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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12/16 21:28:16
Name   눈시
Subject   러일전쟁 - 펑톈 전투


크로파토킨 -> 쿠로파트킨
발틱 함대 -> 발트 함대

용어 수정했습니다

펑톈 펑톈 발음 어려운데 그냥 봉천(동귀신?)이라고 편하게 읽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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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 후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전투에서 승리했고, 뤼순을 점령하고 펑톈(봉천) 근처까지 진격했습니다. 하지만 사상자는 이미 십만을 넘었고, 각기병 등으로 인한 많은 환자가 나오고 병사자까지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정예병인 현역의 손실은 치명적이었습니다. 일본도 후비병이라고 예비역은 있었지만 현역보다야 부족했고, 이들도 빠르게 소모됐습니다. 양은 물론 질적인 면에서도 우세하지 못하게 돼 간 거죠. 물자 부족이야 이제 바닥 수준이었구요. 탄약, 포탄, 식량, 의약품, 겨울에 필요한 방한용품까지 다 부족했습니다. 이미 일본의 경제상황은 극악으로 치닫았고, 전쟁을 더 끈다면 나라 자체가 파산할 상황이었습니다.

+) 병사도 병사지만 이럴 때 문제되는 게 하급장교입니다. 최전선에서 병사들을 이끌기에 큰 피해를 입거든요. 이걸 보충하기 위해 단기속성으로 할수록 질은 떨어지죠.

1905년이 되면서 일본은 미국을 통해 강화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니콜라이 2세를 비롯한 러시아에서 이걸 받아들일 리가 없었습니다. 병력은 이미 러시아가 압도하고 있었고, 증원 역시 러시아가 더 할 수 있었으니까요. 여기에 발틱 함대는 계속 극동을 향하고 있었구요. 이 둘을 다 꺾지 않는 이상 러시아는 전쟁을 포기하지 않을 거였습니다. 결전이 필요했죠.

일본은 병력을 최대한 쥐어짜냅니다. 상처투성이인 노기의 3군이 합류했고, 한국에 주둔한 병력(한국주차군)에서 병력을 빼서 압록강군이라 이름붙인 후 참전시키죠. 본국에서도 추가 병력이 도착했구요. 이렇게 일본군은 25만 정도의 대군을 모읍니다. 이에 맞서는 러시아군은 31만에서 36만까지 잡죠. 이렇게 대군이 대결한 건 나폴레옹 전쟁 이후 백여년만이었습니다. 물론 그 후에 있었던 온갖 전투들이 기록을 깨뜨리죠.

+) 문제는 대본영과 만주군 사령부의 지휘권 다툼으로 압록강군은 지휘권이 따로였다는 거죠. -_-; 이래서 기껏 온 압록강군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습니다.


양군은 참호를 파고 대치했습니다. 양쪽 다 배후를 잡히긴 싫었기에 그 길이는 계속 늘어났죠. 1차대전 때처럼요. 그래도 일본군에 필요한 건 포위섬멸이었습니다. 이래서 정말 넓은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 전투가 이런 긴 범위에서 대군이 제법 긴 기간 동안 싸우는 식으로 전개됐습니다. 이래서 전쟁 단위인 전략과 개별 전투 단위인 전술의 중간이라 할 작전술 발전의 토대가 되었죠.

일본군은 결전을 늦춥니다. 극심한 추위와 물자부족 때문이었죠. 그렇다고 봄이 오면 너무 늦고 얼음이 녹아 길이 엉망이 될 거였습니다. 추위가 좀 가시고 얼은 강을 건널 수 있는 2~3월쯤을 생각했죠. 그러던 1월 말, 아키야마 지대에서 적을 발견했다는 정찰 보고가 들어옵니다. 하지만 오야마를 비롯한 수뇌부는 이를 무시했죠. 땅도 제대로 팔 수 없을 정도로 추운 상황에서 러시아가 설마 공격해오겠느냐고요.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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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도 병력만 많았을 뿐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임시로 완공시켰다 하나 단선이었고, 대군을 보급할 물품이 오기엔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급하다고 계속 보내는데 화(물)차가 돌아오지는 못하니 러시아 내부의 경제도 더 악화됐구요. 여기에 온갖 비리가 끼어듭니다. 아예 화차를 통째로 빼돌렸는데, 전쟁동안 이렇게 없어진 화차가 무려 6천량이라고 합니다. 10월에 보냈다는 수십명분의 방한용품이 전쟁이 끝난 다음에 도착하기도 합니다.

