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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어 17/03/26 22:09:54
그녀는 양 옆으로 곱게 빗은 머리를 간신히 어깨에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둥글게 반짝이던 눈은 작년 가을 중추절에 빚었던 송편 같았다. 오똑하진 않지만 아담하고 작은 코는 살짝 찝어놓은 것처럼 귀엽게 자리잡았고, 작고 동글게 자리잡은 입은 연분홍빛 벚꽃 같았다. 입을 중심으로 가볍게 도드라진 광대에는 연한 복숭아빛이 감돌았고 그 볼과 광대를 감싸는 턱선은 무두질하는 칼로 베어낸듯 예리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감색빛 코트 안쪽으로는 가볍게 구겨진 붉은색 체크 남방이 어여쁘게 색이 바래서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레 자리잡고 있었고 쭉 뻗은 다리를 감싸는 검은색 바지 역시 편안하게 구겨져서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었다. 감색과 민트색이 어울어진 아기자기한 운동화는 눈에 확 들어오지만 묘하게 그녀와 어울리는 아이템이었다.

그녀는 이따금, 지하철 천장의 전광판을 보면서 내 닉네임의 유래가 된 요시다 슈이치의 열대어을 읽고 있었다.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나. 이런 우연, 아니 운명이 있나!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한참이나 그 익숙한 책표지를 바라보았다. 아, 어떻게 말을 걸어야하나, 안녕하세요. 열대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그건 아무래도 미친 사람보듯 할 거 같은데…

내가 용기를 짜내어 마악 말을 걸어보려는 순간, 반짝이는 눈으로 책을 보던 그녀는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던 커다란 쇼퍼백을 휙 집어들고는 바람처럼 신도림역에서 내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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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면서 겪은 실화입니다.
여러분. 안생겨요. 안생긴다고요. 안생긴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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