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2/10 20:44:59
Name   givemecake
Subject   심한 편식인으로서 드리는 말씀
아래 편식 아동에 대한 걱정 글이 있길래 써보는, '편식하는 아동' 출신의 이야깁니다.


1.

사실 편식은 웬만해선 못 고친다고 봅니다. 트라우마가 남건 어쨌건 패서 고치려면 고칠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건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남기게 되죠.

바로 제가 그런 케이스..... 인데다가 편식도 못 고쳤습니다.(뭐 이건 유전적인 영향도 있지만)

편식 아동 출신으로서(...) 드리고 싶은 말은, 먹으라고 압박하면 더 먹기 싫어진다는 겁니다.

특히 [너 안먹으면 이거 버려야 돼! 빨리 먹어!] 같은 말은 '지금 나한테 음식 쓰레기를 먹이려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할 때도 있습니다.

주로 음식의 퀄리티가 심하게 낮고, 부모님이 (자식이 보기에)이상할 정도로 압박을 주고 있을 때 드는 생각이죠.(...)

물론 이성적으로는 '아까우니까' 라고 이해를 합니다만, 감정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정말 짜증나는 이야기였죠.

이렇게 한 번 엇나가기 시작하면 답이 없습니다.(...) 자존심으로라도 안먹게 돼요.

지금도 부모님과 음식 때문에 많이 싸웁니다. 그나마 제가 어릴 때부터 '짜증나니까 신경 끄세요. 나 먹을 건 내가 해서 먹을 거니까' 라고 말하고 실천한 덕분에 분란이 많이 줄어든 거죠.(...)


2.

제가 유일하게(...) 편식을 고친 사례가 '굴' 인데요.

하도 편식이 심하고 가리는 게 많아서 부모님이 포기를 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친척들과 바닷가에 놀러갔는데 바위에 석화(굴)가 잔뜩 붙어있더군요.

그래서 부모님과 친척 어르신들이 그걸 캐서 불에 구워 드셨습니다.

물론 전 아예 부를 생각도 안 하셨습니다. 왜냐면 편식이 더럽게 심해서 안 먹을 거라고 미리 생각하셨던 거죠.

실제로 먹을 생각도 없었고요.

그런데 다 먹고 또 굽는 모습을 보니 괜히 호기심이 생겨서 하나 먹게 됐고, 그리고 지금까지 잘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제가 굴을 먹는 걸 보더니 다시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시더군요.

.......대판 싸웠습니다. 비위 상해서 못 먹는 음식을 자꾸 먹이려고(너 굴도 먹게 됐는데 이건 왜 못 먹어?) 하셔서 말이죠.

그리고 그 음식은 절대 안 먹습니다. 먹으라고 지나치게 압박하길래, 정신병 걸릴 것 같아서 그 자리에서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려고 한 적도 있죠.(...)

때문에, 먹이려고 하지 말고 먹고 싶어지게 하시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전 제가 굴을 먹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거든요.
(물론 지금도 비린내가 나면 못 먹습니다. 애초에 처음 굴을 기피하게 됐던 것도 비린내 때문이었던지라......)



3.

드리고 싶은 말씀은

못 먹고 안 먹는 거 억지로 먹이려고 하지 마세요.

영양 결핍이 걱정되면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음식(그럭저럭 먹는 것)을 주시면 됩니다.

편식을 안 하시는 분들은 이해하지 못하시겠지만(...) 억지로 먹이려고 하면 애 정신에 심각한 악영향을 줍니다.




추가.


사실 맛이 없어서 음식(식재료) 종류를 가리는 일은 드뭅니다.(...) 같은 식재료도 요리를 잘 하면 먹거든요.

하지만 정말로 못 먹는 음식은 존재합니다. 저처럼 유전적인 이유라거나, 아니면 비위가 심하게 약해서 남이 감지 못하는 악취(...)나 비린내 등을 느끼고 못 먹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식감이 기분 나쁘거나요.

이걸 이해하지 않고 억지로 먹이려고 하는 건 정말 큰 문제라고 봅니다.

'음식 가리지 마! 먹어!' 라고 하기 전에 '왜 안 먹니?' 정도는 물어봐주세요.
이유를 알면 대응할 방법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4
  • 같은 편식인으로서 반가운 글입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0640 6
14624 일상/생각5년 전, 그리고 5년 뒤의 나를 상상하며 4 + kaestro 24/04/26 284 1
14623 방송/연예요즘 우리나라 조용한 날이 없네요 4 + 니코니꺼니 24/04/26 521 0
14622 IT/컴퓨터5년후 2029년의 애플과 구글 아침커피 24/04/25 307 0
14621 기타[불판] 민희진 기자회견 61 + 치킨마요 24/04/25 1589 0
14620 음악[팝송] 테일러 스위프트 새 앨범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 김치찌개 24/04/24 131 1
14619 일상/생각나는 다마고치를 가지고 욕조로 들어갔다. 8 자몽에이슬 24/04/24 582 17
14618 일상/생각저는 외로워서 퇴사를 했고, 이젠 아닙니다 18 kaestro 24/04/24 1114 17
14617 정치이화영의 '술판 회유' 법정 진술, 언론은 왜 침묵했나 10 과학상자 24/04/23 807 9
14616 꿀팁/강좌[해석] 인스타 릴스 '사진찍는 꿀팁' 해석 20 *alchemist* 24/04/23 674 14
14615 경제어도어는 하이브꺼지만 22 절름발이이리 24/04/23 1396 8
14614 IT/컴퓨터re: 제로부터 시작하는 기술 블로그(1) 2 kaestro 24/04/22 347 1
14613 음악[팝송] 밴슨 분 새 앨범 "Fireworks & Rollerblades" 김치찌개 24/04/22 112 0
14612 게임전투로 극복한 rpg의 한계 - 유니콘 오버로드 리뷰(2) 4 kaestro 24/04/21 333 0
14611 사회잡담)중국집 앞의 오토바이들은 왜 사라졌을까? 22 joel 24/04/20 1232 30
14610 기타6070 기성세대들이 집 사기 쉬웠던 이유 33 홍당무 24/04/20 1560 0
14609 문화/예술반항이 소멸하는 세상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소녀들 5 kaestro 24/04/20 686 6
14608 음악[팝송] 조니 올랜도 새 앨범 "The Ride" 김치찌개 24/04/20 128 1
14607 요리/음식드디어 쓰는 쌀국수 투어 모음집 2편 15 kogang2001 24/04/19 391 8
14606 요리/음식드디어 쓰는 쌀국수 투어 모음집 1편 4 kogang2001 24/04/19 364 10
14605 게임오픈월드를 통한 srpg의 한계 극복 14 kaestro 24/04/19 551 2
14604 일상/생각개인위키 제작기 6 와짱 24/04/17 822 12
14603 정치정치는 다들 비슷해서 재미있지만, 그게 내이야기가 되면... 9 닭장군 24/04/16 1266 6
14602 오프모임5월 1일 난지도벙 재공지 8 치킨마요 24/04/14 787 2
14601 꿀팁/강좌전국 아파트 관리비 조회 및 비교 사이트 11 무미니 24/04/13 901 6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