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2/10/06 14:49:50
Name   Velma Kelly
Subject   "수업이 너무 어려워서 해고당한" 뉴욕대 화학 교수에 관하여
https://www.khan.co.kr/world/america/article/202210051524001

https://www.nytimes.com/2022/10/03/us/nyu-organic-chemistry-petition.html


타임라인

* 2022년 봄 학기, 뉴욕 대학교의 매잇랜드 존스 교수의 유기화학 강의를 듣던 350명의 학생 중 82명이 “수업이 너무 어렵고, (존스) 교수가 그 어려움에 한몫 하고 있다”고 탄원서를 올림 (해고하라고는 안 했음)

* 2022년 8월, 가을 학기 시작 직전, 존스가 학장에게서 짧은 해고 통보를 받음

-----------------------------------------------------------------------

이 사건으로 대중은 “꼰머 교수가 참교육 당한거 아님?” vs “세상에 수업 어렵다고 학생이 교수도 자를 수 있네 말세여” 같은 표면적인 얘기만 하는 거 같습니다. 그럴 수 있죠. 사람들 의견과 경험은 다 다르니까요. 하지만 저는 유기화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나중에 연구가 아니고 가르치는 걸 1순위로 삼는 교수가  되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이 이야기에 어떤 복잡한 점들이 있는지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존스는 올해 만으로 84세의 유기화학 교수입니다. 존스는 1964년에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교수 경력을 시작해서 2007년에 은퇴, 그 이후로는 뉴욕 대학교에서 1년 계약을 연장하면서 올해 봄 학기까지 강의만을 했습니다.

-- 이 점을 들어 “프린스턴에서 40년 가르쳤으면 잘 가르치는거 아님?” 이라는 논리도 보이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프린스턴 급의 세계구급 연구 대학들은 교수가 수업을 잘 가르치던 말건 별 관심이 없어요. 교수가 할 일 공동 1순위가 연구비 벌어오기, 논문 내기입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학부생들 잘 가르치는 건 저어어기 뒷전에 한 5순위 정도 될겁니다. 인성? 더러워도 능력이 있으면 학생들이 굴려주십쇼 하고 랩에 들어옵니다. 제가 지금 존스의 인성이 구렸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고, 연구 대학에서의 오랜 경력은 학부생 수업의 질과 전혀 무관하다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

존스가 해고되고, 뉴욕대는 해당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최종성적을 재검토하고 뒤늦게 드랍할 수 있는 혜택을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성적을 잘 받은 학생들은 반발했고, 화학과 교수들도 해고가 옳지 않은 처사였다고 주장합니다.

[“이건 그냥 학생들 성적 올려줘서 학교에 대해 좋은 말만 하게 만들고 더 많은 학생을 불러와서 대학교 랭킹 올리려는 심보임.”] – Paramjit Arora, 동료 교수

존스에게 해고 통보를 보낸 학장 Gregory Gabadadze는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흥미롭게도, 학생들의 탄원서에는 존스를 해고해달라는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 존스의 인성?
탄원서를 올린 학생들은 존스가 ‘학생들을 깔보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건 뭐라 생각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게, 화학 하는 인간들은 애초에 소통이란 걸 잘 못합니다(…). 거기다 한 절반 이상은 연구에 찌들어서 냉소적이고 sarcastic 한데, 이걸 잘못 읽으면 ‘이새끼는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날 이렇게 갈구지?’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물론 존스가 낮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한테 정말 못되게 굴었을 수도 있겠죠. 제가 이 사람을 만나본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이걸 갖고 무슨 판단을 내리기엔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올리는 연예인 인성폭로 이런 느낌이 들어서 좀 꺼림칙하네요.


* 그래서 존스는 뭐래요?
존스는 인터뷰에서 “코로나를 거치며 학생들의 성취도가 떨어졌다. 엄청난 수의 학생들이 문제 자체를 잘못 읽는 실수를 했다. 공부를 안 하는 건 둘째치고 공부할 줄을 모르는 것 같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이걸 갖고 “어휴 꼰대 ㅉㅉ” 하는것이야말로 꼰대짓인게, 코로나와 온라인 수업은 학생들의 배움에 심대한 지장을 줬고 수치상으로 그걸 나타낸 연구도 많거든요. 학생 탓을 하는 게 아니고, 이런저런 요인 때문에 아무튼 학생들의 수준이 과거에 비해 내려간 건 사실이란 말이죠.

[“존스는 수년동안 가르치는 방법을 바꾸지 않았음. 학생들은 변하더라고. 문제가 있다 싶으면 교수들에게서 더 많은 도움을 요청하고”] – James W. Canary, 전 NYU 화학 학과장

[“해당 수업에 대해 계속 불평하던 학생들은 우리가 제공한 것들 (오피스 아워, 강의 출석 등)을 사용하지 않았음.”] – Zacharia Benslimane, 해당 수업 조교

이건 TA를 해본 사람으로서 정말 공감이 되는게, 학생들이 안 와요. 수업도 안 나오고, 오피스 아워도 안 와요. 줌으로도 현실로도요. 지금 유기화학을 듣는 2학년생들은 대학교 1학년을 코로나로 맛이 간 상황에서 보냈는데, 이러니깐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합니다. 요즘 학생들은 게을러 빠졌다 이런 게 아니라, 대학교에서 모르는 게 있으면 어느 정도는 내가 파서 알아내는, 그런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 스킵된거죠. 근데 하필 유기화학 과목이 문제가 된 건 우연일까요?


* 유기화학이 뭐길래?

미국에서 과학 전공하는 학부생 10명을 데려다가 “유기화학 어떻게 생각함?” 하면 7명 정도는 한숨부터 나올 겁니다.

