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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08/08 15:16:39 |
Name | 우분투 |
Subject | 고려대 출교 사건 이야기. |
https://youtu.be/Fv9zFHMRXeU 이 강사가 뜨고 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돌았는데 큰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네요. 반대쪽 이야기도 궁금하긴 한데.. 이미 옛날이라..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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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출교자들과 여론 공성전을 했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개소리죠... 라는 말 밖에 안나오네요.
https://www.koreapas.com/m/view.php?id=best&tagkeyword=%C3%E2%B1%B3&no=15
(고파스 추게라 보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 제가 정리한 내용입니다. 법정에서의 증인 신문내용인데 출교자들은 저 내용중 일부 자기들에게 유리한 내용만 발췌... 더 보기
https://www.koreapas.com/m/view.php?id=best&tagkeyword=%C3%E2%B1%B3&no=15
(고파스 추게라 보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 제가 정리한 내용입니다. 법정에서의 증인 신문내용인데 출교자들은 저 내용중 일부 자기들에게 유리한 내용만 발췌... 더 보기
한참 출교자들과 여론 공성전을 했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개소리죠... 라는 말 밖에 안나오네요.
https://www.koreapas.com/m/view.php?id=best&tagkeyword=%C3%E2%B1%B3&no=15
(고파스 추게라 보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 제가 정리한 내용입니다. 법정에서의 증인 신문내용인데 출교자들은 저 내용중 일부 자기들에게 유리한 내용만 발췌, 왜곡해서 여론을 호도했던지라 제가 따로 올렸던 기억이 있네요. 안보이시면 따로 퍼올게요. )
다른것도 많이 있지만 일하는 중이라.. 나중에 원하시는 내용들 있으면 퍼와보겠습니다. 어차피 제가 정리한것들이라 저작권 문제도 없고 하니.
http://redtea.kr/?b=3&n=293
관련해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네요.
https://www.koreapas.com/m/view.php?id=best&tagkeyword=%C3%E2%B1%B3&no=15
(고파스 추게라 보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 제가 정리한 내용입니다. 법정에서의 증인 신문내용인데 출교자들은 저 내용중 일부 자기들에게 유리한 내용만 발췌, 왜곡해서 여론을 호도했던지라 제가 따로 올렸던 기억이 있네요. 안보이시면 따로 퍼올게요. )
다른것도 많이 있지만 일하는 중이라.. 나중에 원하시는 내용들 있으면 퍼와보겠습니다. 어차피 제가 정리한것들이라 저작권 문제도 없고 하니.
http://redtea.kr/?b=3&n=293
관련해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네요.
이건 학생 증언 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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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감금만행 현장에 있었던 학우들의 증언 및 FACT 모음
토모루 | 2008.02.02 02:13:28
12231명이 읽었어요
추천수가 70이 넘었지만 스크립트 에러로 올라가지 못했기에
다시 재개시합니다. 곰됴이님 답글 한번더 달아주세요.
최소한 사고하는 고대생이라면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저학번들이 저들의 조작과 거짓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것 만으로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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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감금만행 현장에 있었던 학우들의 증언 및 FACT 모음
토모루 | 2008.02.02 02: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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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가 70이 넘었지만 스크립트 에러로 올라가지 못했기에
다시 재개시합니다. 곰됴이님 답글 한번더 달아주세요.
최소한 사고하는 고대생이라면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저학번들이 저들의 조작과 거짓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것 만으로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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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학생 증언 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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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감금만행 현장에 있었던 학우들의 증언 및 FACT 모음
토모루 | 2008.02.02 02:13:28
12231명이 읽었어요
추천수가 70이 넘었지만 스크립트 에러로 올라가지 못했기에
다시 재개시합니다. 곰됴이님 답글 한번더 달아주세요.
최소한 사고하는 고대생이라면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저학번들이 저들의 조작과 거짓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것 만으로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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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게시글은 공대 95학번 선배님께서 올리신 자료입니다. 추가 자료 확보되는대로 사건 정황을 모르는 후배분들께
진실을 알리기 위해 계속 포스트 하겠습니다.
출교자들 이글 볼일 없지만 만약 본다면 쳐 들으세요
저학번들 상대로 구라를 치고 있는 모양인데 아직 그 패륜 현장을 본 사람들 그대로 살아있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똑바로 사세요
(리플리 신드롬이 의심되는 분들이라 2년간 구라를 치시면서 교자 본인들은 스스로를 모두 피해자로 세뇌한것 같습니다)
사건 정황을 전혀 모르는 저학번들을 위해 올립니다.
감금 일지가 조작이라고 주변에 거짓말을 뿌리고 다니는 모양인데.
사진만 봐도 세살 먹은 어린애도 저곳의 분위기를 알겠습니다.
포스터에 뻑규 Fuck you!!...아주 멋집니다.. 그 옆 안모 학우의 손가락도 잘 보세요
출교자들은 사진까지 조작이라고 씨부려주세요
어제 누군가 그러시더군요..무슨 천인공노할 범죄라도 저질렀냐고요..
어느 시대때는 능지처참해도 모자를 범죄일 수 있습니다
이하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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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감금사태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의 증언들에 대한 신빙성을 요구하셔서, 원문 전체를 올립니다.
4.5 감금사태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의 증언들입니다. 증거자료 1,2,3으로 올렸습니다.
비난글이 아니니, 삭제하지 말아주시고, 밑에 있는 글들이 사실인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 입니다.
특히, "다함께"나 "징계자 위원회"는 답변 부탁합니다.
