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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2 04:51:11
Name   마네
Subject   응급실에서 일합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홍차넷 들어와 AMA 게시판을 훑어보고 나니,
여러 유저의 질문을 통해 뭔가 생각할 거리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 AMA에 한 번 도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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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양말
가장뿌듯했을때는 언젠가요
입원을 할 때든, 응급실 처치만으로 귀가를 할 때이든, 환자나 보호자에게 고맙다는 말 들을 때입니다.
응급실은 가장 불편한 상황에서 찾는 곳이기 때문에,
겪는 모든 상황이 불편하고 때로는 불친절하게 느낄 수 있다는 걸 이해하고 있기에,
고맙다는 이야기 듣기 참 힘들기에 그 때마다 뿌듯합니다.
다람쥐
응급의학과를 선택하신 계기가 있을까요?
실습학생때는 마냥 이 과 저 과 다 멋져보였는데,
먼저 공중보건의사로 복무하며 가만히 지켜보니 느껴지던 이런저런 현실과 제 성향을 맞춰가다보며 한 과 한 과 지워나가다보니 선택지에 남은 2~3개과 중 가장 제 성격과 맞는 거 겉은 과를 골랐습니다.
잘살자
조심스럽지만 혹시 응급의학과 선택을 후회하신 적도 있으신가요?
거의 날마다 죽음을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 좀 힘이 빠집니다.
근무 빡세게 하고 쉬는 텀이 긴 편인데, 예전엔 그게 마냥 장점으로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게 다 번아웃 될때쯤 숨통 틔우기 위한 비상구로 느껴지네요.
잘살자
그렇겠네요. 삶의 경계선을 매일 본다는 게 정말 힘들겠네요. 저 같은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분이네요. 그걸 매일 견디며 응급환자들을 지켜주시는 모든 분들께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응급실 간호사들은 정말 고통받으며 일하고 있습니다. ㅠㅠ
1
torpedo
가끔 이 일을 선택한거에 대한 후회가 드실때도 있으신가요?
위 질문과 비슷하면서 조금 결이 달라서 추가로 답변드리자면,

제가 진행한 고소고발이 5건 있었습니다.
모두 주취자에게 폭언폭행을 당해 신고한 건이었고, 두 건은 합의, 세 건은 합의 없이 형사처벌(벌금형 등) 진행됐습니다. 심지어 한 건은, 주취폭행을 저질러놓고는 자기를 진료거부했다며 맞고소가 들어왔었지요.

예전엔 이런 근무환경이 힘들었는데...

진료행위 중 발생한 과실에 대한 형사처벌 및 법정구속건이 잦아지면서, 중환 볼 때면 작두 위에서 탭댄싱하는 거만 같습니다.
잘살자
어휴....
몇 번 응급실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술에 취한 환자들이 들어왔고 큰 소리가 났던 기억이 있네요.
그나마 응급의료법이 강화된 이후엔 경찰들이 띄엄띄엄 처리하지 않는 게 나아진 점입니다.
1
사나남편
한분더 계셨네요.
둘짼가요? 셋짼가요?
1
아 네...
안양 비산사거리에서 주운 말티 첫째 주비
부산 금정구 오피스텔 건물에서 집으로 들어온 삼색냥 둘째 다비
포인핸드로 평택 유기견보호센터에서 데려온 셋째 포비
어쩌다보니 환자분에게 분양받은 까만냥 넷째 까비

키우고 있습니다.
4
Caprice
둘째가 다비라니...이모님?

둘째 넷째입니다~
1
일주일에 몇시간이나 근무하시는거예요?
제 계약의 스케쥴을 평균으로 따지면 주 30시간 가량입니다만 이 중 70%는 야간근무입니다. 나머지 30%의 주간근무는 토일공휴일입니다.
2
딱히 질문은 아닌데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어제 응급실을 갔더니 평소의 응급실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환경이 힘드신게 보여서 힘내시라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어떤 일로 가셨는지는 모르지만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격려 감사합니다. 간호사와 원무 보안직원 및 모든 인력들은 정말 지쳐가고 있어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ㅠㅠ
사악군
법정 증언경험있으신가요?

