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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4/12/27 16:27:18 |
Name | 호미밭의파스꾼 |
Subject | 외줄과 그물 |
오늘 오전, 느슨한 공통의 이해 관계로 일하는 분들과 회의를 하고 돌아오는 길은 여러모로 착잡했습니다. 반년 만의 만남이었기에 회의 후 한 분이 사적으로 힘드셨던 이야길 꺼내자 비슷한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남편이 위급해져 응급실에 갔지만 3시간 방치 후 입원 거부를 당해 사설 앰블런스를 타고 헤매다 죽을 고비를 넘긴 분, 군복무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던 아들이 계엄 직후 비상 대기 상황에서 탈영 시도를 해 가족을 기겁하게 하고 가중 처벌을 받고 있다는 분, 기르는 강아지가 신장염에 걸려 하루 두 번 씩 발버둥 치는 강아지에게 주사를 놓다 자기 손을 찌르곤 한다는 분, 고심 끝에 둘째를 낳아 기르느라 얼집과 시댁과 직장 사이의 늘 과도하고 뒤엉키는 스케줄을 소화하다 운전대를 잡은 채 공황 발작이 와 119를 불렀다는 분... 현업의 고충, 언제나 비합리적이고 과도한 갑과 시장의 요구 등은 진지한 이야깃거리도 되지 못했습니다. 본업의 외줄 타기는 모두에게 익숙하니까요. 익숙하다 뿐이겠습니까, 생각해보면 외줄 타는 모든 필부들의 어깨엔 사람 서넛이나 그 만큼의 무게는 더해진 게 보통입니다. 웃으며 담담하게 말할 정도로 익숙한,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초인적인 노력들. 모두들 이렇게 필사적인 이유는 더 많은 것을 갖거나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욕심 때문이 아니죠. 그냥 자기 자리와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 입니다. 대통령이었던 것들과 정치인의 과반 이상은 늘 더 많이, 본인 몫 이상의 것을 빼앗으려 권력을 행사하고 법과 공동체와 타인을 짓밟는 사람 아닌 것들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가 이 지점까지 도달한 이유는 절대 다수 국민의 위대한 일상적 발버둥에 있었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계엄 직후엔 타오름에 가까웠던 분노가, 오늘의 경험을 통해 숯이나 휴화산 아래의 용암처럼 항구적인 것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수 천만 가닥의 외줄의 양단을 지탱해야 할, 혹은 외줄을 길 비슷한 것으로 만들 의무와 힘을 양도 받은 것들이, 그 힘으로 외줄을 재미 삼아 흔들다 못해 날선 가위를 철컹대며 협박하는 지옥도가 과장 없는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제 결론은 경험에 의한 낙관이었습니다. 각자의 위태로운 씨줄 위에서 떨던 우리가 촛불과 응원봉을 맞잡은 연대의 날줄로 그물이 되고, 그 그물로 사람 아닌 것들을 포획하는 승리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 역사가 수놓아진 꽤 두껍고 따뜻한 카펫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안정적이고 현실적인 지평이 되었습니다. 각자의 외줄 위에서 다시 위기를 맞은 여러분을 응원하며, 우리가 다시 만들고 있는 그물과 이 그물이 완성할 더 두텁고 따뜻할 승리의 지평을 기대합니다. 과거에 그랬듯 이번에도 함께 승리할 수 있습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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