 행위, 다시말해 상해죄나 상해치사죄의 [구성요건해당성]은 충족을 시켰는데요.
복싱 경기에서 을수가 최선을 다한 끝에 교도소를 간다는 게... 뭔가 이건 좀 아니잖습니까.
이 경우에, 을수가 가해(?)한 것이야 맞지마는... 전체적인 법질서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을수를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잖아요.
우리 형법은 제24조에서.. 이런 경우는 [피해자의 승낙]이 있어 위법하지 않다고 보거나
또는 형법 제20조에서의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정당행위]로 보고...
[위법하지 않은] 행위로 판단하여, 처벌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조건은 [책임]입니다. 쉽게 풀자면 '이건 네 잘못 맞네'하면서 비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멀쩡한 정상적인 사회인이 다른 사람에게, 위법하게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혔다면? 당연히 비난하는게 맞겠지요.
그런데... 중증의 정신분열증 환자라거나... 치매 환자가 다른 사람에게 위법하게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혔다면 어떨까요.
이게 잘못은 잘못인데... 이걸 가지고 비난할 수 있다거나... 나아가 처벌하는 것은 역시 뭔가 좀 아니죠.
중증의 정신분열증이나 치매 증세 때문에 그러한 가해 행위에 이르게 된 것이니까요.


#2. 고의 - 숨어있는 구성요건

그런데 말이죠... 언뜻 보면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위법하며, 비난가능한 행위이긴 한데요.
이게 사람이 일부러, 의도적으로 하는 행위가 있겠고... 정말 본의 아니게 실수로 하는 범죄 행위도 있잖아요.
형법에서는 의도적인 행위, 다시 말해 고의적으로 저지른 행위만을 처벌하는 게 원칙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의 행위가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보려면,
그 행위자가 의도적으로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야만 처벌하는게 원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몇몇 학자들은 '고의'를 숨어있는 구성요건 내지는 주관적 구성요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본의 아니게 실수로 하는 범죄행위, 다시 말해 과실범은
형법전에 '과실범도 처벌한다'는 규정이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도록 입법을 해 두었습니다.
즉, 과실범은 예외적으로... 주관적인 구성요건인 '고의'가 없더라도 처벌할 수 있도록 입법을 해 두는 것이지요.

다시 살인죄로 돌아가보죠.
'사람을 살해한 자'에서의 [살해]는 의도적인 살인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본의아니게 실수로 사람을 죽인.. 과실범인 경우에는요? 살인죄로 처벌하지 않습니다.
상해치사죄(타인을 상해할 의도가 있었던 것은 인정되지만, 죽일 의도까지는 없었던 것으로 보는 경우)
폭행치사죄(타인을 폭행할 의도가 있었던 것은 인정되지만, 역시 죽일 의도까지는 없었던 것으로 보는 경우)
과실치사죄(폭행, 상해의 의도도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타인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같은 별도의 처벌조항을 입법해 둡니다.

즉, 실수로 사람을 죽인 과실범에게는... 위와 같은 각종 'XX치사죄'로 처벌하는 것이지, '살인죄'로는 처벌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만약에 대한민국 형법전에서...
'살인죄'는 입법해두었는데, 'XX치사죄' 같은 법 조항이 없다면?
네...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으므로, 결국 무죄로 풀려나게 됩니다.

왜 이런 '고의'가 이번 사건에서 쟁점이 되느냐.
[강제추행죄는 고의범만을 처벌합니다. 과실범 처벌규정이 없어요.]
예를 들어... 제가 한적한 시골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여성의 엉덩이에 제 엉덩이를 부비부비했다면?
저에게 강제추행의 고의가 있었다고 봐야 겠지요?

그런데.. 제가 지나가는 여성의 엉덩이에 제 엉덩이를 부비부비했는데,
이게 혼잡도 250%를 자랑한다는... 출근길의 지하철 9호선이었다면 어떨까요?
제가 지나가는 여성을 강제추행하려고 부비부비를 한 건지,
아니면 혼잡한 전철 안에서 사람들에게 떠밀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부비부비하게 된 건지.. 좀 애매할 수 있잖아요?
(물론 손으로 더듬었다면? 이 경우에는 강제추행의 고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겠지만요.)

