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게시판입니다.
Date 20/08/19 01:12:31
Name   [익명]
Subject   의대생인데 너무 불안합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본과 다니는 학생입니다. 홍차넷 자주 눈팅하는데, 의료인분들이 많다고 느껴서 질문해요. 제가 어디엔가라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글이 길고 너무 개인적이긴 해도 그냥 이런 놈도 있구나...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니면 마지막 문단에 대해서만 답변해주셔도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어릴때부터 잘 긴장하는 스타일이었다가, 나름 커가면서 멘탈이 강해지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작년 말에 프레셔가 많은 상황에서 한번 크게 두려울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심장이 계속 쿵쾅거리고 진정이 안되서 시험기간 일주일동안 잠을 못 드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동안은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이 마음을 설득하면 몸이 저절로 따라오는 모양새였는데, 마음이 진정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왠지 계속 진정이 안되고, 나아가 마음이 진정되도 몸이 진정이 안되는 상황이었어요. 다행히 방학하자 바로 멎더군요. 스스로 겨우 시험때문에 이랬나하고 한심했습니다.

 그러다 올해 초에 또 불안할 일이 있었고 그 때도 5일정도 긴장이 멈추질 않아서 일상 생활이 살짝 안되었습니다. 현실에 없는 것 같고, 다른 것에 집중하기 힘들고요. 책을 읽거나 사색하거나 하는 고등한 활동이 안되다보니, 인터넷보기처럼 단순한 일만 하곤 했어요. 두 번 다 머리로는 크게 긴장할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 설득하는데, 그게 잘 안되서 일상 생활 내내 초조하고 불안한 기분으로 보냈습니다. 이것 역시 어쩌다 보니 멎더군요.
 다음 학기(올해 봄학기)로 넘어오자 첫 두 번처럼 강렬하고 생활이 안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조금씩 초조하고 불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항상 그러는건 아니고 괜찮을 때는 나름 괜찮아서 언젠간 나아지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학기 마지막에 몰아서 시험을 보다 보니 평소같으면 잠시 기분나쁘고 넘길 생각, 또는 들은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더라구요. 평소에는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여겨지고 불안의 대상이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조금이라도 기분이 안좋아지거나 불안해지는 말이 나오면 혼자 있을 때 계속 불안해서 집중이 안되다 보니, 나중에는 아예 사람들을 피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저 스스로도 이건 내가 맞서야 한다, 적응해야한다고 계속 생각했는데, 당장 공부가 안되니 일단 이번 시험기간만 넘기자... 라는 생각으로 그랬던 것 같아요. 두근거리고 소화가 안되서 밥도 잘 못먹고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코로나때문에 사람을 거의 못만나고 혼자 지내가보니 생각해보니 우울증이 왔었던것도 같고, 연계되어서? 불안해지고 한 면도 있었던 것 같네요.

 여름방학에는 불안의 대상이 확 늘었어요. 이전에는 눈앞의 일에 불안해해서 그 일만 처리하고 견디자...라는 마음이었고 실제로 그 불안의 대상이 사라지면 불안도 사라졌는데, 이제는 불안의 대상이 갈수록 늡니다. 주위에서 조금이라도 나에게 위협이나 안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싶으면 그 대상에 대해 엄청나게 불안해지고 주위에 집중이 안되고 놀러가서도 즐기질 못하더라고요. 즐겁자고 놀러가서 뭔가를 할 때는 그래도 괜찮은데, 편히 쉬고 싶을 때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때는 항상은 아니지만 종종 너무 불안해졌고 전혀 즐기지 못하고 그럴 때 너무 괴로웠습니다. 진심으로 즐거워야 할 순간에 불안하거나, 심지어 불안하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질 때 정말 자괴감이 들었어요.
 또 막연한 미래에 대해서도 갑자기 불안해지더라구요.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넘겼던 일인데도요. 가고싶은 과에 못가면 어쩌나, 하고 싶은 일을 못하면 어쩌나 하는, 지금 걱정해봤자 아무 도움도 안되는 일 그리고 초연해지고 싶은 일에 대해 불안해지니까 답이 없더군요. 그런 불안이 지속되니까 이제는 계속 앞으로도 이렇게 불행하게 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런 생각에 더 불안해지고, 좋아하는 일정이 생겨도 두근거리지도 않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삶이 막막하고 어떻게 이런 일에 대해 불안해하나 싶고 스스로 망가진 기분이 너무 많이 들어요. 분명 충만하고 멋진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감도 넘치고 그랬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도 불안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지 않은 날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전형적인 성적 스트레스에 고통받는 모범생....느낌인데, 솔직히 이러기 전에는 스스로 주위에 비해 성적이나 미래에 대해 쿨하다고 느꼈고 그런 스스로에 만족했었어요. 미래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지금 걱정하는 건 불행해지기만 하고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점, 심지어 그 미래를 제가 딱히 간절히 원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데, 몸은 생각에 따라와주질 않네요. 불안한게 습관이 되버려서 어떤 대상에 대해 처음에는 습관적인 불안이었는데, 이제는 서서히 그 대상 자체가 진짜로 두려워지는 기분이에요. 그렇게 겁이 많은 편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해 겁내는 사람이 될 것 같아요.
 분명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조금 불안하거나 막연하게 기분나쁜 일이 있어도 다른 일 하면서 쉽게 잊어나가는 법을 알았는데, 요즘에는 그런 기전이 작동이 안되고 작은 불안에 계속 매여서 큰 불안이 됩니다. 그리고 어느새 그 불안에 계속 종속되고요. 

