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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7/20 16:29:46수정됨
Name   Danial Plainview
Subject   제도/수익모델이 스포츠에 미치는 영향

 프로 스포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포츠 내의 매커니즘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적인 제도와 수익모델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프로 선수들은 스포츠 내에서는 어느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선수>의 강력함에서는 평균적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구단>의 강력함은 제도와 수익모델을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1. 반反 자본주의 제도들 : 수익균등배분, 샐러리 캡(Salary Cap), 드래프트(Draft)

 흔히 미국은 자본주의의 총본산으로 일컬어지지만, 스포츠에 한정해서라면 빨갱이 나라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영연방을 중심으로 발달한 크리켓, 럭비, 한미일을 중심으로 팬이 형성된 야구 같은 경쟁자들이 있겠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는 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국가가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규칙을 갖고 있죠. 하지만 세계 최대 스포츠 시장 미국의 4대 스포츠 리그에 축구는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4대 스포츠 시장 규모는 EPL을 제외한 어떤 축구 리그보다도 큽니다. 


  

 이런 성장에는 단순히 부유한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 스포츠 특유의 반反 자본주의적 정서가 한몫했습니다. NFL 커미셔너로서 29년동안 재임했던 피트 로젤의 사례는 이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엔터테인먼트고, 만약 경쟁이 없다면 시장은 성장할 수 없음을 정확하게 인식했습니다. 단순히 강한 팀이 약한 팀을 때려부수는 경기를 보려고 사람들이 돈을 내려고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죠.

 그는 62년 전 구단주를 설득시켜 모든 중계권료를 빅 마켓 팀이든, 스몰 마켓 팀이든 동등하게 나눠서 배분하는 종류의 계약을 성공시킵니다. 그는 모든 구단에게 동일한 수익을 보장해야 팀 전력이 평준화될 것이며, 전력이 평준화되어야 사람들이 더 많이 볼 것이라고 믿었으며, 그의 믿음은 성공으로 보답받았습니다. 62년 각 구단이 받은 중계권료는 33만 달러에 불과하였으나, 현재 각 구단이 받는 중계권료는 1억 5천만 불이 넘습니다. 중계권료 뿐만이 아닙니다. 광고료, 로고판매 수익 등은 여전히 모든 구단이 동일한 금액을 가져가며, 심지어는 구단 수입마저 40%는 동등하게 배분하고 있습니다.

 이런 NFL의 반 자본주의적 컨셉의 제도는 두 가지가 더 있습니다. 하나는 샐러리 캡(Salary Cap)이고, 두번째는 드래프트(Draft)입니다. 첫째로 샐러리 캡은 팀 연봉 총액 상한제도입니다. 이는 구단이 보유한 선수들의 연봉 총액이 일정 값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한 제도입니다. 이는 자금력이 우월한 구단이 선수 쇼핑을 통하여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한편 샐러리 캡은 예외를 허용하느냐 허용하지 않느냐에 따라 소프트 캡과 하드 캡으로 나뉩니다. MLB, NBA 역시 샐러리 캡 제도를 갖고 있으나, MLB는 사치세(luxury tax), NBA는 사치세 뿐만 아니라 버드 룰 등의 다양한 예외규정을 통해 샐러리 캡을 넘어설 수 있는 케이스들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NFL과 NHL에서는 예외규정이 없는 하드 캡(hard cap)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하드 캡 시스템 하에서는 충분히 좋은 선수임에도 비용이 많이 든다 싶으면 가차없이 토사구팽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한편, 이런 종류의 무임승차자(free rider)를 가정할 수도 있습니다. 일부러 선수 영입에 들이는 비용을 줄임으로써, 중계권료에 의한 수익은 그대로 가져가고, 반대로 들어가는 비용은 줄임으로써 계속해서 시장과 리그의 무임승차자로 지속적인 이득을 취하는 경우입니다. 구단주가 성적이 아니라 수익에 관심이 많다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현상이죠. 그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샐러리 캡에서는 팀 전체 연봉의 하한선을 정해 놓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샐러리 캡의 방점은 약팀이 아니라 강팀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샐러리 캡을 목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리그에서 강팀은 생겨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되어선 안됩니다. 