약1년전 환자에 대해 질문한다 하면 답변할만큼 기억하실 수 있을까요?
증언경험은 있으나, 의료행위에 관한 건이 아닌 응급실 폭행 피해의 건이었습니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한 건이라면 계속 리마인드를 하기에 증언에 무리가 없지만, 그냥 별다른 이벤트 없이 그저 1년 전에 진료한 환자의 건이라면 의무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닉이 낯익은 것 같네요
피지알에서 같은 닉으로 활동하시던 분이신가요?
네 그리고 여전히 같은 닉입니다 ㅎㅎㅎ
선생님 화이팅!! 몇살까지 당직서고 밤샐수있을까요? ㅎㅎ
전공의 때 여기저기서 다들 50 얘기 하실 때 에이 설마 했는데, 이젠 ㅇ ㅏ 50까지만이라도 무탈하게 버티자는 생각 뿐이에요 ㅠㅠ
Caprice
혹시 카디오가 미우실 때는 없으신가요 ㅎㅎㅎ
전공의 저년차때는 좀 그런게 있었지만 이런저런 일 어느정도 겪고 난 3년차때부터는 열정적안 스태프와 그 밑에서 태워지는 전공의들 모두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습니다. 어쨌든 각자가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방향으로 일하다 일어나는 마찰은 언제든 있을 수 있으니...
가장 상태가 안좋았던 환자는 어떤 상태였나요?
수없는 죽음을 제 손으로 선언했지만 (말이 좀 이상한데 담백하게 써도 이렇게밖에 표현이 안되네요 ;;)...

수 년간 진행된 병증으로 인해 손 쓸 수 없는 지속적 위장관출혈로 말 그대로 서서히 산 채로 몇 시간에 걸쳐 돌아가셨던 환자, 그리고 자전거 대 차사고로 죽었다 살았지만 이내 세상을 떠난 환자와 그 보호자 건이 종종 떠오릅니다.
뭔가 안좋은 기억 떠올리게 한것같아 죄송하네요... 항상 감사합니다!
제가 사망선고를 하는 분들께는 사후처치를 도우며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리곤 하는데, 일이면서 일상이긴 합니다만 참 가끔은 못 견딜 거 같은 날이 있습니다.
1
바닐라
여가시간(이 있다면)을 어떻게 보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이게 참 문제입니다. 요샌 드라이브를 즐겨합니다만, 산책도 하고 싶고 좀 걷고 싶어요.
바닐라
가장 하고 싶으신 건요?
햇빛 쨍할 때 산 타고 싶습니다~
무더니
리버풀 팬이신가요?
제가 주로 쓰는 영문아이디를 축약한 한글닉네임입니다.
whenyouinRome...
마리오네트는 아니겠죠??
작년 난생 처음으로 응급실 방문했을 때, 정말 아파서 간거지만 이런걸로 와도 되나 싶어서 죄송했던 기억이 나네요.
늘 수고해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응급실 오는 사람들 중 주취자 비율이 얼마나 높은지가 궁금하기는 하네요.
예전엔 '왜 못 참고 이런거로 오나' 하는 생각 종종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아픈거 역시 응급상황이니까요.

정말 불편하신 분들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마음 속에서 못된 취급하게 만들 정도로, 주취상태가 아니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로 119 타고 내원해 응급실 접수실부터 쑥대밭 만드는 주취경증진상환자들이 진짜 문제이지요.

전공의 트레이닝 받은 병원은 지하철 5개역 연속 환락유흥번화가가 이어진 곳에 있던 곳이라, 심야 성인환자의 1/4~1/3은 주취자였던 거 같습니다. 지금 일하는 곳은 그나마 덜하지만, 어제도 한따까리 했네요 (...)
밀란쿤
수고많으십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50살 즈음 넘어가서 당직 안서게 되면
보통 어디로 옮겨서 일을 하나요? 아니면 빠른 은퇴?!
개업 또는 오래 봉직한 병원의 데이 전담을 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인 거 같습니다. 하지만 워낙 젊은 과라 아직 으르신들이 많진 않아서... 전 어떻게든 버텨볼까합니다. 밤새는 게 체질이긴 해서...
타마노코시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
제 가족 중에서도 응급의학을 하고 있어서 옆에서 볼 때 많이 힘들어보입니다.
만약 가정과 일을 병행해야한다고 했을 때 응급의학과에서는 어떠한 곳에 취업이 가능할까요?
어느 바닥이나 그렇듯 일의 강도와 페이는 비례하는데, 낮밤근무 1인근무위주 2인오버랩근무위주 서울수도권지방 등등 그 옵션이 매우 다양한 편인 게 장점인 거 같습니다. 저 역시 가정과 일을 병행중이라...
happybirdday
주취 환자 (경증) 대처 팁 있으면 알려주세요
지나가던선비
진짜로 심폐소생술이건 뭐건 하는 환자 옆에서 쟤는 어차피 죽으니까 내 까진 흉터좀 봐줘요 하는 사람이 있나요

