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8/06/02 03:33:00
Name   우분투
Subject   특별하지 않은
그 친구와 저는 반년을 사귀었고 연애하는 기간을 포함해 5년을 알고 지냈습니다. 첫눈에 반했던 기억이 납니다. 첫 만남이 벅찼던 나머지 여기저기에 이름을 떠들고 다녀 학교와 동네에 소문이 나는 민폐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으로 조금의 타박과 악감정은 있었어도 지인일 뿐이었던 4년 반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고등학교 생활의 애환을 공유했고 쉬이 드러내기 힘든 치부를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친구 이상의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대학생으로서 하는 연애는 처음이었던 터라 일반적인 대학생의 연애가 어떠한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관계는 보편적인 동시에 개별적이고 저 또한 일정 수준 보편적이거나 개별적인 연애를 했다고 믿습니다. 이별 또한 비슷할 터이지만 연애를 할 적의 갈등은 보편성에 기대어 해답을 찾을 수 있던 것과 달리 아픔은 홀로 이겨내야 합니다. 홀로 이겨내는 아픔에 관하여 써보고자 합니다.

근래 타임라인에 저는 다분히 위악적인 글을 작성했고 그에 따른 약간의 타박 또한 받았습니다. 타인 앞에서 감정에 솔직할 수 없는 저의 나약함입니다. 하루에 30분 정도는 힘이 듭니다. 그리고 30분 가운데 10분 정도는 즙을 짜내기도 합니다. 즙을 짜내면 가슴이 아픕니다. 적당히 아려오면 이내 청승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합니다.

위악적인 글을 작성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태도를 견지하고 행동을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있는 그대로 아파할 수 없는 저의 나약함입니다. 실은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는 일 또한 힘이 듭니다. 잠깐 들떴다가도 이내 가라앉으며 허무감에 휩싸입니다. 아무리 찾아 나서도 누군가를 다시 만나는 일은 당분간 어렵습니다. 물론 저는 간사한 사람이어서 당분간이라는 말의 구체적인 기간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별의 연유를 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미 많은 말을 흩뿌렸고 과장된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입에 올림으로써 이별을 더 더럽히는 일은 그만하고 싶습니다. 필연과 우연이 좋은 비율로 섞여 어느 날 사건이 일어났을 뿐입니다. 서로에게 서로의 입장만 남았을 뿐 맞부딪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무의미해진 사안에 자꾸만 말을 보태어 얻을 효용은 없습니다.

저는 어제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두고 간 물건을 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혹여 슬픈 낯빛을 보이면 기분을 해칠까 두려워 웃는 얼굴로 맞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이별입니다. 서로 홀로 된 시간이면 앞으로 무슨 생각을 할지 어떤 감정을 느낄지 몰라도 마지막 보는 순간 웃는 것이 제게는 예의입니다. 마지막으로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싶어 잠깐 기대도 해보았습니다. 5초 남짓의 짧은 시간, 언짢은 표정과 경멸의 눈빛은 머릿속 깊이 박혔습니다. 사귀는 동안 있었던 그 어떤 충돌보다, 심지어는 헤어졌던 이유보다도 그 기억이 더 아픕니다. 그 기억을 마지막으로 저는 좋은 친구를 잃기로 합니다.

모든 기쁜 추억은 언짢은 표정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흔적을 볼 때마다 경멸의 눈빛이 떠오릅니다. 입으로 댈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그 얼굴인지도 모릅니다. 과연 내가 행복을 바랄 것인지도 이제는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다짐합니다.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부모님과의 대화에서도, 이곳 홍차넷의 글에서도 제가 먼저 이별의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기로 합니다. 5년의 시간을 잃어 비롯된 모든 감정을 이 글에 묻어두고 지나갑니다. 응석을 받아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24
  • 힘내세요
  • 소년을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 많이 아팠군요. 토닥토닥...
  • 힘내세요!!
  • 이제야 스무살 청년같네요...다행이에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784 일상/생각S의 부친상에 부치는 글 5 Tikas 18/07/03 4535 9
7759 일상/생각산골짝 장마 대비 3 매일이수수께끼상자 18/06/27 4244 12
7750 일상/생각열려가는 사회 2 삼성갤팔지금못씀 18/06/26 3574 7
7747 일상/생각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사는 것에 대한 어려움에 대한 토로 6 라라 18/06/26 3223 5
7731 일상/생각인터넷 글쓰기의 수준과 등급 12 망고스틴 18/06/23 3498 5
7727 일상/생각시험이 끝나서 적어보는 학교일상들 1 집정관 18/06/22 3787 1
7707 일상/생각먹고 싶은데 먹을 수 없는 음식들 3 성공의날을기쁘게 18/06/18 4766 7
7703 일상/생각샌프란시스코 노이즈브리지 1 풀잎 18/06/17 3547 0
7694 일상/생각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에게 4 망고스틴 18/06/16 4205 6
7669 일상/생각빛바랜 좋은 날들, 사라져가는 멜로디. quip 18/06/12 3591 5
7650 일상/생각안빡센 군대가 어딨냐 19 No.42 18/06/10 6058 13
7632 일상/생각Don't force me 6 No.42 18/06/07 4361 4
7629 일상/생각딱 한 송이의 꽃 37 하얀 18/06/06 4956 13
7623 일상/생각직딩의 한탄 일기 6 커피중독자 18/06/05 3847 12
7620 일상/생각삶과 죽음 4 소나기 18/06/04 3475 9
7619 일상/생각설성반점 폐업을 맞아 떠올린 추억 44 No.42 18/06/04 6036 15
7614 일상/생각특별하지 않은 6 우분투 18/06/02 4540 24
7605 일상/생각쉬는날이 두려운 이유. 2 염깨비 18/05/30 4339 9
7603 일상/생각나의 사춘기에게 6 새벽유성 18/05/30 5908 24
7598 일상/생각후일담 - 밥 잘 사주는 누나 8 하얀 18/05/29 6686 12
7590 일상/생각일요동물농장#1-치타 (달리는 고양이 VS 나른한 고양이) 17 하얀 18/05/27 5177 3
7584 일상/생각아아 인도 가네요.. 3 집에가고파요 18/05/25 4390 2
7576 일상/생각커피야말로 데이터 사이언스가 아닐까? 33 Erzenico 18/05/24 4524 12
7574 일상/생각왜 한국야구를 안보나요?에 대한 바른 대답 28 No.42 18/05/23 4930 11
7558 일상/생각에버랜드를 혼자 갔던 상병의 이야기 12 Xayide 18/05/21 5019 1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