 반대로, 지속적인 약팀이 존재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가 드래프트(draft)입니다. 드래프트는 징병을 뜻하는 말로, 프로 리그에 진입하고 싶어하는 선수들을 한데 모아 구단이 돌아가며 선수를 뽑는 제도입니다. 드래프트 제도를 잘 생각해 보면, 구단과 선수 사이의 계약에서 구단이 일방적인 갑의 위치에 서게 되는 제도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선수는 자기가 가고 싶은 팀을 선택할 수 없지만, 구단은 원하는 선수를 뽑을 수 있으니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자유시장경제를 무시하는 제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드래프트 없이 신인들은 누구나 자신들이 원하는 강팀에 가고 싶어하거나, 노출이 많이 되는 빅 마켓에만 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강팀은 더더욱 강팀이 되고, 빅 마켓은 계속 빅 마켓일 것입니다. 하지만 드래프트 제도 하에서 약팀들은 누구나 탐내는 유망주들과 계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다시 강팀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쥐게 됩니다. 또한 드래프트 제도 하에 구단은 우수한 선수들을 싼 금액으로 계약할 수 있습니다. 

 FA는 이러한 드래프트의 반대급부로 주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레반도프스키 같은 몇몇 희귀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축구 선수들은 보통 바이아웃이나 이적료를 통해 이적하게 됩니다. 하지만 드래프트 제도 하에서 FA는 필수적입니다. 의무적인 몇 년의 계약을 선수가 수행했을 때, 선수에게도 구단을 선택할 기회, 그리고 더 많은 연봉을 따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니까요. 

 일반적으로 드래프트는 역逆 드래프트 방식입니다. 즉, 저번 시즌에서 가장 낮은 순위대로 선수를 지명할 권리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generation talent, 즉 동년배 뿐만 아니라 동 세대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유망주가 있다고 한다면, 이번 시즌에 신통치 않은 성적표를 받아든 팀들은 차라리 이번 시즌을 버리고 다음 시즌에 그 유망주를 뽑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혹은 검증된 FA를 비싼 돈 주고 영입하느니, 좋은 유망주들을 염가에 계약함으로써 유동성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팀들은 시즌이 중반도 채 넘기지 않은 상태에서 고의 패배, 혹은 미필적 고의 패배를 일삼게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데 이를 탱킹(tanking)이라고 합니다. MLB에서는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와 브라이스 하퍼를 두고 이런 일이 벌어졌었고, NBA에서는 르브론 제임스가 가장 대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팀들이 많아진다면 자연스럽게 리그 전체의 경쟁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NBA는 드래프트에서 무조건 최하위가 1지명권을 가져가는 방식이 아닌, 최하위 순으로 1지명의 확률을 높게 주는 로터리 픽(lottery pick) 방식을 가져가곤 합니다. 최근에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샘 힝키가 고의 탱킹으로 악명을 떨쳤고, 필라델피아의 성공 이후 멤피스 그리즐리스나 피닉스 선즈 같은 팀들이 이를 본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샐러리캡과 드래프트 제도가 있다면 강팀은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약팀들은 계속해서 드래프트를 통해 올라오려고 하고, 강팀은 샐러리 캡 때문에 좋은 선수들 중 몇몇은 놓아주어야 하니까요. 

 NFL에서 하드 캡 시스템과 풋볼이 만나서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는 프랜차이즈 쿼터백(franchise quarterback)에 대한 집착입니다. 예전에 <해리 포터와 합리적 사고의 구사법>이라는 책에서, 퀴디치를 두고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한 기억이 납니다. 실컷 14명이 뛰어봤자 수색꾼 한 명이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큰 게임이 무슨 스포츠냐고. 하지만 NFL에서 쿼터백 1명이 게임에 미치는 영향력은 체감상 60%를 훌쩍 넘깁니다. 총 엔트리 52명 중 1명이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한 셈이죠. 따라서 어떻게 쿼터백의 연봉을 관리하면서 나머지 선수들에게 투자할 것인가는 모든 구단의 최대 이슈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실력에 비해 어마어마한 연봉을 따내는 선수들이 생깁니다. 그리고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토니 로모(Tony Romo)처럼 노장 쿼터백 한 명이 드러누워 버리면 구단에서는 단지 1명이 없어진 것 이상의 충격이 벌어집니다. 왜냐하면 이미 많은 연봉이 그 선수 1명에게 투자되었기 때문이죠. 반대로 왕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프랜차이즈 쿼터백의 존재가 필수적입니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톰 브래디(Tom Brady)가 대표적이죠. (감독인 빌 벨리칙의 영향력도 어마어마합니다만)

 반면 NBA에서 최근 4년간 3번의 우승을 차지하면서 새로운 왕조(Dynasty)가 되려고 하고 있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사례는 NBA의 현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NBA의 샐러리 캡을 먼저 얘기해 보면 팀 연봉의 하한과 상한이 존재하며, 연차별로 받을 수 있는 최고금액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를 맥스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구단은 FA가 된 주축 선수들을 맥스로 묶어 두게 되는데, 결국 대부분 탑 티어 선수들이 받을 수 있는 연봉이 비슷해지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결국 강팀이 되기 위해 중요해진 건 맥스 계약이 몇 명인가가 아니라 한정된 맥스 계약을 누구와 하는가, 즉 누구를 맥스 계약으로 묶느냐가 되어버렸죠. 예컨대 댈러스 매버릭스의 마이크 콘리나 보스턴 셀틱스의 알 호포드는 케빈 듀란트나 러셀 웨스트브룩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지만 더 나은 실력이라곤 보기 어렵습니다. 