자... 이렇게 애매한 때라면? 법 세계에서의 격언이 있지요.

'in dubio, pro reo'

인 듀비오, 프로 레오... 라고 읽습니다.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라는 뜻입니다.
즉,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은, 애매한 경우라면 무죄인 것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3. 그런데... 무슨 기준으로 '고의'가 있었음을 입증할 것인가

앞서서... 지하철 안에서의 엉덩이 부비부비.... 는 강제추행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엔 애매하지 않나.. 하는 말씀을 드렸지요.
그런데 이건 제 입장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고... 피해자 입장에서도 한 번 생각해보지요.
웬 안여돼 녀석이 내 엉덩이에 자신의 엉덩이를 부비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수사기관은 바보가 아닙니다.
한적한 시골길에서... 저 안여돼가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엉덩이를 부비부비했다면?
안여돼가 '성추행할 의도는 없었다능!!!!' 하는 변명을 늘어놓더라도..
수사기관에서는 그 안여돼에게 '잡소리 즐' 하면서 강제추행으로 기소하겠지요.
한적한 시골길이라면 엉덩이를 부비부비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는 문제잖아요?
형사재판에서 저 안여돼가 똑같은 변명을 하더라도, 판사 역시 '웃기지 마' 하면서 유죄 판결을 내릴 테고요.

자... 그런데 출근시간, 혼잡도 250%의 지하철 9호선이었다면요?
이게 저 안여돼 녀석이 나를 추행할 의도로 부비부비했다고 난 확신하는데,
수사기관에서는 저 안여돼가 출근시간 9호선에서...  본의아니게 그렇게 된 것이지... 절대 성추행할 생각은 없었다.. 라고 주장한다면요?
수사기관은 이 경우라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겠죠.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객관적인 정황(출근길 혼잡도 250%의 9호선 객실)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결국 안여돼에게는 성추행의 고의가 없는 것으로 보고.. '죄가 안됨' 또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릴 겁니다.
행여 수사기관이 기소하더라도, 판사는 '흠 이건 안여돼의 말에 일리가 있네요'하면서 무죄판결을 내릴 가능성도 크겠죠.

즉, 수사기관과 법원은... 피의자의 고의여부가 중요한 강제추행같은 범죄에 있어서...
주변의 상황, 환경, 배경 같은 것을 상당히 신경써서 봅니다.
행위의 맥락과 배경을 살펴보고, 고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게 되는 것이죠.



#4. 피고인의 항변

자... 이론 이야기가 재미 없으셨을 겁니다만.. 위에서 피고인(가해자)의 항변이 법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면 필요한 내용이라 적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지요.

- 피해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피해자의 하의 속옷 안에 손을 집어넣거나 한 일은 없었고,

자신이 "피해자의 하의 속옷 안에 손을 집어넣는 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는데요.
즉, 강제추행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는 주장입니다.
피고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무죄판결이 나오는 것이 맞겠지요?

- 자신이 피해자의 상의를 찢기로 한 것은 모두 합의된 상태에서 그에 따라 연기한 것이고,

피고인은 자신이 피해자의 윗옷(흰 티셔츠였다고 하더군요)을 찢은 사실은 인정했지만...
이것은 상대방의 동의, 다시 말해 [피해자의 승낙]을 받은 상태에서,
영화촬영 과정에 있어서의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결론은? 역시 피고인의 주장대로라면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을 테니, 역시 무죄판결이 나오게 될 겁니다.

- 영화의 맥락상, 외도한 아내를 강간하는 장면의 촬영이었던 탓에, 그에 따라 감독의 연기 디렉팅에 따른 것이었다

이 역시, 자신에게 강제추행의 고의가 없었음을 주장하는 겁니다.
자신은 감독의 디렉팅에 따라 영화에 필요한 연기를 하였을 뿐이고, 강제추행을 할 의도는 없었다는 의미이지요.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강제추행죄에는 과실범 처벌규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설령 피고인이 강제추행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였고, 이게 피해자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위법한 행위라 하더라도,
자신에게는 강제추행의 고의가 없었으므로... 역시 강제추행 혐의가 무죄로 판결되어야 한다는 주장인 셈입니다.