[증거자료 1]
감금사태에 대한 학생연대회의(일명:yd)쪽 학생들의 의견들 (리얼리스트 선본) - 리얼리스트 선거본부 게시판에서 퍼옴. 지금은 없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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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이 글을 쓰신 분이 그때 본관에 계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자리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act now (다함께)분들의 투쟁방식은 도를 넘어섰다고 생각합니다. 앞뒤로 촘촘하게 앉아서 17시간동안 지나갈 자리를 틀어막고, 면전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삿대질하고 야유하고 비꼬고.. 뭔가 그렇게 하는 것이 단호하고 급진적인 투쟁인양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 방식은 절대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또한 윤리적인 면에서 학교측의 기준은 둘째치고, 일반적인 상식 수준을 벗어났다는 것은 그때 투쟁과정을 지켜보았던 사람들이라면 다들 이해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건대 학우들 역시 그때 일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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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본원1
대체 그 정당성은 누가 부여한답니까? 수백번 말하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진 못합니다. 투쟁의 방법은 당신들이 선택하는 것만이 옳지는 않습니다. 제발 좀 그 오만함을 버릴 수는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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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본원2
정말 개판이다
학생 운동한다는 사람들이
도덕성을 상실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운동한다는 것인가?
내 삶의 희망을 빼앗지 말아다오....
다함께분들.. 운동과 혁명이 희망인 사람들의 소망을 뺏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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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학번
다함께 회원들이
얼굴들이밀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면
솔직히 그 폭력적인 상황에 끼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게 용기없다고 욕하려면 욕하세요.
적어도 논쟁과 소통을 하려면 논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죠.
다함께가 다함께 방식으로 분위기 조성하면 아무도 말하기 싫어져요.
그날도 거의 다함께 회원님들이 선동하고 주도하던데..
솔직히 할말없습니다.
그런 섭섭하다는 식의 얘기는 나중에 속풀고 술먹을때 얘기하세요.
언제든 들어드리죠.
-------------------------------------------------------------------------------
오늘 있었던 본관 점거 시위에 대한 리얼리스트 선본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4월 5일에 있었던 본관 점거 및 처장단 감금은 분명 잘못되었습니다.
이번 행동은 매우 성급하고 극단적인 것으로서 많은 학우들과 함께 고대의 오늘을 고민하고 바꾸어 나가려는 사람들이 가져 나가야할 실천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우발적인 행동은 우리 요구의 정당성을 침해하고 학교 측에 빌미를 제공함으로서 궁극적으로 교육투쟁과 보건대 문제의 해결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습니다.````````
-------------------------------------------------------------------------------
5. ACT NOW선본은 즉각 처장단에 대한 감금과 본관 점거를 해제해야 합니다.
2만 고대인들과 함께 보건대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 해결과정을 모색하는 적극적인 대화와 토론을 기획해야 합니다. 일방적인 선언과 강변, 극단적이고 성급한 행동만으로는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모순들을 해결할 수 없음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다름아닌 우리 모두의 실천과 그 가능성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인지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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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자료2]
당시 "감금사태에 참여했던 학생"이 "안형우" 학우에게 주는 글 - 싸이 징계위원회에서 삭제한 글
"감금사태에 참여했던 학생"이 "안형우" 학우에게 주기위해 싸이 징계위원회
http://club.cyworld.nate.com/club/main/club_main.asp?club_id=51580415#
에 올렸다가 삭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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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자유게시판에서 퍼온 글] 99 안형우 학우에게
name : 이정수 hits :16 / date : 2006.04.27 19:42:00
안형우 학우.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국 안형우 학우가 분노한것도 학교측이 안형우 학우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아서가
아닙니까? 안형우 학우가 떳떳하다면 왜 그런 글들을 지우는지 궁금합니다.
다시 올리겠습니다.
안형우 학우에게
다함께에서 돌린 전단지의 주소를 보고 찾아왔습니다. 안형우 학우와 다른 학우들이 대화할 공간을 이곳에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추운 날씨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봄이라도 밤에는 쌀쌀하니 건강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일단 저는 학교가 내린 출교방침에 대하여 가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수위가 낮은 징계를 받았다면 그에 찬성했을 것이란 것을 밝힙니다.
당일 저는 약 세시간 가량 사태를 그 자리에서 지켜보았고 제가 본 것을 적겠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당시 교직원 한분이 대략 50~60명 되는 학우들 사이에 계셨고 조정식학우, 서범진학우, 안형우 학우및 보건대 학생회장의 발언이 계속되었습니다. 마이크로 진행을 하였는데 교직원분은 차분한 목소리로 진정하길 원하셨고 조정식 학우등은 고함을 지르며 교직원 분의 말 꼬투리를 하나하나 잡고 있었습니다. 대충 이런 식이었습니다.
" 여러분 방금 XXX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게 하도록 할까요~?"
그리고 쏟아지는 환호와 야유
당시 상황이 학교가 시위학우들과의 대화를 거절했다지만 제눈에 비친건 어느 나이드신 교직원 분이 땀을 흘리며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시위학우들 사이에서 떨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벽보에 적흰 욕설들. 도무지 학생들이 어른들에게 할수 있는 그런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고대 신문기자들이 다 찍어갔지만 존칭도 없었으며 "배때지에 기름 두르니 눈에 뵈는게 없냐" 라는 식의 욕설들 이런 것들도 투쟁을 위하여 정당화 될수 있나요?
저는 그당시 몇명의 단대학생회장들의 만류에도 불규하고 시위학우들 사이에서 시위학우들에게 “이러지 마라” “분명 이러면 보건대 학우들에게도 피해가 가고 학우님들도 피해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제가 받은건 4명의 여학우들의 비웃음과 째려봄 “재수없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것도 적어도 학번이 꽤나 차이나 보이는 후배들 한테 말이죠.
마지막으로 저의 분노를 일으킨 것은 누군지 확실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조정식 학우로 생각됩니다.) 이런 발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때까지 밤을 새서라도 여기서 못나가게 하자”
“와~”
여기서 못나가게 하는 것이 대치입니까? 아니면 감금입니까?
안형우 학우는 이렇게 밖에 투쟁하지 못합니까?
끝까지 자신의 신념만 자신의 신념에 동의하는 학우들만 강조할 뿐 다른 학우들의 목소리엔 전혀 귀를 기울이지 못합니까?