최근 가장 오랜 기간 쉰 날이랑 기간은 언제입니까
80대 노부부 중 할아버지가 열나서 응급실 와서 이런저런 문진하는데 부인(할머니)가 너무나 여리고 고왔기에 더 신경써서 설명하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폐렴 의증으로 CT 촬영 대기 중,

60대 남자 CPR 하며 응급실 들어왔고, 할아버지의 바로 옆자리에 배치되어 CPR 하다 한 사이클 가슴압박 하고 내려와 다음 턴 대기 도중이던 한 20분쯤 경과했을 무렵, 옆자리 할아버지의 그 여리여리하던 보호자가 제 옷을 툭툭 당기더군요.

"잠시만요 심폐소생술중인데요"라고 평소와 비슷한 목소리 크기로 얘기하고는, '아차 귀 잘 안들리시... 더 보기
80대 노부부 중 할아버지가 열나서 응급실 와서 이런저런 문진하는데 부인(할머니)가 너무나 여리고 고왔기에 더 신경써서 설명하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폐렴 의증으로 CT 촬영 대기 중,

60대 남자 CPR 하며 응급실 들어왔고, 할아버지의 바로 옆자리에 배치되어 CPR 하다 한 사이클 가슴압박 하고 내려와 다음 턴 대기 도중이던 한 20분쯤 경과했을 무렵, 옆자리 할아버지의 그 여리여리하던 보호자가 제 옷을 툭툭 당기더군요.

"잠시만요 심폐소생술중인데요"라고 평소와 비슷한 목소리 크기로 얘기하고는, '아차 귀 잘 안들리시는데 귀에 대고 말씀드릴걸' 하고 생각하던 찰나,

아까와는 다른 멀쩡한, 그러니까,
가는귀 먹은사람이 내던 큰 목소리가 아닌, 멀쩡히,
그러나 마치 누군가가 듣는 건 민망한 듯 속삭이는 목소리로,

"옆사람은 어차피 죽을 거 같으니 우리 할아버지나 잘 신경써줘"라고 이야기하는 걸 듣는 그 순간,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었는데, '이듬해부터 응급의학과 수련을 받기로 마음먹은 인턴'이었기에, 큰 예방주사 한 방 맞았다고 생각했죠. 실제로도 그랬고.

"인간은 어떤 생각이든 할 수 있는 존재다"라고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1
휴가를 제외하면,
일 18시 듀티 시작 ~ 월 08시 듀티 종료 이후 푹 쉬고,
일 08시 듀티 시작으로 만들어 종종 쉬곤 합니다.
저와 같은 조건으로 근무중이신 분은 이번달에 9일짜리 오프도 만드셨어요.
근무여건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사전협의하면 한 두 달에 한 번 리프레시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물론 나머지 듀티 기간에 근무를 좀 달려야 하지만..

참고로 저의 경우 다소 비정상적인 트레이닝을 받아서 전공의 때에도 순수하게 오프인 시간은 꽤나 긴 편이었습니다.
지나가던선비
안그럴거같이 얌전해보이던분이 그래서 더 소름끼쳤겠네요 ㄷㄷ
번아웃됐을때 멘탈관리를 하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으신지요?
녹다운될 정도로 지치는 일은 자주 있진 않았는데 그때그때 대처가 달랐습니다. 일단 자고 일어나서 많이 먹었네요.

다만 번아웃은... 신체적으로 피곤한 상태에서 멘탈까지 타버리는거로 받아들인다면, 아직 겪어보질 않았네요. 위에 말씀드렸던대로 전공의때에도 비정상적인 스케쥴이었어서, 어느 정도의 휴식이 있던 게 큰 거 같아요.
술과장미의나날
저도 가족 두 분의 죽음(가망없음)을 응급실 선생님한테서 들었는데요.
담백하게 말씀은 하셨지만, 쉽지 않으셨으리라는 생각은 듭니다.
저도 예상하고 있는데도 울컥했었고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절감하며, 힘내시라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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