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11/10 22:57:39
Name   레이드
Subject   홀로 견디는 당신에게
* 이 글은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no=74531 위 글에 대한 생각을 적은 글입니다. 해당 사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싶지 않으신 분께서는 미리 백 스페이스를 추천드립니다. 타 사이트의 글을 끌고 온 것에 대해서 사과를 먼저 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성범죄 피해자들에게는 신체적, 정신적 피해 이외에도 한 가지의 피해가 더 따라붙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사람들의 시선이지요. 가볍게는, 조용히 묻고 넘어갈 일을 왜 이렇게 시끄럽게 하느냐 는 이야기부터 크게는 저런 x이 어디가서 뭘 하겠냐는 말까지요. 행동을 잘 하고 다니면 그런 일 없지 않았겠냐는 책망까지 듣곤 합니다.
나는 피해를 당했는데,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피해를 당한 것 뿐인데. 서있다가 벼락을 맞았는데 왜 벼락을 못 피했냐는 말과 다를게 없는 그런 시선들.

특히 회사(혹은 다른 사회조직) 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은, 권력관계와도 연결되어 있어 이야기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보다 서열상 우위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런 경우 잘못되었다가는 오히려 나에게 더욱 더 큰 손해가 되기 때문이지요. 난 거기 있었을 뿐이고, 슬프게도 내가 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었을 뿐인데도요.

그래서 저는 이런 사건들을 성범죄로 생각하기보다는,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무자비한 폭력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흔히들 많이 해보잖아요. 어렸을 때 개미 잡아서 다리 하나씩 부러뜨려보는 거, 부러뜨리면서 재밌어하는 사람들이 강자, 부러지는 개미들이 약자가 되는셈이죠. 우리는 이런 경우에, 본인은 보통 강자의 입장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약자가 되고, 그 누군가가 되는데에는 별 다른 이유나 근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약자가 강자에게 취하는 방법은 많지가 않지요. 복종하거나 반항하다가 굴종하거나, 혹은 흔치 않지만 결국 반항해서 이기거나. 대개 많은 경우 앞의 두 가지 방법을 취하게 됩니다. 바로 이 점이 저를 가장 슬프고 비참하게 만드는 점입니다. 저는 위 글 피해자의 남자친구입니다. 그런 제가 힘들어하는 여자친구와의 통화에서 뭐라고 했을까요?

".... 괜찮아?...울지마. ....그래도 자기 덮고 가는게 좋지 않을까?.. 자기 그 회사 다녀야하잖아. 고소할거라고? 자기 그 힘든거 견딜 수 있어? 방법있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황스러움과 수치심으로 힘들어하는 여자친구에게 참으라고 강자에게 굴종하라고, 당신의 아픔을 묻고 가라고 말하고 말았어요. 그래도 옆에서 지켜줘야 할 사람인데도요. 저는 제가 이성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힘들어하는 여자친구가 괜찮아질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저도 그냥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말한 거였어요.

그래서 너무 미안합니다. 그래서 더 부끄럽습니다.

옆 사람은 이제 길고 지루한 싸움을 시작하려 합니다. 저는 이제, 이 사람 옆에 있어 주고 싶습니다.
저는 "성" 범죄 를 강조하고 싶지 않습니다. 성 "범죄"를 더욱 강조하고 싶습니다.  젠더의 문제가 아닌, 강자가 본인의 즐거움을 위해서 약자를 괴롭히고 약자의 목소리를 묵살한 것 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공감과 위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아직도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당연시 되고 있는 강자의 의한 폭력이 조금씩 사라지는 세상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홀로 견디는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28
  • 따뜻한 글 좋습니다.
  • 꼭 이기세요
  • 지치지 마세요!
  • 응원합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574 일상/생각미국 고등학생 축구 진로문제 21 Liebe 17/11/11 3676 5
6571 일상/생각홀로 견디는 당신에게 14 레이드 17/11/10 4213 28
6560 일상/생각생애 첫차 뽑은 이야기(기아 Niro, 2000km주행) 10 danielbard 17/11/09 7577 11
6553 일상/생각강적을 만났다 - 후배랑 연 끊은 썰 21 tannenbaum 17/11/08 4603 2
6547 일상/생각사랑의 방식 4 와인하우스 17/11/07 4265 5
6542 일상/생각화장실에 갇혔던 이야기. 10 프렉 17/11/06 4682 7
6539 일상/생각독일 대학원에서의 경험을 정리하며: 7편 23 droysen 17/11/05 6243 28
6538 일상/생각무기력한 하루하루 13 조선왕조씰룩 17/11/05 3646 0
6529 일상/생각독일 대학원에서의 경험을 정리하며: 6편 8 droysen 17/11/04 4300 10
6524 일상/생각외국인 선생님과의 이야기. 2 우분투 17/11/04 3603 9
6521 일상/생각아주 작은 할아버지 20 소라게 17/11/03 4643 34
6519 일상/생각독일 대학원에서의 경험을 정리하며: 5편 14 droysen 17/11/03 4937 15
6518 일상/생각직장 동료가 원수가 되었습니다. 22 엘멜 17/11/03 4709 0
6515 일상/생각요즘 우리나라 네티즌은 어떤가? 25 WatasiwaGrass 17/11/03 3692 0
6510 일상/생각독일 대학원에서의 경험을 정리하며: 4편 16 droysen 17/11/02 4961 7
6508 일상/생각아이돌에 대한 잡생각 30 다람쥐 17/11/02 5431 13
6505 일상/생각독일 대학원에서의 경험을 정리하며: 3편 35 droysen 17/11/01 5670 8
6501 일상/생각문득 떠오른 고등학교 시절의 단상 13 쉬군 17/11/01 3547 3
6499 일상/생각할로윈이라 생각난 사탕 이야기 6 다시갑시다 17/10/31 3604 3
6495 일상/생각독일 대학원에서의 경험을 정리하며: 2편 40 droysen 17/10/31 13900 15
6493 일상/생각[뻘글] 디테일에 관하여 23 *alchemist* 17/10/31 5184 5
6491 일상/생각독일 대학원에서의 경험을 정리하며: 1편 18 droysen 17/10/30 5653 26
6486 일상/생각낙오의 경험 10 二ッキョウ니쿄 17/10/30 3829 11
6485 일상/생각'무빠' 대입 설명서 18 CONTAXS2 17/10/30 4068 1
6483 일상/생각알고 있는 것, 알려줘도 되는 것 1 Broccoli 17/10/30 3301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