대자보를 붙일수 있는 게시판 외에 엘리베이터 복도 실내 계단 등에는 왜 자보를 붙였습니까?
이젠 당신들의 정의가 학내질서보다 우선입니까?
학교가 우릴 이렇게 대하니 우리도 이렇게 한다는 식의 발언
무슨 복수영화 찍습니까?
안형우 학우로 인하여 상처받고 있는 피해받고 있는 다른 많은 학우들의 마음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입니까? 이런 것들이 보이기는 합니까?
이런 상처들도 학교가 만든겁니까? 안형우 학우의 대.의.에 충분히 희생당해야 하는 그런 것들입니까?
안형우 학우를 질책하는 학우들은 학교나 사회의 언론 플레이에 속고만 있는 어리석은 학우들로 보입니까?
학교의 출교방침에 저도 같은 학우로써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현재 시위학우들의 모습을 보며 삭발투쟁에 대한 동정심보단 씁쓸함이 따르는것, 선배로써 답답함이 따르는 것은 제가 무지해서입니까 아니면 메말라서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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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자료 3]
[고려대학교 자유게시판에서…] 공대학생회 성명서
언제부터 고려대학교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자유 정의 진리를 외치던 고려대학교는 이제 더 이상 민족고대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쓸 수가 없게 됐습니다. 불의에 거침없이 항거하시던 선배들의 곧은 지조는 몇몇 학생들의 잘못된 정의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지난 4월 5일, 보건대 투표권을 요구하는 고려대학교 보건 병설전문대학 학생들, ..., 몇몇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본관 계단 사이에서 교수님들을 억류 하였습니다. 급히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달려간 저는 상태를 확인하였지만 분위기는 한껏 고조된 상태였고 그 사람들을 막고 교수님들을 억류를 풀어드리기에는 역부족 이었습니다. 교수들을 비꼬는 것은 물론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로 점거를 진행중인 그들을 보며 저는 할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점거를 진행하신 학생 여러분, 그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마치 정당한양 목소리를 높이며 학생들을 선동하고 요구를 들어달라고 강요하는 것은 정의와는 거리가 멉니다.
아래는 지금 이 순간부터 바로 잡아야 될 "잘못된 행동" 들에 대한 강한 비판입니다.
하나. 공포 분위기 조성입니다.
학생회를 하는 사람들은 학교에 무언가 요구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하지만 저는 요구안을 전달할 때 사람들을 모으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습니다. 요 몇년간 신뢰받지 못했던 학생회의 역사가 말해주고 꼭 필요이상으로 본관을 점거하고 언론사에 연락해서 사사건건 기자회견을 하고 폭력사태를 조장해야만 그 요구안이 관철되는 것은 결코 아니였습니다.그것은 학생회와 학교의 관계를 서로간의 견제와 공동목표의 달성이 아닌 서로간의 극심한 분노만을 남기게 되게 하였고 그 싸움을 지켜보던 학우들은 이제 차가운 웃음만을 학생회에 보낼 뿐입니다.
아직도 이 학우들의 냉소를 그 저 무관심으로 치부할 것입니까!
잘못은 학생회, 우리들에 있다는 것을 왜 인정하지 않으시려고합니까!
언제까지 학우들을 설득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말을 듣지 않으실 겁니까!
우리가 학우들에게 설득당해야 된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으시는겁니까.
한껏 조성된 분위기를 바탕으로 처장님들께 요구를 하면서 학생들의 의견조차 듣지 않으려 했다라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광분화된 공포 분위기에서 처장단에게 조롱과 야유를 던지며 학생들의 의견을 듣지 않으려 했다라는 여러분의 주장에서 "정의로운 논리" 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면 거기에 맞는 논리와 주장을 앞세워 제시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받아 들여질 수 도 있고 받아들여 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지 당신들이 결코 절대선은 아닙니다.
둘. 사제간의 예의를 무시한 것 입니다.
제가 본관에 도착했을 때 다함께의 서범진씨는
‘교수님들이 이상황에서 너무 편하게 계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불편하게 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말로 학생들에게 박수를 받아 내고 있었습니다. 또 한 학우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드리면 늦은 점거로 피로해진 교수님께서 잠을 청하시자 ‘어 이 상황에서 잠이와? 졸고 있네? 잠이와??’라는 말로 교수를 조롱했다고 합니다. 절대 글을 읽으실 분들에게 흥분을 일으키기 위해 꾸며낸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인 인성을 갖추지 못한 듯, 예의에 예자도 모르는 학생들을 저는 더 이상 고려대학교 학생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양성은 존중됨이 맞지만 그 다양성을 구성하는 구성원은 최소한의 의무가 따르는 법입니다. 그 의무를 저버리는 순간, 심판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셋, 언제나 학교는 절대악이고 합의하는 것은 패배와도 같은 "전투" 를 하는 것은 지겹습니다.
고려대학교의 선배님들께서는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에 맞서 자신을 희생시키면서 정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 하셨습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누구보다 앞서 달려가 항거 하셨던 분들이 바로 고대 선배님들이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학생들은 그것을 잘못 착각 하고 있습니다. 마치 투쟁이라고 하면 대상이 누구든 간에 정당하고 투쟁, 그 자체를 미화시키고 방법은 오직 "투쟁" 만이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학생회가 학교를 견제하고 학우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맞습니다.
허나, 그 강력하고 폭력적인 투쟁이
왜 교내에서,
왜 사제지간에서,
왜 3사 방송국을 다 불러놓고
왜 극심한 학우들의 스트레스와 불만을 야기하면서 까지
그렇게 기습공격을 하는 것입니까.
학우들에게 "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해도 됩니까?" 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일단 벌이고 난 뒤에 "동참해 주십시오!"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다니고 있는 학교가 불의 절대악 입니까?
진리를 위해 노력하시는 교수님들이 진정한 불의 입니까?
아니면 학생들을 위해 고생하시는 교직원 분들이 당신들의 불의인지 묻고 싶습니다.
