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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2/04/19 13:00:37
Name   카르스
Subject   현대 청년들에게 연애와 섹스가 어렵고 혼란스러운 결정적인 이유
현대 사회는 고소득화, 합리주의화, 대도시화, 온라인 및 비대면화되어가고 있고, 그 속에서 전통공동체들이 쇠퇴하고 시장경제에 기반한 이익사회로 하나둘씩 대체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연애와 섹스는, 본능과 밀접하면서도 시장화되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는 유일한 활동입니다.
현대 청년들, 특히 남성들에게 연애와 섹스가 어렵고 혼란스러운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흔히 저성장, 경제적 불안정성, 젠더구도 변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시장경제의 확산과 전통적인 행위들의 상대적 쇠퇴라는 큰 흐름도 있다고 봅니다.

시장경제에서 다른 재화와 서비스들은 만족스럽지 않다 싶으면 가격이라는 가치 조정을 통해 초과수요나 초과공급이 없어지는 시장 청산이 용이합니다. 하지만 연애와 섹스는 돈을 주고 하는 행동이 아니므로, 시장 청산 과정이 어렵거나 오래 걸립니다. 개개인의 인격적인 활동을 통해 직접 조정해야 하거든요. 연애 시장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실제로 경제원리로 연애를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흔히 접하는 경제학 원론에서 전제하는 완전경쟁시장보다 양상이 훨씬 복잡합니다. 예를 들어 연애시장에서 개개인은 외모, 재력, 성격, 화술 등 내부적 재화의 차별화가 많이 되어있다던가(수평적 특화), 연애상대를 구하는 데 소속 공간의 제약이 크게 작용한다던가(거래비용), 연애가치로서 개개인에 대한 평가가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던가(시간에 따른 선호변화 - 아실 분은 알겠지만 미시경제학의 현시선호 이론이 어긋나는 주요 이유입니다) 등등. 물론 이 권리를 돈으로 사는 방법도 있지만, 법으로 금지되거나 허용되더라도 매우 터부시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죠.

요즘 청년들은 시장경제적 사고관에 익숙하기 때문에, (특히 완전경쟁시장에서 가정하는) 시장경제 원리를 벗어난 사회현상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인격적, 감정적 교류에 취약한 남성들. 가끔 넷의 청년 남성들을 보면 연애를 미연시 게임 현실마냥 노력하면 쟁취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공부하면 애인/배우자 얼굴이 바뀐다"고 사회가 가르친 탓도 있지만, 시장경제 멘탈리티에 익숙해져서 타 재화/서비스를 보듯 연애를 바라보는 문제도 있지요. 이들에게 연애라는 서비스의 획득은 스팀에서 게임을 구매하거나 콘서트 티켓을 사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그렇게 접근하기 때문에 연애와 섹스가 어렵고, 상대 여성에게 당혹감을 안기는 일이 많지요.

그러 현실에서 시장경제적 마인드에 젖어있고, 인간관계에 서툰 남성들 입장에선 연애구조가 뭔가 잘못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 법합니다. 거기서 더 흑화하면 혐오와 기괴한 세계관에 휩싸인 인셀 커뮤니티 구성원으로 전락하는 거고요.


그리고 연애와 섹스의 경우 완전 순 인격적 활동이기 때문에 행동의 생산성 증가가 어렵습니다. 보몰이 제시해 유명해진 '비용 질병' 개념처럼, 인격적 활동 자체가 본질인 분야는 시간당 생산성을 높이는게 실질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연애와 섹스의 시간당 생산성을 높이려 시도하는 건 클래식 연주 생산성을 높인답시고 1시간짜리 곡을 20분, 30분만에 연주하는 것 이상으로 그로테스크한 결과가 될 겁니다. 안 그래도 고소득화, 대도시화, 노동시간 감소 등으로 여가문화가 발달하면서 연애와 섹스의 대체재도 많아졌는데, 게임이나 소득활동 등은 기술축적 등을 통한 생산성 증가가 용이해서 상대적인 생산성에서 연애와 섹스가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연애와 섹스는 한계효용 체감법칙에 맞게, 알찬 경험 위주로 과거보다 덜 하게 됩니다. 그래야 다른 활동과의 균형이 맞거든요. 연애와 섹스의 상대적 질이 좋아져도 모자랄 판에, 최근에는 포르노를 따라하는 배려 없는 성행위(특히 여성에게 치명적인), 스토킹(디지털 문화로 더 강화된), 디지털 성범죄, 성범죄 무고 가능성(넷 커뮤니티에서 말하는 급의 리스크는 아니지만) 등 연애와 섹스의 리스크를 높이고 가치를 떨어트리는 요인까지 더해졌기에 더더욱.

그렇게 연애나 섹스는 유보가치(해당 활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효용)가 다른 활동의 생산성 개선과 덩달아 올라가게 되는데, 이는 비용질병 개념에서 예측하는 바와 똑같습니다. 인격적인 활동이 주인 대학 등록금, 연극이나 클래식 표값이 급격하게 오르는 건, 종사자 임금을 생산성 향상이 빠른 다른 분야의 상승률에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활동의 질이 올라가면, 그것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 인격적인 활동인 연애와 섹스의 유보가치도 올라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인격적인 연애나 섹스에 서툴만한 성향의 사람들(특히 남성)은 소외되게 됩니다. 예전이라면 상대가 어지간한 급이 아니면 연애와 섹스를 하는 게 나은데, 지금은 그런 사람과의 연애와 섹스는 리스크도 있고 해서 안 하느니만 못한 경우가 너무 많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연애와 섹스가 점점 사치재 및 과시재 및 자랑거리처럼 인식되게 되고, 연애와 섹스의 의미도 바뀌게 됩니다. 과거엔 다들 하는건데, 지금은 안/못 하는 사람도 많고 하던 사람도 만족스러운 만한 경험 위주로 골라하니까요.

그러다보니 연애와 섹스를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어른들의 장담은 옛날엔 몰라도 지금은 틀린 전언이 될 수밖에 없고, 모두가 연애와 섹스를 위해 죽어라 노력해야 하는 광경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이것이 제가 보는 현대사회 연애와 섹스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특별히 잘못한 집단이나 개인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사회변화의 결과인데, 거기에 적응을 못하고 혼란스럽고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대거 속출하는. 더 큰 문제는 해결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겁니다. 빈부격차와는 다르게, 연애와 섹스는 지극히 인격적인 활동이기에 재분배(...) 같은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결론이 좀 암울한데,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분석글이 별로 없어서 한번 소개차 개인적 생각을 올려봤습니다.

p.s. 타임라인에 펑글로 올렸던 글인데 묻히긴 아까워서 보강해서 티타임에도 올렸습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2-05-03 08:30)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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