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리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08/03 20:47:35
Name   뤼야
Subject   꽃밭의 독백








꽃밭의 독백-사소단장娑蘇斷章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 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 서정주 [신라초](1960) -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무엇보다도 서로의 마음을 얻지 못해 안타까와 합니다. 사랑이란 대개 안심安心이 없는 상태지요. 구름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노래를 부르며, 벼락과 해일의 길을 기어이 가려 하지요. 어쩌면 사랑이란 전인류가 공통으로 앓고 있는 지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아직 어린 소녀와 같은 사람과 사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랑의 열정이 휘발된 후, 그 끝에 도사리고 있을 지 모를 제도와 관습을 들먹이며,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은 그녀에게 열정이 친밀감으로 또 의무감으로 가파르게 변질되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제 모습이 싫었습니다. 사랑이 비가 되어 내리는 우기에는 건조한 기후를 그리워하고, 너무 메말라버린 뒤에는 촉촉한 습기를 아쉬워하듯, 그녀는 저의 여유를, 저는 마냥 산화해 버릴 불꽃같은 그녀의 열정을 '좋은 때'라 회상하였습니다.

지난 봄, 애인과 수원화성을 둘러보러 갔었습니다. 정작 수원화성은 그다지 큰 볼거리는 아니었고 오래된 북수동 성당의 뜰을 거닐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종교는 없지만 종교의례를 참관하는 것은 매우 좋아합니다. 가끔 조계사에 들러 목탁이 만들어내는 단조로운 리듬을 즐기기도 하고, 성당에 가서 미사를 참관하며 응답송을 따라 부르기도 합니다. 저와 애인이 북수동 성당에 들렀던 시간에는 정식 미사는 모두 끝나고 성가대의 연습하는 소리가 간간히 조용한 뜰에 울려퍼졌더랬습니다. 간이의자에 앉아 애인은 담배를 피우다 이내 졸기 시작했고, 저는 혼자 뜰을 거닐다가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고, 그조차도 제대로 사용할 줄 몰라 볼품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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