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7/07/20 16:17:06
Name   Raute
Subject   백작이랑 공작이 뭐에요?
https://redtea.kr/pb/view.php?id=timeline&no=45946

장화신은 고양이에도 작위가 나오는군요? 저는 소공녀 이야기에서 처음 봤던 거 같은데...

당연하지만 서양과 동양의 양식이 좀 다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후백자남은 유럽이 아니라 중국의 오등작이고, 서양의 귀족 작위를 이 오등작에 대입해서 번역하곤 합니다.

먼저 중국 얘기를 하면 원래 유교경전에서 나온 거라고 하는데 역사에서 찾아보기 제일 쉬운 사례는 춘추시대입니다. 하나라 시대부터 오등작이 존재했다고는 하지만 기록의 부족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파악이 되는 건 주나라와 춘추시대거든요. 아주 쉽게 설명하자면 특별대우를 받는 극소수가 공작, 힘 좀 쓰는 제후국이 후작, 그 아래 있는 군소제후들이 백작이나 자작이었고 남작의 경우 제후들의 부하로 같이 귀족으로 묶기도 뭐한 존재였습니다. 실질적으로 제후라고 부를 수 있는 커트라인은 대개 백작이었고요. 이외에 방백이나 숙 등이 있는데 일종의 명예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주의해야 하는 게 ~~공, ~~후라고 불린다고 다 그 계급이 아닙니다. 가령 춘추시대의 첫 패자인 제환공은 이름만 들었을 때는 공작 같지만 실제로는 후작이었습니다.

공작으로는 송(宋), 우(虞), 주(周), 소(召) 등이 있는데 다들 사연이 있습니다. 가령 송이 공작이었던 이유는 망국 은나라 왕실의 후예였기 때문에 배려를 해준 것이고, 우나라는 조상이 주나라 왕가에게 제후의 자리를 양보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봉해줬고, 주공단이나 소공석 같은 인물들은 주나라 왕실의 일을 맡았던 재상이라서 명예직으로 공작으로 임명된 케이스입니다(주공단이나 소공석이나 분봉받은 제후국은 후작이었습니다). 제일 높은 공작이니까 다 강국이었던 건 아니고 오히려 송나라를 제외하면 소국이라서 대부분 '뭐야 이런 이름의 나라도 있었나?' 싶을 정도.

후작은 주로 주왕실과 같은 희(姬)성을 쓰는 동성제후국들이 많았고 강태공의 제(齊)처럼 특별한 공신의 나라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진(晉), 위(衛), 노(魯), 연(燕) 같은 나라들이 여기에 해당하며 족보는 좋을지언정 강대국에게 털리는 후작인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진(晉)과 초(楚) 사이에서 동네북이 되는 채(蔡)가 후작이었습니다. 한편 위나라는 서주가 망하고 동주가 될 때 공을 세워서 공의 호칭을 썼으며 진(晉)은 방백이라서 백작으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백작은 실질적인 제후국의 커트라인쯤 되는 자리인데 진(秦), 정(鄭), 오(吳) 등이 유명합니다. 여기서 진은 원래 자작이었는데 중간에 백작으로 올라선 케이스입니다. 희성을 쓰는 제후들도 꽤나 있었고 주나라 왕실의 일을 맡아보는 등 어느 정도 주나라의 문화 아래에 있는, 그럭저럭 족보가 되는 제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작은 춘추오패에 해당하는 초(楚)와 월(越)이 유명한데 뼈대있는 제후는 아니고 그냥 변두리 지방세력들에게 자작 자리 던져줬다, 혹은 원래 남남이었는데 중국 문화권에 포섭되면서 근본 없는 자작을 칭한 거다 등등 여러 설이 있습니다. 확실한 건 국력과 별개로 별로 인정받는 자리는 아니었다는 거죠. 한편 자작보다 못한 남작은 진짜 뭣도 없는데 그나마 이름이 언급되는 남국으로는 허(許)가 있습니다. 삼국지의 허창이 바로 이곳이죠.

이러한 중국의 오등작은 시대가 흐르면서 이십등작, 십이등작, 구등작 등 여러가지로 변형되어 사용되고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 비슷한 개념이 자리잡게 됩니다.


서양은 좀 곤란한 게 중국은 그래도 하나의 나라로 묶여서 변형되었지 여기는 나라가 수십수백개로 쪼개져 있었잖아요? 그래서 작위도 엄청 다양하고 동일한 등급으로 대응되지 않습니다. 가령 Duke를 공작으로 번역하곤 하는데, Prince나 Grand Duke 같은 게 나오면 난감해지는 거죠. 그런가 하면 독일에는 변경백, 궁중백, 방백 같은 게 튀어나오질 않나 아예 자작이 없는 나라도 있었죠. 이렇게 복잡한 유럽의 작위체계를 그냥 오등작과 비슷하게 대충 때려맞춰 번역한 겁니다.

