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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게 뭔 소린지 모르겠어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라는 식의 논리를 가진 성서를 최소 천오백년은 신봉했던 게 유럽인데... 그런 유럽과 기독교는 인간을 참으로 변화하는 존재로 알았을까요. 게다가 사농공상은 그냥 동아시아의 일반적 정서였고, 서구문명의 기술우대라는 것도 실질적으로 왕이나 귀족들의 사치나 과시 혹은 자기보호 위한 발전이었지 그게 무슨 인류가 더 나아가기 위한 수단 이런 건 쥐뿔도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인간이 근대화와 현대문명이 올 걸 알고 있었다면 분명 성리학만을 집착하는 게 문... 더 보기
과거의 인간이 근대화와 현대문명이 올 걸 알고 있었다면 분명 성리학만을 집착하는 게 문... 더 보기
솔직히 이게 뭔 소린지 모르겠어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라는 식의 논리를 가진 성서를 최소 천오백년은 신봉했던 게 유럽인데... 그런 유럽과 기독교는 인간을 참으로 변화하는 존재로 알았을까요. 게다가 사농공상은 그냥 동아시아의 일반적 정서였고, 서구문명의 기술우대라는 것도 실질적으로 왕이나 귀족들의 사치나 과시 혹은 자기보호 위한 발전이었지 그게 무슨 인류가 더 나아가기 위한 수단 이런 건 쥐뿔도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인간이 근대화와 현대문명이 올 걸 알고 있었다면 분명 성리학만을 집착하는 게 문제가 있었겠지만, 문명이란 그 시대에 맞게 옳다 생각하는 가치관을 추구했던 게 인류 문명의 보편적 현상이었죠. 현대의 시각으로 현대적 발전상을 저해하는 요소가 있었다고 그게 문제이다.. 이런 건 정말 역사를 너무 편협하게 보는 거고 정보의 우위로 잘난척 하는 것 밖에 안 되죠.
역사를 과학이 아닌 이야기로만 보려는 유시민 작가의 태도는 솔직히 역사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사람의 태도인가 싶긴 합니다.
과거의 인간이 근대화와 현대문명이 올 걸 알고 있었다면 분명 성리학만을 집착하는 게 문제가 있었겠지만, 문명이란 그 시대에 맞게 옳다 생각하는 가치관을 추구했던 게 인류 문명의 보편적 현상이었죠. 현대의 시각으로 현대적 발전상을 저해하는 요소가 있었다고 그게 문제이다.. 이런 건 정말 역사를 너무 편협하게 보는 거고 정보의 우위로 잘난척 하는 것 밖에 안 되죠.
역사를 과학이 아닌 이야기로만 보려는 유시민 작가의 태도는 솔직히 역사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사람의 태도인가 싶긴 합니다.
이건 그냥 유시민씨가 역사학에 대한 교양이 없거나, 고민이 없거나, 아니면 80년대 이후로 업데이트가 안되어있다는 걸 인증한 거예요. 역사 (와 사회) 전반에 대한 이념의 통제력을 과장되게 인식하는 게 딱 그래요.
이념이 생산력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을까요? 가로막는다면 과연 얼마나 가로막을 수 있을까요? 과연 가로막으려고 하기는 했을까요? 유교지식인이 무슨 생산력증대를 원수보듯 하는 안아키스트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거 정말 그래요?
별개로, 유교가 유연성과 탄력성이 뛰어난 이념임을 보여주는 가장 큰 근거는 유교가... 더 보기
이념이 생산력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을까요? 가로막는다면 과연 얼마나 가로막을 수 있을까요? 과연 가로막으려고 하기는 했을까요? 유교지식인이 무슨 생산력증대를 원수보듯 하는 안아키스트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거 정말 그래요?
별개로, 유교가 유연성과 탄력성이 뛰어난 이념임을 보여주는 가장 큰 근거는 유교가... 더 보기
이건 그냥 유시민씨가 역사학에 대한 교양이 없거나, 고민이 없거나, 아니면 80년대 이후로 업데이트가 안되어있다는 걸 인증한 거예요. 역사 (와 사회) 전반에 대한 이념의 통제력을 과장되게 인식하는 게 딱 그래요.
