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머가 아닌 펌글, 영상 등 가볍게 볼 수 있는 글들도 게시가 가능합니다.
- 여러 회원들이 함께 사용하기 위해 각 회원당 하루 5개로 횟수제한이 있습니다.
- 특정인 비방성 자료는 삼가주십시오.
Date 17/01/31 13:23:50
Name   Beer Inside
Subject   의전에 집착하는 인간치고 변변한 인간 없더라.
http://news.joins.com/article/21189772

5년 전에 부장이 됐다. 의욕이 넘쳤다. 회식 때 내가 수저를 돌리고 고기를 구웠다. 편한 화제를 꺼냈다. 즐거워들 하는 것 같았다. 미묘한 순간들을 느끼기 전까지는. 내가 집게를 들자 좌불안석인 부서 막내, 내가 말을 멈추자 잠시 흐르는 정적, 내가 화장실 다녀오는 새 수다스러워진 분위기. 나는 좋은 부장 놀이를 하고 있었지만 가장 좋은 부장은 자리에 없는 부장이었다. 충격적인 순간도 있었다. 요즘 집에 힘든 일은 없느냐 굳이 물어서 한참 듣다가 불현듯 이미 지난번에 묻고 들었던 이야기임을 깨달은 순간이다. 엄청 걱정해 주는 척하고 있었지만 술자리가 끝나면 잊어 버릴 남의 일이었다. 나라는 인간은 원래 가족에게조차 무심하다. 나는 미생 오 과장이 아니었다. 마 부장이라도 되지 말자.

지난해 말, 일반직 인사로 한 해 같이 일한 세 명이 떠났다. 파스타집에서 점심을 먹고 ‘이런 날이라고 특별한 말 하는 건 그렇고 이걸로 작별합시다’ 했다. 저녁 회식 한 번 한 적 없다. 어디 사는지 가족 관계가 어떤지도 모른다. 돌아온 후 마음이 안 좋았다. 내 무심한 천성을 핑계로 너무 매정했다. 서운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들이 찾아왔다. 나와 근무하며 좋았단다. 한 명은 내 낡은 법복과 넥타이를 나 몰래 드라이클리닝한 후 갖다 놓았다. 다시 같이 일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단다.

궁금했다. 대체 왜? 실수해도 혼내지 않으셔서 좋았어요. 글쎄다. 내 편의를 위한 거였다. 법원 일은 실수하면 큰일이다. 그런데 실수를 숨기면 더 큰일이다. 바로 얘기하면 고칠 수 있다. 부모가 엄하면 애들은 매사에 숨기기 마련이다. 내가 그랬다. 업무 지시 때 이유도 설명해 주셔서 좋았어요. 마찬가지다. 그러지 않아도 바쁜데 서로 시간 낭비하기 싫어서다. 업무 일정을 함께 협의하니 휴가 계획 미리 세울 수 있어 좋았어요. 그래야 나도 결재 부담 없이 여행 가지. 달랑 이걸로 좋아들 한다. 깨달았다. 내가 이 관계에서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자제함으로써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는 힘, 그건 권력이다. 나도 허례허식 싫어하는 법원장님 덕에 행사 때마다 편했다. 버락 오바마를 봐도 강자의 미덕은 여유다. 의전에 집착하는 인간치고 변변한 인간 없더라.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강변하는 건 아니다. 시대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힘은 과거가 가지고 있고 시간은 미래로 흐른다. 과거가 미래에 양보하고 미래는 그런 과거를 존중하는 것, 이것이 발전 아닐까.

[출처: 중앙일보] [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부장님들께 원래 드리려던 말씀



5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6694 민상토론 2 Beer Inside 16/11/28 1743 1
16743 문세윤 한입만.... 14 Beer Inside 16/11/29 2296 0
16936 Last days of Barack Obama as president. 4 Beer Inside 16/12/05 1768 1
16981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7 Beer Inside 16/12/05 2465 0
17243 어느 민정 수석의 SNS 2 Beer Inside 16/12/12 1787 0
17276 셜록 마지막 시즌의 예고편이 공개되었습니다. 8 Beer Inside 16/12/13 1495 0
17948 사퇴하세요. 2 Beer Inside 16/12/25 1828 0
18128 결혼이 이렇게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4 Beer Inside 16/12/30 2202 2
18282 정당한 폭력의 예 10 Beer Inside 17/01/03 2230 0
18458 김영철의 김기춘 성대묘사 1 Beer Inside 17/01/09 1793 0
18471 박원순시장에게 팩트폭력 가하는 트위터인... 11 Beer Inside 17/01/09 3397 0
18505 부장판사가 전국의 부장들에게 16 Beer Inside 17/01/10 4225 12
18556 사망유희 토론 11 Beer Inside 17/01/11 2315 0
18627 처남과 많이 싸운 매형 12 Beer Inside 17/01/13 2462 3
18764 문화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래되어서 발전합니다. 2 Beer Inside 17/01/17 2638 0
18847 비공개결혼식 10 Beer Inside 17/01/19 2418 0
18936 청와대에서 좋아하는 손맛 3 Beer Inside 17/01/22 2158 0
18948 서진 룸 싸롱 아세요? 7 Beer Inside 17/01/23 6259 0
18976 오늘자 장도리 8 Beer Inside 17/01/23 2309 0
19019 이틀 뒤에는 설 연휴이군요. 10 Beer Inside 17/01/25 1728 0
19080 오늘자, 한겨례 만평 2 Beer Inside 17/01/26 1740 0
19098 이거 아반테에요, 소나타에요? 12 Beer Inside 17/01/26 2326 0
19103 막살겠다는 처자이야기 9 Beer Inside 17/01/26 2337 0
19240 냉장고를 부탁해 - 우주소녀편 8 Beer Inside 17/01/30 2163 0
19258 의전에 집착하는 인간치고 변변한 인간 없더라. 22 Beer Inside 17/01/31 2692 5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