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8/02/25 00:59:44
Name   메존일각
Subject   대표 '직함'을 맡은 친구의 상황을 보며...
게임제작자인 친구는 전 회사에서 동료 여럿과 함께 나와 회사를 [공동창업]합니다.
전 회사는 상황이 어려웠고, 모 퍼블리셔는 그들이 개발하던 게임을 퍼블리싱해주겠다는 약조를 했기 때문이었죠.

친구보다 연차도 많고 연상인 이가 두 명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전 회사 프로젝트의 실질적 리더였으나 그는 회사를 하나 갖고 있었고 이미 빚도 몇 억 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도 사정은 비슷했어요.
그런데 신보 대출을 위해선 지분이 80% 이상인 대표가 필요했습니다.
리더격인 사람들이 대표를 맡게 될 수 없었기에 모두와 상의 끝에 그 다음 연차였던 친구가 대표 직함을 맡게 됩니다. 비극의 시작이었죠.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창업을 하였지만 상황은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습니다.
모 퍼블리셔의 약속은 깨졌고 개발기간 동안 수익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돈은 다 떨어졌고 급여는 줄 수 없게 됩니다.
결국 대표 직함을 맡은 친구는 동료 모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휴직 또는 퇴직을 종용합니다.
하지만 동료들은 바로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좀 더 분발해보자며 몇 달 간 더 근무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열심히 일한 건 아니었습니다.
친구는 대표 직함 탓에 빚의 변제 책임이 있어 필사적이었고, 어떡하든 상황을 풀고 싶어 여러 가지 살길을 모색하였습니다.
다행히 지방의 모 지원사업 하나를 따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사정을 설명하였으나 지방에 내려가겠다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친구를 비롯한 두 셋만 지방에 내려갔고 나머지는 서울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회사가 분리됐는데 남은 동료들의 근태는 엉망이었습니다.
어떤 동료들은 외주일을 가져와서 회사에서 눈치보지 않고 진행했습니다.
쉬는 날은 그냥 메신저 통보로 끝났습니다. 그마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많았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몇 달 뒤 동료 모두는 직장을 그만두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동부에 급여체납 진정서를 제출합니다.
'[직원]인 자신들에게 [대표]가 급여를 주지 않았다'는 명목으로요.
어떻게 봐도 [직원]이라던 그들이 하던 행태는 '직원'의 것이 아니었음에도.

대표 직함의 친구는 이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에게는 여러 가지 변제 책임이 있었습니다.
신보 대출이 몇 억이고 지원사업 때는 보증보험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사업기간 중 강제종료를 하면 그 금액을 모두 토해내야 합니다.
그밖에 서울 지역에서 투자를 받았던 건도 있었습니다. 거기에 급여체납이라니...

친구는 머저리였던 게 분명했습니다. 회사 창업 때 한 달 정도 늦게 합류했고, 회사 운영은 모두와의 회의를 통해 결정했습니다.
초보 사업자들의 실수인데 모두 '믿어서' 근로계약서(이마저도 신보 대출에 필요했기 때문에) 외에
지분사항 등을 정리한 서류조차 제대로 갖춰두지 못했습니다.

노동부에 가보니 친구는 이미 악덕사업주가 되어 있었습니다.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전 동료들이 자신들이 쓰던 컴퓨터 자료를 모두 밀어버리고 나갔기 때문에
증거라곤 메신저로 수없이 대화했던 내용, 메일 내용, 말이 없는 사진들 일부,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서류 뿐입니다.

가장 굵직한 쟁점은 [나간 동료들이 공동창업자냐 그냥 직원이냐를 판단하는 것]이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공동창업자]면 대표'직함'인 친구가 급여 지급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되지요.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직원]이라고 주장하면서 밀린 급여를 달라는 것이고요.

노동부의 첫 조사관은 친구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이었으나 조사기한이 길어지면서 전출이 되었습니다.
곧 바뀐 조사관을 통해 조사가 진행됐으나 불행히도 그는 친구에게 대단히 적대적이었습니다.

돈이 없으니 합의도 불가했고, 시정도 안 되었기 때문에 단계는 검찰로 넘어갔습니다.
친구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떠넘겨진 빚을 갚기 위해 밥은 하루에 한 끼 이하로 먹고 잠도 거의 못 자가며 고군분투하는 중입니다.

이 기간이 어느덧 벌써 1년 반 정도 흘렀습니다. 관할 지방검찰청도 두 번이 바뀌었고 드디어 기소를 앞둔 시점입니다.
전 동료 그룹은 메신저로 대화하며 모두 입을 맞춰둔 상태이고, 친구에 대해 아주 악의적으로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친구를 통해 확인한 메신저 대화내용만 봐도 저들의 얘기에는 모순된 부분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현재의 담당 검사는 친구를 대단히 적대적으로 대합니다.
친구가 모두 계획적으로 행동하면서 거짓말을 한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더군요.
모르긴 해도 사건이 오랫동안 뺑뺑이를 돌았기 때문에 별다른 결론 없이 종결되면 그들 내부적으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요?

