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5/05/24 07:34:32
Name   그르니에
Subject   ‘좋아함’의 폭력성에 대하여
저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좋아한다’고 느낄 때 그 이면에 깔린 공격성은 늘 흥미롭습니다.

어떤 대상(정당, 아이돌, 스포츠팀 등)을 좋아하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그들’을 구분해 내곤 합니다. 호감과 우월감은 ‘우리’에게, 반감과 열등감은 ‘그들’에게 투사됩니다. A팀과 B팀. 가정당과 나정당…처음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 호감이 생겼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좋아한다”는 감정이 그 이유를 만들어 냅니다.

특정한 계기로 애정이 식으면, 과거에 열렬히 지지했던 집단이나 대상이 오히려 강력한 ‘안티’의 대상이 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단순히 100에서 0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100에서 -100으로 훅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이는 지지자가 ‘성역’처럼 여기는 가치를 건드리면서, 실망을 넘어 “나를 배신했다”는 도덕적 분노가 폭발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틀렸다”는 인정보다 “그가 나를 배신했다”는 비난이 훨씬 쉽고, 그래서 훨씬 날카롭습니다.

스포츠 팬이 자기 팀의 감독이나 선수를 거칠게 비난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검은 양 효과(black sheep effect)”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집단 구성원이 집단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경우, 같은 행동을 집단 외부인이 했을 때보다 훨씬 더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뜻합니다. “나는 강팀 팬”이라는 자부심과 “팀이 못한다”는 현실이 충돌하면, 불쾌감을 해소하기 위해 원인을 특정 개인(감독이나 선수)에게 돌리고 분노를 쏟아내는 일이 많습니다. 이는 결국,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심리적 방어 기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11
    이 게시판에 등록된 그르니에님의 최근 게시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431 일상/생각팔씨름 좋아하세요? 17 그럼에도불구하고 17/04/13 7962 8
    5441 일상/생각아주아주아주 가벼운글 5 그럼에도불구하고 17/04/14 3936 8
    5460 일상/생각전 여친은 페미니스트였다. 84 그럼에도불구하고 17/04/17 14601 18
    7367 일상/생각홍차넷 6 그럼에도불구하고 18/04/11 5017 26
    7398 일상/생각"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5 그럼에도불구하고 18/04/17 5944 3
    7403 일상/생각(사진혐주의) 운동 두달 차 기록. 38 그럼에도불구하고 18/04/18 7427 9
    8972 일상/생각내 나이 29살 24 그럼에도불구하고 19/03/18 6130 0
    9852 일상/생각소개팅 어플과 여자사람-1 11 그럼에도불구하고 19/10/18 6350 6
    9853 일상/생각소개팅 어플과 여자사람-2 17 그럼에도불구하고 19/10/18 5766 9
    9854 일상/생각소개팅 어플과 여자사람-3 44 그럼에도불구하고 19/10/18 6245 17
    9879 일상/생각소개팅 어플과 여자사람-3(번외) 14 그럼에도불구하고 19/10/23 5361 6
    10238 일상/생각아 정말 퇴사는 어려운거구나!! 24 그럼에도불구하고 20/01/29 6884 46
    10958 일상/생각나의 2년간의 짝사랑기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는) 19 그럼에도불구하고 20/09/15 7337 5
    6918 일상/생각60대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딸 뿐만은 아닌것 같다 7 그렇다고 했다 18/01/09 5464 3
    15459 일상/생각‘좋아함’의 폭력성에 대하여 13 그르니에 25/05/24 2130 11
    6719 도서/문학코끼리가 숨어 있다 6 그리부예 17/12/07 5713 7
    6070 일상/생각언니네이발관 해체 5 그리부예 17/08/07 5152 4
    6077 도서/문학<당나귀의 지혜> 독서평(1) 그리부예 17/08/09 4811 6
    6100 일상/생각어머니가 후원 사기에 당하셨네요;;; 7 그리부예 17/08/12 4406 0
    6114 도서/문학제가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 보려 합니다. 27 그리부예 17/08/16 5874 12
    6490 음악줄리언 베이커, "Turn Out the Lights" 그리부예 17/10/30 4270 3
    6516 도서/문학크로스드레싱을 소재로 삼은 만화, 13월의 유령 4 그리부예 17/11/03 7339 6
    6780 영화"체리 맛을 포기하고 싶어요?" 3 그리부예 17/12/18 5775 3
    6788 도서/문학허수경의 시 <폭발하니 토끼야?> 5 그리부예 17/12/19 5607 6
    9164 게임[리뷰] 주체와 타자의 경계 허물기: <BABA IS YOU> 5 그린우드 19/05/08 4673 6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