말도 안되는 투쟁을 시작해놓고 학우들의 동참이 없다, 무관심이다 라고 치부하지 마십시오. 옳은 일엔 말없이 시간을 쪼개 참가하는 것이 우리 고려대학교의 정신이자 자랑입니다. 곧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넷, 당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의견조차 학생들 사이에서 공감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건대 학생들의 문제는 누구나 그 심각성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우리학교 학생이 아닌 학생들에게 총학생회장 투표권을 줄 수는 없는 것 입니다. 고려대학교에 입학원서를 내고 그것에 대해 학교의 허락과 합격증이 있어야 학교 구성원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주장이 아닌 사실입니다. 학생회의 구성범위는 고려대의 학칙에 의거하는 것이 바른 일입니다. 그것을 탄압이다, 자치활동 방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너무나 힘이 듭니다. 학칙까지 거부하며 대체 학교를 따로 세우실 겁니까? 그렇다면 결코 "고려대" 의 학생들은 학칙을 위반하는 학생회를 따를 순 없습니다. 또 보건대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일로 인하여 병설 보건전문대 학생들은 우리만큼이나 큰 상처를 입었고 새로 신설된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1학년 학생들도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하는 것이 옳은 일이였고 방법이 옳았다면 지금 왜 우리는 정릉이고 안암이고 그 어느 누구도 미소를 지을 수 없는 것일까요?
당신들이 해야할일은 ‘우리의 행동은 정당하다’ 라고 주장하실 것이 아니라 학우들에게 반성하며 사과하는 일입니다.
당신들의 그날의 행동은 현재 재학생들의 가슴에 너무나도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왜 당신들의 학교가 민족을 대표하는 학교냐라는 비아냥 거림에 침묵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지금 3사 언론과 전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질에 이제는 댓글 조차 달기 민망하고 허탈해 지게 되었습니다.깊은 사과로도 아물지 않을 너무나 큰 상처인데 이 상처는 상처가 아니라고,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앞뒤도 모르는 행동들은 이젠 여기서 끝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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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관련 즉각 나온 교수님들 비난 성명서
본관 교수 감금사태에 대한 성명서
일부 학생들이 4월 5일과 6일 사이에 본관에서 처장들을 감금한 사태를 알게 된 우리 교수들은 순수한 정신과 이념적인 토대를 훼손함으로써 오랜 세월 동안 선배들이 공들여 쌓아 왔던 학원 민주화의 탑을 무너뜨리고 다수 학생들의 건전한 운동마저 매도될 상황을 만들었다.
이에 우리 교수들은 이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관련 학생들의 철저한 참회와 이처럼 패륜적이고 불법적인 행동이 신성한 캠퍼스에서 발생한 사실로 인해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남다른 존경과 예의는 타 대학들이 부러워할 만한 우리 대학의 자랑거리였다. 또한 교수의 권위와 명예를 절대적으로 존중하는 학풍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대학 중의 하나가 고려대학교였다.
본관에서 교수들을 밤새 완력으로 감금한 학생들은 고려대학교의 고귀한 학풍과 전통을 저버림으로써 스스로 고려대학생임을 부정하는 자리에 이르렀다. 이들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은 학생운동의 사죄(謝罪)를 촉구한다. 또한 야간에 타인을 억류하고 감금하는 일은 형법상으로도 중범죄에 해당하는 바, 엄정한 학칙 집행을 통해 더 이상 우리 대학에서 유사한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단호하게 대처할 것임을 천명한다.
2006년 4월 7일
고려대학교 교수평의원회
이외 타 선본 및 학생회 비난 성명서
그뒤로 이어진 리얼리스트 선본의 출교자 비난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459
고대반장 선본의 출교자 비난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464
정대 학생회의 출교자 비난 & 보건대문제 설명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533
공대 학생회&여러 단과대의 출교자 비난 성명서
http://enku.net/bbs/zboard.php?id=notification&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6
고대사랑 출교자 비난 성명서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532
교수님들의 출교자 비난 성명서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530
문과대 교수님들의 성명서
(출교는 부당하나 반드시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써잇음!)
(그러나 출교자들은 이걸 편집해서 출교부당부분만 찌라시로뿌림)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960
검은옷 시위 사진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549
교우회지에 실린 출교자들이 꼭 보아야할 글
http://enku.net/bbs/zboard.php?id=freeboard&page=29&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03
고대언론인 성명서(선 출교철회, 후 학생사과 가 되야 된다는 글)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569
출교자들의 활약상
본관진입시도1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855
본관진입시도2(유리창깸)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968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971
연세대 어윤대 전 총장님 학위수여식 깽판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735
고려대 101주년 개교기념식깽판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682
숙명여대100주년 기념식 깽판(숙명여대학생의 분노에 찬 글도 있음)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903
http://www.korea.ac.kr/community/KF3S05T00F00-0-contents.jsp?idx=322183&page=2&search1=I&search2=sailux
http://www.korea.ac.kr/commuty/KF3S05T00F00-0-contents.jsp?idx=322485&page=2&search1=I&search2=sailux
누가 출교자대자보찢엇다가 자게에 사과문까지올리게된거
(출교자들은 사과 죽어도 안하면서 남의 사과는 꼭 받아냄)
http://www.korea.ac.kr/community/KF3S05T00F00-0-contents.jsp?idx=329451
http://www.korea.ac.kr/community/KF3S05T00F00-0-contents.jsp?idx=329546
대학원선배님이 본관근처에서 사진찍다가 봉변당한거
(옛날에 대학원선배님이 자게에 올렸다가 출교자측에서 발뺌해서 자진삭제하신 글)
http://enku.net/bbs/zboard.php?id=freeboard&page=35&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04
http://enku.net/bbs/zboard.php?id=freeboard&page=35&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05
http://enku.net/bbs/zboard.php?id=freeboard&page=35&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07
http://enku.net/bbs/zboard.php?id=freeboard&page=36&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08
출교자들이 법으로 해결하자며 법정간거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8039
마지막으로 앞으로 절대 사과하지 않겟다는 내용을 담은 출교자측 웹자보
http://www.korea.ac.kr/community/KF3S05T00F00-0-contents.jsp?idx=378453&page=1&search1=I&search2=rcheol
이 정도는 봐야.