 한편, 마이클 조던 이후로 선수 수입에서 스폰서쉽이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커졌습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언더아머 같은 주요 브랜드에서는 선수들의 시그니처 운동화 뿐만 아니라 네이밍 브랜드를 만들고 있죠. 연봉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음에 따라 커리어가 중요해짐으로써, 정작 탑 티어 선수들에게 맥스 계약은 당연한 것이고 심지어는 약간의 금액 차이를 커리어를 위해 포기하기도 하는 금액이 되어버렸습니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전성기가 시작된 이유에는 유스 시스템과 뛰어난 전술도 있겠지만 스테픈 커리가 MVP로 발돋움하기 이전 그를 장기 계약으로 묶을 수 있었고, 클레이 탐슨이 돈을 받은 만큼 계속 스탯이 스텝 업 해주었으며, 드레이먼드 그린을 82m/5y으로 잡았던 것이 컸습니다. 그들은 가장 주축 선수들에게 돈을 적게 투자한 상태로, 나머지 우수한 롤플레이어들을 충분히 가동할 수 있었죠. 문제는 원래 그 효과가 떨어져야 했던 2년 후, 케빈 듀란트가 맥스 계약으로 합류했고(이 트렌드는 르브론 제임스에게서 시작되었죠) 그가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돈을 10m 정도 줄이면서 장기집권 가능한 슈퍼팀이 탄생해 버린 것입니다. 저는 스폰서쉽이 선수에게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연봉을 통해 밸런스를 조절하려는 샐러리캡의 기대효과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봅니다. 

 약간 궤가 다른 이야기일 수 있으나 NBA에서 고졸 드래프트가 폐지된 것은 구단들의 리스크를 줄이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라고 봅니다. 과거 코비 브라이언트나 르브론 제임스처럼 대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NBA에 온 케이스는 모범 사례지만 그 이후 구단들은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고졸 드래프트에게 거액의 돈을 투자하게 되었죠. 또한 젊은 나이에 연차가 빨리 쌓임에 따라 지출해야 할 돈도 많아졌고, FA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구단들의 이해관계가 공통적으로 맞아떨어지면서 고졸 드래프트는 폐지되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NBA의 동/서부 컨퍼런스 개편안도 전체 구단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회의적으로 생각합니다. 적은 투자로 플레이오프에 갈 수 있는 동부 구단들이 굳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흥미롭게 봤던 주제 중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그렉 포포비치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경 중 누가 더 위대한 감독인가에 대한 토론이 있었는데 저는 그렉 포포비치의 손을 들었던 편이었습니다. 26번의 시즌 동안 13번의 우승을 한 퍼거슨의 업적이 낮다는 것은 아니지만, 샐러리 캡과 드래프트 하에서 스몰 마켓 팀을 운영하면서 20시즌 연속 6할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룬 것은 거의 불가능한 업적에 가깝습니다. 혹자는 퍼거슨의 유나이티드 주축은 대부분 유스 출신이었다면서 그의 감독시절 동안 맨유의 자금력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음을 강조했지만, 저는 애초에 한 축구 구단에 그런 유스들을 한데 모을 수 있었던 것부터가 유나이티드가 명문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럽권 스포츠에서 샐러리 캡이나 드래프트가 없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생각되는데, 첫 번째는 경로의존성입니다. 아직까지 이렇게 한 전례가 없고, 구단의 역사가 길다 보니 그동안의 전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습니다. 두 번째로 선수들의 대표집단이 없습니다. 같은 종목의 다른 리그가 동시에 국가마다 존재하면서 이적이 자유롭다 보니 구단들이 동시에 한 사무국에 속해 있을 수 없고, 동시에 그 사무국들과 협상할 선수 노조가 존재하지 않아 단체교섭협약(Collective Bargain Agreement; CBA)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드래프트나 샐러리 캡들은 거의 일방적으로 선수들에게 불리한 제도입니다. 드래프트는 젊은 나이에 큰 돈을 벌 기회를 제한하니까요. 과거 선수 노조들은 저임금 때문에 시작한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 중계권료 균등배분 등으로 하위권 팀을 좀 더 경쟁적으로 만듦으로써, 전체 시장의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논리로 가기에는 이미 많은 리그들이 충분한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상위권 팀이 자신의 파이를 포기할 당위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축구에서는 충분한 하부리그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금력에서 상당 부분 경쟁이 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경쟁할 수 있는 풀로 내려가서 경쟁하면 됩니다. 반면 미국 스포츠의 하부리그는 그 풀에서 벌어지는 경쟁이라기보다는 구단의 유망주/유스 시스템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고 해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강호들의 부상과 몰락이 있긴 하지만, 유럽 스포츠 리그에서 우승은 우승후보 중에서 정해지며, 어떤 새로운 유망주들은 이미 거대 구단과 계약이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죠. 레스터 시티의 우승이 더 특별한 이유기도 하구요.