+) 얼어붙은 바이칼호에 임시로 철로를 만들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넘나 무서운것

전투는 계속 지고, 날은 추워지는데 물자는 부족하고... 사기가 좋을 리가 없었습니다. 병력이 증원되긴 했지만 그들도 징집병을테니...


러시아에서는 오스카르 그리펜베르크 대장을 추가로 파견합니다. 쿠로파트킨과 병력을 나눠 반격을 지휘하라고 보낸 거였는데, 쿠로파트킨이 여전히 전권을 쥐고 3개 군 중에서 2군만 지휘할 수 있게 되었죠. 이것만으로 반격을 계획합니다.

우선 기병을 동원, 일본군 후방을 휘젓습니다. 1월 9일부터 8일동안 여러 수송부대를 공격하며 나름 전과를 올렸지만, 아쉽게도 목표였던 철도 파괴와 보급항 잉커우(영구) 기습은 실패했죠. 만약 이들이 후방을 휘저으면서 본군이 공격에 나섰다면 결과가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지 않았죠.

이 작전을 통해 일본군의 약점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좌익이었죠. 일본군은 아키야마 지대 - 2군 - 4군 - 1군 순으로 배치돼 있었는데 동쪽은 산악지형이고 서쪽은 평야였습니다. 3군이 북상해 서쪽을 채워줘야 되는데 아직 오지 않았죠. 아키야마 지대는 40km나 되는 지역을 8천명으로 지켜야 했습니다. 러시아군은 이 곳을 노렸죠.


요시후루는 이 때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는지 죽기 전에 봉천으로! 등의 말을 하다 죽었다고 합니다. 드라마에서는 아베 히로시가 맡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대머리가 됐는데 고증이 안 됐네요.

아키야마 요시후루는 정찰을 통해 이걸 파악하고 사령부에 보고하지만 무시됩니다. 오야마와 고다마 등은 러시아가 이런 추운 상황에서 나서지 않을거라 생각했습니다. 러시아가 겨울에 말이죠 (...) 여기에 영국에서도 러시아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첩보를 전해줬는데 역시 듣지 않습니다. 이러면서 아키야마 지대는 큰 위험에 처하게 되었죠.

요시후루는 거점방어를 채택해서 기병도 말을 숨기고 참호를 파게 해놓고 있었습니다. 옳은 선택이긴 했지만 적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리핀베르크가 이끄는 병력은 10만, 압도적이었죠. 24일부터 격전이 시작되었고, 그제야 8사단을 보냅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공격받고 궁지에 몰립니다.

일본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이들이 전멸한다면 병력을 보내봐야 축차투입해서 각개격파 당할 뿐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좌익이 뚫리면 포위섬멸을 당하거나 큰 피해를 입고 후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키야마 지대는 피해를 입어가면서도 전선을 지켰고, 8사단 버티고 있었죠. 러시아군의 총공격은 없어서 증원에도 여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결국 28일까지 러시아군을 막아냈고, 29일이 되자 러시아군이 후퇴합니다.

잘 싸우다 후퇴한 이유는 역시 이상한 부분입니다. 역시 쿠로파트킨의 소극적인 태도에서 원인을 찾는 모양입니다. 그리핀베르크는 전투 후 사표 내고 모스크바로 돌아가서 상황을 보고합니다. 이 때 언론에도 쿠로파트킨이 자기를 시기해서 작전을 중지하게 했다고 했다네요.

이 전투를 헤이궈타이(흑구대) 혹은 산데푸 전투라 부릅니다. 러시아군은 10만을 동원해 만천여명의 사상자를 내었고, 일본군은 5만명을 투입, 구천명 이하의 사상자를 냅니다. 투입된 규모와 피해, 일본군이 결국 지켜낸 것까지 생각하면 일본군의 승리죠. 물론 이런 전투에서도 만명 가까이 피해를 입었으니 일본의 상황은 더 악화됐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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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졌으니 사기는 더 떨어집니다. 여기에 본국의 상황이 편지와 증원 병력을 통해 알려지면서 더 그랬죠. 혁명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본국이 난장판이라는 것 자체가 사기를 최악으로 만들어줄 것이었죠.

쿠로파트킨은 역시 공격을 거부했지만, 다시 공격을 해야 했습니다. 루프물 수준이네요. 그렇게 2월 말에 공격을 계획하는데, 이번엔 일본이 더 빨랐습니다.


"이 회전에서 승리한 쪽이 전후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이 곳이 러일전쟁의 세키가하라다."

