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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2/03/30 09:59:18
Name   The xian
Subject   클템 해설의 캐니언 역체정 언급 유감
클템 해설의 캐니언 역체정 선언으로 LOL 관련 커뮤니티가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시차가 있어 아직 휩쓸고 지나가는 곳도 있지만요.

물론 클템 해설은 개인의 기준임을 전제하였고, 개인의 기준으로 내 마음 속에는 누가 최고라고 말하는 것이야 원래대로라면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하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무리 개인의 기준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경솔했다고 봅니다. 아무리 특정 선수의 퍼포먼스에 감동했고 자신의 기준에 부합했다 해도, 일반 팬도 아니고, 관계자가 선수의 커리어와 경기의 승패를 사람의 기억으로 희석시킬 우려가 있는 말을 하는 것은 좀 삼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 때문입니다.

지금 캐니언이 LCK 정글러들 중 가장 임팩트 있는 고점과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선수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도 지금의 고점과 퍼포먼스만 놓고 국내 선수 중 하나를 역체정 후보로 꼽으라고 하면 당연히 캐니언을 뽑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대 최고의 선수를 꼽는 데 있어서 커리어를 도외시하는 것은 안 될 말입니다.

실제로, 캐니언은 아직 벵기하고 비교해 정규리그 우승 횟수는 물론이고 국제대회 우승 횟수도 동일 선상에 서지 못한 상황이지요. 과거 스타크래프트 시절 이윤열-최연성-이제동 등의 정상급 선수를 놓고 본좌 논쟁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당시 이런 비교가 아주 최소한의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그 선수들의 경우 커리어라는 필수 조건이 어느 정도 비등비등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런 비교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해 한 가지 더 이해가 안 갔던 것은, 클템 해설이 역체정 선언을 한 경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담원 기아가 진 PO 경기입니다. 하필 진 경기를 놓고 역체정 선언을 한 것도 공감을 깎아먹는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경기에서 캐니언의 활약으로 단일 팀이 LCK 최초 4연속 결승이라도 가는 기록을 세우기라도 했다면 공감이 조금이나마 더해졌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그런 클템 해설의 개인 의견에 공감을 해 보려고 왜 그랬나 싶은 공감이 갈 만한 기억을 좀 돌아보면, 갑자기 아주 오래 전 프로농구 초창기가 생각이 납니다.

1997-98 KBL 챔피언결정전에서 기아 엔터프라이즈(현 울산 모비스)는 당시 최강팀 현대 다이냇(현 전주 KCC 이지스)을 챔피언 결정전에서 상대하게 됩니다. 문제는, 기아의 중심 선수 허재가 플레이오프 때 이미 손등이 부러진 상태였고 이상민 - 조성원 - 추승균 트리오는 물론 그 유명한 조니 맥도웰과 또 다른 외국인 선수 제이 웹이 모두 건재했던 현대와 다르게, 기아는 저스틴 피닉스의 태업으로 오로지 클리프 리드만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허재는 당시 34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현대를 상대로 플레이오프에서 부러진 손을 가지고, 맥도웰의 팔에 맞아 눈두덩이 찢어져도 최고의 퍼포먼스와 멈추지 않는 투혼을 보이며 챔피언 결정전을 최종 7차전까지 끌고 갔습니다.

저는 실업농구 시절부터 현대전자의 팬이라 KBL이 되고도 현대 다이냇의 팬이었고, 농구대잔치 시절 기아 왕조를 이끌던 허X택 (가운데 X표는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사람이라...) 트리오를 보고 '저 선수들만 없었어도 현대가 우승은 몇 번 더 했을 텐데'라고 생각할 정도로 공포스러워했는데. 실업농구 시절 허재를 그렇게 공포스러워하고 싫어했던 제가 경기를 보면서 허재의 플레이에 실업농구 시절보다 더 심하게 경악하고 있더군요.

