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7/29 15:35:57
Name   세인트
Subject   터진 내 새우등.
아래의 글은 최근에 제가 PGR21에 올린 글입니다.
그래서 PGR 관련 내용이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만, 업무도 바쁘고 심적으로 많이 힘들기도 하고 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수정 없이 그대로 올립니다.

그곳에서 말한 걸 왜 가져왔나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정말로 정말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실제적으로 무슨 피해를 줬느냐? 오히려 남자들이 지금껏 그래왔던게 문제지] 라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고,
그러한 발언의 의도는 공감합니다만 정말로 그 사이에서 피해를 받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예-전에 하던 커뮤니티에서 전설의 키배러로 유명하셨던 분께서 말씀하시길,
[그런 식으로 사안마다 케바케를 들먹이며 나는 아닌데? 라고 하는 방법은 잘못된 것이고 키배할 마음도 안나는 거지같은 놈들이다]
라고 하신 적도 있으십니다만, 그럼에도 피해를 본 걸 안 봤다고 할 수는 없으니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올렸던 글 전문입니다.











이 글을 쓰기까지 사실 꽤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건게에 다른 분께 부탁드려서 익명으로 올려도 되는지 여쭤봤습니다.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제가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지금까지 들은 반응들이 전부 호의적인 건 아니었거든요.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먹게 된 것은,
[잘 모르면 나대지 말자] 라는 스스로의 기준 때문에 (타인에게 이 기준을 적용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지인들과의 카톡 같은 경우를 제외하자면) 이번 일련의 사태들에 대해 별 코멘트 없이 쭉 침묵해왔습니다만...

다만, '그들이 실제로 얼마나 피해를 줬느냐? 실제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입히는 피해가 훨씬 크지 않느냐?'
라는 이야기가 몇 번 언급되서... 용기를 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핵심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남성이지만 성폭행의 피해자였습니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데 몇 년이 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십 몇년이 더 된 이야기인데도, 그래요. 생각만큼 쉽지 않네요.

분명히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세월도 꽤 흘렀는데, 이 글을 쓰려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도 호흡이 어지럽고 정신이 없네요.

아무튼 피해 내용에 대해서는 굳이 더 자세히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이 본질도 아니거니와, 외려 힘내서 이야기를 털어 놓아도
저에게 돌아오는 이야기들은 [그래서, 했냐 안 했냐? / 너도 좋았지? / 사내 자식이 뭘 그런 걸 가지고]
와 같은 정말로 저를 너무나 힘들게 하던 이야기들 뿐이었거든요.
뿐만 아니라,
[너 하나보다 조직의 안전이 우선이다 / 너도 좋았으니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
/ 니가 이걸 공개하고 편하게 살 것 같으냐 / 너도 내심 바랬으니 따라간 것 아니었느냐]

이런 발언들로 더 짓밟히고 재차 삼차 죽었던 저 자신을 생각하면 사실 딱히 특출난 것 없는, 한국 사회 어디에나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위계에 의한 성폭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특출나게 억울한 사람도 아니고, 저와 같은 피해를 당한 (물론 대부분의 피해자분들은 여성분이시겠지만)
분들의 심정을 제가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제가 높은 식견과 인격을 가진 사람은 결단코 아니며,
오히려 저런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타협해 버리고 몇 년 간을
[그래 내가 잘못했지 내가 처신을 잘못해서 그래] 이런 생각으로 몇 년을 사람 같지도 않게 살았던 그런 일개인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해야 겠습니다. 저는 남성을 성적으로 어떻게 해버리겠다/위해를 가하겠다/폭력을 행사하겠다 라는 글이 무섭습니다.
솔직히 진짜로 무섭습니다. 제가 멘탈이 유리멘탈에 병신 같은 놈이라 그런지 몰라도, 정말로 무섭습니다.
심지어 오래 지났고 극복했다고 생각했고 가정을 꾸려서 가장으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무섭습니다.


