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02/03 17:15:54
Name  
File #1   20190128_153159.jpg (1.42 MB), Download : 8
Subject   스페인에서 온 편지


안녕
나는 지금 안달루시아의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좁은 2차선 도로 위에 있어. 한시간을 넘게 달렸는데도 키가 작은 올리브 나무들이 지평선 너머까지 계속 끝도 없이 펼쳐져 있어. 바람은 여전히 막 구운 토스트처럼 따뜻하고 바삭해. 우리 가족은 평원의 조각 구름같이 느릿느릿 여행 하고 있어. 눈 앞에 반짝이는 모든 것들을 찬찬히 담고, 매 순간의 감정들을 하나하나 포옹하면서, 웃고 울고 떠들며 다녀. 우리는 도시를 둘러볼때 말고는 각자 시간을 보내. 나는 경치 좋은 곳에서 싸구려 와인을 마시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 짧은 시간에 마음의 여백이 제법 생겼어.

지난 며칠은 알람브라 궁전으로 유명한 그라나다랑 게야 시에라라는 작은 산간 마을에 머물렀어. 만년설이 덮힌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도시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서 공기도 청량하고 경치도 아주 근사해. 그라나다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이슬람 세력이 남아있었던 곳이야. 이슬람 건물들을 파괴하지 않고 유럽식으로 덧대어 사용해서, 그때 유적들이 대부분 남아있어. 이슬람식 궁전 앞 바로크식 종탑 그 너머로 알프스 같은 설산. 특히 알람브라 궁전 망루에서 보는 도시 전경은 그림같아. 저녁에는 집시들이 모여산다는 언덕에 매일 찾아가. 조금 위험하지만 궁전이 마주보이는 야경이 아주 훌륭하거든. 그런곳에 있을때면 나는 역사의 우연이나 옛 사람들의 삶 같은걸 상상하게돼. 왕의 삶과 집시의 삶, 카톨릭과 무슬림의 삶 그리고 그들이 봤을 같은 도시 안 다른 세상.

어제는 한참 앉아서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알리칸테 농장에서의 철 없던 시절이나 순례길을 걷던 스페인에서의 시간들을 생각했어. 어쩌면 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돌려놓았을 몇개의 선택들도. 그럴때면 나는 그동안 삶의 선택들을 만들어왔던 두개의 모순된 모습을 봐. 나는 온 도시를 발 아래 두고 세상을 바꾸는 왕이고 싶었고 또 자유롭게 거리를 떠도는 음유시인이고 싶었어. 하지만 여기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지는 않으려고해. 그냥 눈 앞에 찬란한 풍경으로 하루를 채울 뿐이야.

일주일이 정신없이 가버렸어. 벌써 한참 지난 것 같아. 한국은 이제 오늘부터 연휴 시작이지? 눈이 많이 왔다고 들었어. 소식 들려줘



3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0470 6
    14564 사회UN 세계행복보고서 2024가 말하는, 한국과 동북아에 대한 의외의 이야기 13 + 카르스 24/03/26 1044 7
    14563 음악[팝송] 맥스 새 앨범 "LOVE IN STEREO" 2 김치찌개 24/03/26 149 1
    14560 일상/생각2년차 사원입니다 9 공대왜간공대 24/03/25 981 10
    14559 음악[팝송] 피더 엘리아스 새 앨범 "Youth & Family" 김치찌개 24/03/24 106 0
    14558 오프모임이승탈출 넘버원 3회차 12 치킨마요 24/03/24 644 0
    14557 일상/생각인지행동치료와 느린 자살 7 골든햄스 24/03/24 963 8
    14556 요리/음식까눌레 만드는 이야기 10 나루 24/03/23 457 5
    14555 오프모임[아주급한벙]신촌 홍곱창or정통집 오늘 19:00 34 24/03/23 917 2
    14554 일상/생각아들이 안경을 부러뜨렸다. 8 whenyouinRome... 24/03/23 687 26
    14553 정치지금 판세가 어떨까요 를 가늠할수 있는 지표 32 매뉴물있뉴 24/03/22 1901 0
    14552 음악[팝송] 저스틴 팀버레이크 새 앨범 "Everything I Thought It Was" 김치찌개 24/03/22 148 1
    14551 스포츠태국 전 관람 후 집빈남 24/03/21 480 0
    14550 일상/생각와이프랑 덕담 중입니다. 3 큐리스 24/03/21 667 4
    14549 게임최근 해본 스팀 게임들 플레이 후기 13 + 손금불산입 24/03/21 480 5
    14548 음악[팝송] 리암 갤러거,존 스콰이어 새 앨범 "Liam Gallagher & John Squire" 6 김치찌개 24/03/20 185 1
    14547 꿀팁/강좌그거 조금 해주는거 어렵나? 8 바이엘(바이엘) 24/03/20 1105 13
    14546 스포츠[MLB] 블레이크 스넬 샌프란시스코와 2년 62M 계약 김치찌개 24/03/20 197 0
    14544 의료/건강불면증 개선에 도움되는 멜라토닌 효능 11 후랑키 24/03/19 824 1
    14542 역사연개소문 최후의 전쟁, 최대의 승첩: 9. 나가며 2 meson 24/03/17 225 3
    14541 역사연개소문 최후의 전쟁, 최대의 승첩: 8. 태산봉선(泰山封禪) meson 24/03/16 212 1
    14540 음악[팝송] 아리아나 그란데 새 앨범 "eternal sunshine" 2 김치찌개 24/03/16 238 1
    14539 일상/생각22살. 정신병 수급자 고졸. 9 경주촌박이 24/03/15 1176 1
    14538 역사연개소문 최후의 전쟁, 최대의 승첩: 7. 선택과 집중 1 meson 24/03/15 184 3
    14537 일상/생각건망증,그리고 와이프 1 큐리스 24/03/15 566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