 주위 사람들한테 털어놓는 건 부담되고, diazepam계열 안정제를 처방받아서 먹어봤더니 머리가 멍해지기만 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불안한 데는 별 효과가 없더군요. 사고 회로 자체가 어떻게든 불행하고 안좋은 쪽으로 생각하도록 변해버린 것 같아서, 어떤 약을 먹거나 상담을 받는다고 해도 나아질 지 의문이 들어요. 처음에는 불안의 대상을 없애거나 없어질 때 까지 기다렸는데, 이제는 제가 불안의 대상을 끊임없이 만드는 단계라는 걸 깨달아서 정말로 정말로 병원에 가볼까 생각이 듭니다.
 정신과에 대해서 조금 알아봤는데, 나중에 인턴하고 레지하고 할 때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이제 괜찮다...하는 내용의 소견서를 제출을 해야한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라 정확한 건 아닌데, 의사가 되는 데는 적어도 기록 열람은 한다고 들었어요. 여기저기서 요새는 불이익 별로 없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실제로 치료를 받아본 친구에게 들어보니, 생각보다 이런저런 제약이 있더라하는 소리도 들었구요. 불안에 대한 치료를 위해 불안의 대상을 늘리는 기분이 들어서 최대한 피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앞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기록 하나 남겨서 뭐 어떠랴 하는 생각과, 스스로 괜찮아질 수 있을텐데 비가역적인 일을 해서 후회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단 다른 방법들을 최대한 시도한 후 정신과에 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고싶은 질문으로는
1.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인턴, 레지 선발이나 그 이후에 그 기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불이익이 있다면 어느 정도일지. 분명 본다고는 들었기 때문에, 안심시키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냉정하게 어느 정도인지가 정말 알고 싶습니다.
2. 정신과 진료 이외에 내과나 다른 병원에서 불안함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SSRI 말고 다른 병원에서 처방 가능한 약으로 고칠 수는 없는지. 배울 때는 SSRI말고 buspirone이나 이런 약들도 항불안효과가 있다고 배운 것 같은데, 전부 정신과에서만 처방 가능한지.
3. 병원에 가는 것 외에 일단 심리상담을 받는다거나, 조금만 더 혼자 버티거나 하는 식으로 다른 시도해볼만한 방법은 없는지. 자연적으로 나아질 가능성은 없는지.
4. 1~3번을 통해 약을 먹거나 치료를 받고 노력하면 불안 증상이 없던 때로 돌아갈 수 있을지가 궁금합니다.
 제일 두려운 상황은 1번을 시도했는데도 나아지지 않는 경우네요. 지금은 왠지 어떤 약을 먹어도 불안하면 어쩌나 계속 신경쓰다가 금세 도로 불안해질 것 같아요. 정신과가 어찌보면 최후의 보루인데, 정신과를 가도 치료가 안되면 정말 정말 정말 절망할 것 같아서 가기를 망설이는 면도 있습니다.

분명 여기저기서 글 잘쓴다는 소리 많이 들었는데, 불안한 상태에서 쓴 글을 보니까 앞뒤도 안맞고 개판이네요 에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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