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08/26 01:18:30
Name   은목서
Subject   문제를 진짜 문제로 만들지 않는 법
(좀 생각을 정리해 적어야 할텐데,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거칠게나마 적어요)

우리가 살다보면 꼭 ‘문제’가 생기게 되죠.

인생을 사건, 사고의 연속이라 본다면, 이건 당연하죠.
그래서 이런 사건, 사고가 생긴다면, 그건 거기서 그쳐야지 진짜 ‘문제’로 확대되지 않게 하는게 중요한 거 같아요.

뭐가 진짜 ‘문제’냐…저 같은 경우는 저 자신과 가족,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보죠.

만약 사기를 당했어요. 그러면 금전적 손해가 크게 되죠. 이 경우 금전적 손해는 금전적 손해일뿐이어야지…
이게 자살이나 가족의 파탄까지 가지 않게 해야죠. 아니 손해를 본 것도 억울한데, 그 것 때문에 가족까지 잃어야 할까요.
주변에서 그 집은 망했어..라고 말해도, 가족이 서로를 잡고 있다면 망한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음 너무 극단적인 예인거 같으니 그냥 제 이야기를 할게요.

몇년 전에 저는 손가락 하나를 다쳤어요. 인디 공연장에서 미끄러져 넘어졌을 뿐인데 바닥에 손을 짚다 유리에 베었어요.
그렇게 아프지는 않은데 피가 이상하게 많이 나며 안 멈춰서, 지혈이나 하자고 응급실에 끌려 갔어요.
그런데 그 길로 바로 입원해 다음 날 수술해야 했어요.

깊게 베어 인대와 신경이 끊어져, 6개월 간격을 두고 2번의 수술을 했지만 심하게 협착되어 손가락이 펴지지 않아요.
누구라도 쫙 펴친 손바닥은 단풍잎처럼 예쁜데,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안타깝지요.

그 당시 사귀던 분은 자책을 많이 했어요. 바로 옆에 있으면서 붙잡아주지 못했다고요.
저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뭐 제가 신나서 놀다 다친건데) 그냥 넘어졌을 뿐인데 이렇게 될 수도 있구나…
그러면서 6개월이 넘게 물리치료를 꼬박꼬박 받으러 다녔어요.

파라핀 뜨끈뜨끈 따뜻해서 좋아…ㅎㅎ 이러면서요. 여담이지만 물리치료실은 재미있는 곳이에요.

재수술도 실패로 끝나서…저는 펴지지도 않고, 비가 오면 욱씬욱씬 아파서 일기예보를 해주는 손가락을 가지게 되었죠ㅋ
하지만 굽어져 굳은 채로도 컴퓨터 키보드를 치는데는 지장이 없으니, 주변에서 속상해 하는 것에 비해 치명적인 ‘손상’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보험금이 나왔습니다. 오백만원이었어요. 운이 좋았죠. 사고가 났을 때가 보험 가입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였거든요.
저는 막연히 그 돈은 생활비로 쓰면 안된다고 느꼈어요. 어쨌든 형태상 변형이 있게 된 손상 후에 받은 보험금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 돈으로 안내렌즈삽입술을 했습니다.ㅎㅎ
전 시력이 몹시 안 좋아서 일반 라섹, 라식을 할 수가 없었고 다만 안내렌즈삽입술은 가능했는데, 그 수술이 그렇게 비쌌습니다…요새는 좀 싼지 모르겠군요.

이번 수술은 잘 되어서 고도 근시에 고도 난시까지 잡아, 0.7 정도 나올 거라던 예상을 꺠고 1.0이 넘는 시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수술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천장이 보이던 환희는 잊을 수 없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안경을 써서 흐린 상태가 익숙해 불편하지도 않았는데, 아니더군요. 번거로운 안경을 벗어버린 것만으로 날개를 단 것처럼 자유롭다 느꼈어요. 제 인생 베스트 지름 넘버원입니다ㅎㅎ

그렇게 저는 손가락을 다친 것과 눈을 고친 것을 같이 링크시켰습니다.
나쁜 일을 나쁜 일인채로 두지 않기 위해서요. 지금도 잘 한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다음 이야기도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법륜스님이 상처나 모욕을 주는 말에 대해 말씀하신 거요.
그럴 일이 없어야 하지만 누가 네게 쓰레기를 던졌어, 그럼 여기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예요. 그런데 그 쓰레기를 얼른 버려고 씻어야 하는데, 계속 들고 다니면서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아파하고 또 꺼내서 다시 아파하고 이러고 있는건 본인이라는거죠. 물론 잊혀지지도 않고 계속 아프고 아프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만, 결국 ‘쓰레기를 계속 들고 다니는건 누구인가?’ 이 질문은 생각해 볼만 한 거 같아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고, 사건은 늘 벌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건 막을 수 없죠.
대신 우리는 그 영향을 제한할 수 있어요.

