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12/01 20:51:46
Name   tannenbaum
Subject   오야지 형아. - 상
학력고사를 앞두고 난 대학 합격 여부보다는 집에서 독립하는 게 더 고민이었다.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고작해야 주유소 모텔보이 배달 설거지... 당시 시급 800원 한달 내내 하루도 안쉬고 12시간씩 일해도 30만원.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답이 안나왔다. 과외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이제 막 학력고사 치르고 졸업도 않은 애한테 누가 맡기려 하겠는가. 내가 뭐 전국 수석도 대학 수석도 아닌데....

하지만... 아마 내 인생의 첫번째 운이 그때 왔었나보다. 사업한다는 고등학교 선배가 담임에게 요번에 졸업하는 애들 중에 성실한 친구들 몇 알바로 소개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담임은 나와 몇에게 연락을 했고 나는 두말없이 한다고 했다. 며칠 뒤 우리는 00산업이라는 선배의 사무실로 찾아 갔다. 사무실은 기괴한 냄새로 가득차 있었다. 다들 잔뜩 쫄아서 선배와 인사를 했고 설명을 들은 우리는 다들 망치로 얻어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다들 어디 사무실 보조나 노다가를 예상했는데... 기업형 장의사였다. 정확히 말하면 무연고 공동묘지에 누워계신 분들을 이장하고 그 자리에 택지지구를 개발하는데 봉분을 파내 시신을 수습하는 선 작업을 우리가 하는거였다.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 있던 열명 중 절반이 안하겠다 했다.  현장이었던 목포로 출발한 친구들은 나까지 다섯. 한겨울 찬바람 불어 꽁꽁 언 땅을 포크레인으로 윗부분을 평평하게 파내면 우리는 나무삽으로 땅을 파내 유골을 수습해 나무 함에 담았다. 아마 다들 사람의 시신과 유골을 처음 봤을거다. 결국... 첫째날 화장실 간다며 한명, 점심때 한명. 저녁 먹고 한명.... 세명이 도망갔다. 겨우겨우 첫째날을 마무리 하고 다음 날 아침 나머지 한친구도 밤에 해골 나오는 악몽 꿨다며 그만뒀다. 다 떠나고 나혼자 남았다.

사정은 이러했다. 원래 그런 작업을 하는 팀이 있었다. 아주 전문가들이다. 대신 그들은 일당이 비쌌다. 노가다 잡부가 3만원 하던 시절 9만원을 주어야 하는데 우리를 알바로 고용해 4만원을 줄려고 한거였다. 하루에 25만원... 한달에 750만원을 인건비에서 줄이려고 시도한 선배의 계획은 틀어져버렸다. 생각해보라 아직 고등학교 졸업도 안한 애들이 거죽이 남아 있는 썩다만 시체를 만지고 백골을 만지고.... 간혹 시신에서 대빵 큰 지네도 나오고 겨울잠 자던 뱀,  개구리들도 나왔다. 게다가 한겨울 바람 막을데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서 하루종일 삽질을 해야 하는데 꼬꼬마 애들이 버틸거라 예상한 선배가 욕심이 과했던거지... 다 도망가고 나 혼자 남았을 때 선배는 한숨을 쉬며 한탄했다.

X달고 태어난 새끼들이 하나같이 나약해 빠져서는...

지금이야 그 선배가 얼마나 악날한 악덕고용주였지 알지만 그때는 나도 사람 시체 보는게 뭐가 무섭다고 다들 도망가는지 이해가 안돼 고개를 끄덕거렸던게 생각난다. 어쩔 수 없이 선배는 알고 있던 사람들을 불러 새로 팀을 꾸렸다. 대부분 5-60대 아재들이었는데... 리더... 긍까 오야지는 서른 여섯 먹은 형이었다. 아재들은 다들 순둥순둥 했지만 그 오야지 형은 어찌나 무섭게 생겼는지 얼굴만 봐도 쫄기에 충분했다. 눈빛으로 사람 죽인다는 게 뭔지 알겠더라.

