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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7/01 19:05:25
Name   Raute
Subject   필드 위의 염소와 망아지
해외축구 좀 본다는 사람 치고 제라드 vs 램파드 떡밥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00년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두 미드필더는 잉글랜드의 자랑이었지만 정말 더럽게 안 맞는 호흡으로 유명했죠. 두 사람의 공존은 축구팬들의 오랜 떡밥이었으며, 둘 중 누가 더 나은 선수인가에 대한 논쟁은 여기든 현지든 신나게 치고박고 싸우는 필수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런 라이벌리가 옛날에도 하나 있었으니 서독의 플레이메이커 자리를 두고 다툰 볼프강 오베라트와 귄터 네처가 그 주인공입니다.

분데스리가에는 동물을 마스코트로 쓰는 구단이 있습니다. 쾰른 성당으로 유명한 FC 쾰른은 1950년부터 숫염소를 마스코트로 삼고 있는데 지금은 아예 엠블럼에 염소를 집어넣고 있습니다. 쾰른의 마스코트는 대대로 헤네스라는 이름을 물려받는데 현재의 마스코트는 헤네스 8세입니다.



그런가 하면 묀헨글랏드바흐는 망아지를 마스코트로 두고 있는데 평균연령 21.5세(!)의 선수단 때문에 얻은 별명이 바로 망아지였거든요. 여기는 윈터(사실 발음은 윤터에 가깝습니다. 움라우트 ㅠㅠ)라는 친구가 탈 쓰고 돌아다닙니다.



두 팀 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연고지를 두고 있는데 그 위치가 굉장히 가까워서 자연스럽게 라이벌 의식이 생겼죠. 보통 라인 더비라고 부르는데 합이 맞는 더비가 별로 없는 분데스리가에서는 보기 드물게 불꽃 튀는 더비 중 하나죠. 근데 이 두 팀의 역대 최고 선수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합니다. 오베라트가 43년생, 네처가 44년생이거든요.

오베라트는 10대 시절부터 전도유망한 선수로 여겨졌고, 당시 서독 최고의 팀이었던 쾰른으로 스카웃됩니다. 오베라트가 20살이 될 무렵에 프로리그인 분데스리가가 시작되는데 첫시즌 우승팀이 쾰른이었고, 오베라트는 주전으로 맹활약하면서 독일의 미래로 주목받습니다. 22살의 나이로 국가대표 한 자리를 꿰차 월드컵 결승전을 밟았고(비록 오심 논란 속에 준우승에 그쳤지만) 당시 국가대표 감독이던 헬무트 쇤의 지지를 받으며 서독의 핵심선수로 활약합니다.


보라 저 빛나는 이마를

네처는 나이도 1살 어리겠다 소속팀인 글랏드바흐가 2부리그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오베라트보다는 조금 늦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내 팀의 중심선수로 두각을 나타냈고, 분데스리가에서도 손꼽히는 플레이메이커로 자리잡습니다만 국가대표팀하고는 인연이 없었는데 당시 서독은 2명의 미드필더를 기용했고 그 유명한 프란츠 베켄바우어와 이미 맹활약하고 있는 오베라트만으로 자리가 꽉 찼기 때문입니다(베켄바우어는 리베로로 유명하지만 국가대표팀에서는 미드필더로 꽤 오래 뛰었습니다). 한 번 두 사람을 같이 써볼까 해서 테스트를 해봤는데 알바니아 원정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고 유로에서 탈락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맞이했죠. 그 이후 친선경기 몇 번 굴려보고 네처는 버림받습니다. 서독이 3명의 미드필더를 기용하는 동안에도 네처는 차선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오 오베라트만 아니었어도

하지만 분데스리가의 판도가 변하면서 이들의 관계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베라트가 정상급 선수인 건 분명했지만, 소속팀인 쾰른이 그 수준에 못 미치는 팀이 되어버린 거죠. 1969년에는 강등 직전에서 오베라트의 골로 겨우 잔류에 성공했고, 1970년에도 오베라트가 커리어 최고의 활약을 펼치지만 4위에 그쳤습니다. 그 와중에 새로 패권을 장악한 팀은 네처의 소속팀 글랏드바흐였죠. 사정이 이렇게 되자 언제까지 오베라트만 고정적으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네처는 자기 차별한다고 국가대표팀 은퇴하겠다는 선언까지 했었고요. 쇤이 네처를 달래면서 오베라트의 입지가 위험해지나 싶었는데 오베라트에게는 다행히도 네처가 부상을 당하면서 월드컵은 오베라트가 출전합니다. 물론 환상적인 퍼포먼스로 대회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었고요. 월드컵 이후 오베라트는 주장 자리를 물려받습니다.