이념이 생산력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을까요? 가로막는다면 과연 얼마나 가로막을 수 있을까요? 과연 가로막으려고 하기는 했을까요? 유교지식인이 무슨 생산력증대를 원수보듯 하는 안아키스트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거 정말 그래요?
별개로, 유교가 유연성과 탄력성이 뛰어난 이념임을 보여주는 가장 큰 근거는 유교가 삽시간에 혀깨물고 자결했다는 사실 자체예요. 유교이념의 세례를 받은 근세기 지식인들은 서양수입품이 쓸만하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 (전부는 아니지만) 대다수가 사서삼경을 버리고 신학문에 투신했어요. 안했다고 하더라도 본인은 구학문에 충성을 다할지언정 자기 자식은 신학교에 보내곤 했구요. 그런데, 예컨대, 이슬람은 어떤가요. 아직도 신학문 배우러 학교간다는 애들한테 총쏘고 염산뿌리잖아요. 유시민씨는 후속세대를 위해서 2천년간 갈고 닦았던 문예를 과감히 포기하고 장렬하게 자결한 선배 지식인들의 무덤 위에 피어난 사람이에요. 그 무덤에 침뱉고 그러면 안돼요...
이념이 생산력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을까요? 가로막는다면 과연 얼마나 가로막을 수 있을까요? 과연 가로막으려고 하기는 했을까요? 유교지식인이 무슨 생산력증대를 원수보듯 하는 안아키스트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거 정말 그래요?
별개로, 유교가 유연성과 탄력성이 뛰어난 이념임을 보여주는 가장 큰 근거는 유교가 삽시간에 혀깨물고 자결했다는 사실 자체예요. 유교이념의 세례를 받은 근세기 지식인들은 서양수입품이 쓸만하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 (전부는 아니지만) 대다수가 사서삼경을 버리고 신학문에 투신했어요. 안했다고 하더라도 본인은 구학문에 충성을 다할지언정 자기 자식은 신학교에 보내곤 했구요. 그런데, 예컨대, 이슬람은 어떤가요. 아직도 신학문 배우러 학교간다는 애들한테 총쏘고 염산뿌리잖아요. 유시민씨는 후속세대를 위해서 2천년간 갈고 닦았던 문예를 과감히 포기하고 장렬하게 자결한 선배 지식인들의 무덤 위에 피어난 사람이에요. 그 무덤에 침뱉고 그러면 안돼요...
이슬람 친구들의 근본문제는 세속주의이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거예요. 유교는 강한 세속주의이념이고, 그래서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다른 종류의 세속주의이념으로 갈아탈 때 큰 거부감이 없었지요 (공산주의/자유주의/민족주의). 유교가 자살할 수 있었던 이유와 이슬람이 자살하지 못한 이유..
이슬람 이념의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력은... 사실 이 부분의 진정한 문제점은 이슬람이 뭘 얼마나 통제하건 말건 석유가 퐁퐁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정치와 종교가 어떻게 돌아가건 국부와 삶의 수준이 에스컬레이터에라도 올라탄 듯 자동으로 올라가거든요. 그러니 사회변화를 위한 동력이 나올 곳이 없지요. 이건 아랍권 페미니스트들이 오랜 기간 지적했던 건데 일리가 있다고 봐요.
이슬람 이념의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력은... 사실 이 부분의 진정한 문제점은 이슬람이 뭘 얼마나 통제하건 말건 석유가 퐁퐁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정치와 종교가 어떻게 돌아가건 국부와 삶의 수준이 에스컬레이터에라도 올라탄 듯 자동으로 올라가거든요. 그러니 사회변화를 위한 동력이 나올 곳이 없지요. 이건 아랍권 페미니스트들이 오랜 기간 지적했던 건데 일리가 있다고 봐요.
그렇게 단순화할 수 있을까요? 이슬람 문명은 중국 문명만큼이나 세계사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유산들이 이슬람 문명 아니면 보전되고 계승되고 발전될 수 없었고요.
정교일치는 문제가 있어보이는 데에 동감해요. 또 유교가 세속적이라는 데에는 동감해요.
