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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1/01 23:36:37
Name   WatasiwaGrass
Subject   신춘문예 미역국 먹은 기념으로 올리는 소설(밀 농사하는 사람들) - 1
 이제는 작년의 일로 되어버린 재수하던 시절에, 저는 주말마다 원고지 20장씩 글을 썼습니다. 어떤 때는 나름의 즐거움을 가지고 임했지만, 어느 날에는 쓰기 귀찮더군요, 하지만 이것도 과정이다 싶어 무작정 쓰며 초고를 완성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 주관적인 주제의식을 가지고 소설로 풀어 낸 작품이다 싶었지만, 이렇게 미역국과 김치국을 감칠맛나게 맛 봅니다. 아무래도 주제에만 관철하다 보니, 뜬구름 잡는 소설이 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사자들의 언급이라도 있으면 하는 희망사항도 있었지만, 아직도 멀었지 싶습니다. 그래도 밑거름 삼아 계속해서 글을 써보려 합니다. 비록 수능을 죽 쒀서 오래 갈 수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커뮤니티 사이트를 빌려 썼던 글을 올려 봅니다. 저보다 한수 위 되시는 분들도 많이들 상주하시는 곳인지라 매몰찬 평이라도 좋으니 한 번씩 평을 남기고 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읽고 나가도 상관 없으니 너무 얽매이지 마시고요.

원고지 80장 내외인지라 조금 깁니다. 그래서 세 게시글로 분할해 글을 올립니다. 괜찮은 시간 낭비거리라도 되기를 바랍니다.



밀 농사하는 사람들

사람과 여타 짐승들과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생물학적 관점, 인문학점 관점, 주관적인 관점, 객관적인 관점 등등 다양한 관점을 통한 정의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내 나름대로 좀 멋들어진 표현을 가미하여, 짐승에게 없고 사람에게 있는 것에 주목해 정의를 하자면, 그것은 미래에 대한 열망의 유무라 생각한다. 짐승들은 하루마다 한 끼를 때울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 짐승들에게 있어 미래에 대한 열망은 필요 없다. 기껏 미래를 생각하는 경우야, 동면을 취하기 위하여 지금 이렇게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가는 계절에 분주히 사냥하고 있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면서 기나긴 겨울 끝에 봄이 마중 나가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사람은 그 몇몇 짐승들과 다르게 겨울에도 활동할 수 있다. 나도 이에 본받아 겨울이 되면 겨울잠마냥 집에 칩거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나는 사람이었다. 사람은 겨울에도 생산적인 활동을 하여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그 생산적인 활동의 원천이 미래 대한 열망이다. 그 나아갈 미래를 굳게 믿고 사람은 일을 한다. 나도 그런 열망을 품고 지금 그러한 수순을 밟으려 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학생으로서의 본분인 공부를 하고 있지만, 일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후에 일을 하게 되니 이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일이나 일과 같은 공부가 다 그렇듯이, 하다보면 가장 먼저 쌓이는 게 피로다. 그 피로를 수면을 취함으로써 그 다음의 일을 기약할 수 있게끔 해주는 육체적 피로가 있는 반면, 수면을 취하는 정도로는 역부족인 정신적 피로가 있다. 이 정신적 피로를 풀어 줄려면 정신적으로 즐거운 활동을 하여 더 버틸 수 있게 해야 한다. 싫어서가 아니라 좋아서 하는 활동, 취미 활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취미는 여유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활동이다. 그 여유는 상당히 귀한 시간인지라 신중히 사용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 많고 많은 취미 중에서 쉽게 여유를 내버리는 취미가 있다면 단연코 독서다.


예전의 나는 독서라는 취미 활동이 이해가 안 갔다. 이미 학교에서 지겹도록 보는 물건이 책인데, 어째서 사적으로 책을 읽으려 드는 것일까. 그것도 얼마 없는 여유를 써가면서 말이다. 그래도 나는 취미의 다양성을 존중하기에, 취미가 독서인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 점을 인지한다. 그러나 요즘에 독서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바쁜 현대 사회 속에서 얼마 없는 시간 동안 찬찬히 독서를 하면, 피로는커녕 다음의 일이나 제때 할 수 있을지나 의심스러웠다. 그 다음의 일을 위해서는 비록 자극적이기는 해도 빠르게 풀 수 있는 취미가 좋지 않겠나 싶었다. 그러나 세상만사 그 아무도 사람 앞일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요즘 독서를 하고 있다.


가을이니까 있어 보이려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일 년마다 특정 계절 기간 동안만 독서를 하는 도착증적인 습관이 내게 있을 리 만무했다. 오히려 그런 별인이 있기는 한가 도리어 의문을 품는다. 그렇다고 내 마음을 사로잡은 책으로 인하여 독서의 길로 빠져들었다는 통속적인 계기도 없다. 정말로 어쩌다 독서를 하게 되었다.