세키가하라 전투. 히데요시가 죽은 후 일본의 주인을 걸고 30만 대군이 붙은 전투죠. 이긴 도쿠가와는 250년간 일본의 주인이 되었고, 진 쪽은 몰락했습니다. 네, 결전을 결심한 것이죠. 봄이 되면 얼음이 녹아 진창이 되고 전투를 치르기 힘들어집니다. 거기에 부족한 보급으로 봄까지 기다릴 여유도 없었죠. 이기든 지든 다음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 확실한 승리를 거둬야 했죠.



일단 노기의 3군이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한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기병으로 적의 후방을 공격하면서 몽골 쪽의 철도까지 노린다는 소문을 퍼뜨립니다. 쿠로파트킨은 이걸 경계해 병력을 분산시켜야 했죠. 그리고 2월 21일, 일본의 첫 수가 나옵니다. 2개 사단으로 구성된 압록강군이 동쪽의 칭허(청하)성을 공격, 24일에 점령합니다. 여기엔 원래 3군 소속이던 11사단이 있었고 쿠로파트킨은 이들이 3군인 줄 알고 급히 대군을 보냈죠. 그는 뤼순을 함락한 노기의 3군을 최고의 정예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1사단은 3군이 아니었고, 뤼순 공격 때 많은 현역병을 잃고 수만 채운 상태였습니다. 이래서 더 뚫진 못하고 전선이 교착되었죠. 하지만 적을 어느정도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구요. 러시아측은 28일에야 3군의 위치를 알고 그쪽으로 병력을 증원했죠. 이래서 기밀 일러전사에선 여기서 더 속이지 못했다고 아쉬워합니다.

일본군은 이 상황을 본 후 총공격을 이틀 앞당깁니다. 2월 27일이었죠. 강력한 포격과 함께 전 전선에서 공격을 건 겁니다. 하지만 겨울이라 포탄이 땅에 튕겨서 제 성능을 못 냅니다. 러시아쪽도 마찬가지였죠. 이래서 적 참호에 대한 포격이 별 효과가 없었고 결국 병사들이 돌격하면서 기관총에 큰 피해를 입어야 했습니다.

이 작전의 핵심은 노기의 3군이었습니다. 동쪽에서 먼저 공격해서 적의 시선을 그 쪽으로 돌렸고, 이어 정면에서 총공격하는 척 하면서 노기의 3군(+ 아키야마 지대)이 적을 우회, 펑톈에서 70km 후방인 톄링(철령)을 점령한다는 거였습니다. 어마어마하죠 (...) 쿠로파트킨은 3월 1일에 이 사실을 알았고, 동쪽에 보낸 대군을 서쪽으로 보냅니다. 러일전쟁사에서는 차라리 그 병력으로 동쪽을 공격해야 했다고 (엘리전 느낌?-_-a) 비판하죠.

3군은 열심히 싸우며 달렸지만 역시 너무 먼거리였습니다. 거기에 우회기동의 축이 된 2군도 방어선을 제대로 뚫지 못했죠. 당연한 얘기인 게 수도 적은데 참호를 뚫어야 했으니까요. 러시아의 증원군이 이들에게도 갔구요. 이런 상황에서 빠른 진격은 어렵고, 만약 그대로 갔더라도 3군이 외따로 고립될수도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양쪽의 평가가 갈리는 게, 일본의 사령부에선 3군에게 증원도 안 주면서 느리다고 타박했고, 짜증난 3군에서 일부러 유선을 끊고 속도를 늦출 정도였습니다. 반면 러시아측에선 3군이 정말 잘 진격했다고 평가하죠.


"니들이 뤼순을 알아?"

쿠로파트킨은 3군의 규모를 10만 정도로 보았고, 일본군의 최정예로 보는만큼 대군을 들어 막으려 했습니다. 당시 3군은 3만 8천 정도였는데 이 수로 10만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또 뚫으며 갔죠. -_-; 여기엔 3군을 막으러 간 러시아 2군 사령관 카울바르스의 문제도 컸습니다. 3군의 진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병력을 나눴고, 요격을 제대로 못 하고 방어에 집중했거든요. 쿠로파트킨은 그를 불러 다시 대군을 모아 3군을 포위섬멸하려 합니다. 한편 중앙의 2군과 4군 사이를 갈라놓으려 시도했지만 2군에 의해 막히죠.

4일, 3군은 톄링까지의 진격을 포기하고 그 남쪽으로 포위하기로 결정합니다. 사령부에서는 체면 때문에 명령을 바꾸진 못하지만 인정하겠다고 답했다는군요. 3군이 펑톈 북쪽까지 진격하면서 러시아군도 대군을 동원해 공격하지만, 큰 피해를 입고 밀려납니다. 이후 2, 3군의 연결지점을 공격하지만 역시 큰 피해를 입고 절단에 실패했구요.


