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1/05/05 15:12:35수정됨
Name   멜로
Subject   어느 개발자의 현타(2)
저도 최근에 현타를 느낀게 있어서 몇마디 적어보려구요.

회사에서 일할때 이런 분이 있었어요. A라고 할게요.

A가 어떤분이냐면 개발 실력도 꽤 괜찮고, 정치력도 있고, 통솔력도 있었어요. 한 팀의 리드 엔지니어를 맡고 있었고, 정치력도 꽤 쎄서 PM없이 자기가 전부다 통솔했습니다. 무엇보다 인싸력이 상당했어요.

그런데 이 분이 4년동안 있으면서 회사에서 한 프로젝트란 프로젝트는 전부다 말아먹고 떠났습니다. 스톡옵션 행사 기간 4년 채우고 칼같이 퇴사한거죠. 심지어 진행한 프로젝트가..  무슨 IoT, 블럭체인과 같은 신기술 테크놀로지 기반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했고, 여지없이 전부다 말아먹었습니다.

이후에 이 분 팀이 짠 코드를 봤습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룰이랑 스타일 전부다 안지키고 자기 팀만의 생태계를 만들어놔서 회사에서 재사용 가능한 코드가 하나도 없더라구요.

이분은 회사생활한게 아니라 자기 취미생활 돈받고 한거에요. 말이 취미생활이지 그냥 회사에 마이너스만 끼치고 나간거에요. 나갈 때도 곱게 안나갔어요. 여기서도 자신의 인싸력을 십분 발휘해서 실력있는 개발자 싹다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팀의 공중분해와 함께 팀원들의 이직러쉬가 시작됐구요. 제 생각에는 이 때부터 회사의 명운이 기울기 시작한거 아닌가 싶어요.

저는요?

저는 이게 첫직장이고 회사가 기울기 시작하는게 보여서 어떻게든 회사에서 매출을 내기 위해서 직원들을 쥐어짜내는 요구에 흔쾌히 응했어요. 개발인생에서 다시는 설치할일 없는 레드햇 OS 설치하고 정부 가이드라인 보안설정 풀세팅했구요, 대기업의 높으신 분들께 올릴 보고서도 제가 작성했고, 최근에는 회사의 방향성과 잘 맞는 프로젝트도 기획해서 리드 엔지니어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개발을 맡고 있어요. 말이 AI엔지니어지, 잡일을 너무 많이했어요. 제 커리어에서 적어도 1년은 어떻게 지나간건지 모르겠네요. 나갈때 되니까 이력서가 참 초라해져 있는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최근의 연봉협상에서 요구한 연봉을 못맞춰주는 회사에 실망했고, 개발자 연봉 인상 광풍에 물들어올때 노젓자는 마인드로 저도 이직을 결심했습니다. 이 과정 가운데서 개발자로서 연봉협상도 하고, 이직도 하면서 저 자신을 경매에 올려놓으면서 깨달아지는것도 많고, 개발자의 사회생활이란 무엇인가, 성공적인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찰해본적 같아요.

1. 개발자의 사회생활

뭐 여느 사회생활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이기적인게 필요한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개인주의랄까요. 절대로 회사 대표가 [회사를 위해서] 또는 [본인 커리어(실력)이 성장할 기회]라는 말을 하는것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되요. 회사의 성장은 곧 대표의 천문학적인 이득이구요, 실력이 성장할 기회는 곧 힘들고 빡센일에 노출될 기회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꼬우면 스톡옵션 더 주시던가요 ㅎㅎ 님만 성공하고 싶은거 아니거든요 ㅎㅎ.

저 위에 4년동안 프로젝트 말아먹고 칼퇴사하신분이 처음에는 저런 노양심이 다있네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생각이 달라졌어요. 좀 살아보니까 인생은 저렇게 살아야 맞는거구나 싶더라구요. 어차피 저도 임금 노동자이고 제 가치는 제가 받는 연봉이 결정합니다. 회사가 성장한다고요? 그건 대표와 파운딩 멤버들의 가치가 올라가는거에요. 자기 취미생활 하면서 스펙 쌓고, 스톡옵션 행사하자마자 다른 기회 찾아나선 A를 다시보면 참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일을 선택할 때에도 이력서에 몇줄이 남고 다른 회사에서 얼마나 눈여겨볼 경력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일하는게 정답이에요. 회사를 위한 잡일은 받은 스톡옵션 만큼하면 되는거구요.

다른게 아니라 프로페셔널이란 이런거 아닌가 싶어요. 마치 프로 축구팀에서 주전 안시켜주면 칼같이 이적하는 선수들처럼 본인이 1인 기업이라 생각하고 커리어의 다음 스텝을 조심스럽게 결정해야 해요. 요즘 넷플릭스 방식으로 메이저리그 구단처럼 개발자를 고용하고 내보내고 하는 문화를 가져오려는 기업들이 많죠? 그런만큼 우리 개발자들도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프로답게] 자신 본연의 가치를 위해서 살아야해요.

조직에 충성을 하는게 미덕이라 생각하는 부모님 세대랑 지금이랑 많이 달라졌지만, 개발자 사회가 가장 극단적으로 이런 변화를 수용하기 시작한것 같습니다. 그에 맞춰서 발빠르게 변화해야 해요.

2. 왜 인싸력(정치력)이 중요할까

사회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대부분이 인싸인것 같아요. 개발자도 마찬가지에요. 실력은 인싸가 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만큼만 되면 그 이상은 크게 효용이 없는것 같습니다.

