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0/12/15 12:34:30
Name   whenyouinRome...
Subject   아이들을 싫어했던 나...

전 20대 이후로 애들을 싫어했어요.
엄청 싫어했어요. 시끄럽고 말 안 듣고 까불고 약 올리고...
특히 말 못하는 아기들 울고 불고 난리 치면 가서 한 대 쥐어 박아주고 싶단 생각도 자주 했고 애들 자체를 별로 이뻐하지도 않았어요.
제 기준으론 이뻐할 구석이 없어요. 말도 안 듣고 때만 쓰는데....
귀엽다 사랑스럽다 예쁘다 하나도 공감 못 했어요..
그냥 꼬맹이들은 어리니까 까불어도 참아준다 정도.... 갓난 아기들은 아기라 말 못하니까 참아준다..

집에 와서 어머니랑 이야기 하다 이런 저런 이야기하며 이런 이야기 하면서 진짜 짜증난다고 하면 어머니가  "아들아. 너도 애를 낳아보면 왜 그런지 이해할꺼다. 넌 아이가 없으니 아직 모르지."하고 말해주시면 전 "난 애 안낳을 거라서 이해 할 필요 없어요!"라고 대꾸하곤 했어요..

어디 장거리 갈 때 고속 버스나 기차 안에서 아기들 울고 불고 난리 피우면 왜 저렇게 안 달래나 속으로 부모들 욕하고 스트레쓰 엄청 받고...
난 애기 절대 안 낳아야지.. 생각하고 그랬죠.

결혼 하고도 생각이 안 바뀌고 아내랑 이야기 할 때도 애들 하나도 안 이쁘니까 애 안 낳고 살자고 그랬어요. 아내가 우리 닮은 애기 있으면 이뿌지 않을까? 물어봐도 시큰둥.. 어 그래 하고 말았어요..

근데 덜컥 아내가 임신을 했는데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가뜩이나 경제적으로도 육제적으로도 힘든데 애까지 생기면 어쩌자는 거지.. 아내도 어떻게 하냐며 펑펑 울고..;;;;

1주일 정도 지나니까 마음이 좀 차분해져서 억지로 마음 다잡고 기왕 이렇게 된거 낳아서 잘 키워보자며 아내를 다독이고 위로하며 괜찮다 했지만 속으론 저도 미칠 것 같았어요. 앞으로 너무 불안하잖아요. 돈도 별로 없고 집도 좁고 애도 싫어하는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너무 걱정 됬어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는 아이에 대한 애착이 생기고 너무 소중하게 느끼더라구요. 전 크게 감흥이 없었는데 아내가 너무 소중하게 여기니까 조금씩 소중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죠.
또 임신중에 아내가 너무 너무 입덧이 심해서 거의 9개월을 누워있다시피 하고 먹고 마시는거도 힘들어 해서 가끔 괜히 임신되게 만들어서 이쁜 아내 고생한다고 후회도 많이 했어요. 자연 유산 되버리면 좋겠다고 나쁜 생각 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아내한테 엄청 혼나기도 했습니다.
근데 애가 태어나고 나니까  바뀌었어요. 그냥 한 순간에 바뀌더라구요.
병원에서 애기 태어났다고 간호사분이 안고 나오는데 쭈그리처럼 웃긴데 이뻐보이더라구요.
아내는 출산 후에도 임신 기간 있었던 병 때문에 출산 후에도 2달을 더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했어요.
그 기간 동안 아기를 저랑 어머니랑 돌봤는데 애기가 울기만 해도 맘이 아파요.. 갑자기 내 애가 생기니까 아이들이 너무 예뻐요..

내 애 뿐만이 아니라 다른 어린 아가들 어린이들이 다 그냥 다 예뻐져요..;;;;
저도 속으로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냥 확 바뀌더라구요..
그 뒤론 애들이 이쁘고 사랑스럽고 안쓰러워요.

아가들이 울면 배가 고픈가 엄마한테 안아달라고 하나 뭐가 불편한가 먼저 걱정이 들고 딴 친구들이 왜 저러냐고 짜증내면 애들은 원래 저런다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친구들 중 하나가 절 잘 아는데  뭐 이런 놈이 다 있냐고 뭐라 하더라구요.  사람이 왜 그러냐고.. 자기 아들 낳으니까 그 싫어하던 애들이 갑자기 이뻐보이냐고 사람이 왤케 쉽게 바뀌냐고..;;;

근데 진짜 이 감정을 배우고 느끼게 되니까 다 이해가 되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물론 도가 지나치게 버릇없거나 한 아이들은 이쁘게 안 보일 때도 있지만 보통은 아이보단 부모 욕을 하게 되더라구요..
예전에는 애들 욕 했는데 그게 부모의 지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니까 애들은 그냥 안타깝고 짠해보여요..

세월호가 침몰 했을 때도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눈물이 나고 가슴 아프고.. 불쌍한 아이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난다는게 너무 괴로웠어요. 근데 그 때 아이 없는 친구들하고 대화를 하면 확실히 말이 잘 안 통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더라구요. 이게 슬픈 일이지만 내 일은 아닌 감정과 슬픈 일이고 내 일이 될 수 있는 정말 내 일 같은 감정과는 좀 거리가 있는...

