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7/08 16:54:49수정됨
Name   4월이야기
Subject   40대 부부의 9급 공무원 도전기
이 이야기는 6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때는 2014년 학원강사로 일하던 아내는 딸 둘을 낳고
더 이상 학원생활을 하며 육아를 볼 수 없다며..
이대로 살다가는 가정도 직장도 모두 잃게 될 수 있다며..
좀 더 안정적인... 그냥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그런 삶을 살아보겠다며..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저는 내심 그녀가 학원을 개원하길 바라던 입장이었습니다.
그 틈에 꼽사리라도 껴 볼 요량이었지요.
하지만 결의에 찬 그녀는 애 둘 보며 당당하게 비교적 단기간에
지방직 일반행정으로 합격하여 제 앞에 섰습니다.
그 때 그녀의 나이는 마흔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정년이 보장된 일을 시작하였지요.
이제 남은 건 미래가 불투명한 저 뿐이었습니다.

저는 첫 직장부터 마지막까지 중소기업만 다닌
매우 평범한 직장인이었지요.
직업에 대한 제 모토는 올드보이의 오대수와 거의 같았습니다.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지내자~.....  직장생활이 거기서 거기지 뭐...
대부분 그렇듯 몇 번의 이직으로 경험도 쌓이고 급여도 조금씩 올랐지만
제가 직장을 언제까지 다닐지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항상 마지막 테크트리는 치킨... 아니 창업으로 마무리 될 삘이었습니다.

하지만 창업이란...
저처럼 게으른 사람이 하는 그런 비즈니스가 아닌 제 3의 영역이었지요.
주변 많은 분들이 어떻게 창업했고 어떻게 운영해가며 또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너무 잘 알기에.. 쉽게 도전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월도의 생활은 시간을 흐르고 지나 나이가 한 살, 두 살 늘어가 때 쯤..
아내에게 경력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전까지 경력직 공무원이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던 저에게 새로운 미션이 내려졌지요.
나 : 일반 사무직 경력도 인정해주나?
아내 : 맞고 싶니?
나 : 그럼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아 : 경력이 없으니 만들어야지!
     자넨 공부하기 싫어하니 그나마 응시과목이 적은 경력직을 찾았음.
나 : 그게 뭔데?
아 : 운전직!!! 근데 버스 경력 1년이 있어야 한데..
     자기 창업해서 우리 막 때부자 만들어 줄꺼야? 그런거 아니잖아
     그냥 우린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그런 일이 필요해.
     지금 회사 다니며 일단 대형면허와 가산점 들어가는 자격증부터 따자.
나 : 음....음...음?

오랜 고민은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몇 개월 고민 후 도전을 시작하였습니다.
그게 2018년 부터네요.
사실 시험 공부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경력 1년 넘게 쌓는 버스기사 생활이 인생 최고로 힘든 시기였지요. ㅠㅠㅠㅠㅠㅠ
버스기사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되면 AMA에서...ㅎㅎㅎ

그렇게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공무원이 된다는 생각은 1도 하지 않은
제가 오늘 공무원시험 최종 합격자 발표에 들었습니다. ㅠㅠㅠㅠㅠ
그냥 막 40대 중반이 공무원하고 그런 건 다른사람들 이야긴줄 알았는데
제 인생이 이렇게 될 줄은... 참 기쁘면서 뭔가 묘한 기분이 드는 그런 날이네요.

근데 이 묘한 기분을 알 것 같습니다.
제 지역 경력직은 버스기사 1년 없이 대형면허만 있으면 된다는 사실이었지요..
나 괜히 버스기사생활 그 고생해가며 했어...ㅠㅠ
면허만 있으면 됐는데....
사실 제가 사는 지역은 면허만 있으면 돼서 20,30대 일행 준비하시는 분들이
많이 도전하는 직렬이라 저도 별 기대도 않하고 응시했습니다.
전 서울시 목표였거든요.. 서울은 경력 필수라....

아무튼 이런저런 두서없는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은 맘 편히 잠 잘 수 있는 그런 날이네요..

40대 아재분들~
도전하면 기회가 생기긴 하나 봅니다.



52
  • 완전 축하드립니다!!
  • 제모습이 부끄러워 집니다. 쩡이십니다요!!!!
  • 우와 멋지당 하고 읽다가 버스 1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거나 훈훈한 마무리어용 박수!!!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767 일상/생각동물복지 달걀 56 오쇼 라즈니쉬 20/07/11 7998 12
10763 일상/생각40대 부부의 9급 공무원 도전기 36 4월이야기 20/07/08 6632 52
10754 일상/생각집밥의 이상과 현실 42 이그나티우스 20/07/06 5475 43
10747 일상/생각자위에 관한 옛날 이야기 5 하트필드 20/07/04 5621 9
10737 일상/생각수출 계약서 만드느라 미쳐가는 중입니다. 4 집에가고파요 20/07/02 4771 2
10729 일상/생각머리 아픈 질문. 자유주의자에게 학문이란? 19 sisyphus 20/06/29 4932 0
10728 일상/생각그냥 써보는 그냥 일상 7 쉬군 20/06/29 4410 19
10726 일상/생각취업면접 오실때 노쇼는 하지 말아주세요. 28 집에가고파요 20/06/29 8445 0
10706 일상/생각자격은 없다. 94 절름발이이리 20/06/22 8409 37
10705 일상/생각피서가야할 날씨네요 3 필교 20/06/22 4294 0
10696 일상/생각85일간의 연애 29 거소 20/06/17 6299 60
10688 일상/생각니들도 선생이냐 46 SCV 20/06/15 6684 5
10687 일상/생각우리나라 만큼 살기 좋은 나라도 없다 89 이그나티우스 20/06/14 6674 5
10685 일상/생각재미난 지인이 하나 있습니다. 12 nothing 20/06/14 4795 2
10683 일상/생각참 사람 맘은 쉽게 변한다.. 23 whenyouinRome... 20/06/13 4914 42
10677 일상/생각[주식] 저만의 개똥철학 10 존보글 20/06/12 5399 7
10675 일상/생각JK롤링, 해리포터·헤르미온느와 설전.."트랜스젠더는 여성 아냐" 11 토끼모자를쓴펭귄 20/06/12 6766 2
10672 일상/생각인맥 같은 건 만들 줄 모르는데... 16 이그나티우스 20/06/10 4201 2
10668 일상/생각일장춘몽 - 34일 간의 연애기 3 26 BigBlur 20/06/09 3729 7
10666 일상/생각일장춘몽 - 34일 간의 연애기 2 19 BigBlur 20/06/08 4080 2
10662 일상/생각일장춘몽 - 34일 간의 연애기 1 12 BigBlur 20/06/08 3583 6
10661 일상/생각없으면 만들면 되지. 17 집에가고파요 20/06/07 4011 7
10656 일상/생각오랜 미국생활러가 느낀 한국 전세, 월세 부동산 시장의 신기한 점 36 cogitate 20/06/06 5435 1
10655 일상/생각공부하다 심심해 쓰는 은행원의 넋두리 썰. 10 710. 20/06/06 5830 31
10654 일상/생각어느 이민자가 보는 시스템적인 문제 12 풀잎 20/06/06 4757 19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