비록 빠르고 신속히 움직이는 사회에서 그리 권하는 취미는 아니지만, 나는 그러한 바쁜 와중에도 어쩌다 조금씩 읽어나가는 습관을 터득했다. 그 점에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나, 그 정도에 그치는 수준에 불과했으며 완독하고 난 뒤에는 내용이 기억이 안 날 때가 종종 있었다. 나는 주로 책을 사서 읽기보다는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여 읽는다. 그렇다 보니 대출 기간 동안 게으르게 굴다, 반납 일자에 쫓겨 대충 읽고 반납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래서 주로 일독만 하는 지경에 머무른다. 그러면야 재독을 하면 되지만, 할 엄두가 안 났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대학을 입학하게 될 쯤, 이제 내 나름의 청춘을 구가하는 일만 남을 줄 알았으나 그러기는커녕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는 일만 더 쌓이게 됐다. 대학을 가면 놀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다는 감언을 듣고 대학을 입학한 내가 바보였다. 정작 놀 수 있었던 때는 수능 끝나고 나서 대학 입학까지에 불과했다. 그에 설상가상으로 대학 등록금 마련이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에 여의치 않아, 매주 주말에 알바를 하러 나가 학자금 대출 이자를 갚아나간다. 또한 대학 과제니 시험이니 레포트니 이런저런 하는 일로 인해 여간 피로가 안 쌓일 수 없었다. 거기다 요즘 불경기니 뭐니 하면서 일 학년부터 놀고먹을 수 없다는 소리에, 나는 대학을 뭐 하러 입학을 하게 됐나 하는 때 이른 자문을 하게 사태에 이르렀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그저 통상적인 길만을 찾아가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로 인하여 독서에 대한 회의감을 안 들 수가 없었다. 독서를 할 때마다 굳이 이걸 알아야 하나? 하는 회의감. 내가 알아야 하는 지식은 내 전공 지식 정도면 충분하지, 무슨 연고로 독서를 계속 이어가야 하나? 어찌 보면 쓸데없는 일이다. 어떨 때는 의무감으로 읽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얼마 없는 시간을 여유를 써가면서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참 이러한 와중에도 용케 독서를 이어가는 내 자신에게 감탄한다. 그래도 나름대로 아는 재미가 있었는지 몰라도, 나는 오늘 책을 대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어차피 또 대출 기간에 쫓겨 제대로 읽을 새가 없을 지도 모른다.


이제 곧 있으면 개강이다. 휴식이라는 본연의 뜻을 느껴보지도 못한 휴식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개강이라는 본연의 뜻은 진득거리게 맛 볼 예정에 놓여있다. 참으로 부조리하다.


오후 늦게까지 알바를 하고 끝나자마자 둘러볼 경황도 없이 곧장 열차 역으로 달려갔다. 얼른 쉬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하루빨리 이불을 뒤집어쓰고 곯아떨어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책 대출은 나중에 하여도 충분하지 않나, 하는 유혹이 일었지만 오늘 대출하지 않으면 내일도 다음에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조바심에 뿌리쳤다.


해가 온 하늘을 붉게 물드는 시간대라 그런지 열차 내에서는 앉기보다는 불편해도 서서 하차역까지 기다리는 게 더 수월해 보였다. 천장에서 내뿜는 불쾌한 바람도 이제 슬슬 거두게 될 시기다. 정수리에 바람을 맞는 일도 이제 마지막이 될 것이다.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을 적에, 문득 열차 내에 승객들을 조심히 둘러보았다. 중년부터, 사회 초년생으로 보이는 사람까지, 나이대는 다양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언젠간 검은 복장을 하고 사시사철 파도에 휩쓸리듯 인파에 휩쓸림에도 겨우 버티는 내 자신을 그려보게 된다. 그 바쁨 속에서도 보람을 느끼기는 하겠지만, 매일 느끼는 감정이면 지금 이 사람들이 피로한 표정으로 서있는 모습은 그에 반증이리라 싶다. 그리고 이들은 딱히 삶의 보람을 위하여 일을 하는 모범적인 시민의 표상을 표방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더욱 중차대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여유를 쟁취하는 삶, 그러한 삶을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이 되기 위한 길을 걷고 있다. 비록 내 적성에 안 맞다 하더라도 소용없다. 사람이 어찌 자기 좋은 일만 하며 살아갈 수 있나, 여유를 얻기 위해서는 그 정도쯤은 감수해야 한다. 아무런 걱정이 없는 여유로운 삶, 그러한 삶을 위해 나는 일을 하려 하는 것이고 그 일하기 위한 꿈을 가지며 공부한다. 나중에 미래의 여유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다 후에 은퇴를 하게 되면 이제 그 여유를 즐기게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참으로 시답잖은 의문이다. 앞으로 있을 과제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는 게 더 이롭다.


안내 방송이 들려 왔다. 내가 하차할 역에 도착했음을 알린 것이다. 하차되는 문을 다가가려 온 힘을 다해, 사람들 사이로 물 스며들 듯이 지나갔다. 쏠림이 느껴진다. 이내 그 쏠림이 멈추더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 나는 그 빛을 향하여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얼른 하차해야 한다. 애써 고생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얼른 다리를 휘저었다. 얼른 하차를 해 내가 갈 곳을 가야하기에, 얼른 내려야만 한다. 나는 다리를 계속해서 휘저었다. 주위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빛을 향해서 휘저었다. 갑자기 바닥의 질감이 다르게 느껴졌다. 성공적으로 내린 모양이다. 얼른 내리려 하다 보니, 주위를 둘러볼 경황조차 없었던 것 같다. 내린 걸 깨닫게 만든 것이 눈이 아닌 발이었다. 매끈함과 딱딱함이 느껴지는 대리석 위, 그 정거장에 서있었다. 하차하는 승객들이 만만치 않음에도, 승차하는 승객들도 그에 대동소이해 보였다. 나는 얼른 계단을 올라, 개찰구를 지나갔다.


<밀 농사하는 사람들 -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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