회사 입장에서 연봉협상할때 가장 조심스럽게 대우해줘야하는 개발자는 위에 상술한 A처럼 여러 개발자를 밑에 거느리고 있는 개발자에요. 혼자 묵묵히 일 잘하는 실력있는 개발자는 어디서든 구할 수 있어요. 혼자 일하는 테크니션이 나가는건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가 난거지만 정치력을 획득한 리드 개발자가 나가는건 자동차의 엔진이 고장나는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슈퍼맨 개발자도 있겠죠.. 하지만 아무리 슈퍼맨이라도 개발자 10명의 생산량은 못이겨요.

우리 입장에서 연봉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때 대표에게 더 큰 위협이 되는건 회사에서 정치력이 있는 개발자입니다. 잘나가는 메이저리그 야구선수가 말도 안되는 수준의 높은 연봉을 요구해도 구단에서 전전긍긍하는게 보기 힘든 일이 아닌 것처럼 대표도 임금 노동자의 정치력에 따라 충분히 을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갑을 관계를 결정짓는게 실력이 아니라 정치력이에요. 구인을 하는 입장에서도 구직자가 갑처럼 느껴질때가 꽤 많습니다.

좋은 리더(대표)를 만났다면 1인 군주제에서 한가지 목표를 향해 일할수 있겠지만.. 자율과 자기주도성을 중시하는 미국문화가 어줍잖게 우리나라 개발자 시장에 정착한 이상 정치란 항상 존재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자율성이 늘어난 만큼이나 정치도 늘어나는것 같아요. 프로그래밍 언어 잘하는것보다 한국말을 잘하고 커뮤니케이션 잘하는게 훨씬 중요해진것 같아요.



제가 이상한 회사에서 안좋은 경험을 한것일수도 있지만, 어느정도는 공감가는 말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 본인이 생산하는 가치를 절대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개발하면서 고작 내가 이 정도 연봉을 받아도 될까 생각이 들때가 있지만 높으신분들은 다 그런거까지 생각하고 연봉 책정하는겁니다. 요즘 세상은 이기적인 놈이 잘살고, 겸손하면 뒤쳐져요. 저도 이 사실을 깨닫고 현타를 한번 겪었고,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 현타가 누군가에게 양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13
  • 경험과 생각
  • 양분받고갑니다
  • 다른 업종인데 배울 얘기가 많네요. 추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0850 6
14722 일상/생각트라우마와의 공존 6 골든햄스 24/05/31 426 16
14721 스포츠[MLB] 고우석 DFA 1 김치찌개 24/05/31 223 0
14720 음악[팝송] 제스 글린 새 앨범 "JESS" 김치찌개 24/05/31 88 0
14719 게임우마무스메 육성 개론(3) - 전술을 수립하고 룸매치를 통해 최종 점검하자 2 kaestro 24/05/31 123 1
14718 경제뻘 이야기 - 샤넬과 백화점의 대결 4 Leeka 24/05/30 437 1
14717 방송/연예세종과 하이브의 공식 입장문 1 Leeka 24/05/30 441 0
14715 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2) 18 삼유인생 24/05/29 1285 27
14714 여행24/05/28 리움미술관 나들이 Jargon 24/05/28 272 1
14713 게임AAA 패키지 게임의 종말은 어디서 시작되나 8 Leeka 24/05/28 516 1
14712 게임우마무스메 육성 개론(2) - 인자작 없는 육성은 도박이다 6 kaestro 24/05/28 170 0
14711 경제서초구에서 대형마트 새벽배송이 가능해집니다. 9 Leeka 24/05/28 474 0
14710 스포츠[MLB]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 ACL 파열 시즌 아웃 김치찌개 24/05/28 186 0
14709 기타요즘 보고 있는 예능(16) 김치찌개 24/05/27 336 0
14708 오프모임(홍대) 이토준지 호러하우스 전시회 함께해요! 6 바삭 24/05/27 417 1
14707 게임우마무스메 육성 개론(1) - 200만원으로 우마무스메 12/15관을 달성한 비결 16 kaestro 24/05/27 408 1
14706 일상/생각이제 옛날 팝송도 재미있게 공부할수 있을것 같네요. 큐리스 24/05/27 315 2
14705 일상/생각기계 번역의 성능 향상이 번역서 품질의 저하를 불러오지 않았을까 하는 가설 4 nothing 24/05/27 669 2
14704 꿀팁/강좌흔들림 없는 사진을 얻기 위한 적정 셔터 스피드 구하기 18 메존일각 24/05/26 414 7
14703 일상/생각고민게시판이 없네요 / 이혼 고민. 15 냥냥이 24/05/26 1218 0
14702 일상/생각아직은 아들놈도 귀여운 나이입니다. 큐리스 24/05/24 549 5
14701 음악[팝송] 자라 라슨 새 앨범 "VENUS" 김치찌개 24/05/24 119 0
14699 일상/생각와이프한테 핫스팟 얘기했다가 ㅋㅋㅋㅋㅋ 17 큐리스 24/05/23 1385 2
14697 경제부산은행 카드 추천합니다. 4 흰긴수염고래 24/05/22 508 1
14696 게임공격, 수비, 죽음을 중심으로 살펴본 게임 속 두려움의 활용 kaestro 24/05/21 399 2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