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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3/07 17:18:22 |
Name | 이그나티우스 |
Subject | 시작도 못하고 과외 짤린 썰 (1): 입시지옥을 통과하고 과외시장에 뛰어든 내 첫 상대가 알고보니 대한민국의 절대권력 청와대의 하수인?!! |
요즘은 말 그대로 대 인강 시대라 과외를 예전만큼은 많이 하는 시대는 아니긴 하지만,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까지만 해도 대학생으로서 과외 알바 1~2번 정도는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내 동기들도 나름 수능을 잘 치고 들어온 친구들이 많아서 과외알바나, 학원 스탭으로 일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나는 단 한번도 과외를 해보지 못했다. 공부도 잘 안되는 김에 그 썰을 좀 풀어볼까 한다. 4번이나 수능을 본 나는, 나름 수능 고인물로서의 자부심도 있었고, 게다가 수시모집 논술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논술도 같이 커버할 수 있는 과외계의 블루칩(?)이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었다. 실제로 수능 성적도 수리나형/사탐 기준으로는 대학별 계산식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대략 0.2%~0.3% 정도의 성적이었고, 문제집 해설지 제작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경력 자체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뭐 자기 자랑은 여기까지 하고, 아무튼 간에 대학 합격이 발표되고 과외시장을 죽 살펴보니 잘못하다가는 업체와 노예계약을 맺고 호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은 오르비와 같은 수험 사이트를 중심으로 과외 공고를 올리고, 몇몇 과외 매칭 사이트에도 자기소개를 올려 두었다. 매칭 사이트에서는 연락이 별로 안 왔지만, 오르비 쪽에서는 간간이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시간대가 맞는 고갱님이 한명 나타나서 대망의 첫 과외를 뛰게 되었다. 나의 첫 고갱님은 이번에도 또 수능을 망친 3수생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3수에서 4수로 넘어가는...) 내가 찾아간 곳은 서울 성북구의 모 아파트 단지의 한 가정집이었다. (성북동 회장님댁 그런거 아닙니다.) 그런데 들어가서부터 느낌이 좀 이상했다. 첫 수업인데도 학생은 온데간데 없고, 학생의 어머니가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 어차피 첫시간부터 수업을 할 생각은 나도 없었으니, OT를 미리 한다는 느낌으로 어머님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머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다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학생이 집에 없는게 아니라, 일단 방에서 공부를 하는 중이고, 이전에도 과외를 받은 적이 있지만 선생님 사정으로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뭐 거기까진 아 그러세요... 이정도였는데, 그 다음이 점점 점입가경이었다. 어머님 말씀에 따르면 전의 과외 선생님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다니는 영어 천재인데, 지금은 탁월한 영어실력을 인정받아 청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인지의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대체 왜 학부모가 전 과외 선생의 이력을 자랑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다가 잘 생각해 보니 혼네는 이런 것이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최고 실력의 선생님만 섭외하는 집이라, 허접한 과외선생은 상대 안해요. 그쪽이 우리 애 가르칠 정도의 실력이 되나요?" 이런 식으로 위력수색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이후로는 내가 정말로 과외를 할 정도의 실력이 되는지에 대한 날선 질문이 이어졌다. 그래도 막판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한번 맡겨보겠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서, 나도 '아 그래도 통과했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을 했었다. 그렇지만 역시 인생은 실전이었다. 보통 과외를 거절하는 경우 선생에게 소금을 뿌리면서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일단 그 자리에서는 다음시간부터 오라고 한 다음에 첫 수업시간이나 첫달 수업료 입금하는 정도 타이밍에 "애가 사정이 생겨서.." 라는 완곡한 거절을 하는게 국룰이었던 것이다. 역시 이 학부모도 과외를 할 것처럼 시간까지 잡아놓고, 첫 수업시간 직전에 연락이 와서 "안타깝게도 선생님과는 함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가슴쓰린 첫 패배였지만, 아직 대학 1학년 1학기였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입시 고인물로서 실력발휘를 할 순간이 언젠가는 올 거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과연 2편은 나올 것인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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