’문제’가 생겨도, 그 영향을 ‘문제’자체로 한정해야지, 인생과 관계 전체로 번지게 않게 잘 관리하려 노력할 수는 있어요.

네 알아요. 어떤 문제는 그 연결고리가 몹시 강해서 그 사고를 끊기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곰곰히 잘 들여다보면 사건, 사고 그 자체가 꼭 죽을 일은 아니예요.

‘그것 때문에 인생망했어’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인생은 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본인은 물론이고 타인에게도 섣불리 ‘그 문제로 그들은 나쁘게 될거야’라고 단정짓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문제는 생길 수 있지만, 인생은 망하지 않을 수 있어요.

인생은 길고,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요.

그냥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56
  • 과연 그렇군요.
  • 일어나면 되는 걸, 계속 주저앉아있는 절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힘내요!!
  • 감사합니다. 제게 지금 가장 필요한 말이었어요
  • 덧없는 인생의 지혜입니다...ㅡ
  • 현명하십니다!
  • 춫천
  • 좋은 인생의 교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게 바로 인생의 진리.
  • 인생사 새옹지마
  • 좋습니다.
  • 심금을 울립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587 일상/생각삼촌을 증오/멸시/연민/이해/용서 하게 된 이야기 23 Jace.WoM 19/08/26 5604 49
9585 일상/생각다시 돌고 도는 일상 2 2 알겠슘돠 19/08/26 4329 0
9584 일상/생각강아지를 잘 기르기 위해서 4 우유홍차 19/08/26 4344 23
9583 일상/생각문제를 진짜 문제로 만들지 않는 법 11 은목서 19/08/26 5545 56
9582 일상/생각간만에 들렸습니다 3 빨간까마귀 19/08/25 4255 5
9577 일상/생각여자는 헬스장 웨이트 존이 왜 불편할까에 대한 이야기 46 19/08/24 18289 46
9572 일상/생각해방후 보건의료 논쟁: 이용설 vs 최응석 5 OSDRYD 19/08/23 5685 11
9569 일상/생각Routine과 Situation으로 보는 결혼생활과 이혼 36 Jace.WoM 19/08/22 7062 38
9565 일상/생각다시 돌고 도는 일상... 3 알겠슘돠 19/08/20 3564 0
9552 일상/생각혼자서 애 키우던 시기에 대한 추억... 39 o happy dagger 19/08/16 6210 51
9542 일상/생각진짜가 되는 법 4 진랩 19/08/14 4695 2
9541 일상/생각떠나며 56 호라타래 19/08/13 6588 82
9539 일상/생각현재 홍콩공항 엄청나네요. 12 집에가고파요 19/08/12 5233 1
9535 일상/생각면접관에게 거의 아규를 했지라는 평가를 받았던 면접 후기 26 kaestro 19/08/10 10887 3
9533 일상/생각비지니스와 아카데미, 일본의 두 기술자 그리고 교수 5 OSDRYD 19/08/10 5345 14
9527 일상/생각요즘 누가 티비 보나? 12 ngubro 19/08/08 4512 3
9526 일상/생각[단상] 결혼을 수선하다. 35 다람쥐 19/08/08 6252 91
9525 일상/생각실력은 연차와 비례하지 않는다 10 진랩 19/08/08 5761 2
9523 일상/생각개 입마개 논란과 자유로움 11 Jerry 19/08/08 4612 0
9515 일상/생각대한민국 서울이 좋은가요? (지방사람) 40 ngubro 19/08/06 4816 3
9513 일상/생각ICT 한일의 미래 기술격차에 대한 그저그런 이야기 21 그저그런 19/08/06 4570 0
9510 일상/생각팬이 아이돌을 생각하는 마음은 매우 복잡하다 43 장생 19/08/05 8267 6
9502 일상/생각외삼촌이 되었다는 것... 5 하얀달걀 19/08/02 4049 9
9499 일상/생각모 사이트에서 30살이 왜 여와서 이러고 있냐는 글을 보고 주절주절(짤에 일베밈포함) 12 하트필드 19/08/01 6246 8
9495 일상/생각40대 중반쯤 되면 밤새는 일이 없을줄 알았습니다. 12 집에가고파요 19/08/01 4468 6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