신입생들이 만행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걸 다 보고도 출교자의 만행을 이해할 수 있는 행동으로 옹호할 수 있다면
좋을 대로 하세요 위 링크 자료들은 고대신문 및 기타 언론에 의한 자료들일 뿐
개인 자료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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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게시판
4.5 감금만행 현장에 있었던 학우들의 증언 및 FACT 모음
토모루 | 2008.02.02 02:13:28
12231명이 읽었어요
추천수가 70이 넘었지만 스크립트 에러로 올라가지 못했기에
다시 재개시합니다. 곰됴이님 답글 한번더 달아주세요.
최소한 사고하는 고대생이라면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저학번들이 저들의 조작과 거짓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것 만으로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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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게시글은 공대 95학번 선배님께서 올리신 자료입니다. 추가 자료 확보되는대로 사건 정황을 모르는 후배분들께
진실을 알리기 위해 계속 포스트 하겠습니다.
출교자들 이글 볼일 없지만 만약 본다면 쳐 들으세요
저학번들 상대로 구라를 치고 있는 모양인데 아직 그 패륜 현장을 본 사람들 그대로 살아있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똑바로 사세요
(리플리 신드롬이 의심되는 분들이라 2년간 구라를 치시면서 교자 본인들은 스스로를 모두 피해자로 세뇌한것 같습니다)
사건 정황을 전혀 모르는 저학번들을 위해 올립니다.
감금 일지가 조작이라고 주변에 거짓말을 뿌리고 다니는 모양인데.
사진만 봐도 세살 먹은 어린애도 저곳의 분위기를 알겠습니다.
포스터에 뻑규 Fuck you!!...아주 멋집니다.. 그 옆 안모 학우의 손가락도 잘 보세요
출교자들은 사진까지 조작이라고 씨부려주세요
어제 누군가 그러시더군요..무슨 천인공노할 범죄라도 저질렀냐고요..
어느 시대때는 능지처참해도 모자를 범죄일 수 있습니다
이하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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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감금사태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의 증언들에 대한 신빙성을 요구하셔서, 원문 전체를 올립니다.
4.5 감금사태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의 증언들입니다. 증거자료 1,2,3으로 올렸습니다.
비난글이 아니니, 삭제하지 말아주시고, 밑에 있는 글들이 사실인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 입니다.
특히, "다함께"나 "징계자 위원회"는 답변 부탁합니다.
[증거자료 1]
감금사태에 대한 학생연대회의(일명:yd)쪽 학생들의 의견들 (리얼리스트 선본) - 리얼리스트 선거본부 게시판에서 퍼옴. 지금은 없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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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이 글을 쓰신 분이 그때 본관에 계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자리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act now (다함께)분들의 투쟁방식은 도를 넘어섰다고 생각합니다. 앞뒤로 촘촘하게 앉아서 17시간동안 지나갈 자리를 틀어막고, 면전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삿대질하고 야유하고 비꼬고.. 뭔가 그렇게 하는 것이 단호하고 급진적인 투쟁인양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 방식은 절대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또한 윤리적인 면에서 학교측의 기준은 둘째치고, 일반적인 상식 수준을 벗어났다는 것은 그때 투쟁과정을 지켜보았던 사람들이라면 다들 이해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건대 학우들 역시 그때 일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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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본원1
대체 그 정당성은 누가 부여한답니까? 수백번 말하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진 못합니다. 투쟁의 방법은 당신들이 선택하는 것만이 옳지는 않습니다. 제발 좀 그 오만함을 버릴 수는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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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본원2
정말 개판이다
학생 운동한다는 사람들이
도덕성을 상실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운동한다는 것인가?
내 삶의 희망을 빼앗지 말아다오....
다함께분들.. 운동과 혁명이 희망인 사람들의 소망을 뺏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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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학번
다함께 회원들이
얼굴들이밀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면
솔직히 그 폭력적인 상황에 끼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게 용기없다고 욕하려면 욕하세요.
적어도 논쟁과 소통을 하려면 논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죠.
다함께가 다함께 방식으로 분위기 조성하면 아무도 말하기 싫어져요.
그날도 거의 다함께 회원님들이 선동하고 주도하던데..
솔직히 할말없습니다.
그런 섭섭하다는 식의 얘기는 나중에 속풀고 술먹을때 얘기하세요.
언제든 들어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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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있었던 본관 점거 시위에 대한 리얼리스트 선본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4월 5일에 있었던 본관 점거 및 처장단 감금은 분명 잘못되었습니다.
이번 행동은 매우 성급하고 극단적인 것으로서 많은 학우들과 함께 고대의 오늘을 고민하고 바꾸어 나가려는 사람들이 가져 나가야할 실천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우발적인 행동은 우리 요구의 정당성을 침해하고 학교 측에 빌미를 제공함으로서 궁극적으로 교육투쟁과 보건대 문제의 해결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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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ACT NOW선본은 즉각 처장단에 대한 감금과 본관 점거를 해제해야 합니다.
2만 고대인들과 함께 보건대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 해결과정을 모색하는 적극적인 대화와 토론을 기획해야 합니다. 일방적인 선언과 강변, 극단적이고 성급한 행동만으로는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모순들을 해결할 수 없음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다름아닌 우리 모두의 실천과 그 가능성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인지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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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자료2]
당시 "감금사태에 참여했던 학생"이 "안형우" 학우에게 주는 글 - 싸이 징계위원회에서 삭제한 글
"감금사태에 참여했던 학생"이 "안형우" 학우에게 주기위해 싸이 징계위원회
http://club.cyworld.nate.com/club/main/club_main.asp?club_id=51580415#
에 올렸다가 삭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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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자유게시판에서 퍼온 글] 99 안형우 학우에게
name : 이정수 hits :16 / date : 2006.04.27 19:42:00
안형우 학우.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국 안형우 학우가 분노한것도 학교측이 안형우 학우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아서가
아닙니까? 안형우 학우가 떳떳하다면 왜 그런 글들을 지우는지 궁금합니다.