유기화학은 단순화하자면 탄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배우는 과학입니다. 근데 이 탄소란 게 생명체의 기반이거든요. 그러니까 굳이 대학원 가는 이상한 애들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의사 약사 되고 싶은 똘똘한 친구들이 무조건 들어야 하는 필수과목입니다. (그리고 얘네들은 의대 약대를 가려면 성적이 쥰내 좋아야 합니다!) 고로, 정말 많은 학생들이 좋든 싫든 듣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과목이 골때리는 이유는, 공식이 없어요. 암기도 없어요. 공식을 외우면 공식에 안 맞는 예외가 나오고 암기를 하면 암기한 내용 밖에서 문제가 나와요. 다른 과목들이랑은 공부하는 방법이 달라도 한참 다릅니다. 개념 자체를 빠삭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을 하고 연습을 해도 턱턱 막히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자, 고등학교 때 공부 잘한다는 소리만 듣던 친구들이 난 약사 의사 공학자가 될거에요! 하고 대학교에 갔는데, intro 단계 수업에서 어? 난 항상 하던대로 했는데 왜 성적이 안 나오지? 이 과목 미친거 아님?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학생들이 수백 수천명이 있는거죠. 이래서 유기화학의 (누명…?) 악명이 생겨난 거고요


*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코로나로 인해 학생들의 성취도가 떨어진 건 팩트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수업의 수준을 무작정 낮출 수는 없겠죠. 그러면 교수와 대학이 피튀기는 혈전을 벌이든 마빡을 맞대고 건설적인 토론을 하든 해서 어떻게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 상황은 아무리 봐도 대학 입장에서 뭔가 더 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가 잘못한 점을 밝히는 명백한 증거 없이 진행된, 이런 식의 해고는 교수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무섭게 느껴집니다. 선례가 남는다는 게 중요한 거죠. 앞으로 다른 대학에서 학생들이 ‘이 학교 유기화학 너무 어려움! 교수가 X나 못 가르침’ 이러면 어떻게 될까요? 대다수 학교들은 (제발…) 각 잡고 조사를 해서 수업이 정말 불공평하게 어려운지 밝히고, 그 결과에 따라 교수나 학생들과 협상을 하겠죠. 하지만 어떤 학교들은 그런 조사를 할 능력이 안돼서/걍 귀찮아서 교수를 삭둑 잘라버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겠죠. 뭐든 처음이 어려운 거 아니겠습니까. ‘매잇랜드 존스도 잘렸는데 뭐 어때’ 하면서. 그게 반복되면 이 문제가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슬픈 날이 오겠죠. :(



26
  • 글 잘 읽었습니다. 연구비, 강의 퀄리티, 학비, 대학-교수-학생 간에 요구 차이 등등 많은 생각이 드네요...
  • 안그래도 이 사건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가 궁금했읍니다.
  • 전공자분의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464 도서/문학최근에 읽은 책 정리(라이트노벨, 비문학 편) 5 kaestro 24/02/17 503 0
14463 일상/생각LTNS 최근 본 드라마중 감히 최고라고 말하고 싶네요.(스포있어요) 4 큐리스 24/02/17 790 0
14462 기타안녕하세요 이시국 의대생입니다 20 땡땡 24/02/16 1491 0
14461 게임스트리트파이터 6 최초의 정상결전 - capcom cup x 2 kaestro 24/02/15 582 2
14460 기타존 미어샤이머 인터뷰 2 은머리 24/02/15 732 9
14459 오프모임2월 24일 아침 드라이벙 18 치킨마요 24/02/15 797 0
14458 일상/생각와이프 참 고마워요~~ 2 큐리스 24/02/15 721 3
14457 일상/생각낭인시대. 4 moqq 24/02/14 701 5
14456 일상/생각바드가 쓴 시: 윈도우 터미널 3 큐리스 24/02/14 533 0
14455 일상/생각인사고과와 사회적 가면에 대한 생각 6 nothing 24/02/13 977 8
14454 일상/생각와이프에게 말못한 비밀을 아들에게는 할수 있을까요? ㅎㅎ 6 큐리스 24/02/13 1112 1
14453 일상/생각와이프가 오일 마사지에 맛을 들였네요.^^ 12 큐리스 24/02/13 1183 1
14451 오프모임무지성으로 쳐보는 연휴 막날 돼지갈비 벙 8 비오는압구정 24/02/12 983 1
14450 스포츠(데이터 주의)'빌드업 축구'는 없다. 우루과이전으로 돌아보는 벤투호의 빌드업. 13 joel 24/02/12 1215 29
14449 일상/생각지난 연말에 한달간 업장에서 바하밥집 기부 이벤트를 했습니다. 13 tannenbaum 24/02/11 975 49
14448 기타이스라엘의 한니발 지침(Hannibal Directive) 4 은머리 24/02/11 821 6
14447 도서/문학최근에 읽은 책 정리(프로그래밍 편) kaestro 24/02/10 699 1
14446 도서/문학최근에 읽은 책 정리(만화편)(2) 2 kaestro 24/02/09 546 1
14445 도서/문학최근에 읽은 책 정리(만화편)(1) 6 kaestro 24/02/09 715 1
14444 기타제66회 그래미 어워드 수상자 4 김치찌개 24/02/09 590 1
14443 일상/생각안전한 전세 월세 계약하는 방법 2 게이득 24/02/08 819 0
14442 IT/컴퓨터천원돌파 의존성 역전 17 kaestro 24/02/08 2673 1
14441 일상/생각방학중인 아들을 위해 밑반찬을 만들어봤어요. 2 큐리스 24/02/07 667 3
14440 일상/생각대전을 떠나면서 5 활활태워라 24/02/06 849 0
14439 과학/기술자율주행차와 트롤리 딜레마 9 서포트벡터(서포트벡터) 24/02/06 850 7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