대표 직함의 친구는 대단히 불안해 합니다. 멘탈이 어마어마하게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전화를 받고 말을 들어주며 몇 마디 보태주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재판은 이제 피할 수 없습니다.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도 알 수 없습니다.
검찰의 상황을 보면 친구에게 불리한 것 같지만 재판정에서는 또 어떻게 결론지어질지 모르지요.
친구는 판결 결과에 따라 이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며 벼르고 있습니다.

사건에는 아주 디테일한 부분이 많지만 대단히 단순화시켜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이실지 모르겠습니다.
가급적 건조하게 작성하려 했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제 친구 상황에 좀 더 기울어져 묘사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아무튼 이런 사례들을 처음부터 지켜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미투 운동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해자는 당연히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하고 피해자는 없던 일이 될 순 없을지언정 법의 힘을 빌려 분풀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모두 해당됩니다만, 증거가 없고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걸 과연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요.
법원에서 재판봉을 땅땅땅 치면 결론이야 나겠지요. 그런데 그 결론이 과연 진실을 얼마나 반영하는 것일까요.

의식의 흐름대로 쓴 것이라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p.s. 아, 친구의 사례를 보며 회사 설립은 정말 신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겁도 없이 회사 하나 차릴까 싶을 때가 몇 번 있었는데 이젠 겁부터 덜컥 나네요.

p.s. 내용상 맥락에는 변화가 없지만 조금씩 글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0608 6
    14605 게임오픈월드를 통한 srpg의 한계 극복 13 + kaestro 24/04/19 279 2
    14604 일상/생각개인위키 제작기 6 와짱 24/04/17 715 11
    14603 정치정치는 다들 비슷해서 재미있지만, 그게 내이야기가 되면... 8 닭장군 24/04/16 1061 6
    14602 오프모임5월 1일 난지도벙 재공지 8 치킨마요 24/04/14 711 2
    14601 꿀팁/강좌전국 아파트 관리비 조회 및 비교 사이트 11 무미니 24/04/13 826 6
    14600 도서/문학떡볶이는 좋지만 더덕구이는 싫은 사람들을 위하여 13 kaestro 24/04/13 1048 5
    14599 일상/생각가챠 등 확률성 아이템이 있는 도박성 게임에 안 지는 방법 20 골든햄스 24/04/12 1073 0
    14598 음악[팝송] 코난 그레이 새 앨범 "Found Heaven" 김치찌개 24/04/12 166 0
    14597 스포츠앞으로 다시는 오지않을 한국야구 최전성기 12 danielbard 24/04/12 975 0
    14596 정치이준석이 동탄에서 어떤 과정으로 역전을 했나 56 Leeka 24/04/11 2463 6
    14595 정치방송 3사 출구조사와 최종 결과 비교 4 Leeka 24/04/11 754 0
    14594 정치절반의 성공을 안고 몰락한 정의당을 바라보며 10 카르스 24/04/11 1314 18
    14593 정치홍차넷 선거결과 예측시스템 후기 11 괄하이드 24/04/11 897 6
    14592 정치2024 - 22대 국회의원 선거 불판. 197 코리몬테아스 24/04/10 5319 2
    14591 정치선거일 직전 끄적이는 당별관련 뻘글 23 the hive 24/04/09 1254 0
    14590 오프모임[5월1일 난지도 벙] 근로자 대 환영! 13 치킨마요 24/04/09 595 1
    14589 일상/생각지난 3개월을 돌아보며 - 물방울이 흐르고 모여서 시냇물을 만든 이야기 6 kaestro 24/04/09 380 3
    14588 일상/생각다정한 봄의 새싹들처럼 1 골든햄스 24/04/09 273 8
    14587 일상/생각탕후루 기사를 읽다가, 4 풀잎 24/04/09 418 0
    14586 음악VIRGINIA (퍼렐 윌리엄스) 신보 카라멜마끼아또 24/04/08 270 2
    14585 오프모임4월 9일 선릉역에 족발 드시러 가실분. 29 비오는압구정 24/04/08 791 4
    14583 정치총선 결과 맞추기 한번 해볼까요? 52 괄하이드 24/04/07 1439 0
    14581 정치MBC 여론M 최종 버전 14 당근매니아 24/04/07 1893 2
    14580 사회의대 증원과 사회보험, 지대에 대하여...(펌) 42 cummings 24/04/04 5070 37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