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4/25 22:44:15
Name   저퀴
Subject   영화 사냥의 시간을 보고
영화 사냥의 시간을 봤습니다. 원래 극장 개봉작이었다가 코로나로 인해서 좌초되었다가 넷플릭스 배급과 그로 인한 법적 문제로 화제가 된 작품이죠. 또한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근미래의 디스토피아와 총격전 위주의 액션을 담은 신선한 소재였다는 점에서도 기대를 모았습니다.

가장 먼저 고민해볼 부분은 영화가 훌륭한 디스토피아를 창조해냈는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전 인상적인 장면과 괜찮은 색감이 뒷받침해줬어도 역부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말로만 떠드는 설정이 아니라 등장 인물이 서 있는 저 장소가 총기가 범람해서 은행 강도가 넘쳐나고 매일 밤마다 누군가 총에 맞아 죽을뻔한 지옥도를 그려냈는가에 대해서 아니라고 생각해요. 길거리에서 노숙자를 채우고, 무장한 경찰이 지나다니며, 고층 건물이 낡아빠진 세상이라고 해서 그게 디스토피아인 건 아니에요. 말로만 떠드는 경제 붕괴는 영화의 배경에 녹았어야 의미가 있죠. 사람 목숨이 쓰레기와도 같아서 불도저로 밀어버렸던 소일렌트 그린을 생각한다면 사냥의 시간이 표현한 디스토피아는 주어진 예산에서 최대한 흉내낸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이러한 디스토피아를 선택한 이유는 미래를 상실한 젊은이들이 총기 강도가 되는 이야기가 한국에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즉 멋진 총격전 장면을 넣기 위함이죠. 전 영화가 넷플릭스에 공개되기 전에 배급사에서 액션 장면을 따로 공개해준 것이 있어서 그거 보고 조금 긴가민가했었는데, 본편을 보고 나선 확실하게 별로였다 싶어요. 우렁찬 격발음이 영화를 채운다고 좋은 총격전이라고 볼 수 없다고 봐요. 과하게 말하면 영화에서 보여주는 총격전 장면은 아무 의미 없이 서로 서서 난사하는 게 전부였어요. 차라리 저에게 긴장감을 주고 만족시킨 장면은 전부 총기가 전혀 안 나온 장면들이었을 정도로요.

서사도 엉망입니다. 사실 영화 내내 구체적인 서사란 게 거의 없습니다. 예고편만 봐도 영화 내용을 다 아는 것과 같습니다. 그 외에는 통편집되었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면들, 난데없이 들어와서 홀연히 사라지는 것들로 가득하죠. 전 내용이 빈약하다고 해서 네러티브가 부족하다고 볼 순 없다고 생각하는데 사냥의 시간은 아무 것도 없어요. 심지어 인물을 퇴장시키는 방법은 너무 노골적으로 별로라 배우가 안타까울 정도에요.

여기에 더해서 영화의 대사도 많이 별로에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욕 밖에 없어요. 등장 인물 간의 대사가 별로 없는데다가 너무 단순해서 유치해요. 특히 악역인 한이 이로 인해서 캐릭터가 망가졌어요. 하나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 되어야 하는 인물이 영화 내내 위협도 없고, 매력도 없어요. 뭔가를 유추해보고 싶어도 그럴 대사조차 없거든요. 심지어 영화 막바지에 등장하는 배우 김원해가 맡은 역이 내뱉는 대사는 끔찍합니다. 저는 김원해 정도 되는 배우 분이 그걸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진지하게 표정 짓는 게 안타까울 정도였어요.  

전 이번 작품을 만드신 윤성현 감독님의 전작인 파수꾼을 안 봤기 때문에 파수꾼에 대한 호평을 믿고 좀 기대했었는데 실망스럽습니다.



3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0627 6
    14618 일상/생각저는 외로워서 퇴사를 했고, 이젠 아닙니다 kaestro 24/04/24 121 4
    14617 정치이화영의 '술판 회유' 법정 진술, 언론은 왜 침묵했나 10 + 과학상자 24/04/23 241 4
    14616 꿀팁/강좌[해석] 인스타 릴스 '사진찍는 꿀팁' 해석 20 *alchemist* 24/04/23 498 13
    14615 경제어도어는 하이브꺼지만 21 절름발이이리 24/04/23 1121 5
    14614 IT/컴퓨터re: 제로부터 시작하는 기술 블로그(1) 2 kaestro 24/04/22 283 1
    14613 음악[팝송] 밴슨 분 새 앨범 "Fireworks & Rollerblades" 김치찌개 24/04/22 91 0
    14612 게임전투로 극복한 rpg의 한계 - 유니콘 오버로드 리뷰(2) 4 kaestro 24/04/21 302 0
    14611 사회잡담)중국집 앞의 오토바이들은 왜 사라졌을까? 21 joel 24/04/20 1164 30
    14610 기타6070 기성세대들이 집 사기 쉬웠던 이유 33 홍당무 24/04/20 1474 0
    14609 문화/예술반항이 소멸하는 세상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소녀들 5 kaestro 24/04/20 646 6
    14608 음악[팝송] 조니 올랜도 새 앨범 "The Ride" 김치찌개 24/04/20 109 1
    14607 요리/음식드디어 쓰는 쌀국수 투어 모음집 2편 15 kogang2001 24/04/19 359 8
    14606 요리/음식드디어 쓰는 쌀국수 투어 모음집 1편 4 kogang2001 24/04/19 339 10
    14605 게임오픈월드를 통한 srpg의 한계 극복 14 kaestro 24/04/19 523 2
    14604 일상/생각개인위키 제작기 6 와짱 24/04/17 806 12
    14603 정치정치는 다들 비슷해서 재미있지만, 그게 내이야기가 되면... 9 닭장군 24/04/16 1235 6
    14602 오프모임5월 1일 난지도벙 재공지 8 치킨마요 24/04/14 773 2
    14601 꿀팁/강좌전국 아파트 관리비 조회 및 비교 사이트 11 무미니 24/04/13 886 6
    14600 도서/문학떡볶이는 좋지만 더덕구이는 싫은 사람들을 위하여 13 kaestro 24/04/13 1094 5
    14599 일상/생각가챠 등 확률성 아이템이 있는 도박성 게임에 안 지는 방법 20 골든햄스 24/04/12 1108 0
    14598 음악[팝송] 코난 그레이 새 앨범 "Found Heaven" 김치찌개 24/04/12 188 1
    14597 스포츠앞으로 다시는 오지않을 한국야구 최전성기 12 danielbard 24/04/12 1035 0
    14596 정치이준석이 동탄에서 어떤 과정으로 역전을 했나 56 Leeka 24/04/11 2581 6
    14595 정치방송 3사 출구조사와 최종 결과 비교 4 Leeka 24/04/11 781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