이 구역의 플레이메이커는 나라고

그래도 네처가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건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글랏드바흐는 최초로 분데스리가 2연패에 성공했고, 지금의 챔피언스리그인 유러피언컵에서 이탈리아 챔피언 인테르를 7:1로 대파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강팀이었거든요. 자연스레 글랏드바흐의 선수들이 국가대표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뵈켈베르크(홈구장 이름이 뵈켈베르크슈타디온)의 왕'이라고 불리던 네처를 외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도 산드로 마촐라와 지아니 리베라라는 위대한 두 선수 때문에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었는데 이탈리아는 두 선수를 교대로 뛰게 하는 방법을 택했고, 서독은 다시 한 번 둘을 같이 뛰게 하는 걸 선택합니다. 그러나 역시 실패, 베켄바우어를 다시 미드필더로 쓰면서 균형잡힌 3미들을 추구했으나 이 역시 시원찮았고 오베라트가 부상당하면서 강제로 네처의 원맨쇼가 시작됩니다. 이후 경기마다 네처는 천재성을 발휘했고, 오베라트는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고요. 오베라트를 위로 끌어올리면서까지 어떻게든 공존시켜보려 했지만 죄다 실패했죠. 결국 오베라트가 계속 부상으로 고생하는 동안 네처는 확고하게 입지를 다졌고, 유로1972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베켄바우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슈퍼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어이쿠 유로 트로피는 이런 맛이네

그렇다고 오베라트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습니다. 네처는 계속 잔부상 때문에 A매치를 거의 다 놓쳤는데 그때 제일 먼저 부름을 받은 게 오베라트였거든요. 비록 예전같이 빛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재기의 발판이라도 있는 게 어디였겠어요. 물론 치욕은 계속되었습니다. 1973년 독일컵 결승전은 정말 드라마틱한 경기였는데 하필 쾰른과 글랏드바흐가 만난 거죠. 다만 두 사람이 직접 맞부딪치지는 않았는데 오베라트는 당연히 선발로 나왔지만 네처는 스페인으로의 이적 문제로 감독과 싸우고 벤치에 앉아있었거든요. 후반에 오베라트가 부상으로 교체될 때까지도 네처는 벤치에 앉아있었습니다. 사실 몸이 달아오른 바이스바일러 감독은 후반에 네처를 집어넣고 싶었는데 네처가 쿨하게 씹어버렸고, 어쩔 수 없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연장전이 시작되더니 네처가 재킷을 휙 던져버리고 나 들어간다? 이러고 들어가더니 결승골을 넣습니다.

NuRi's Tools - YouTube 변환기

1분 10초부터 보세요. 사실 저 골 뽀록이었다고 합니다.

네처는 만화처럼 팀을 우승시키고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버립니다. 하지만 이게 오베라트에게 오히려 기회가 되었죠. 네처는 굉장히 자아가 강한 사람이었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적응하지 못할 거란 말이 많았는데 진짜 그랬거든요. 그리고 하필 이때가 바로 1973/74시즌으로 월드컵 직전이었습니다. 당연히 폼이 엉망이 된 네처를 그냥 믿고 갈 수는 없었고, 쇤 감독은 베켄바우어를 부릅니다.

'어떡하지?'
'오베라트 써'
'정말?'
'오베라트 쓰라니까'
'진짜 쓴다?'

그렇게 베켄바우어의 조언을 받은 쉔은 오베라트를 쓰기로 합니다. 확실히 몇 년 전만큼 엄청난 활약을 해준 건 아니지만 어쨌든 견실한 플레이로 팀에 큰 도움이 되었거든요. 결국 네처는 딱 1경기, 동독전에서 교체투입된 게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이었고 오베라트는 스웨덴전에서 무쌍을 찍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월드컵 우승자가 됐습니다.



둘 다 월드컵과 함께 국가대표에서 은퇴했고, 몇 년 뒤 선수생활도 마무리 짓습니다. 원래 오베라트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려 했으나 부인이 반대하여 취소하고 결국 쾰른의 원 클럽맨으로 남습니다. 네처는 스위스로 갔다가 은퇴하고 함부르크의 단장으로 컴백하고요.

이 두 사람의 라이벌리가 재밌는 게 은근히 비슷한 거 같으면서 좀 다릅니다. 불같은 성격에 본인이 공을 쥐어야했고, 팀원들을 갈구는 타입이며 유럽에서 손꼽히는 천재형 플레이메이커였다는 게 공통점입니다만 네처는 자기한테 맞춰줘야 했고 오베라트는 자기가 좀 맞춰주기도 했습니다. 네처는 이적으로 인해 커리어가 꼬였고, 오베라트는 끝내 원클럽맨으로 남았고요. 네처는 본인이 원투패스를 하든 돌파를 하든 직접 파고들어서 해결하는 걸 좋아했고, 오베라트는 역시 해결할 능력이 있었지만 그래도 동료들을 최대한 이용하는 편이었습니다. 신기한 게 이런 관계면 사이가 굉장히 나쁠 법도 한데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는 제법 좋았다고 합니다. 쇤 감독이 두 사람의 공존을 시도했던 것도 두 사람이 사이가 나쁘지 않아서였다고.

덧붙여 두 사람이 은퇴한 연도가 같은데 오베라트는 신임 감독과의 불화로 은퇴했습니다. 근데 그 감독이 네처랑 사이 나빴던 바이스바일러 감독입니다. 바이스바일러는 네처, 오베라트, 그리고 요한 크루이프 세 사람과 싸운 명장으로 남아있습니다. 재밌는 거 하나 더. 쾰른의 마스코트 이름 헤네스는 이 바이스바일러 감독의 이름인 헤네스 바이스바일러에서 나왔습니다. 바이스바일러가 쾰른 출신이거든요.


예전에 타 사이트에 올렸던 글을 정리, 수정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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