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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8/27 21:21:31
Name   레지엔
Subject   코너 맥그리거 - 플로이드 메이웨더전 주저리주저리
분석을 할까 했는데 그럴 가치는 없는 경기지 싶네요(..)

1. 이 경기가 잡힌 후에 자주 나오던 얘기는 역시 이노키-알리전일겁니다. 최초의 공식 이종격투 시합으로 인정받는(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시합이며 스포츠에서 show and prove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경기죠. 이노키-알리전이 격투기 역사에서 가지는 의미 중 하나가 '붙는 두 놈이 뭐가 좀 겹쳐야 시합이 성립된다'이고, 이후 반쪽짜리 타격가와 반쪽짜리 그래플러가 니가와를 시전하는 걸 이노키-알리 포지션이라고 고상하게 불러줄 수 있는 네이밍을 줬다는 점에 있을 겁니다.
그럼 이번 경기는? 아예 작정하고 복싱룰로 뛰어들었으니 의미가 많이 다릅니다. 이번 경기가 가지는 실험적인 의미는, mma가 현대 격투기 최첨단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으나 수익성이 모자라서 인력풀은 상대적으로 뒤쳐지는 모순적인 상황이 있는데 현 시대 최고의 인력풀을 갖춘 격투기=복싱과 비교해서 격차가 얼마나 줄었는지를 검증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보통 스포츠 선수의 격차는 재능, 커리큘럼, 인프라에 의해서 나타나는데 커리큘럼 차이가 크면 재능이건 인프라건 다 씹는다는게 통설이고, 커리큘럼 차이가 의미있게 줄어들면 재능빨로 극복가능하죠. mma 혹은 비 복싱 선수들의 복싱진출은 자주 있었는데 경량급-무에타이를 제외하고는 재능빨로 극복은 커녕 재능 차이가 오히려 나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근데 이젠 mma도 어쨌거나 격투스포츠 내에서는 복싱 제외 1위의 자리를 확실히 굳혔고, mma로 격투기를 입문하는 선수들이 전성기를 맞이할만큼의 역사와 인력풀과 인프라도 갖춰졌습니다. 이제 한 번 재검증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죠.

2. 그럼 그 재검증의 사례로 맥그리거는 적합한가라는 의문점이 생깁니다. 일단 맥그리거의 UFC 내 위상은, 명전급 커리어라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상품성도 지금까지 UFC를 스쳐 지나간 모든 선수 중에서 1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나이도 젊음...
그러나 경기력, 실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상품성에 비해 의문부호가 꽤 붙긴 합니다. 일단 페더급 선수로의 맥그리거는 체급 내 최강자임이 확실한데, 이게 뛰어난 감량 능력에 기반한 피지컬 우위에 의한 것이지 테크닉적 우위, 혹은 패러다임적 우위는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꾸 이제 맥그리거 싫어하는 사람들이 하빕이 살아 돌아와서 맥그리거랑 붙었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들을 하는데, 이 하빕이라는 선수가 맥그리거보다 사이즈가 크고 힘이 세고 레슬링을 잘하는 선수거든요. 맥그리거가 가지는 무기가 봉쇄당하고 죽었으면 좋겠다... 뭐 그런 원념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유리하게 싸우는게 프로파이터의 애티튜드고, 그 점에서 맥그리거는 좀 억울하긴 할 겁니다. 꼬우면 니들도 감량하든가... 라고 할만하죠. 평범한 선수라면 저도 이 지점에서 맥그리거 편 들었을건데, 어쨌거나 자칭 타칭 올타임 넘버원을 노리는 선수고, 그렇다면 1인자에게 언제나 따라붙는, 다소 불합리할 수 있는 검증요구는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고, 맥그리거는 아직까지 이 검증요구에 대해서 충분한 답을 했다고 보기엔 좀 무리가 있습니다.