지금은 아이들 좋아하려고 노력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 아이를 보며 예전의 나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부모로서 알게되면 너무 너무 힘들고 가슴 아플거 같아요. 그래서 저도 다른 아이들 보면서 항상 예쁘고 사랑스럽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정말 아이 하나 생기는게 많은 걸 바꿔 놓았어요.
단순히 2+1이 아니라 2+1+a 가 되더라구요. 더 많은 걱정과 더 많은 책임 더 많은 슬픔과 더 많은 아픔 그리고 그걸 아득히 넘어서는 행복과 사랑 그리고 시야를 가지게 만들어줬어요..
아이를 양육하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모든 것이 다 바뀌게 되죠.
근데 그건 결혼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혼자였다 둘이 되는 것 역시 많은 걸 바꿔야하죠. 하지만 사랑하니까 감수하고 서로 변화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맞춰나가는 거죠.
아이를 낳는 것 역시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것을 바꿔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바꾸더라구요.
전 제가 이렇게 아이들을 사랑하게 될 줄 생각도 못 했습니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안아주고싶죠.
아이가 아프면 함께 아프고 아이가 기쁘면 함께 기뻐요.

제 아들이 소중하니 다른 아이들도 소중해져요. 다 밝고 예쁘게 자라면 너무 좋겠단 생각을 하죠.
이건 정말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어요.

정말 부모분들은 다 동의 하실텐데 뭔가 지금까지 감춰져있던 신비로운 것 하나를 알게 된거죠...

그렇다고 내 모든 걸 포기하는 건 아니예요. 남편과 아내가 서로 협조하고 노력하면서 함께 양육하면 되요.
전 코로나 전까지 아이 세 살부터 함께 여행도 엄청 다녔고 어린이집 갔을 때 아내랑 영화도 보러 다녔고,
예쁜 카페 가서 커피도 즐겨 마셨고, 여름엔 축구도 했고 겨울엔 스키장도 자주 다녔어요.
아이랑 함께 할 때도 있었고 없었을 때도 있었죠. 함께 못 했을 때는 아이랑 같이 못 와서 마음이 아팠고, 미안했고,
또 한 편으로는 아내랑 둘 만의 시간을 보내서 즐겁기도 했죠.

아이를 양육한다는 건 많은 걸 바꿔놓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뀌었죠..
제가 일생에 잘 한 일이 두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제 아내를 만나 결혼한거고 두 번째는 제 아들을 낳은거죠.
아이들 꼬맹이들이라면 치를 떨며 도망갈 정도였는데 지금은 너무 좋으니까요.

지금 혹시 자녀 계획 때문에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잘 생각해보세요.
몹시 극적인 변화이기 때문에 고민도 많고 두려움도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단언하건데 아이를 낳는 기쁨은 인생을 걸고 도전하고 경험해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진짜로요..

계획이 없으시다구요? 그럼 피임 철저히 하시면서 지금의 삶을 누리세요.  

전 그럼 이만.. 처자식 먹여살리려면 일 해야해서....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안뇽~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0-12-29 20:13)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36
  • "하지만 단언하건데 아이를 낳는 기쁨은 인생을 걸고 도전하고 경험해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 아이들이라기에 (여자)아이들인줄 알고 들어온 사람, 저밖에 없나요? - Cascade
  •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 선생님 둘째 가셔야죠.
  • 글에 매우매우 공감합니다 (다만 저희 부부는 양육의 댓가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어요)
  • 춫천!!
  • 셋째를 가면 아이들이 3배 좋아지겠군요!
  • 이런 분에게 딸이 있어야 놀리는 맛이 더할텐데요..
  • 추천!
  • 추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376 기타삶의 의미를 찾는 단계를 어떻게 벗어났냐면 8 골든햄스 24/03/14 970 19
1375 기타소수 사막은 얼마나 넓을까? 4 Jargon 24/03/06 883 4
1374 기타민자사업의 진행에 관해 6 서포트벡터 24/03/06 837 8
1373 기타노무사 잡론 13 당근매니아 24/03/04 1545 16
1372 기타2024 걸그룹 1/6 2 헬리제의우울 24/03/03 632 13
1371 기타소회와 계획 9 김비버 24/03/03 864 20
1370 기타터널을 나올 땐 터널을 잊어야 한다 20 골든햄스 24/02/27 1568 56
1369 정치/사회업무개시명령의 효력 및 수사대응전략 8 김비버 24/02/21 1402 16
1368 체육/스포츠(데이터 주의)'자율 축구'는 없다. 요르단 전으로 돌아보는 문제점들. 11 joel 24/02/19 956 8
1367 역사 AI를 따라가다 보면 해리 포터를 만나게 된다. 4 코리몬테아스 24/02/18 1059 11
1366 체육/스포츠(데이터 주의)'빌드업 축구'는 없다. 우루과이전으로 돌아보는 벤투호의 빌드업. 13 joel 24/02/12 1333 30
1365 기타자율주행차와 트롤리 딜레마 9 서포트벡터 24/02/06 1190 7
1364 영화영화 A.I.(2001) 18 기아트윈스 24/02/06 1119 23
1363 정치/사회10년차 외신 구독자로서 느끼는 한국 언론 32 카르스 24/02/05 2562 12
1362 기타자폐아이의 부모로 살아간다는건... 11 쉬군 24/02/01 2155 69
1361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4, 完) 6 양라곱 24/01/31 2818 37
1360 기타텃밭을 가꿉시다 20 바이엘(바이엘) 24/01/31 1004 10
1359 일상/생각한국사회에서의 예의바름이란 18 커피를줄이자 24/01/27 6536 3
1358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3) 17 양라곱 24/01/22 6163 22
1357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2) 17 양라곱 24/01/17 5696 14
1356 요리/음식수상한 가게들. 7 심해냉장고 24/01/17 1257 20
1355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1) 9 양라곱 24/01/15 2676 21
1354 기타저의 향수 방랑기 31 Mandarin 24/01/08 3296 2
1353 의료/건강환자의 자기결정권(autonomy)은 어디까지 일까? 7 경계인 24/01/06 1283 21
1352 역사정말 소동파가 만들었나? 동파육 이야기. 13 joel 24/01/01 1310 24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