3군은 큰 피해를 입으며 전진해 펑톈 북쪽까지 가긴 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습니다. 격렬한 전투로 탈영병까지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죠. 사령부에선 이걸 타박하면서 사령부를 전선 근처로 옮기라 했는데, 이 때문에 적의 공격에 군의가 전사하고 사령부에서 파견된 참모가 놀라서 도망갈 정도였다 합니다. 한편 동쪽의 압록강군과 1군에도 포위를 위해 진격을 계속 명령했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 쪽은 산악지대여서 정예병이라도 포위는 어려웠을 거구요. 그러던 3월 9일, 러시아군의 후퇴 소식을 듣게 됩니다.


"... 망했다."

일단 추격은 명령했지만... 이번에도 러시아의 후퇴는 빨랐고, 일본군도 지쳐 있었습니다. 러시아군이 지연전을 펼치면서 급히 밀고가다 피해를 입기도 했구요. 그래도 2만 8천명이나 되는 포로를 잡고 펑톈에 입성합니다. 이 날, 3월 10일을 육군기념일로 삼게 되었구요. 그래도 아쉬워서 톄링(철령)까지 진격했는데, 쿠로파트킨은 이 역시 미련없이 버리고 후퇴합니다.

이렇게 펑톈 전투, 펑톈 회전이 끝이 납니다. 일본군의 피해는 15,892명 전사, 59,612명 부상이었고 러시아는 8705명 전사, 51438명 부상, 7539명 실종, 28209명 포로였습니다. 각기 7만, 9만이 넘는 피해가 난 것이죠.

일본은 이렇게 결전에서 승리합니다. 병력에서 꽤나 밀리는 상황에서 대담하게 포위공격을 시도했고, 거의 성공할뻔 했죠. 목표했던 펑톈도 점령했고 피해도 러시아군이 더 컸구요. 잘 싸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적 주력을 섬멸한다는 목표는 실패했고, 7만이 넘는 끔찍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쿠로파트킨은 이번에도 전략적 후퇴라고 주장했고 처음인 이게 먹히기도 했죠.

일본군, 그러니까 만주군 사령부 수뇌부의 문제가 많이 드러난 전투이기도 했습니다. 너무 밀어붙이게 했거든요. 그러면서도 잘 진격하는 3군에게 증원을 주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동쪽을 제대로 지원하지도 않았습니다. 동쪽은 지휘권 문제도 걸려있었고요 뭐 -_-; 자기들도 마음이 급했으니 그럴만하긴 하죠 뭐.

이번에도 전투의 일등공신은 10만의 적을 상대로 잘 진격했던 3군이었습니다. 이래서 노기 무능론이 아니라고 보는 거기도 하구요. 그 대신에 3군은 소모율이 60%에 달합니다. 정말 노기 밑에 있으면 목숨을 장담 못 하겠네요.


일본군은 꽤나 잘 싸웠습니다. 문제점도 많았지만 러시아군의 문제가 그걸 덮었죠 (...) 하지만 여기까지였습니다. 애초에 펑톈 정도가 목표였으니 목표도 이뤘고, 더 올라갈 생각도,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죠.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습니다. 육군만으로 전쟁에서 이길 기회도 사라졌구요.이제 일본군은 강력한 방어선을 만들고 제발 빨리 러시아가 강화를 받아들이길 빌 뿐이었죠.

헌데 대본영에서는 승리뽕에 취해 전쟁을 계속하자는 주장이 계속 나옵니다. -_-;; 블라디보스토크 등 러시아의 주요 도시들을 공격하자는 거였죠. 여기에 홋카이도 위에 사할린도 그렇구요. 이거 참... 하지만 그나마 제정신이었던 정부와 군부에서는 강화를 계속 시도합니다. 여기서 끝내지 않으면 승리는 무슨 나라가 망할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러시아는 아직 이걸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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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는 처음에야 대외적으로 작전상 후퇴라고 합니다. 하지만 쿠로파트킨을 사령관에서 자르면서 그들의 패배를 인정합니다. 후임으로 리녜비츠가 임명됐고 쿠로파트킨은 1군을 지휘하면서 현지에 남았죠.


