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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6/24 07:36:45
Name   뤼야
Subject   가라타니 고진, 조영일, 박가분 그리고 장정일
평소에 가라타니 고진을 자주 인용하여 가라타니 고진 전문가쯤으로 행세하는 문학평론가 조영일이 아마도 이야기의 최초 발단이 아닌가 싶네요. 작가 장정일은 더 이상 소설은 발표하고 있지는 않지만 [독서일기]시리즈나 [장정일의 공부] 등의 책을 통해 자신이 읽은 책의 서평 등을 모아 펴내왔죠. 저는 그의 책읽기 스타일을 좋아해서 [독서일기]를 쭉 보고 참고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조영일이 펴낸 평론집 [세계문학의 구조]라는 책에 대해 장정일이 비판하고 나선 일이 생깁니다. 2011년도의 일입니다. 문제의 발단이 된 기사를 아래 링크합니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76

장정일의 기고를 대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이란 민족국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근대 민족국가는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하여 문학이 필요했겠지요. 근대문학은 '민족국가 만들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을 주조(세뇌)하고 국어 확립에 일조하는 동시에, 국가에 대한 비판자 구실을 하게됩니다. 그럼 지금의 사정은 어떨까요? 민족국가가 전 세계 규모에서 완수되고, 문학 자체가 대학(국가)이나 출판 제도(자본)에 포획된 오늘에는 근대문학이 지탱될 수 없겠지요. 가라타니 고진은 민족국가 체제의 지구적 성립과 더불어 문학의 정치적 구실도 소진했다면서,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하게 됩니다.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은 참으로 많이 응용되고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이제 '문학이 끝났다'는 선언이 절대 아닙니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근대문학을 넘어선 문학의 '세계공화국'의 가능성에 대한 것이지요.

한편 조영일는 자신의 책 [세계 문학의 구조]를 통해 가라타니 고진의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장정일에 따르면 이것은 반복이지만 높은 차원이 아닌 저열한 반복에 그치고 말죠. 평소에 가라타니 고진을 들먹이지 못해 안달하면서 가라타니 고진에게 이렇게 빅엿을 먹이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요. 저는 조영일을 싫어하기 때문에(문학에 신경숙이 있다면 비평계에는 조영일이 있지요) 이 책을 읽지는 않았는데, 대략 장정일의 주장은 이런 것입니다. [국가를 국가답게 만드는 가장 뛰어난 서사가 '전쟁 서사'라는 것은 상식이 된 지 오래이므로, 조영일의 논리가 우승열패의 제국주의 논리라는 것은 굳이 지적하지 않겠다. 다만 정규군이 나서야만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조영일의 순진함이다. 총포가 동원되지 않는 의식 속의 전쟁을 신채호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 역사의 원리로 정식화했고, 나쓰메 소세키는 그것을 실제의 전쟁에 뒤지지 않는 '평화 전쟁'이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피아의 구별과 대치만으로도 근대국가나 근대문학을 조성하는 충분조건이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우스꽝스럽게도 이 논쟁에 박가분이 끼어듭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서울대 운동권 핵심인물중 하나인 제 지인이 박가분을 직접 만나 그와 좋은 시간(?)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몇년전에 박가분의 블로그에서 문학서평 하나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정말 말도 못하게 한심한 서평이라 뭐라 반박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까줘야할지 모를 정도였지요. 그런 그가 이 논쟁에 끼어들고 장정일에게 '지적 사형선고'를 내리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지인의 소식이 결코 달갑지 않았지요. 다 좋습니다. 장정일의 주장이 그른 것일 수도 있고, 우리가 무지하여 조영일이라는 문학비평의 천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요.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지적 사형선고'를 내리겠다고 선언하다니, 좌파진보논객으로 불리우는 그의 오만함은 과연 어디까지였을까 새삼 소름이 끼쳐오더군요.  

자아가 지나치게 비대해진 이 좌파논객의 추락은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어제 잠자리에 들기전에 정말 수년만에 그의 블로그에 가보았습니다. 역시나 오만방자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더군요. 데이트폭력 사건이 알려지고 난 후, 한윤형의 전 여자친구였던 문일요씨도 저와 한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문일요씨의 이야기는 지인을 통해 여러번 들을 적이 있는데, 그녀가 한윤형의 전여자친구였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가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말이지요. 한때 맑시즘에 경도된 적이 있는 제 애인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제가 한창 블로그를 열심히 하던 시절에 제 애인이 제 블로그에 들러 제가 남긴 서평에 건방지기 짝이 없는 덧글을 하나 남겼습니다.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만, 애인이 제게 그때의 일을 아주 많이 미안해 합니다. 자신의 이해가 부족했다 순순히 시인하더군요.

세상을 바꾸겠다는 자세. 물론 좋습니다. 그러나 그 자세에 오만함이 묻어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거대한 역사의 법칙을 들먹이며 개개인을 다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제가 매우 좋아하는 소설인 [영혼의 산]의 작가인 가오싱젠은 그의 책 [창작에 대해서]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작가는 정치적 간섭을 넘어서 인간 삶의 곤경을 증언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특정한 정치의식에 매이지 않아야하고, 사회정의라는 추상성에 매달려서도 안된다. 작가는 도덕주의의 화신이 아니며, 법관도 아니다. 광기에 싸인 구세주 노릇도, 자기연민도 작가의 본연은 아니다.

문학은 개인이 사회라는 커다란 흐름에 대항하는 방식인 것이지요. 또한, 얼마전에 완독한 들뢰즈와 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문학이 이데올로기나 사회질서의 회유에서 출발한다면, 문학의 문제는 얼마나 잘못 제기된 것인가. 사람들은 회유되지만, 작품들은 회유되지 않는다. 언제나 작품들은 잠든 새 젊은이를 찾아내어 그의 잠을 깨울 것이요, 또 작품들의 불을 끊임없이 더 멀리 가져가고 있다. (중략)위대한 작가는 자기 작품의 정통적/전제군주적 기표를 갈라지게 하며 지평선에 있는 혁명 기계를 필연적으로 부양하는 흐름들을 그려내고 흐르게 하기를 마지않는 자다. 이것이 문체요. 또는 차라리 문체의 부재, 즉 탈통사론, 탈문법성이다. (중략) 오히려 언어 활동은 언어를 흐르게 하고 유통시키고 또 폭발시키는 것, 즉 욕망에의해 규정된다. 왜냐하면 문학은 전적으로 분열증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과정이지 목적이 아니요. 생산이지 표현이 아니다.

캬~ 들뢰즈 진짜 멋있지 않나요? 크크크 근데 죽었어요. ㅠㅠ 제가 멋있어 하는 남자들은 어째 죄다 유부남이거나 죽었거나 한 걸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남의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떠벌리는(그것도 저열한 방식으로) 문학평론가와,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거칠고 조악한 자신의 잣대를 함부로 휘두르는 좌파지식인이 앞으로 어떤 말을 지껄이며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보일지 지켜볼 생각입니다.

아침에는 기분좋은 이야기로 시작해야 하는데 써놓고 나니 죄송하네요. 문학덕후가 또 아침부터 열받아서 손가락운동질을 시작했구나 하고 가볍게 받아들여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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