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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02/22 02:09:49
Name   곰도리
Subject   일본 자민당 총재선거를 복기하다_2
#8. 덮어진 스캔들
  자민당의 완승으로 끝난 총선 이후,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허나 정기 국회 개원 이후 입헌민주당을 포함한 야당들은 의혹에 대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또한 내각에 대한 질의에서 야당 의원들은 끊임없이 비리를 추궁하며 연루된 이들을 소환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내각 지도부는 계속되는 소환 요구를 무시로 일관하는 등 시간을 끄는 방법으로 대처했다.
  하지만 이러한 꼼수를 끝내는 사건이 터졌다. 이번에는 비리 스캔들에 정부 부처가 연관됐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총선 이전 모리토모 스캔들은 개인 간의 문제로 보는 견해도 일부 있었으나, 국가 기관이 범죄에 조력한 사안을 두고 어느 누구도 이를 개인 간의 비위로 치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제는 국가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재무성이 공문서 조작을 했다는 사실에 일본 국민은 분개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재무성은 부랴부랴 기자 회견을 열어 문서 조작을 시인했다. 그러나 중대한 사안인 만큼 명명백백 처벌해야 할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검찰은 재무성 차관 휘하 관계자들을 전원 불기소 처분했다. 스캔들이 장기화되자 일본 검찰이 계속되는 대치 정국으로 인한 피로감을 악용하여 사건을 덮은 것이다. 결국 사건은 야당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 갔다.


#9. 다케시타 파의 분열
  한편, 총재 선거를 앞두고 있는 자민당 내부에서는 변화의 물결이 일어났다. 바로 당내 세 번째 파벌인 헤이세이 연구회(平成研究会)의 회장이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郎)에서 다케시타 와타루(竹下亘)로 바뀌었다. 다케시타 와타루는 前 일본 총리 다케시타 노보루의 이복동생으로 재무성 부대신을 역임했다. 다케시타의 파벌 회장직 취임은 다름 아닌 9월에 있을 총재 선거에 대비하기 위해서인데, 前 파벌 회장인 누카가 후쿠시로의 미온적인 대응에 파벌 내 참의원들의 반발이 계기가 된 것이다.
  아베 신조의 라이벌인 이시바 시게루는 헤이세이 연구회 출신으로 2012년 총재 선거에서, 당선 유력 후보였다. 이시바 시게루는 지방 당원의 압도적 지지로 1차 투표에서는 선두를 달렸지만, 결선 투표에서는 아베 신조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당시 열세였던 의원 표 확보와 헤이세이 연구회의 분열 때문이었다. 그리고 총재 선거 뒤에 이시바 시게루는 간사장에 임명되었으나, 헤이세이 연구회는 숙적 세이와 정치연구회가 당권을 장악하던 상태로 파벌 자리 배분에서 불이익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헤이세이 연구회 참의원단은 6년 만에 열리는 총재 선거에서는 지난 선거와는 달리, 자파 출신 이시바 시게루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총재 선거에서 패하더라도 자민당 내부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균열을 내어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의견에 파벌의 최고 원로, 다케시타 노보루 前 총리의 측근이었던 아오키 미키오(青木幹雄)는 참의원단을 지원하였고, 파벌의 분열을 막기 위해서라도 누카가 후쿠시로는 계파의 리더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그러나 참의원들과는 달리, 당시 아베 내각에 등용되었던 인사들로 구성된 중의원 대다수는 당선 가능성이 없는 이시바 시게루를 지원하기 꺼렸다. 당내 세력 구도상 아베의 당선은 시간문제였고, 선거가 끝난 뒤 있을 내각 구성 요건에서 불이익을 받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파벌의 회장이 교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헤이세이 연구회는 끝내 아베 지지 의사를 밝힌 중의원과 이시바 지지를 표명하는 참의원으로 또다시 분열되고 말았다.


#10. 기시다 후미오의 눈치 보기
  총재 선거를 앞두고 고치카이(宏池会)의 회장인 기시다 후미오는 큰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당내 지형도대로는 이시바를 지지해야 마땅하나, 이시바의 패배는 기시다 후미오에게 불투명한 후계 구도에 대한 불안감을 심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만약, 아베를 지지한다면, 포스트 총재 자리는 기시다 후미오에게 돌아갈 것이 마땅하나, 이시바 시게루의 당선 가능성은 전무하였기 때문에 안정적인 선택을 하느냐, 도박을 하느냐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회장인 본인의 의중과는 별개로, 고치카이 내 압도적인 아베 지지 여론에 힘입어 총재 선거 공시일 며칠 전에 기시다 후미오는 아베 신조 지지를 표명한다.(훗날 총재 선거가 끝난 뒤, 이러한 눈치 보기에 밉보인 기시다 후미오는 간사장 직위에 오르지는 못하고 정조회장에 머무르고야 만다.