다시 올리겠습니다.
안형우 학우에게
다함께에서 돌린 전단지의 주소를 보고 찾아왔습니다. 안형우 학우와 다른 학우들이 대화할 공간을 이곳에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추운 날씨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봄이라도 밤에는 쌀쌀하니 건강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일단 저는 학교가 내린 출교방침에 대하여 가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수위가 낮은 징계를 받았다면 그에 찬성했을 것이란 것을 밝힙니다.
당일 저는 약 세시간 가량 사태를 그 자리에서 지켜보았고 제가 본 것을 적겠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당시 교직원 한분이 대략 50~60명 되는 학우들 사이에 계셨고 조정식학우, 서범진학우, 안형우 학우및 보건대 학생회장의 발언이 계속되었습니다. 마이크로 진행을 하였는데 교직원분은 차분한 목소리로 진정하길 원하셨고 조정식 학우등은 고함을 지르며 교직원 분의 말 꼬투리를 하나하나 잡고 있었습니다. 대충 이런 식이었습니다.
" 여러분 방금 XXX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게 하도록 할까요~?"
그리고 쏟아지는 환호와 야유
당시 상황이 학교가 시위학우들과의 대화를 거절했다지만 제눈에 비친건 어느 나이드신 교직원 분이 땀을 흘리며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시위학우들 사이에서 떨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벽보에 적흰 욕설들. 도무지 학생들이 어른들에게 할수 있는 그런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고대 신문기자들이 다 찍어갔지만 존칭도 없었으며 "배때지에 기름 두르니 눈에 뵈는게 없냐" 라는 식의 욕설들 이런 것들도 투쟁을 위하여 정당화 될수 있나요?
저는 그당시 몇명의 단대학생회장들의 만류에도 불규하고 시위학우들 사이에서 시위학우들에게 “이러지 마라” “분명 이러면 보건대 학우들에게도 피해가 가고 학우님들도 피해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제가 받은건 4명의 여학우들의 비웃음과 째려봄 “재수없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것도 적어도 학번이 꽤나 차이나 보이는 후배들 한테 말이죠.
마지막으로 저의 분노를 일으킨 것은 누군지 확실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조정식 학우로 생각됩니다.) 이런 발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때까지 밤을 새서라도 여기서 못나가게 하자”
“와~”
여기서 못나가게 하는 것이 대치입니까? 아니면 감금입니까?
안형우 학우는 이렇게 밖에 투쟁하지 못합니까?
끝까지 자신의 신념만 자신의 신념에 동의하는 학우들만 강조할 뿐 다른 학우들의 목소리엔 전혀 귀를 기울이지 못합니까?
대자보를 붙일수 있는 게시판 외에 엘리베이터 복도 실내 계단 등에는 왜 자보를 붙였습니까?
이젠 당신들의 정의가 학내질서보다 우선입니까?
학교가 우릴 이렇게 대하니 우리도 이렇게 한다는 식의 발언
무슨 복수영화 찍습니까?
안형우 학우로 인하여 상처받고 있는 피해받고 있는 다른 많은 학우들의 마음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입니까? 이런 것들이 보이기는 합니까?
이런 상처들도 학교가 만든겁니까? 안형우 학우의 대.의.에 충분히 희생당해야 하는 그런 것들입니까?
안형우 학우를 질책하는 학우들은 학교나 사회의 언론 플레이에 속고만 있는 어리석은 학우들로 보입니까?
학교의 출교방침에 저도 같은 학우로써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현재 시위학우들의 모습을 보며 삭발투쟁에 대한 동정심보단 씁쓸함이 따르는것, 선배로써 답답함이 따르는 것은 제가 무지해서입니까 아니면 메말라서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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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자료 3]
[고려대학교 자유게시판에서…] 공대학생회 성명서
언제부터 고려대학교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자유 정의 진리를 외치던 고려대학교는 이제 더 이상 민족고대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쓸 수가 없게 됐습니다. 불의에 거침없이 항거하시던 선배들의 곧은 지조는 몇몇 학생들의 잘못된 정의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지난 4월 5일, 보건대 투표권을 요구하는 고려대학교 보건 병설전문대학 학생들, ..., 몇몇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본관 계단 사이에서 교수님들을 억류 하였습니다. 급히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달려간 저는 상태를 확인하였지만 분위기는 한껏 고조된 상태였고 그 사람들을 막고 교수님들을 억류를 풀어드리기에는 역부족 이었습니다. 교수들을 비꼬는 것은 물론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로 점거를 진행중인 그들을 보며 저는 할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점거를 진행하신 학생 여러분, 그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마치 정당한양 목소리를 높이며 학생들을 선동하고 요구를 들어달라고 강요하는 것은 정의와는 거리가 멉니다.
아래는 지금 이 순간부터 바로 잡아야 될 "잘못된 행동" 들에 대한 강한 비판입니다.
하나. 공포 분위기 조성입니다.
학생회를 하는 사람들은 학교에 무언가 요구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하지만 저는 요구안을 전달할 때 사람들을 모으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습니다. 요 몇년간 신뢰받지 못했던 학생회의 역사가 말해주고 꼭 필요이상으로 본관을 점거하고 언론사에 연락해서 사사건건 기자회견을 하고 폭력사태를 조장해야만 그 요구안이 관철되는 것은 결코 아니였습니다.그것은 학생회와 학교의 관계를 서로간의 견제와 공동목표의 달성이 아닌 서로간의 극심한 분노만을 남기게 되게 하였고 그 싸움을 지켜보던 학우들은 이제 차가운 웃음만을 학생회에 보낼 뿐입니다.