3. 이번 경기에서 두 선수의 복싱 격차는 단적으로 말해서 코치랑 프로준비생 수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제일 흥미로운 지점은 맥그리거가 스트레이트성 펀치를 날리니까 메이웨더가 신경질적으로 가드한 손을 해머링하듯이 내려쳐서 패링하는 장면이었는데, 이게 두 선수의 경기를 가장 잘 요약한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맥그리거 특유의 업라이트한 자세와 낮춘 팔에서 나오는 스트레이트 궤도는 꽤나 특이했고(중2병 복싱만화 팬들이 좋아하는 플리커!), 출발점에서 탄착지점까지의 거리와 속도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리고 메이웨더는 탄착점 다 예측하고 그냥 막아버린다는 것... 특이하고 용썼지만 그래봐야 뻔히 보인다. 이번 경기를 한 줄 요약하면 저 정도 평이지 싶네요.
뭐 10라운드까지 갔으니 맥그리거가 선방했다 이런 평도 있긴 한데, 저는 동의하지 않는 쪽입니다. 이미 3라운드 시점에서 메이웨더는 패턴인식이 완전히 끝났고, 본인 패턴을 입력해서 맥그리거를 조종하는 것도 대충 세팅됐습니다. 승패는 이 시점에서 확정났다고 볼만하고... 10라운드 버틴건 말하자면, 이성은씨가 흑튜브에서 아마추어들 상대로 10분 게임, 20분 게임, 30분 게임 이기는 거랑 별 차이 없었다고 봅니다. 복싱이라는 종목 특성, 두 선수의 체격과 운동능력 차이로 인해 메이웨더가 초반러쉬라는 선택지가 배제됐을 뿐이지 4라운드 아마추어 복싱룰로 붙었어도 맥그리거가 졌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 복싱 룰 내에서 맥그리거가 그나마 비벼볼 수 있는 건 19세기 스타일로 둘이 다리 한 짝씩 묶어놓고 싸우면 아마 가능... 그나마도 메이웨더 승리 확률이 50%가 넘는다고 봅니다만.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1708/sp20170827172856136560.htm

요게 스탯인데... 복싱에서 전략적 셋업은 점수우위가 되기 좀 어렵고 거의 타격 기반으로 점수를 매긴다는 걸 감안하면 이건 그냥 양자의 현격한 격차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어디까지 했으니 선방이네 이런 말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4. 5라운드부터는 그냥 메이웨더님의 복싱강좌 보는 기분이었는데, 이 시점부터 늙기 전에, 증량하기 전에 내츄럴 체급에서 동년배들 학살하던 시절처럼 플레이를 했습니다. 가드 올리고 팔은 약간 뗀 상태로 그냥 슬슬 걸어가다가 사정거리 들어오면 화려하게 스텝 밟으면서 컴비네이션 각보고 때리는데 이게 내츄럴 체급에서 2-3체급 정도 위인 상대한테 한 거면 그냥 호구 선언이죠... 특히 메이웨더의 고양이 앞발 펀치는 입을 쩍 벌리고 봤습니다. 현존 복서 중에서 바실 로마첸코(슈퍼페더급 복서고 현재 전체급 통틀어서 다섯 손가락 이내에 든다는 평을 받는 테크니션입니다)가 제일 잘하지 싶었는데 오늘 경기만 보면 늙은 메이웨더가 더 잘하는 거 같음;

