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7/05/04 22:18:55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펌] 대선후보자제 성추행사건에 부쳐
김부겸 의원은 훌륭한 정치인이다. 기자이기 이전에 그를 3선 의원으로 만들어줬던 군포시민으로서 하는 말이다. 군포시에서 김 의원은 초등학교 졸업식에까지 와서 아이들에게 일일이 격려를 해 주던 스킨십 좋은 정치인이고 국회에서 또 대구에서 보여준 품성이나 뚝심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런 김 의원에게 아쉬워하는 부분이 있는데 딸 윤세인씨(예명)가 선거운동을 하는 방식이다.

딸이 아빠를 도울 수 있고 그 딸이 탤런트라는 점에서 화제가 될 수밖에 없지만, 아빠의 팔짱을 끼고 환하게 웃는, 예쁘고 애교 많고 사랑스러운 전형적인 딸의 이미지를 선거 과정에서 김부겸-윤세인씨를 통해 보는 것은, 그것이 보수적인 대구에서 표심에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된다는 점을 알지만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넌 왜 이리 딸인데 애교가 없냐”란 소리를 밥 먹듯 듣고 자란 내 개인의 삶에선 그것이 지역주의보다 더 공고하게 넘어서야 할 장벽 같은 것이었다. 한국에서 사회는 가족의 확장버전으로 이해되기에, 아빠에게 순종적이고 애교를 떨어야 하는 사랑스러운 딸의 이미지는 방송에서 갑작스럽게 애교를 보여달라는 요구를 받는 걸그룹이나, 회사에서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막내 여사원들에게 그대로 전가되는 것이다. 이런 고정관념은 딸은 아들에 비해 교육을 덜 시키고 예쁘게 잘 키워서 시집만 잘 보낸다는 생각에 교육기회의 차별로도 이어지고 특히나 보수적인 영남 지방에선 내 또래들도 간혹 겪는 일이기도 했다. 윤세인씨를 보고 마냥 흐뭇하기만 했다면, 아 김부겸 의원 딸 잘 키웠구나 훌륭한 사람이네 이 생각만 했다면, 그것은 당신이 딸의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불편함을 사적으로든 직업적으로든 잘 표현하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김부겸 의원이 지역감정의 벽을 넘기를 바랐고, 또 자식이 부모를 위해 다른 방식의 선거운동을 한다는 것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희연 교육감의 아들과 심상정 후보의 아들을 보면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 정치인의 아들들은 딸과 달리, 똑같이 선거운동을 하더라도, 비록 잘 생긴 외모가 화제가 될지언정, 부모의 정치적 견해를 지지하며 등장하는구나. 그제서야 내가 존경하던 정치인 김 의원에게 약간 화가 났고, 그 이상으로, 사실은 내가 몸담은 ‘미디어의 윤세인씨 선거운동 보도가 쓰레기였구나’ 깨달았다. 윤세인씨의 선거운동은 오직 미디어를 통해 접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아무도 그녀의 정치적 견해 따위 묻지 않았을 것이다.]

유승민 후보의 딸 유담씨의 성추행 인증 사진 때문에 마음이 어지럽다. 아씨 휴일이라 조기마감 하려고 했는데. 그 이전에 오늘 캠프 공식 트위터에서 유세일정에 유담씨가 온다는 정보를 포함시킨 것부터, 그보다 전 엠엘비파크나 트위터 등에서 유승민 후보를 ‘장인어른’이라 부르는 것부터 이 불쾌하고 추한 상황을 차근차근 준비해온 것이었다. 소위 정상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미친놈이 그 분위기에서 미친 짓을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대한 비난은 윤세인씨 상황과 마찬가지로, ‘국민장인 유승민’ 따위의 기사를 아무렇게나 써 갈기고 유담씨를 카메라에 당연하듯이 잡는 언론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 누워서 침 뱉는 중이다. 하지만 그 침이라도 맞아야 속이 풀릴 거 같고,

바른정당에서, 후보 캠프에서 이 문제를 참고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상사를 자초한 것이고, 정치인이기 전에 아버지로서 지금 그 누구보다 화가 나 있겠다만, 바른정당이 표방하는 ‘깨끗한 보수’, ‘합리적 보수’가 수컷의 몰염치를 남자의 호기로 관대하게 바라보는 문화를 일소하는 것까지 포함하느냐의 문제이고, 그들이 바라는 따뜻한 공동체란 전근대 가족의 확장판이 아니라 독립된 개인이 모여 서로 존중하는 사회(가족 또한 '어느 정도'는 그래야 한다)를 바탕으로 상상된 것이기를 바란다. 물론 그 이전에 언론은 시치미 떼지 말고 미친 보도 중단하자.

