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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8/11/15 02:16:11 |
Name | 쩡 |
Subject | 물들다 |
붉은 노을이 하늘을 가득 물들인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치열한 일상을 살아내고는, 황혼을 쫓아 서둘러 서쪽 바다를 찾은 것이었다. 물든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높았다. 어쩌면 우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손색 없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한적한 해변가에 차를 세우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 작은 2층 정자에 올랐다. 우리는 한참을 말 없이 서 있었다.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적막을 가득 채웠다. 바람에 스치듯 닿는 그녀의 어깨는 또다른 파도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렇게 수평선의 섬들과 물결에 깨어지는 노을의 조각들을 함께 헤아렸다. 나는 일상 모든 것들과 분리됨을 느꼈다. 쉴 새 없이 걱정거리를 떠들어대는 뉴스들, 꿈을 쫓는 사람들, 표정 없는 지하철의 사람들, 도시를 밝히는 네온사인과 여전히 속도를 줄이지 않는 차들. 우리는 잠시 그 세계로부터 자유했다. 멀리 수평선을 지키는 섬들처럼 잠잠히 서로를 마주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그냥 그렇게, 물들어가는 것이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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