#11. 정직, 공정, 이시바 시게루
  총재 선거에서 아베 신조의 라이벌인 이시바 시게루 前 자민당 간사장은 부친이 돗토리현 지사를 역임한 세습 의원으로, 86년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방위대신과 농림 수산 대신을 역임했다. 왜곡된 역사인식으로 논란이 되는 아베와 달리, 일본의 침략전쟁과 위안부 강제 동원의 잘못을 인정하는 자민당 내 비둘기 파로 오자와 이치로와 더불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의 정치관을 계승하는 마지막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시바의 총재직 도전은 올해로 세 번째로, 최근에 열렸던 당내 경선에서 낮은 의원 지지도 때문에 총재직 석권에 아깝게 실패하고 말았는데, 스캔들로 점철된 아베 신조와는 달리 대중적으로 나름 신선한 이미지를 보여주어 한때 차기 총리 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한 바 있다. 그는 여러 비리로 대중적 피로감이 높은 아베를 대신하기 위해 정직, 공정, 겸허한 정치를 내세워 총재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한다.


#12. 회유와 협박
  한편 스캔들 논란에서 겨우 빠져나온 아베는 총재 선거를 앞두고 기시다 후미오와 회동에서 "전쟁에서 진 쪽이 전리품을 얻지 못하는 것은 전국시대부터 계속돼온 것"이라는 격언을 언급하며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말 것과 이시바 지지를 단념하라는 압박을 한다. 이에 기시다는 출마 선언도 하지 못한 채로 아베에게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아베는 원래 이시바를 지지하기 했던 이시하라 노부테루도 소속 파벌 의원의 입각을 보장하는 걸 미끼로 회유하고, 아소, 니카이 등 우호 파벌의 지지를 재확인함으로써 압도적 선거 승리를 기획하기 시작한다.


#13. 역시나 낮은 의원 지지도
  총재 선거 공시 전, 이시바 시게루는 친정인 타케시타파를 비롯, 포스트 아베를 노리던 기시다 후미오의 지지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를 걸던 타케시타파와 기시다 후미오마저 아베 지지로 선회하자, 승기는 확실히 아베로 굳혀졌다. 아베의 물밑 공작에 이기지 못하고, 계파들을 포섭하는데 사실상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시바는 집단행동을 원칙으로 하는 주요 파벌들은 배제한 체 무소속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했다. 또한, 상대적으로 낮은 의원 표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지방 당원 표 확보가 중요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당 안팎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고이즈미 신지로의 지지를 얻어내야 했다. 고이즈미 신지로는 이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연이어 아베의 실정을 비판 함으로써 아베 흔들기를 통해 암묵적인 지지를 보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미한 의원표 확보 때문에 총재 선거에서 승리를 예상하기 어려운 이시바 시게루는 8월 중순, 자파 의원과의 회동에서 승리보단 지방 당원과 국회의원 표를 합산하여 220표 이상 확보를 우선하는 전략으로 후일을 도모하기로 결정한다. 시간을 조금 더 길게 보는 걸 택한 것이었다.


#14. 뻔한 결과
  홍수와 홋카이도 지진과 같은 국가적 재난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대처로 지지세를 회복한 아베는 지방 당원 표 확보에 주력하기 시작한다. 본인의 고향인 야마구치현과 여럿 도도부현을 돌며 지방 살리기와 국가 주요 시설 유치 같은 공약을 내세우며 당원들에게 이를 홍보한다. 반면 이시바 시게루는 지난 총재 선거와 같은 지방 당원의 높은 지지를 기대하며 아베노믹스로 피폐해진 일반 국민들의 생활, 낙후된 지방 SOC와 투자 감소와 같은 아베의 실책을 집중 자극하며 열띤 유세를 펼친다.
  여러 번의 토론과 예비투표를 거치고 시간이 지난 9월 20일 총재 선거 당일, 결과는 역시나 아베의 승리로 나타났다. 국회의원표 329표와 지방 당원 표 224표 도합 553표를 얻은 것이다. 반면 이시바 시게루는 의원 표 73표 지방 당원 표 181표 총 254표를 획득한다.


#15. 절반의 승리
  결과만 보자면, 아베의 압승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데, 아베 진영에서 원래 기대하던 600표 이상 득표는 실패한 반면 대항마 이시바 시게루는 예상 득표 220표를 넘어 253표를 얻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어 차기 총리 주자의 불씨를 살린 것이다. 또한, 후임자가 없어 전전긍긍하는 호소다파로서는 뼈아픈 결과나 마찬가지인데, 파벌 독재의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총재 선거 중에 아베를 지지하기 위해 열린 만찬회에서 제공된 총 333인분의 카레만큼 동률의 국회의원 표가 나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4표가 누락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일명 '카레먹튀' 사건은 내년에 있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아베 정권이 순탄하지 못할 것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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