-----------

박은하기자님 페북에서 허락을 득하고 퍼왔어요. 하이라이트는 제 맘대로 넣어봤습니다.

좋은 글에 약간 첨언을 하자면, 사실 정치인 아들들도 아예 못생기면 화제가 안되지요. 그러니까, 아들들은 일단 좀 잘 생기고, 군문제 등에서 자유롭고, 거기에 더해서 부모의 정견을 지지하는 똑똑이의 이미지 정도를 잡는 게 보통이에요. 드라마 속 재벌2세와 같아요. 재벌2세가 단순히 잘생기기만 하면 악역이고, 못생겼는데 유능하면... 그런 캐릭터는 드라마에 안나와요. 잘생기고 유능해야 드라마 주인공이 되지요. 게다가 뚜렷한 소신도 있어야하구요. 

여성 자제의 경우는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일단 예쁘냐 안예쁘냐, 아버지에게(어머니도 아냐 심지어!) 효성스런 딸이냐, 귀엽냐, 이런 걸 우선 따지지요. 불편하지만 사실이에요. 예쁘면 선거운동의 마스코트로 헤실헤실 웃으면서 다소곳하게 손 흔들며 다니는 게 꼭 젊은 시절의 박근혜양을 닮았어요. 그 때나 지금이나 공주님을 바라는 사람들의 속내는 변치 않고 그대로인 거예요.

어쩌면 이거야말로 요즘 유행어로 '적폐'일 수 있어요. 아들은 유능한 똑똑이, 딸은 다소곳한 이쁜이가 되어서 손을 흔들고 다녀야만 미디어가 보도해주고 네티즌이 열광해주는 이 현상 그 자체.

지난 2012년, 그네꼬양에게 열광했던 이들을 비판할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고자 한다면 우선 유담씨를 저런식으로 소비하는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취해야하지 않을까요.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05-15 07:57)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4
  • 추천 드립니다.
  • 동의합니다
  • 동감합니다 ㅠㅠ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376 기타삶의 의미를 찾는 단계를 어떻게 벗어났냐면 8 골든햄스 24/03/14 907 18
1375 기타소수 사막은 얼마나 넓을까? 4 + Jargon 24/03/06 862 4
1374 기타민자사업의 진행에 관해 6 서포트벡터 24/03/06 813 8
1373 기타노무사 잡론 13 당근매니아 24/03/04 1518 16
1372 기타2024 걸그룹 1/6 2 헬리제의우울 24/03/03 605 13
1371 기타소회와 계획 9 김비버 24/03/03 846 20
1370 기타터널을 나올 땐 터널을 잊어야 한다 20 골든햄스 24/02/27 1553 56
1369 정치/사회업무개시명령의 효력 및 수사대응전략 8 김비버 24/02/21 1399 16
1368 체육/스포츠(데이터 주의)'자율 축구'는 없다. 요르단 전으로 돌아보는 문제점들. 11 joel 24/02/19 951 8
1367 역사 AI를 따라가다 보면 해리 포터를 만나게 된다. 4 코리몬테아스 24/02/18 1047 11
1366 체육/스포츠(데이터 주의)'빌드업 축구'는 없다. 우루과이전으로 돌아보는 벤투호의 빌드업. 13 joel 24/02/12 1322 30
1365 기타자율주행차와 트롤리 딜레마 9 서포트벡터 24/02/06 1182 7
1364 영화영화 A.I.(2001) 18 기아트윈스 24/02/06 1114 23
1363 정치/사회10년차 외신 구독자로서 느끼는 한국 언론 32 카르스 24/02/05 2542 12
1362 기타자폐아이의 부모로 살아간다는건... 11 쉬군 24/02/01 2148 69
1361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4, 完) 6 양라곱 24/01/31 2809 37
1360 기타텃밭을 가꿉시다 20 바이엘(바이엘) 24/01/31 998 10
1359 일상/생각한국사회에서의 예의바름이란 18 커피를줄이자 24/01/27 6530 3
1358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3) 17 양라곱 24/01/22 6160 22
1357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2) 17 양라곱 24/01/17 5686 14
1356 요리/음식수상한 가게들. 7 심해냉장고 24/01/17 1251 20
1355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1) 9 양라곱 24/01/15 2670 21
1354 기타저의 향수 방랑기 31 Mandarin 24/01/08 3292 2
1353 의료/건강환자의 자기결정권(autonomy)은 어디까지 일까? 7 경계인 24/01/06 1274 21
1352 역사정말 소동파가 만들었나? 동파육 이야기. 13 joel 24/01/01 1305 24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