또 춘추시대의 중국은 A제후가 B제후를 없애버리면 B가 A에게 흡수되거나 혹은 새로운 B제후를 임명하는 방식이었지만 유럽은 고위귀족에 한해 A제후가 B제후를 겸임하는 게 가능했습니다(심지어 왕을 겸직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작위란 게 사실상 한 지역의 수장을 상징하는 타이틀이라고 할까요. 이런 면모는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에서 잘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게임처럼 1공작-4백작-16남작 이렇게 가지치는 것처럼 늘어났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제가 갖고 있는 스페인사 책에 귀족의 수입에 대한 자료가 인용되어있는데 16세기 초에 카스티야 연합왕국에는 13명의 공작과 13명의 후작, 34명의 백작과 2명의 자작이 나오고 아라곤 연합왕국에는 5명의 공작과 3명의 후작, 9명의 백작과 3명의 자작이 나옵니다. 중국은 규모 있는 제후국이 작은 제후국을 잡아먹고 또 그런 제후국들에 대한 기록만 전해지면서 상위 등급의 제후들만 남게 되지만 유럽은 그냥 나라와 지방에 따라 작위와 귀족의 세력이 천차만별인 거죠.

그럼에도 보편성을 찾아보려고 하면 공작은 왕가의 방계거나 오래된 전통있는 가문, 혹은 최고위 명예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후작은 변경의 실력자들이 인정받으면서 생긴 자리인데 백작과는 달리 여러 작위를 겸직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었습니다. 근데 뭐 존재감은 별로 없어요. 백작은 봉건제의 근간이 되는 작위인데 중앙 백작들은 왕가의 중요 업무를 맡는 실세요 지방 백작들은 세습 영주로서 하나의 작은 왕국을 거느리는 존재였습니다. 자작은 백작의 따까리, 남작은 왕의 따까리였습니다. 근데 왜 왕보다 백작의 따까리가 더 높냐고요? 백작 따까리는 백작의 오른팔이지만 왕의 따까리는 부하1이라서 흔해빠졌거든요(...) 이렇듯 중국과 유럽의 작위 체제는 비슷한 거 같으면서 뭔가 좀 달라서 1:1 대응이 어렵습니다.


이거 써놓고 보니 별 도움이 안되겠군요. 그냥 아이들에게는 왕의 부하들한테 별명 붙여준 거라고 설명해주세요(...)

p.s. 공작새와는 한자가 다릅니다. 조류와는 다르다! 조류와는!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07-31 08:22)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5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으어어엇 감사합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376 기타삶의 의미를 찾는 단계를 어떻게 벗어났냐면 8 골든햄스 24/03/14 918 18
1375 기타소수 사막은 얼마나 넓을까? 4 Jargon 24/03/06 866 4
1374 기타민자사업의 진행에 관해 6 서포트벡터 24/03/06 822 8
1373 기타노무사 잡론 13 당근매니아 24/03/04 1525 16
1372 기타2024 걸그룹 1/6 2 헬리제의우울 24/03/03 609 13
1371 기타소회와 계획 9 김비버 24/03/03 852 20
1370 기타터널을 나올 땐 터널을 잊어야 한다 20 골든햄스 24/02/27 1559 56
1369 정치/사회업무개시명령의 효력 및 수사대응전략 8 김비버 24/02/21 1401 16
1368 체육/스포츠(데이터 주의)'자율 축구'는 없다. 요르단 전으로 돌아보는 문제점들. 11 joel 24/02/19 954 8
1367 역사 AI를 따라가다 보면 해리 포터를 만나게 된다. 4 코리몬테아스 24/02/18 1052 11
1366 체육/스포츠(데이터 주의)'빌드업 축구'는 없다. 우루과이전으로 돌아보는 벤투호의 빌드업. 13 joel 24/02/12 1326 30
1365 기타자율주행차와 트롤리 딜레마 9 서포트벡터 24/02/06 1183 7
1364 영화영화 A.I.(2001) 18 기아트윈스 24/02/06 1115 23
1363 정치/사회10년차 외신 구독자로서 느끼는 한국 언론 32 카르스 24/02/05 2547 12
1362 기타자폐아이의 부모로 살아간다는건... 11 쉬군 24/02/01 2148 69
1361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4, 完) 6 양라곱 24/01/31 2811 37
1360 기타텃밭을 가꿉시다 20 바이엘(바이엘) 24/01/31 1000 10
1359 일상/생각한국사회에서의 예의바름이란 18 커피를줄이자 24/01/27 6533 3
1358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3) 17 양라곱 24/01/22 6160 22
1357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2) 17 양라곱 24/01/17 5686 14
1356 요리/음식수상한 가게들. 7 심해냉장고 24/01/17 1253 20
1355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1) 9 양라곱 24/01/15 2671 21
1354 기타저의 향수 방랑기 31 Mandarin 24/01/08 3293 2
1353 의료/건강환자의 자기결정권(autonomy)은 어디까지 일까? 7 경계인 24/01/06 1275 21
1352 역사정말 소동파가 만들었나? 동파육 이야기. 13 joel 24/01/01 1306 24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