아직도 이 학우들의 냉소를 그 저 무관심으로 치부할 것입니까!
잘못은 학생회, 우리들에 있다는 것을 왜 인정하지 않으시려고합니까!
언제까지 학우들을 설득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말을 듣지 않으실 겁니까!
우리가 학우들에게 설득당해야 된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으시는겁니까.
한껏 조성된 분위기를 바탕으로 처장님들께 요구를 하면서 학생들의 의견조차 듣지 않으려 했다라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광분화된 공포 분위기에서 처장단에게 조롱과 야유를 던지며 학생들의 의견을 듣지 않으려 했다라는 여러분의 주장에서 "정의로운 논리" 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면 거기에 맞는 논리와 주장을 앞세워 제시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받아 들여질 수 도 있고 받아들여 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지 당신들이 결코 절대선은 아닙니다.
둘. 사제간의 예의를 무시한 것 입니다.
제가 본관에 도착했을 때 다함께의 서범진씨는
‘교수님들이 이상황에서 너무 편하게 계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불편하게 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말로 학생들에게 박수를 받아 내고 있었습니다. 또 한 학우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드리면 늦은 점거로 피로해진 교수님께서 잠을 청하시자 ‘어 이 상황에서 잠이와? 졸고 있네? 잠이와??’라는 말로 교수를 조롱했다고 합니다. 절대 글을 읽으실 분들에게 흥분을 일으키기 위해 꾸며낸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인 인성을 갖추지 못한 듯, 예의에 예자도 모르는 학생들을 저는 더 이상 고려대학교 학생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양성은 존중됨이 맞지만 그 다양성을 구성하는 구성원은 최소한의 의무가 따르는 법입니다. 그 의무를 저버리는 순간, 심판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셋, 언제나 학교는 절대악이고 합의하는 것은 패배와도 같은 "전투" 를 하는 것은 지겹습니다.
고려대학교의 선배님들께서는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에 맞서 자신을 희생시키면서 정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 하셨습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누구보다 앞서 달려가 항거 하셨던 분들이 바로 고대 선배님들이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학생들은 그것을 잘못 착각 하고 있습니다. 마치 투쟁이라고 하면 대상이 누구든 간에 정당하고 투쟁, 그 자체를 미화시키고 방법은 오직 "투쟁" 만이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학생회가 학교를 견제하고 학우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맞습니다.
허나, 그 강력하고 폭력적인 투쟁이
왜 교내에서,
왜 사제지간에서,
왜 3사 방송국을 다 불러놓고
왜 극심한 학우들의 스트레스와 불만을 야기하면서 까지
그렇게 기습공격을 하는 것입니까.
학우들에게 "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해도 됩니까?" 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일단 벌이고 난 뒤에 "동참해 주십시오!"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다니고 있는 학교가 불의 절대악 입니까?
진리를 위해 노력하시는 교수님들이 진정한 불의 입니까?
아니면 학생들을 위해 고생하시는 교직원 분들이 당신들의 불의인지 묻고 싶습니다.
말도 안되는 투쟁을 시작해놓고 학우들의 동참이 없다, 무관심이다 라고 치부하지 마십시오. 옳은 일엔 말없이 시간을 쪼개 참가하는 것이 우리 고려대학교의 정신이자 자랑입니다. 곧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넷, 당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의견조차 학생들 사이에서 공감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건대 학생들의 문제는 누구나 그 심각성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우리학교 학생이 아닌 학생들에게 총학생회장 투표권을 줄 수는 없는 것 입니다. 고려대학교에 입학원서를 내고 그것에 대해 학교의 허락과 합격증이 있어야 학교 구성원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주장이 아닌 사실입니다. 학생회의 구성범위는 고려대의 학칙에 의거하는 것이 바른 일입니다. 그것을 탄압이다, 자치활동 방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너무나 힘이 듭니다. 학칙까지 거부하며 대체 학교를 따로 세우실 겁니까? 그렇다면 결코 "고려대" 의 학생들은 학칙을 위반하는 학생회를 따를 순 없습니다. 또 보건대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일로 인하여 병설 보건전문대 학생들은 우리만큼이나 큰 상처를 입었고 새로 신설된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1학년 학생들도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하는 것이 옳은 일이였고 방법이 옳았다면 지금 왜 우리는 정릉이고 안암이고 그 어느 누구도 미소를 지을 수 없는 것일까요?
당신들이 해야할일은 ‘우리의 행동은 정당하다’ 라고 주장하실 것이 아니라 학우들에게 반성하며 사과하는 일입니다.
당신들의 그날의 행동은 현재 재학생들의 가슴에 너무나도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왜 당신들의 학교가 민족을 대표하는 학교냐라는 비아냥 거림에 침묵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지금 3사 언론과 전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질에 이제는 댓글 조차 달기 민망하고 허탈해 지게 되었습니다.깊은 사과로도 아물지 않을 너무나 큰 상처인데 이 상처는 상처가 아니라고,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앞뒤도 모르는 행동들은 이젠 여기서 끝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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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관련 즉각 나온 교수님들 비난 성명서
본관 교수 감금사태에 대한 성명서
일부 학생들이 4월 5일과 6일 사이에 본관에서 처장들을 감금한 사태를 알게 된 우리 교수들은 순수한 정신과 이념적인 토대를 훼손함으로써 오랜 세월 동안 선배들이 공들여 쌓아 왔던 학원 민주화의 탑을 무너뜨리고 다수 학생들의 건전한 운동마저 매도될 상황을 만들었다.
이에 우리 교수들은 이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관련 학생들의 철저한 참회와 이처럼 패륜적이고 불법적인 행동이 신성한 캠퍼스에서 발생한 사실로 인해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남다른 존경과 예의는 타 대학들이 부러워할 만한 우리 대학의 자랑거리였다. 또한 교수의 권위와 명예를 절대적으로 존중하는 학풍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대학 중의 하나가 고려대학교였다.