어디까지가 유교/이슬람교의 이념이고 어디부터는 그 외에서 비롯된 관념인가요? 우리나라의 문제점은 사방이 중국과 일본과 바다에 막혀서 아예 신문물이 들어올 여지 자체가 너무 적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유교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죠. 하지만 생각을 어쩔 수... 더 보기
정교일치는 문제가 있어보이는 데에 동감해요. 또 유교가 세속적이라는 데에는 동감해요.
어디까지가 유교/이슬람교의 이념이고 어디부터는 그 외에서 비롯된 관념인가요? 우리나라의 문제점은 사방이 중국과 일본과 바다에 막혀서 아예 신문물이 들어올 여지 자체가 너무 적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유교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죠. 하지만 생각을 어쩔 수... 더 보기
그렇게 단순화할 수 있을까요? 이슬람 문명은 중국 문명만큼이나 세계사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유산들이 이슬람 문명 아니면 보전되고 계승되고 발전될 수 없었고요.
정교일치는 문제가 있어보이는 데에 동감해요. 또 유교가 세속적이라는 데에는 동감해요.
어디까지가 유교/이슬람교의 이념이고 어디부터는 그 외에서 비롯된 관념인가요? 우리나라의 문제점은 사방이 중국과 일본과 바다에 막혀서 아예 신문물이 들어올 여지 자체가 너무 적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유교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죠. 하지만 생각을 어쩔 수 없이 더 고착시킨 감은 있었고. 중동의 문제점은 몽골과 유럽에게 시달려서 사상이 극단적이 되고 말씀하신 석유 문제도 있어요. 이것은 이슬람교의 문제인가요? 이슬람교를 더 경직되도록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정교일치는 문제가 있어보이는 데에 동감해요. 또 유교가 세속적이라는 데에는 동감해요.
어디까지가 유교/이슬람교의 이념이고 어디부터는 그 외에서 비롯된 관념인가요? 우리나라의 문제점은 사방이 중국과 일본과 바다에 막혀서 아예 신문물이 들어올 여지 자체가 너무 적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유교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죠. 하지만 생각을 어쩔 수 없이 더 고착시킨 감은 있었고. 중동의 문제점은 몽골과 유럽에게 시달려서 사상이 극단적이 되고 말씀하신 석유 문제도 있어요. 이것은 이슬람교의 문제인가요? 이슬람교를 더 경직되도록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뭐... 그런 이슬람 문화권도 한 때는 인류 역사를 놓고 봤을 때 가장 첨단의 과학을 행하던 곳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냥 말씀하신대로 이념 중심의 거대담론으로 역사적인 경제구조의 변화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어거지 그 자체죠. 애초에 이념이라는 것 자체도 관념의 독립체가 아니라 사고의 기원이 사회적 맥락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고 이건 이념 외적인 컨텍스트가 되기 때문에 이념만으로 뭔가 설명하는 건 직관적으로도 공통인과를 무시하는 오류일 가능성이 높죠. 사농공상의 위계는 성리학 이전에도 있었고 기원을 유교에서 찾는다고 해도 농사 안 짓고 무... 더 보기
뭐... 그런 이슬람 문화권도 한 때는 인류 역사를 놓고 봤을 때 가장 첨단의 과학을 행하던 곳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냥 말씀하신대로 이념 중심의 거대담론으로 역사적인 경제구조의 변화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어거지 그 자체죠. 애초에 이념이라는 것 자체도 관념의 독립체가 아니라 사고의 기원이 사회적 맥락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고 이건 이념 외적인 컨텍스트가 되기 때문에 이념만으로 뭔가 설명하는 건 직관적으로도 공통인과를 무시하는 오류일 가능성이 높죠. 사농공상의 위계는 성리학 이전에도 있었고 기원을 유교에서 찾는다고 해도 농사 안 짓고 무역만 하는 나라에서 공자가 똑같은 말을 했을리도 만무하고 했다고 하더라도 그게 지배적인 사상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지도 않죠. 그러니까 기술 천시를 유교적 이념 때문으로 돌리는 것도 증거가 심히 불충분해 보이는데 이것까지 그렇다고 양보해줘도 온전히 유교의 탓이 되지도 않는 것이죠. 마치 아마존에 사는 토착 부족들이 샤머니즘 믿어서 아직도 원시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으니까요.
