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7/17 13:46:19
Name   우리아버
Subject   화랑곡공방
질좋은 쌀을 집에 두고 밥 지어먹으면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지만, 한가지 골치가 있다면 쌀벌레가 들끓는다는거죠. 화랑곡나방이라는 놈이 집안에 넘쳐나서 요놈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페로몬트랩을 들여와서 집안 곳곳에 두었습니다. 과연 숫놈은 교미에 환장한지라 트랩은 문전성시를 이루더군요. 그런데 암놈은 잘 안걸려서인지 개체수는 줄어도 나방은 꾸준히 출몰했습니다.

엄마가 쌀독을 열고 기겁하시기에 봤더니 라바와 뮤탈리스크가 넘치는 저그군락이었습니다. 좋다, 리스폰하는 순간 바로 족쳐주마라는 심정으로 트랩을 쌀독안에 넣었습니다.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거실을 날아다니는 나방이 확줄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빨래를 널기위해 베란다에 갔는데 벽에서 꿈틀대는 무언가를 봤습니다. 띠용 애벌레 기십마리가 천장과 벽을 열심히 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나무젓가락으로 몇놈은 잡아다 거미먹이로 주고 나머지는 적절히 처리했습니다. 그래서 쌀독을 봤는데 애벌레들이 엑소더스 중이었습니다.

아하~성충이 되어봐야 미래가 없으니 쌀독을 나가서 변태하겠다는거구나! 인간이 시행착오로 학습을 하듯, 나방은 개체목숨을 담보로 학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손짓에도 죽는 화랑곡나방이라는 개체는 단일개체로 봤을땐 지능이 없어보이지만, 화랑곡나방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어서 본다면 이들도 인간과 같이 사고하는 존재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가만히 눈뜨고 볼수는 없으니 끈끈이 부분이 하늘을 향하도록해서 청테이프로 쌀독입구를 둘렀습니다. 기어나오다가 들러붙게 할 의도였죠. 그런데, 오늘 또 빨래를 널러 베란다에 갔는데 애벌레들이 또 천장과 벽에 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효과가 없었나 싶어 쌀독뚜껑을 여니 수많은 애벌레들이 테이프에 들러붙어 있었습니다. 그걸 보곤 깨달았습니다. 이건 밴드 오브 브라더스다, 위대한 희생이란걸 말이죠.

'형제들이여! 이곳을 벗어나면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자! 나의 시체를! 동지들의 시체를 밟고 가셔야합니다. 우리들의 희생을 딛고 나아가셔야 합니다! 화랑곡나방이여 영원하라!!'

형제들의 희생을 눈물로 넘어낸 애벌레들은 천장에서 승리를 외치며 몸에서 자아낸 실을 깃봉삼고, 자신의 몸을 승리의 깃발삼아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이 위대한 승리엔 저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그래서 이 다른 놈을 몰라도 이 애벌레에겐 짝을 지어줘야겠다 그런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쑤시개로 자아낸 실을 휘휘 감아 애벌레를 조심스레 옮겨 베란다 거미줄의 가로줄에 붙여줬습니다. 나중에 거미와 짙은 사랑을 나누겠죠.

큭큭큭...신파극은 이제 끝이다.

박스테이프로 벽과 천장에 붙은 애벌레들을 다 떼어내고, 쌀독의 청테이프를 새걸로 갈면서 질긴 놈이 이기는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기리라 다짐했습니다.



2
  • 전쟁의 대서사시는 춫천
  • 재밌는 글을 추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964 영화왓챠 300개인 영린이가 쓰는 5점영화 추천글 9 이슬먹고살죠 17/07/17 4914 2
5963 일상/생각화랑곡공방 6 우리아버 17/07/17 4553 2
5962 방송/연예[비밀의 숲] 드러나는 범인에 대해 [걍력스포주의] 7 혼돈 17/07/17 5407 2
5961 일상/생각수박이는 요새 무엇을 어떻게 먹었나 -19 25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7/07/17 5447 11
5960 일상/생각10년만에 학회복귀 감상 8 집에가고파요 17/07/16 3753 3
5959 스포츠170716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추신수 1타점 적시타) 김치찌개 17/07/16 2736 0
5958 음악Out of 쇼미더머니. 6 와인하우스 17/07/16 4443 3
5957 여행한달간 제주여행하기 1탄 5 모모스 17/07/16 8680 11
5956 IT/컴퓨터마우스 영역 제한 프로그램(듀얼 모니터 이상을 사용하는 분을 위한 프로그램) 5 ArcanumToss 17/07/15 18212 4
5955 일상/생각장마철 성가신 거미줄 6 우리아버 17/07/15 4282 4
5954 기타여름철 물놀이시 주의해야할 질환들 1 중식굳 17/07/15 3618 3
5953 방송/연예'R&B요정' 박정현, 대학 교수와 오늘 하와이서 결혼 2 벤젠 C6H6 17/07/15 3727 1
5952 게임[LOL] 엠비션의 강점을 살린, 삼성의 미글러 활용 4 Leeka 17/07/15 3364 1
5950 기타필름포장지 이야기 18 헬리제의우울 17/07/14 11321 15
5949 일상/생각가난했던 젊은날 24 soul 17/07/14 4851 19
5947 일상/생각고시낭인이라 욕하지마라. 17 tannenbaum 17/07/14 10421 19
5946 방송/연예엠넷아 너무 나갔다: 아이돌학교 26 Zel 17/07/14 5456 3
5945 음악요즘 듣고 있는 해외앨범 21(The Chainsmokers - Memories…Do Not Open) 2 김치찌개 17/07/14 3536 0
5944 역사 영화 "덩케르크" 의 배경이 되는 1940년 독일-프랑스전투 2 모모스 17/07/14 10120 8
5943 일상/생각아마존에서 환불을 받으려 헤매인 후기 24 벤젠 C6H6 17/07/13 4796 5
5942 기타안보는 책을 나눠드릴까하는데요.. 44 CONTAXS2 17/07/13 4467 18
5941 방송/연예이지혜 "예비신랑은 마음이 훈남, 첫만남서 결혼생각 들어"[화보] 8 벤젠 C6H6 17/07/13 3967 0
5940 정치취임 두달째를 맞이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생각 58 empier 17/07/13 4934 1
5939 일상/생각알바생과 근로기준법 이야기 14 tannenbaum 17/07/13 3968 8
5938 IT/컴퓨터캘린더앱 리딤 나눔 결과 발표 13 jk25d 17/07/13 3382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