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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8/31 15:59:37
Name   매일이수수께끼상자
Subject   입방뇨를 허하기로 했다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지린내가 은은하게 나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아까 둘째 녀석이 동네 형이랑 누나들과 한창 밖에서 놀다가 갑자기 “쉬가 마려워!”를 외치며 콩쾅콩쾅 뛰어 들어온 것이 생각났던 것이다. 이 녀석, 어디서 배웠는지 남자는 서서 쉬하는 거라며 좌변기 앞에서 쉬하다가 온 사방팔방에 그 고약한 향을 흩뿌리고 있는 걸 우연히 목격하게 된 게 바로 엊그제 일이었다.

그날 웃고 넘어간 것이 잘못이었다. 밖에서 노는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화장실 문 닫는 것을 생략할 정도로 그 작은 방광의 최대치를 이용하는 아들 녀석은 그 날 자신만의 비밀스런 용변 모습을 아빠에게 들키고 말았다. 좌변기 높이가 어른의 무릎 정도 되니, 아직 내 허리춤에 정수리가 닿지도 않는 녀석 입장에서는 목표물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바지를 내리고, 자기보다 한참 높은 좌변기 구멍에 맞추느라 까치발을 하지만 불안정한 균형 때문에 온 몸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니 녀석의 쉬야는 갈 길을 잃을 수밖에.

늘 하던 대로 앉아서 쉬하라고 좀 엄하게 말해줘야겠다고 벼르며 예상 쉬야 낙하 지점을 물청소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녀석의 “남자는 서서해야 한다”는 주장에 묘한 그리움이 있었다. 남녀노소 앉아서 하는 것이 화장실 위생상 더 낫다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땐 일개 도시전설처럼 치부했었는데, 첫 아이를 낳은 아내가 산후조리원 원장님까지 대동해 이제부터 앉아서 하라고 요청했을 땐 뭔가 정체성을 거세당한 기분까지 들었던 기억이 났다.

사람의 괄약근은 평생을 서서 하다가 앉아서 하는 법을 갑자기 처음부터 익힐 땐 좌변기 앞에서 까치발을 든 꼬마보다 더 심하게 방황하게 된다. 글이 더러워져 가는 느낌이 드니, 화장실에서의 생리 현상을 ‘비즈니스’로 대체해 보겠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렸을 때부터 서느냐 앉느냐에 따라 작은 비즈니스와 큰 비즈니스를 구분해오던 몸은, 모든 것을 앉아서 하라는 급박한 통일 명령을 내렸을 때 분별력을 잃는다. 그래서 작은 비즈니스를 해결하러 앉았다가, 원치도 않았던 큰 비즈니스까지 시작하(되)곤 한다.

물론 몸의 적응력이란 의외로 높아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만, 처음 몇 주 동안은 곤혹스러운 경우가 왕왕 발생했었다. 예를 들어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는 집에 부모님들이 방문하셨을 때, 평소였으면 충분히 참고 버티며 가장 깨끗한 상태의 개인 공간을 제공해드릴 수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시작된 큰 비즈니스 때문에 허둥지둥 환기를 시켜야 한다든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누군가 다음 순번을 예약하며 서두르라고 재촉했음에도 몸이 분별력을 잃을 때가 그랬다.

첫 아이를 양육하면서 습관을 바꾼 것이다 보니 아무래도 두 번째 사례가 많았다. 어린 아가들은 의외로 화장실에 가서 해결해야 할 긴급 상황들을 자주 만든다. 아빠가 화장실 안에서 작은 비즈니스가 큰 비즈니스로 바뀌어 당황하는 순간, 밖에 있던 아가는 먹던 분유를 토한다거나, 기저귀를 가는 순간 실례를 한다거나, 뭔가를 온 몸에 뒤집어쓰고 놀기 시작했다. 일일이 기억나진 않지만 아내의 다급한 화장실 문 노크 소리는 지금도 귀에 선명하다.

그러고 보니 이 시골 동네에선 아직 앉아서 하는 게 청결하다는 도시전설이 수입되지 않았나 보다. 아들 녀석은 밖에서 친구들과 무슨 얘기를 하다가 우리 집에서는 멸종된 옛 습관을 복고시킨 것일까.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던 녀석이 말이다. 아빠도 옛날엔 그렇게 했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직 말이란 게 시원치 않으니, 이 화장실 가득한 지린내로 뭔가 자기 딴에는 새로운 사상을 전파하려는 걸까.

그 시점부터 고민이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지린내를 유발했다고 혼낼 것이 아니었다. 과학적으로는 앉아서 하는 게 더 청결한 게 사실이니 이제부터 너도 아빠처럼 앉아서 하라고 가르쳐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 녀석 친구들도 한 번 불러서 설명을 다 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혹시 부모님들에게도 알려줘야 할까? 도시에서 도망쳐 온 이방인이 시골에서 일대 화장실 문화변혁을 일으켜야 하는 걸까? 그걸 위해 난 미리 곤혹스러운 경험을 했던 걸까? 앞으로 스마트시티다 뭐다 해서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면, 남자 아이들이라도 앉아서 하는 걸 교육시키는 게 미래 적응을 위해 더 낫지 않을까?

물청소를 하다 화장실 바닥에 우두커니 앉아 있자니 물음표는 끝도 없이 떠올랐다. 그래도 사람의 성장에는 과정이란 게 있는 건데 오랫동안 서서 해온 남성의 역사를 다 잘라 버리고 처음부터 앉아서 하도록 가르치는 게 맞는 걸까? 과정들 하나하나가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우리는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잘난 과학적 청결 하나에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잘라버릴 자격이 나에게 있는 걸까? 게다가 공중화장실에서는 아직도 서서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말이다.

결국 서서 하는 걸 허락하기로 답을 냈다. 화장실의 청결도 중요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중간에 발생하는 과정들 하나하나의 작용과 효과를 전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더 크게 다가왔다. 그것이 시행착오라고 할지라도, 한참 자라나는 이 꼬마 녀석에게도 모든 과정을 있는 그대로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곳 문화를 내가 어떻게 억지로 바꾼단 말인가. 또한, 도시화가 이곳에 도달하는 것보다, 필요한 상황에서 몸이 적응해내는 시간이 아무래도 더 짧을 수밖에 없다. 인간 이해력의 한계와, 인간의 몸이 부여받은 적응력을 동시에 믿기로 했다.

별만 환하게 빛나는 깜깜한 밤, 뒷산에 마련한 텃밭에 아들과 함께 올라서서 부자방뇨(父子放尿)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아들이 밟고 올라 설 수 있는 작은 의자를 좌변기 앞에 가져다 놨다. 서서할 수 있을 때, 서서해라,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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