2. PPV(Pay-Per-View)

 단체 스포츠에서 수익모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방송사-리그 간의 TV 중계권료, 스포츠 브랜드 광고 등의 스폰서쉽, 그리고 구장 내에서의 용품 판매나 입장료 등의 제반 수익이죠. 하지만 개인 스포츠에서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개발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페이 퍼 뷰라고 불리는 PPV 시스템입니다. 

 PPV는 간단히 말해 유료 구독입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슈퍼볼이나 월드컵 결승전, 월드시리즈, NBA 파이널 등의 최대 스포츠 이벤트들은 대부분 TV에서 그냥 송출됩니다. 메이저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중계진을 파견하죠. 하지만 복싱, 레슬링, UFC 등에서 얘기는 다릅니다. 이런 빅 매치 경기를 보기 위해서는 가구당 50~80$ 정도 되는 시청권을 구매해야 합니다. 이렇게 시청권을 구매하게 되면, 경기 전까지 TV수신카드가 우편으로 오게 되는데, 경기가 벌어지는 시간에 이 수신카드를 TV에 꼽으면 경기가 나오게 됩니다. 

 이 PPV가 그동안 스포츠 선수 수입 1, 2위에 지속적으로 메이웨더, 파퀴아오를 올려 놨던 일등 공신입니다. 간단히 말해 메이웨더나 파퀴아오는 대략 미국 내에서 70만 가구 언저리를 팝니다. 그 PPV 수익으로 방송사는 선수에게 돈을 지급합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개인 스포츠에서 가장 수입이 많은 종목은 골프/테니스/복싱 이 셋인데, 골프와 테니스는 대부분 광고로 돈을 버는 편이지만 복싱은 순수 대전료로 수입이 측정되는 식입니다. 

 축구에서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1년에 약 50m 정도를 주급과 광고비로 벌었고, 한 때 타이거 우즈가 80m을 벌면서 한 해 최고의 수입을 올린 스포츠 스타로 이름을 올린 바 있었습니다. 페더러가 전성기 시절 60m 정도를 마크했었지요. 그 때 메이웨더가 한 경기에 번 대전료는 40m이었습니다. 2경기를 뛰고 전 세계 최고의 수입을 기록했습니다. 이 PPV는 더욱 커져서, 메이웨더-파퀴아오 전이 벌어졌을 때는 PPV 구매가구수 460만, 대전료로는 메이웨더가 300m, 파퀴아오가 160m이라는 아득한 수치를 기록했었습니다.  

 2015년 스포츠 스타 수입 순위 탑 10(포브스)

 1. 플로이드 메이웨더 300m
 2. 매니 파퀴아오 160m
 3.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79.6m
 4. 리오넬 메시 73.8m
 5. 로저 페더러 67m
 6. 르브론 제임스 64.8m
 7. 케빈 듀란트 54.1m
 8. 필 미켈슨 50.8m
 9. 타이거 우즈 : 50.6m
 10. 코비 브라이언트 49.5m

 메이웨더-파퀴아오는 다시는 오지 않을 돈잔치였던 셈입니다.

