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7/10/21 12:37:59
Name   aqua
Subject   울진 않을거 같습니다.
(이 글은 친구의 개인적 사항이 나와 삭제 될 수 있습니다)

오픈 시간에 맞춰 미용실에 와서 머리 중입니다. 행사일 당일에 머리 셋팅이 아닌 머리 풀코스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시간이 없었습니다. 늦은 오후로 결혼식을 잡은 친구에게 감사합니다.

미용실이란게 멍하기 있기 좋은 공간입니다.

참으로 아는 사람이 많을 결혼식입니다...
그래서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친구네 집은 형편이 넉넉치 않았습니다. 좁은 집에 여섯명이 살았는데 저는 그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습니다. 오히려 복닥복닥한게 재미있었습니다. 작은 방은 저까지 여자아이 3명이 자면 꽉 찼어요. 다른 가족들은 거실겸 큰방에서 잤고요. 지금 생각하면 한 소리 들을 수도 있었는데 친구네 부모님은 제게 그런 눈치를 한 번도 주지 않았죠. 전 친구 생일에 어머님께 고생하셨다고 장미를 사다드리는 세상물정 모르는 맹랑하고 천진난만한 꼬마였는데...따뜻하게 품어주셨습니다.

형편이 넉넉치 않고 자식이 많은 집의 여느 둘째가 그러하듯 친구는 상고를 진학했습니다. 전 보충수업이랑 야자를 제끼고 친구를 만나러 가곤 했습니다. 그럼 그 학교의 친구들, 밖에서 봤으면 포스넘치고 무서워 보였겠지만 알고 보면 다정한 언니들이랑 떡볶이를 먹으러 가곤 했지요.

친구는 대학을 가지 않고 취업을 했습니다. 회사 OT에서 배운 자기네 회사 제품 설명을 절 앞에 앉혀 놓고 재잘대던 19살이 기억납니다. 저희 집은 제가 대학 때 망했고, 친구는 밥은 먹고 다니냐며 회사로 부르곤 했습니다. 그럼 쭈삣대며 친구 회사 로비에서 여섯시까지 친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서있었습니다. 전 볼품없고 촌스런 아직 학생인 여자애고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다들 멋있는 어른 같았습니다. 그렇게 친구는 대학 때 절 불러내서 고기를 늘 사줬습니다. 개념없던 전 친구가 늘 돈을 내는게 익숙했습니다.

대학 때 한번은 제가 돈 문제로 꼬여서 친구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제 인생에 사람에게 큰 돈을 빌린 유일한 사건이었습니다...이래서 돈이 삼백이 필요해..."응 알았어 계좌번호 불러"

저는 그 돈을 몇 년 후 첫 직장에 들어가서도 세달동안 학자금이랑 이사 준비를 하느라 못 갚았는데 단 한번도 독촉받지 않았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세번째 월급을 받자마자 보냈습니다.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서운하지 않았냐고 왜 네 돈부터 갚으라 안 했냐고. 친구는 네가 갚을 줄 알았다고 그냥 웃었던 것 같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친구에게 에티켓을 배웠습니다. 이럴 땐 네가 팀원들께 차를 사는게 좋다. 그 돈은 아끼는 거 아니다. 이럴 땐 이런 선물을 줘야 한다...제 부모님에게  못 배운 어떤 것들을 이 친구에게 배웠습니다.

모든 면접을 보러 들어가기 전에, 면접을 보고 나온 후,
모든 여행과 출장의 출국 전에, 귀국 후에,
모든 시험날 아침과 끝난 후에
이 친구에게 제일 먼저 연락했습니다.

저도 조금 어른이 되었는지 작년에 친구가 제 이야기를 가만 듣더니 우리 아쿠아 많이 컷네란 말을 했습니다. 웃기게도 기뻤습니다. 응 많이 컸지. 나.

그래서 전 오늘 예쁘게 하고 친구랑 친구의 친구들과 절 알 수밖에 없는 친구의 회사분들과 부모님을 뵈러 갑니다.울진 않을 것 같습니다. 임수 완수형 인간이니 부케를 받는 그 순간까지 활짝 웃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다음엔 저도 모르겠습니다.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10-30 09:20)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57
  • 나의 친구, 나의 엄마, 나의 선배,
  • 좋은 친구를 두었네요.
  • 그런친구 하나 있으면 인생 참 살맛나죠.
  • ㅠㅠㅠㅠㅠ
  • 부러워용
  • 춫천
  • 부럽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376 기타삶의 의미를 찾는 단계를 어떻게 벗어났냐면 8 골든햄스 24/03/14 913 18
1375 기타소수 사막은 얼마나 넓을까? 4 + Jargon 24/03/06 865 4
1374 기타민자사업의 진행에 관해 6 서포트벡터 24/03/06 816 8
1373 기타노무사 잡론 13 당근매니아 24/03/04 1521 16
1372 기타2024 걸그룹 1/6 2 헬리제의우울 24/03/03 608 13
1371 기타소회와 계획 9 김비버 24/03/03 849 20
1370 기타터널을 나올 땐 터널을 잊어야 한다 20 골든햄스 24/02/27 1556 56
1369 정치/사회업무개시명령의 효력 및 수사대응전략 8 김비버 24/02/21 1401 16
1368 체육/스포츠(데이터 주의)'자율 축구'는 없다. 요르단 전으로 돌아보는 문제점들. 11 joel 24/02/19 953 8
1367 역사 AI를 따라가다 보면 해리 포터를 만나게 된다. 4 코리몬테아스 24/02/18 1051 11
1366 체육/스포츠(데이터 주의)'빌드업 축구'는 없다. 우루과이전으로 돌아보는 벤투호의 빌드업. 13 joel 24/02/12 1325 30
1365 기타자율주행차와 트롤리 딜레마 9 서포트벡터 24/02/06 1183 7
1364 영화영화 A.I.(2001) 18 기아트윈스 24/02/06 1114 23
1363 정치/사회10년차 외신 구독자로서 느끼는 한국 언론 32 카르스 24/02/05 2544 12
1362 기타자폐아이의 부모로 살아간다는건... 11 쉬군 24/02/01 2148 69
1361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4, 完) 6 양라곱 24/01/31 2809 37
1360 기타텃밭을 가꿉시다 20 바이엘(바이엘) 24/01/31 1000 10
1359 일상/생각한국사회에서의 예의바름이란 18 커피를줄이자 24/01/27 6530 3
1358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3) 17 양라곱 24/01/22 6160 22
1357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2) 17 양라곱 24/01/17 5686 14
1356 요리/음식수상한 가게들. 7 심해냉장고 24/01/17 1251 20
1355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1) 9 양라곱 24/01/15 2670 21
1354 기타저의 향수 방랑기 31 Mandarin 24/01/08 3293 2
1353 의료/건강환자의 자기결정권(autonomy)은 어디까지 일까? 7 경계인 24/01/06 1274 21
1352 역사정말 소동파가 만들었나? 동파육 이야기. 13 joel 24/01/01 1306 24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