쿠로파트킨은 가능하면 하얼빈까지 퇴각해도 된다고 처음부터 주장했습니다. 일본군이 그동안 러시아군의 포위섬멸을 노렸다면, 그는 어디까지나 일본군에 적절한 피해를 주고 일정 지역으로 밀어내는 걸 목표로 했습니다. 이겨서 사기를 올리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아니더라도 피해를 최소화 하고 물러나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죠. 전투보다 어려운 게 후퇴인데, 그는 후퇴도 잘 해서 피해를 최소화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잘 싸우고 후퇴했다고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는 러시아군 패배의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합니다. 단선에 미완성인 시베리아 철도 때문에 보급이 어려웠던 점, 징병제 후 첫 전쟁이었고 징집병이 대다수라 훈련도와 사기가 낮은 것, 장교진의 무능 등 말이죠. 확실히 그를 비판하는 측에서도 러시아군의 온갖 문제점을 인정합니다. 대국이었지만 잠재력만 클 뿐 러시아군의 문제는 너무 많았으니까요. 특히 그 멀리 있는 극동에서 싸웠기에 단점이 극대화되었죠. 그간의 전투에서도 부하들은 제대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합니다. 펑톈 전투만 해도 3군이 오는 서쪽에 집중했는데도 진격을 막지 못 합니다. 3군이 잘한 것도 있지만 러시아군의 문제가 컸죠. 그런 상황이었기에 자신은 어쩔 수 없었다는 겁니다.

현재 러시아의 연구와 차이가 있다면, 그 무능한 러시아군의 문제에 쿠로파트킨까지 집어넣는다는 것이죠. 문제점과 무능은 인정하지만 쿠로파트킨이 너무 소극적이었고, 너무 예비대를 아꼈으며, 성과를 올려도 거기에 만족할 뿐 그 이상의 전과확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애들이 못하니까 나도 그정도 한 거다, 니가 그정도였으니까 애들도 그거밖에 못한 거다 뭐 이런 싸움일까요.

현재의 연구야 일본측의 상황을 알 수 있기에 그런 것도 큽니다. 쿠로파트킨은 계속 일본군의 전력을 과대평가합니다. 펑톈에서 3군을 10만으로 파악했고, 3천밖에 안 된 요시후루의 기병도 6천으로 봤죠. 이들이 후방으로 몰려오는데 당연히 후퇴해야지...인데 그게 아니었으니까요. 물론 이런 정보력의 부족도 러시아군의 큰 문제점이었구요.

일본군이 쿠로파트킨이 의도한 어려움에 빠지긴 했습니다. 그들도 이상해할 정도로 러시아군의 후퇴가 빨랐고, 원하던 피해를 주지 못했으니까요. 일본군이 더 잘싸웠다 하나 피해는 언제나 컸고, 결국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할 수준까지 만들었습니다. 그가 주장한대로 더 버텼으면 러시아가 이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후퇴와 패배에서 나오는 걸 이해 못했죠. 그는 혁명과 차르의 항복이 아니었으면 이겼을거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계속된 패배 역시 그 둘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징집병이라 사기가 너무 낮았다고 하는데, 계속 지니까 사기가 더 떨어지는 것도 당연하죠. 여긴 병사들이 목숨 걸고 지켜야 될 가족이 있는 유럽이 아니었고, 상대는 자기들이 멸시하던 동양인이었습니다. 애초에 일본군에 압도적으로 우세한 병력이 있어야만 이길 수 있다는 게 사기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는 요소입니다. 그게 맞는 말이었다 하더라도요.

그의 문제를 어느 정도로 봐야 할까는 모르겠네요. 어쨌든 그의 작전 때문에 일본군도 극에 몰리긴 했으니까요. 하지만 러시아 역시 그 때문에 극에 몰려버렸네요. 처음에 했던 말을 다시 하면 될 것 같네요. 러시아의 연구에서 지적하는, 그가 적극적으로 나왔다면 하는 상황도 러시아군의 상황을 보면 부정적이긴 합니다. 솔직히 하는 거 보면 전쟁 계속됐더라도 일본 육군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_-; 그런 면에서 군사적으로 보면 그가 맞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틀렸죠.

이후 8월까지 러시아군은 계속 증원돼 만주에만 78만명이 투입돼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도 어떻게든 수를 늘이긴 했지만 60만 정도로 병력에서 크게 밀렸죠. (러시아 위키에는 50만vs30만이라 나오는군요) 하지만 더 이상의 대규모 전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러시아도 일본도 더 이상 전쟁할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발트 함대가 일본에 철퇴를 가할 것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이번에도 패했지만, 아직 러시아에는 마지막 카드가 남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뒤집을수도 있는 카드였죠. 그리고 일본제국해군 연합함대는 이들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죠. 아마 전 일본국민이 그러고 있었을 겁니다.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12-2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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