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5/07/21 18:57:30
Name   마르코폴로
Subject   콩국수, 서민음식과 양반음식의 하이브리드


콩국수는 냉면과 더불어 여름철을 대표하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꽤나 차이가 있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냉면이 주로 밖에서 사먹는 외식의 이미지인 반면에 콩국수는 집에서 해먹는 가정식의 느낌이 강하지요.
이북에 연고가 있으신 분들이 아닌 한 냉면보다는 콩국수에서 옛향수를 느끼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이렇게 우리가 즐겨먹는 콩국수는 1911년에 발행된 '시의전서'에서 처음으로 그 형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콩을 물에 불린 후 살짝 데치고 갈아서 소금으로 간을 한 후, 밀국수를 말아 깻국처럼 고명을 얹어 먹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콩국수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만 깻국처럼 먹는다는 설명이 좀 특이합니다.

깻국은 양반들이 주로 먹던 음식으로 '동국세시기'에서 그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름철 계절 음식으로 밀가루 국수를 만든 다음 거기에 오이와 닭고기를 넣어 백마자탕에 말아 먹는다고 적혀있는데, 백마자탕이라는 것이 바로 들깨를 갈아
만든 깻국입니다.

-깻국에 닭육수를 섞은 임자수탕(농촌진흥청 사이트에 있는 깻국의 이미지를 쓰려니 자꾸 에러가 나네요.)

옛문헌을 살펴보면 조리서에 콩국을 말아먹는 면식에 관한 설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마도 콩국이라는 것이 서민들이 향유하던 음식이었기 때문에 양반들의 기록에서는 찾아보기 힘든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먹는 콩은 만주가 원산지일 정도로 역사도 깊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곡물이었습니다.
과거부터 부족한 양식 대신에 콩을 갈아 국물을 만들어 놓고  배가 고플때마다 수시로 마시며 영양을 보충했습니다.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 에서 콩먹는 모임인 삼두회를 만들어 콩 음식을 즐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 이익이 즐겼던 것이
콩죽과 콩국 한잔에 콩나물 한 쟁반 이었습니다. 다산 정약용 역시 춘궁기에 뒤주가 비면 콩국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며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콩국이라는 것이 살림이 넉넉치 않은 사람들이 양식 대신에 먹던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콩이 쌀보다 비싸지만 과거에는 흔해 빠진 곡식이었죠. 우리가 지금까지 흔히 쓰는 '쑥맥'이라는 말에서 쑥이 바로 콩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가장 흔하고 많은 작물인 콩과 보리도 구분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죠.

이렇듯 가난한 사람들이 곡식 대신에 먹던 콩국에 과거에는 귀하기 그지없었던 밀국수를 말아 먹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밀가루 국수를 역시 귀한 깻국에 말아먹는 형태의 음식을 양반들이 여름철 별미로 즐겼던 것이고
이런 이유로 1900년대에 들어와서야 지금의 콩국수 형태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지요.
냉면과 마찬가지로 1930년대에 무쇠제면기가 발명되면서 대중들이 흔히 즐기는 음식으로 보급되었을 겁니다.

과거에는 양반들이 주로 먹던 기름진 형태의 깻국에 면을 말아먹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담백한 콩국에
밀국수를 말아먹는 경우가 더 많아 집니다. 그래서 양반들이 먹던 깻국은 사라지고 지금의 형태의 콩국수가 남게 된 것이지요.
  

  


* Toby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5-07-31 00:14)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376 기타삶의 의미를 찾는 단계를 어떻게 벗어났냐면 8 골든햄스 24/03/14 939 18
    1375 기타소수 사막은 얼마나 넓을까? 4 Jargon 24/03/06 873 4
    1374 기타민자사업의 진행에 관해 6 서포트벡터 24/03/06 831 8
    1373 기타노무사 잡론 13 당근매니아 24/03/04 1533 16
    1372 기타2024 걸그룹 1/6 2 헬리제의우울 24/03/03 618 13
    1371 기타소회와 계획 9 김비버 24/03/03 855 20
    1370 기타터널을 나올 땐 터널을 잊어야 한다 20 골든햄스 24/02/27 1562 56
    1369 정치/사회업무개시명령의 효력 및 수사대응전략 8 김비버 24/02/21 1401 16
    1368 체육/스포츠(데이터 주의)'자율 축구'는 없다. 요르단 전으로 돌아보는 문제점들. 11 joel 24/02/19 955 8
    1367 역사 AI를 따라가다 보면 해리 포터를 만나게 된다. 4 코리몬테아스 24/02/18 1054 11
    1366 체육/스포츠(데이터 주의)'빌드업 축구'는 없다. 우루과이전으로 돌아보는 벤투호의 빌드업. 13 joel 24/02/12 1328 30
    1365 기타자율주행차와 트롤리 딜레마 9 서포트벡터 24/02/06 1184 7
    1364 영화영화 A.I.(2001) 18 기아트윈스 24/02/06 1115 23
    1363 정치/사회10년차 외신 구독자로서 느끼는 한국 언론 32 카르스 24/02/05 2551 12
    1362 기타자폐아이의 부모로 살아간다는건... 11 쉬군 24/02/01 2152 69
    1361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4, 完) 6 양라곱 24/01/31 2815 37
    1360 기타텃밭을 가꿉시다 20 바이엘(바이엘) 24/01/31 1001 10
    1359 일상/생각한국사회에서의 예의바름이란 18 커피를줄이자 24/01/27 6533 3
    1358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3) 17 양라곱 24/01/22 6160 22
    1357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2) 17 양라곱 24/01/17 5693 14
    1356 요리/음식수상한 가게들. 7 심해냉장고 24/01/17 1254 20
    1355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1) 9 양라곱 24/01/15 2672 21
    1354 기타저의 향수 방랑기 31 Mandarin 24/01/08 3296 2
    1353 의료/건강환자의 자기결정권(autonomy)은 어디까지 일까? 7 경계인 24/01/06 1277 21
    1352 역사정말 소동파가 만들었나? 동파육 이야기. 13 joel 24/01/01 1307 24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