그건 아닙니다. 농업 생산성이 세종 때보다 낮은데 똑같은 영토의 조선 후기에 인구가 몇 배씩 늘어날 수가 없죠.
솔직히 세종 때의 기술발전이란 건 그렇게 큰 자본이 들어가는 작업이 별로 없었습니다.
해시계 물시계 만드는 것과 조선 중기에 소형선을 전부다 대형판옥선화 시킨 것중 어떤 게 더 자본이 들어가냐하면 전 후자라고 보거든요.
게다가 태종, 세종 시기는 조정에서 저화라고 하는 가치가 없는 종이돈을 찍어내 유통시킨 시기로 덕분에 조정이 별 노력없이 돈을 꽤나 만질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화는 금방 실패했고 그 피해는 ... 더 보기
솔직히 세종 때의 기술발전이란 건 그렇게 큰 자본이 들어가는 작업이 별로 없었습니다.
해시계 물시계 만드는 것과 조선 중기에 소형선을 전부다 대형판옥선화 시킨 것중 어떤 게 더 자본이 들어가냐하면 전 후자라고 보거든요.
게다가 태종, 세종 시기는 조정에서 저화라고 하는 가치가 없는 종이돈을 찍어내 유통시킨 시기로 덕분에 조정이 별 노력없이 돈을 꽤나 만질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화는 금방 실패했고 그 피해는 ... 더 보기
그건 아닙니다. 농업 생산성이 세종 때보다 낮은데 똑같은 영토의 조선 후기에 인구가 몇 배씩 늘어날 수가 없죠.
솔직히 세종 때의 기술발전이란 건 그렇게 큰 자본이 들어가는 작업이 별로 없었습니다.
해시계 물시계 만드는 것과 조선 중기에 소형선을 전부다 대형판옥선화 시킨 것중 어떤 게 더 자본이 들어가냐하면 전 후자라고 보거든요.
게다가 태종, 세종 시기는 조정에서 저화라고 하는 가치가 없는 종이돈을 찍어내 유통시킨 시기로 덕분에 조정이 별 노력없이 돈을 꽤나 만질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화는 금방 실패했고 그 피해는 백성들에게 돌아갔지요.)
어찌보면 맥을 같이 하는 말이긴 한데..
개인적으로 조선의 기술발전의 부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의외로 착취를 두려워하는 위정자의 자세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전근대시기 거의 모든 새로운 시도와 발전은 어쩔 수 없이 자본과 노동력의 착취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보통 위정자가 착취를 했다는 이미지가 큰 조선이라 믿기지 않겠지만 조선의 위정자들은 정말 이런 식의 착취를 두려워했고,
새로운 시도를 위한 자본과 노동력을 끌어올만한 동력이 굉장히 부족했습니다.
실제 조선의 착취는 구조적으로 발생되는 것, 혹은 민간에 만연한 적폐에 의한 것이지 위정자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은 의외로 정말 미미했고
덕분에 국가주도적으로 무엇을 하기가 힘들었죠. 그렇다고 민간이 그 역할을 담당하기엔 조선의 중앙집권화는 너무 잘 되어있었고요.
솔직히 세종 때의 기술발전이란 건 그렇게 큰 자본이 들어가는 작업이 별로 없었습니다.
해시계 물시계 만드는 것과 조선 중기에 소형선을 전부다 대형판옥선화 시킨 것중 어떤 게 더 자본이 들어가냐하면 전 후자라고 보거든요.
게다가 태종, 세종 시기는 조정에서 저화라고 하는 가치가 없는 종이돈을 찍어내 유통시킨 시기로 덕분에 조정이 별 노력없이 돈을 꽤나 만질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화는 금방 실패했고 그 피해는 백성들에게 돌아갔지요.)
어찌보면 맥을 같이 하는 말이긴 한데..
개인적으로 조선의 기술발전의 부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의외로 착취를 두려워하는 위정자의 자세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전근대시기 거의 모든 새로운 시도와 발전은 어쩔 수 없이 자본과 노동력의 착취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보통 위정자가 착취를 했다는 이미지가 큰 조선이라 믿기지 않겠지만 조선의 위정자들은 정말 이런 식의 착취를 두려워했고,
새로운 시도를 위한 자본과 노동력을 끌어올만한 동력이 굉장히 부족했습니다.