뭐 7차전에서 현대가 승리하기는 했지만, 허재는 준우승 팀 선수임에도 지금까지 역대 최초로 파이널 MVP를 수상했고, 거기에 대해서는 이론이 크게 없었습니다. 이처럼, 선수 개인의 퍼포먼스가 경기의 승패를 초월한 인상을 남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면, 그 해에 허재가 MVP는 받았어도, 결승전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고 해도. 허재나 기아가 프로농구 우승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클템 해설은 과거에 '선수의 실력은 과거미화, 혹은 잘못된 와전, 사람의 기억에 따라서 충분히 변할 수 있고 평가가 다르지만 커리어는 팩트다'라는 식으로 관계자들이 커리어를 중시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때와 비교해 개인의 기준이 달라졌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관계자 개인의 기준이 그 판의 선수 커리어와 경기의 승패까지 희석시키는 지경이 되는 것까지 이해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LOL 관련 커뮤니티에서 클템 해설의 말을 빌미로 때는 이때다 하면서 예전의 시절을 좋게 말하면 낭만의 시절, 나쁘게 말하면 물로켓 시절이라고 말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예전에는 LCK가 우위이던 시절이니 국제전 커리어 쌓기도 쉬웠지만 지금은 타 리그가 우위이니 국제전 커리어 쌓기도 쉽지 않다는 해괴한 논리까지 말하며 과거의 커리어를 부정하려 하는 모습이 다시 보입니다. 심지어는 2022년 스프링 뿐만이 아니라 2020년, 2021년 담원 기아의 부동의 1옵션이 캐니언이었다고 캐니언 역체정을 만들겠다고 다른 담원 팀원들을 깎아내리는 모습까지 보게 되는데 이게 과연 옳은 것일까요?

백번 양보해서 커리어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어도 커리어에 대한 부정까지 이르면 그것은 틀린 생각이라 봅니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커리어에 대한 비교가 섣부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가치를 찾고자 과거의 유산과 팀 동료까지 깎아내리는 무리수를 두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논란이 일자 어떤 분들은 클템 해설이 과거에 벵기를 초식형 정글러로 부당한 프레임을 씌운 것까지 거론하곤 하는데, 저는 그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만에 하나 그랬다면 제가 내릴 평가는 경솔함 정도가 아닐 것 같으니까요.


여담이지만, 사실 캐니언에 대한 역체정 소리는 김동준 해설도 조금 언급한 적이 있고, 이미 작년에 신문기사로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작년 언제냐면, 2020 월즈를 제패한 담원 기아가 그 전에 T1 외에는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LCK 연속 우승에 도전하고, 그리고 성공하고, 나아가 2021 MSI까지 먹으면 '논 캘린더 그랜드슬램'도 가능한 시기에 그런 신문 기사가 몇 개 나왔지요. 당시 기사를 보면 '소환사의 컵을 들어 올리며 '세체정'의 반열에 오른 '캐니언'은 이제 '역체정'을 향해 여정을 떠난다. 도착지는 멀지 않았다. 또 한 번의 트로피를 거머쥐는 그 순간이 곧 새로운 '역체정'의 탄생이 될 테니 말이다.' 같은 식으로 MSI 정상에 등극하면 역체정이 마치 당연시되는 듯한 견해가 나옵니다. 허나, 2021 MSI는 물론 2021 월즈에서도 담원 기아가 준우승에 머물며 캐니언의 역체정 이야기는 신문지상에서 싹 들어간 상태입니다.

새로운 선수가 역대 최고에 도전하고 그것을 이루어 내는 것은 스포츠의 운명이고, 저는 그것을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하지만 일시적인 퍼포먼스와, 포스나 임팩트 같이 주관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로 인해 섣부르게 쓰여지는 찬양과 왕관은, 길게 보면 그 판에도 선수에게도 팬에게도 득이 될 게 아무 것도 없고 대부분은 상처만 남기게 됩니다. 규격 외의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면, 스포츠 판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커리어와 승패라는 기록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그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의 논란도, 향후 캐니언의 커리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저 흘러가는 관계자의 소리 하나 때문에 한때 물고 뜯고 불타고 마는, 그저 무의미한 소리로 흘러갈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역체 운운하다가 국제전 이후 쑥 들어간 신문기사들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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