 이러한 PPV 시스템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실제 경기 전에 거의 모든 수입이 결정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경기를 보면서 평가가 올라가고, 더 많은 광고가 붙는 게 아니라, 경기 전에 얼마나 많은 기대감과 어그로가 끌리냐에 모든 게 결정되는 셈이죠. UFC나 WWE 등에서는 PPV를 끌어들이기 위해 메인 이벤트/미드 카드/로우 카드 등을 배치하여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하고, 한 경기마다 스토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선수의 실력 외에 구매력이라는 요소가 주요 변수로 등장합니다. 든든한 인종적/민족적 베이스를 갖고 있거나, 대중을 매료시킬 수 있는 기믹을 갖고 있는 선수들은 언제나 매치매이킹(match making)에서 갑의 위치를 차지합니다. 흔히 뛰어난 챔피언으로 간주되는 게나디 골로프킨이 그 실력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을일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구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선수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어떤 구매력을 갖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현대 PPV 시장에서 가장 구매력이 뛰어났던 선수들을 살펴보면, 

 -플로이드 메이웨더 : 무패 기믹, 돈자랑 기믹, 어그로, urban base
 -마이크 타이슨 : bad ass 기믹, 고의적인 폭력적인 스타일, 헤비급
 -오스카 델 라 호야 : 여성층에게까지 어필하는 수려한 외모, 히스패닉과 영어 양쪽에 능통한 바이링구얼, 화끈한 경기와 연타
 -코너 맥그리거 : 아일랜드 내셔널리즘, 어그로, 트래쉬 토커
 -매니 파퀴아오 : 필리피노 인베이젼, 화끈한 경기와 연타 

 등이 떠오르는군요. 내셔널리즘은 가장 흔한 소재입니다. 백인이었던 토니 모리슨, 진 터니, 이탈리안 록키 마르시아노, 아투로 가티, 브리티쉬 리키 해튼, 나심 하메드, 푸에르토 리칸 미겔 코토 등이 PPV 스타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든든한 지지를 업고 선수생활 말년까지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PPV 방식에서, 실력과 상관없이 구매력만 갖고 매치매이킹을 하다 보면 스포츠 전체의 경쟁과 활력은 크게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메이웨더-파퀴아오 이후 그들을 대체할 PPV 스타가 등장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에서 걸출한 인재가 나온다면 시장을 바꿔놓을 충격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구매력이 실력을 앞서는 구도는 타파되지 않을 공산이 큽니다. 
  

 3. 한국에서는...

 한국에서 스포츠는 많은 사람들의 대중적인 취미입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의 특징들은 이곳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모방입니다. 한국은 그동안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빠른 성과를 거두는 데 익숙했죠. 한국은 별다른 고민 없이 그 제도를 수입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스포츠를 어떤 커다란 시장으로 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KBO는 수익 모델로 말하자면 모기업에 기생하는 형태에 불과합니다. 수익 모델이라는 것도 판공비를 크게 쳐 줬을 때 가능한 것 뿐입니다. 드래프트는 팀간 밸런스를 위해 실시하는 것이지만 1차지명을 폐지하고 전면 드래프트를 실시하자 구단이 지역야구에 투자하는 지원금 자체가 크게 감소했죠. 결국 1차지명을 다시 부활시키긴 하였으나 서울권 팜을 쥐고 있는 구단이 지속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은 밸런스 패치에 도움이 되지 않죠. 

 샐러리 캡은 없으며, FA에 지르는 돈은 소위 '회장님의 의중'에 따라 결정되니 삼성의 투자 축소와 한화의 전면적인 투자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MLB와 자금경쟁은 되지 않아 최상위권 선수들은 MLB로 진출하게 되었고, 최상위권 선수가 아닌 준수한 FA에게 기존의 최상위권 선수가 받을 돈들을 지불하게 되어 소위 <오버페이> 논쟁이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생이 불가능한 재벌들의 펫 스포츠, MLB와 자금경쟁이 불가능한 KBO의 예산 구조를 고려해 볼 때 준척급의 선수가 훨씬 많은 돈을 받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K-리그는 제가 잘 알지는 못하나 재벌 대신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들의 수익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한 드래프트 이전부터 해외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금액에서 오버페이가 발생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시청률 같은 시장의 수치가 딱히 나아지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는 거죠. 축구가 관심을 받을 때는 오로지 국가대표 대항전 뿐이니까요. 승부조작이나 심판매수 스캔들의 존재도 있구요. 

 KBL은 간단합니다. 농구는 타 리그에 진출할 실력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용병과 드래프트가 모든 걸 좌우하고 있습니다. 샐러리 캡이 있긴 하나 거의 무의미하고 문제는 리그 파괴급의 용병과 선수를 누가 뽑느냐가 가장 중요해집니다. 운장 허재 오세근이나 하승진 같은 케이스가 적절한 것 같습니다. 

 V-리그는 샐러리캡이 있다고 알고 있고, 문성민 등으로 촉발된 해외 이적 이슈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잘 모르는 내용이라 생략하겠습니다. 
 




* 수박이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07-30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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