실제 조선의 착취는 구조적으로 발생되는 것, 혹은 민간에 만연한 적폐에 의한 것이지 위정자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은 의외로 정말 미미했고
덕분에 국가주도적으로 무엇을 하기가 힘들었죠. 그렇다고 민간이 그 역할을 담당하기엔 조선의 중앙집권화는 너무 잘 되어있었고요.
일본은 무슨 역사 교과서에서도 지우고 일본은 아니었다 라는 말도 있는데 눈가리고 아웅하기죠.
애당초 사를 무사의 사로 바꾸고 그걸 그대로 따르면서 직업과 신분의 경직성이 조선보다 훨씬 더 심하던 게 일본이었는데요.
그리고 사실 조선에선 사농공상을 무슨 신분의 중요함에 대한 순서따위로 인지하지도 않았습니다.
관념적인 중요함을 따질 때도 오히려 사보다 농을 더 높이 치듯 말하고, 사농공상이라는 말은 그냥 백성을 뜻하는 말에 훨씬 더 가까웠어요.
조선은 사농공상을 그냥 사람이 가지는 직업을 4개로 구문하여 백성을 지칭하는 말로... 더 보기
애당초 사를 무사의 사로 바꾸고 그걸 그대로 따르면서 직업과 신분의 경직성이 조선보다 훨씬 더 심하던 게 일본이었는데요.
그리고 사실 조선에선 사농공상을 무슨 신분의 중요함에 대한 순서따위로 인지하지도 않았습니다.
관념적인 중요함을 따질 때도 오히려 사보다 농을 더 높이 치듯 말하고, 사농공상이라는 말은 그냥 백성을 뜻하는 말에 훨씬 더 가까웠어요.
조선은 사농공상을 그냥 사람이 가지는 직업을 4개로 구문하여 백성을 지칭하는 말로... 더 보기
일본은 무슨 역사 교과서에서도 지우고 일본은 아니었다 라는 말도 있는데 눈가리고 아웅하기죠.
애당초 사를 무사의 사로 바꾸고 그걸 그대로 따르면서 직업과 신분의 경직성이 조선보다 훨씬 더 심하던 게 일본이었는데요.
그리고 사실 조선에선 사농공상을 무슨 신분의 중요함에 대한 순서따위로 인지하지도 않았습니다.
관념적인 중요함을 따질 때도 오히려 사보다 농을 더 높이 치듯 말하고, 사농공상이라는 말은 그냥 백성을 뜻하는 말에 훨씬 더 가까웠어요.
조선은 사농공상을 그냥 사람이 가지는 직업을 4개로 구문하여 백성을 지칭하는 말로 썼고 신분의 구분은 그냥 양천 뿐이었습니다.
그걸 다 떠나서 사농공상이 실체가 있는 거라 하더라도 농이 공상보다 우위인게 왜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야 먹을 게 넘쳐나니 체감이 안 되지, 기근이라도 한 번 들면 수만명의 사람이 굶어죽는 게 다반사인 게 전근대 시절인데요.
먹을 게 젤 중요하다는 개념이 도대체 왜 문제인 걸까요..
애당초 사를 무사의 사로 바꾸고 그걸 그대로 따르면서 직업과 신분의 경직성이 조선보다 훨씬 더 심하던 게 일본이었는데요.
그리고 사실 조선에선 사농공상을 무슨 신분의 중요함에 대한 순서따위로 인지하지도 않았습니다.
관념적인 중요함을 따질 때도 오히려 사보다 농을 더 높이 치듯 말하고, 사농공상이라는 말은 그냥 백성을 뜻하는 말에 훨씬 더 가까웠어요.
조선은 사농공상을 그냥 사람이 가지는 직업을 4개로 구문하여 백성을 지칭하는 말로 썼고 신분의 구분은 그냥 양천 뿐이었습니다.
그걸 다 떠나서 사농공상이 실체가 있는 거라 하더라도 농이 공상보다 우위인게 왜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야 먹을 게 넘쳐나니 체감이 안 되지, 기근이라도 한 번 들면 수만명의 사람이 굶어죽는 게 다반사인 게 전근대 시절인데요.
먹을 게 젤 중요하다는 개념이 도대체 왜 문제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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