5. 다른 글의 리플(https://redtea.kr/?b=3&n=6177&c=88872)에서도 한 얘기인데, 맥그리거는 mma 스타일의 복서로는 어레인지가 정말 잘 되어있습니다. 근데 뭐 준비기간의 한계도 있었겠지만 복싱 스타일로의 전환은 잘 안됐고, 역시 재능도 중요하지만 커리큘럼과 환경이 좀 받쳐줘야 볼만한 결과물이 나오는구나 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특히 재능있는데 쿠세박힌 선수는 재능은 다소 떨어져도 쿠세없는 어린 선수에 비해 스타일 전환 능력이 확실히 떨어집니다. 당연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이제 맥그리거의 심폐지구력이 여러 이유로 불리하다는 것이 인터넷이건 해설이건 계속 나오는데... 뭐 각각의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저는 제일 큰 이유는 메이웨더의 셋업에 당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메이웨더는 경기 전체에서, 특히 2라운드에서 상대방한테 컴비네이션을 유도하고 컴비네이션 끝나고 빠지기 직전에 안면이나 보디를 건드리는데, 이러면 쉽게 말해서 심폐능력을 갈아버리게 됩니다. 역기 드는데 운동실패지점까지 와서 부들부들거리는데 강제로 한 번 더 들게 만드는 수준이죠. 역시 훌륭한 트레이너의 명강좌였습니다...

6. 현 시점에서 mma 선수가 복싱 선수랑 붙어서 재미 좀 보려면... 일단 맥그리거보다 더 좋은 타격 재능을 갖춰야 하고(근데 이런 선수가 누가 있지...), 글러브도 6온스 이하로 쓰고, 백스탭 1회당 1감점 정도 적용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7. 저는 이번 경기를 판정승으로 예상했었는데, 뭐 판정승 얘기한 사람들이 다들 그렇지만 메이웨더가 스타일적으로도 무리를 안하고 이제 나이도 많고 둘의 프레임 차이가 커서 되는대로 때리기만 해도 무난하게 승리할거라고 봤죠. 근데 제 예상보다 맥그리거가 가드능력이 부실하고, 펀칭 타이밍도 잘 못 잡고, 카디오 싸움도 못해서...

http://biz.heraldcorp.com/sports/view.php?ud=201708231106356535958_1

이건 이제 국내 복싱 전문가들의 예상 모은 겁니다. 근데 사실 저 분들은 코너 맥그리거는 잘 모르는 분들이긴 합니다.

8. 정찬성 선수가 해설 중에 뭔가 감정이입을 자꾸 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1708/sp20170827143208136560.htm

이 기사를 보니 좀 이해가 되더군요. 아무래도 본인이 mma 파이터다보니 복싱에 대한 컴플렉스와 분노도 좀 있긴 있었던 모양이고, 특히 정찬성 선수는 제가 알기로 인터넷 좀 자주 하실텐데 인터넷의 관련 커뮤니티에서 소위 복빠종까들의 개소리는 상당히 도발적인지라... 종빠복까보다 더...

9. 이 경기의 격투사적인 의미는 뭐 그냥 그렇구나 정도고... 비즈니스에서는 좀 흥미로운게 있습니다. 그 동안 맥그리거가 UFC 상대로 갑질을 좀 했는데, 이번 경기로 인해서 갑질의 수위는 더 올라갈 것이지만 막상 재는 타이밍은 끝났습니다. 이제 진짜 복귀전해야돼요... 아 진짜 하빕이 살아돌아왔으면 좋겠는데...

10. 인터넷에서 이 경기보다 팩맨전보다 재밌었다는 평이 많던데, 뭐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팩맨-머니전은 초고수 테란 둘이서 선앞마당 빌드로 붙은 경기고, 이번 경기는 흑운장이 아마추어 하나 골라서 컨셉트 경기 한 수준이라... 예능감이 다르죠 아무래도.

11. 판정 타이밍 얘기도 많더군요. 크게 보면 적절한 타이밍, 자세히 보면 적절하긴 하지만 조금 빠른 축에 들어가긴 하는 정도... 근데 제 본심은 솔직히 레프리 스탑 그딴 거 없었어야 된다쪽입니다. 메이웨더가 설마 죽을 때까지 팰 것도 아니고 뭐... 일단 경기끝나고 진 선수가 웃으면서 인터뷰할 수 있는 건강상태라는 것 자체가 좀 맘에 안듬... 아 물론 저는 맥그리거까긴 합니다. 부들거리면서 전 경기 다 보는 호구죠.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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