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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12/22 05:39:32
Name   눈부심
Subject   펌) 군대에서 만났던 가장 따스하고 가장 똑똑했던 사람
예... 제가 그 인생운 몰빵받아 4개월만에 전역한 사람인데요

부대 간부도 상당히 좋은 사람이었다만 훈련소에서 만났던 대위, 그 사람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애초부터 한국군과 징병제에 대해 반골 스피릿이 워낙 쎈 놈이었지만
세월호 참사... 그 이후로 한국이란 국가에 대한 혐오감이 극도로 달하던 때, 입대를 하게 됩니다

훈련소 훈련도 힘들었다만(화천 더럽게 춥데요진짜 ㅆ)
매일 새벽 복무신조를 외칠때마다 역겨움을 토해내는 듯 한 기분이었습니다

"징병제가 자유민주주의인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한국 군인은 어째서 자유민주주의에서 배제되어 있는가?
한국은 정말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인가? 이것이 정말 한국 국민에 대한 올바른 처사인가?"

코가 헐어버리고 발성조차 고통스러운 인생 최악의 감기에 걸린 몸상태에서
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니 너무 힘겨워서...

조교에게 너무 힘들다고 못하겠다고 괴롭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에 소대장,보급관,상담사...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제 중대의 장이란 사람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훤칠한 인상에 매우 느긋한 분위기를 풍기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제 고통을 조용히 읇조리고 그 사람은 차분히 듣다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너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다.
다른 병사들은 눈앞에 포상만 보고 있는데
너는 남들과는 다른 곳을 보고 있으니 당연히 괴로웠을 것이다."

그 순간, 저는 정말 기적이란게 이런것인가? 하고 충격 받았습니다
넓디넓은 사회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깊게 담겨진 생각을 공유할만한 그런 사람을 군대에서 만나게 되었으니까요

이 이후 저는 정비시간을 줄여가며 틈 날때마다 중대장 실에 찾아가 대화를 그리고 토론을 했습니다
그 주제는 무척 다양했지만 대체로 한국군과 철학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 때 나누었던 대화는 감히 넷상에 적어내기 어려울만큼 날 것들이며 날카로운 것들이었는데
저는 그 시간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 약속했으니 자세히는 적을 수가 없네요)

이 대화와 토론의 시간들이 제 훈련소 시절을 버티게 해준 가장 강력한 버팀목이었지요

약 한달여동안 이 사람과의 대화를 하며 느낀 것은
이 사람은 저의 날세운 언변을 귀담아 들을 줄 알면서 자신의 의견을 매우 간결하고 확실하게 전달할 줄 아는
제가 생각하기에 '아주 똑똑한 사람' 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똑똑한 사람의 언변 곳곳에서 자신의 부하, 즉 병사들을 위하는 따스한 온도를 느낄 수 있었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저는 대놓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중대장님, 저는 한국 군대가 크게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언제나 그렇듯 조용히 듣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주었어요
자신의 진급하며 겪었던 부당함, 부패된 집단을 도려낼 때 받아온 역공, 너무나 깊숙히 박혀있는 더러움...

그런 이야기가 끝나갈때쯤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이 차분히 대답하기를

"예전엔 나 혼자 모든 것을 바꿔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그게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최소한 내 주위만큼은 좀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그게 이유다."

그 이후 자대 배치 전 날, 눈물의 포옹을 끝으로 그 사람과의 연은 맺음을 지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 가장 기적적인 인연을 만난 셈 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기묘하면서도 찬란한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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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넷상에 적어내기 어려울만큼 날 것들이며 날카로운 것들]... cur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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