#5. 항변이 사실일지, 아니면 거짓일지?

오늘... 피고인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까지 항변하기는 했습니다만...
문제는... 피고인의 항변이 모두 진실일지를 우리는 알 수 없다는 점이죠.
사건기록, 당사자의 주장과 항변, 피해자의 진술, 그리고 진술을 뒷받침할만할 증거들...
이런 것들을 살펴보지 않은 상태에서 누구 말이 맞다 틀리다고 단정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알고보니 이게 아니네? 하고 뒷머리를 긁는 것 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는 것이죠.

피해자 측에서는 피고인이 자신의 하의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고,
사전 합의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요.
피해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들이 어떤 게 있었고, 또 어느 정도나 제출되었는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물론, 1심법원과 2심법원, 나아가 대법원은 모든 증거자료들을 검토한 끝에 결론을 내렸을 것이고, 또 내리게 될 겁니다.

1심법원과 2심법원의 판단이 달라지게 된 게 새로운 증거자료가 제출된 것이 아니냐.. 하는 이야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 형사재판의 2심에서 새로운 증거가 제출되는 경우는 경험상 굉장히 드물더군요.
기껏해야 추가로 제출되는 증거라고 해 봐야... 
피고인이 1심 재판과정에서는 미처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했다가, 2심 재판 중에 합의가 되어서 제출하는 합의서 정도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1심법원과 2심법원의 판단이 달리 이루어진 것은 피고인의 '고의'에 대한 판단이 달랐던 것 아닌가 추정해봅니다.
(물론 저는 사건기록을 접하지 못했으므로... 이 추정은 정확한 추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하의 속옷 안으로 손을 넣었는지, 그러지 않았는지의 문제,
상의를 찢는 연기에 있어서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는지의 문제 같은 것은...
당사자들끼리의 진술이 엇갈리면, 사실 법원으로서도 뾰족하게 어느 쪽의 주장이 사실인지를 판단하기는 곤란합니다.

CCTV 녹화화면이라든가, 녹음자료, 문서 같은 게 있다면야 사실인정에 있어서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되겠습니다마는...
그런 증거 없이 진술만으로 어느 쪽 말이 사실인지를 판단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피고인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법정에서 얼마든지 거짓말을 하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기억을 조작하여 자기합리화를 하는 경우 또한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6. 법원의 판단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피고인에게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당시의 상황, 배경 같은 자료들을 상당히 중요한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고 말씀드렸었는데요.
1심법원은 피고인 측에서 제시한 콘티 등에 무게를 두고 판단한 반면,
2심법원은 피해자의 하의단추가 뜯어졌던 정황,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사과한 사실 등에 초점을 맞추어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논란이 되는 것은 2심법원이 피해자의 진술에 의거하여,
피고인이 '구성요건 해당성'이 있는 행위를 하였다 - 다시말해, 하의 속옷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거나, 성추행할 의도로 상의를 찢었다 - 고
사실관계를 전제하고 판단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이 문제에 관한한은... 사건 기록 전부를 세세히 살펴보기 전에는 함부로 2심 재판부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수 만은 없는 문제 같습니다.
물론, 1심법원에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대원칙에 입각하여 판단한 것이 옳을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결국 이 문제는 피해자 측의 발표까지 들어볼 필요가 있고,
나아가 대법원이 어떻게 판단하는지까지도 신중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겠지요.


#7. 맺는 말

성범죄를 엄히 벌해야 할 필요성이야 두말할 나위 없는 것이고,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원이 세심히 살펴야 할 것은 더더욱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늘 피고인의 항변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이건 24일에 있을 피해자 측의 주장까지도 일단은 들어본 다음에 판단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은 판단을 유보한 상태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순리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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