덧붙여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후회합니다. 여성들에게 행해져온 무차별적인 언어폭력과 성적 대상화에 불편함을 느껴왔으면서도
크게 소리높여 목소리 내지 않고 침묵했던 제 자신을 후회합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제 업보라서 저와 같은 사람들(얼마나 될런지 모르겠지만)이 이러한 폭력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논리도 잘 갖추지 못했고, 글을 조리있게 쓰는 편도 아닙니다. 거기다 다시 본의 아니게 떠올리다보니 더더욱 정신이 제 정신이 아닌 기분이라 글이 정말 두서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저와 같은 의견이 단지 소수니까 상관없어 라고 생각하진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소수지만 있다구요. 정말요......






고래 싸움에 터진 새우 기분을 이제 절절히 느껴보네요. 아직 제 멘탈의 외피는 갑각류처럼 튼튼하지 못한가 봅니다.



P.S: 몇 년쯤 전에, 이와 비슷한 성희롱 이슈에 휘말렸을 때,
제가 혹 여기 PGR이나 홍차넷에 계실지도 모르는 저의 지인분들께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도
솔직히 이제와 고백하자면 그런 이유 때문에 그렇게 제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불쾌함과 공포를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그 때 그 분들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정도 섹드립 가지고 남자가 왜 저리 발광해서 날뛰냐?' 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참이 지나서 이제와서 변명 같은 고백을 해서 죄송합니다.



4
  • 신발을 신어보게 만드는 글은 추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770 꿀팁/강좌홍차넷 회원들끼리 재밌는 사이트를 공유하는 게시물 39 빠른포기 16/09/25 11055 4
3731 스포츠[야구] 14년을 기다린 프로 첫 승 5 kpark 16/09/20 4991 4
3702 기타서원(書院)에서 한문 배운 썰 (4): 버츄얼 파이터 사건 14 기아트윈스 16/09/14 4559 4
3646 기타핵잠수함, SLBM 5 님니리님님 16/09/04 6254 4
3643 일상/생각우당탕쿵탕 8 호로 16/09/04 4722 4
3626 스포츠덴마크의 작은 거인 5 Raute 16/09/01 6328 4
3622 정치위안부,드라마,공감 6 님니리님님 16/09/01 4671 4
3618 문화/예술100억 짜리 애니메이션이 쥐도 새도 모르게 개봉되는 이유 13 Toby 16/08/31 5506 4
8878 게임[LOL] 롤챔스 1라운드가 끝나가는 시점에서의 각 팀별 개인적인 평가 5 Leeka 19/02/18 4356 4
3559 꿀팁/강좌전 이성친구 행동양식 가이드 (feat. Swiftian offering) 73 elanor 16/08/23 7602 4
3496 꿀팁/강좌의료 및 의학 관련 질문을 올릴 때 24 리틀미 16/08/11 6743 4
3495 역사세상에서 가장 큰 대포 10 모모스 16/08/11 11756 4
3486 꿀팁/강좌 치즈와 GMO이야기 19 눈부심 16/08/10 8780 4
3446 문화/예술문득 기억나는 국내 키네틱 타이포 그라피 작품들 7 Toby 16/08/04 9353 4
8115 오프모임수요조사: 홍차넷 개발자 중심의 비정기 세미나 35 T.Robin 18/08/26 5259 4
3425 기타몇가지 관련글을 적어보려고 했습니다. 16 피아니시모 16/08/02 4315 4
3424 일상/생각쇼팽 한 곡과 주저리 19 elanor 16/08/02 4481 4
3402 일상/생각약자에 대한 차별 10 까페레인 16/07/30 5433 4
3393 기타터진 내 새우등. 5 세인트 16/07/29 4768 4
3343 도서/문학[왕도의 개], 겨레의 형편을 넘어서는 도리가 있음을 믿는가? 6 커피최고 16/07/24 8264 4
3331 IT/컴퓨터어느 게임 회사 이야기 (13) 13 NULLPointer 16/07/23 15596 4
3328 정치한국 진보, 유감 45 Raute 16/07/23 6865 4
9023 스포츠[MLB] 보스턴 레드삭스의 현재와 향후 페이롤 6 AGuyWithGlasses 19/04/02 5598 4
3327 IT/컴퓨터어느 게임 회사 이야기 (11) 15 NULLPointer 16/07/23 16045 4
3315 방송/연예2012년에 썼던 kbs 개그맨 글 4 헬리제의우울 16/07/21 11340 4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