우야든둥 삽질을 하던 나는 갑자기 관리자로 신분이 상승했다. 하루종일 땅파고 유골을 만지다 작업계획서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작업을 지시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 아재들이랑 오야지 형은 내가 시키면 귓등으로도 안들었지만...  무슨 상관인가. 첫날 우리 다섯이 달려들어 봉분 하나 작업하는데만도 반나절인데 그 팀은 봉분 하나에 30분이면 충분했다. 어차피 나야 봉분 번호 체크하고 사진 찍어 유골함에 넘버링만 제대로 하면 되는데~ 무임승차 거하게 해볼참이었다.

그렇게 새로 팀이 꾸려진 첫날 아침이었다. 서로 인사를 하고 담배 타임을 하던 중 그 오야지 형이 나를 불렀다.

야!! 꼬맹아 너 일로와바. 니가 사장 따까리냐?

아니요. 저도 알바인데요.

몇 살이냐?

이제 열 아홉돼요.

새끼... XX 느그 엄마 젖이나 더 빨지 뭐 XX다고 여기서 XX XX하고 있냐?

그 순간 무서워서 오줌 쌀뻔 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는

[아.... X 됐다....]



2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696 일상/생각나도 결국 이기적인 인간 1 쉬군 17/12/02 3987 12
    6692 일상/생각오야지 형아 - 하 4 tannenbaum 17/12/01 3543 10
    6691 일상/생각SPC 직접고용 상황을 보며 드는생각.. 18 二ッキョウ니쿄 17/12/01 4494 14
    6690 일상/생각오야지 형아. - 상 5 tannenbaum 17/12/01 3295 2
    6689 일상/생각바나나빵 10 SpicyPeach 17/12/01 4007 7
    6683 일상/생각지금까지 해봤던 아르바이트 21 한달살이 17/11/30 8212 6
    6679 일상/생각아 XX 이거 완전 핵이잖아! 2 모선 17/11/30 3580 0
    6674 일상/생각삶의 무게... 11 사나남편 17/11/29 3709 20
    6672 일상/생각유아인 사태를 통해 바라본 남녀간의 대화표현법 23 기쁨평안 17/11/29 29474 1
    6645 일상/생각꼬꼬마 시절의 살빼기 8 알료사 17/11/24 3788 3
    6644 일상/생각아이 유치원 소식지에 보낸 글 5 CONTAXS2 17/11/24 3708 9
    6635 일상/생각괌 다녀왔습니다~ 6 elena 17/11/22 5613 8
    6634 일상/생각홍차넷의 정체성 45 알료사 17/11/22 6477 37
    6629 일상/생각커피클럽을 꿈꾸며 11 DrCuddy 17/11/21 4539 11
    6628 일상/생각삭제 19 하얀 17/11/21 5223 49
    6622 일상/생각그래도 지구는 돈다. 40 세인트 17/11/20 6196 43
    6619 일상/생각고장 잘 나는 차 이야기 27 Beer Inside 17/11/20 7058 4
    6608 일상/생각남성과 여성이 사랑을 논할 때 쓰는 말 12 구밀복검 17/11/17 5011 6
    6607 일상/생각아내와의대화 32 기쁨평안 17/11/17 4513 13
    6601 일상/생각독일에서 들었던 수업들 4 droysen 17/11/16 5240 4
    6599 일상/생각Polaris 8 Sifting 17/11/16 3475 3
    6595 일상/생각수능감독도 일주일 연기되었네요. 2 당당 17/11/15 4048 1
    6590 일상/생각무죄 판결 20 烏鳳 17/11/14 5513 32
    6584 일상/생각서울 카페쇼 후기-사진 많음- 32 나단 17/11/13 4388 1
    6583 일상/생각유시민 작가님 만난 일화 20 레이디얼그레이 17/11/13 4876 8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