본관에서 교수들을 밤새 완력으로 감금한 학생들은 고려대학교의 고귀한 학풍과 전통을 저버림으로써 스스로 고려대학생임을 부정하는 자리에 이르렀다. 이들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은 학생운동의 사죄(謝罪)를 촉구한다. 또한 야간에 타인을 억류하고 감금하는 일은 형법상으로도 중범죄에 해당하는 바, 엄정한 학칙 집행을 통해 더 이상 우리 대학에서 유사한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단호하게 대처할 것임을 천명한다.
2006년 4월 7일
고려대학교 교수평의원회
이외 타 선본 및 학생회 비난 성명서
그뒤로 이어진 리얼리스트 선본의 출교자 비난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459
고대반장 선본의 출교자 비난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464
정대 학생회의 출교자 비난 & 보건대문제 설명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533
공대 학생회&여러 단과대의 출교자 비난 성명서
http://enku.net/bbs/zboard.php?id=notification&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6
고대사랑 출교자 비난 성명서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532
교수님들의 출교자 비난 성명서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530
문과대 교수님들의 성명서
(출교는 부당하나 반드시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써잇음!)
(그러나 출교자들은 이걸 편집해서 출교부당부분만 찌라시로뿌림)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960
검은옷 시위 사진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549
교우회지에 실린 출교자들이 꼭 보아야할 글
http://enku.net/bbs/zboard.php?id=freeboard&page=29&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03
고대언론인 성명서(선 출교철회, 후 학생사과 가 되야 된다는 글)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569
출교자들의 활약상
본관진입시도1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855
본관진입시도2(유리창깸)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968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971
연세대 어윤대 전 총장님 학위수여식 깽판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735
고려대 101주년 개교기념식깽판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682
숙명여대100주년 기념식 깽판(숙명여대학생의 분노에 찬 글도 있음)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903
http://www.korea.ac.kr/community/KF3S05T00F00-0-contents.jsp?idx=322183&page=2&search1=I&search2=sailux
http://www.korea.ac.kr/commuty/KF3S05T00F00-0-contents.jsp?idx=322485&page=2&search1=I&search2=sailux
누가 출교자대자보찢엇다가 자게에 사과문까지올리게된거
(출교자들은 사과 죽어도 안하면서 남의 사과는 꼭 받아냄)
http://www.korea.ac.kr/community/KF3S05T00F00-0-contents.jsp?idx=329451
http://www.korea.ac.kr/community/KF3S05T00F00-0-contents.jsp?idx=329546
대학원선배님이 본관근처에서 사진찍다가 봉변당한거
(옛날에 대학원선배님이 자게에 올렸다가 출교자측에서 발뺌해서 자진삭제하신 글)
http://enku.net/bbs/zboard.php?id=freeboard&page=35&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04
http://enku.net/bbs/zboard.php?id=freeboard&page=35&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05
http://enku.net/bbs/zboard.php?id=freeboard&page=35&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07
http://enku.net/bbs/zboard.php?id=freeboard&page=36&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08
출교자들이 법으로 해결하자며 법정간거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8039
마지막으로 앞으로 절대 사과하지 않겟다는 내용을 담은 출교자측 웹자보
http://www.korea.ac.kr/community/KF3S05T00F00-0-contents.jsp?idx=378453&page=1&search1=I&search2=rcheol
이 정도는 봐야.
신입생들이 만행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걸 다 보고도 출교자의 만행을 이해할 수 있는 행동으로 옹호할 수 있다면
좋을 대로 하세요 위 링크 자료들은 고대신문 및 기타 언론에 의한 자료들일 뿐
개인 자료는 없습니다.
이게 제 링크 글
총학 홈피에 있는걸 자게에 퍼온걸 보고 다시 고파스에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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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 홈페이지에서 퍼왔습니다.
대자보 보니 성영신 전 학생처장(맞나요?)이 증언한게 있더군요.
그래서 혹시나 정말 학교의 거짓인가 생각도했는데...
출교자~여러분! 그리고 돕는 사람들!
왜 그 증언만 넣은 건가요?
증 인 신 문 사 항
(증인 성 영 신)
1. 증인은 1987. 9. 경부터 현재까지 고려대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하고 있지요.
2. 증인은 이 사건 원고들이... 더 보기
총학 홈피에 있는걸 자게에 퍼온걸 보고 다시 고파스에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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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 홈페이지에서 퍼왔습니다.
대자보 보니 성영신 전 학생처장(맞나요?)이 증언한게 있더군요.
그래서 혹시나 정말 학교의 거짓인가 생각도했는데...
출교자~여러분! 그리고 돕는 사람들!
왜 그 증언만 넣은 건가요?
증 인 신 문 사 항
(증인 성 영 신)
1. 증인은 1987. 9. 경부터 현재까지 고려대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하고 있지요.
2. 증인은 이 사건 원고들이... 더 보기
이게 제 링크 글
총학 홈피에 있는걸 자게에 퍼온걸 보고 다시 고파스에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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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 홈페이지에서 퍼왔습니다.
대자보 보니 성영신 전 학생처장(맞나요?)이 증언한게 있더군요.
그래서 혹시나 정말 학교의 거짓인가 생각도했는데...
출교자~여러분! 그리고 돕는 사람들!
왜 그 증언만 넣은 건가요?
증 인 신 문 사 항
(증인 성 영 신)
1. 증인은 1987. 9. 경부터 현재까지 고려대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하고 있지요.
2. 증인은 이 사건 원고들이 보직 교수들을 감금할 당시 감금 장소에 있었고 상벌위원회가 개최되었을 당시 학생처장으로서 당연직 상벌위원장으로 참석하여 원고들에 대한 이 사건 출교처분이 이루어진 경과에 관하여 자세히 알고 있지요.
3. 교수감금 사태가 발생되기 직전까지 학교의 상황은, 2006. 2. 경에 있었던 입학처 불법 점거 및 폭력 시위를 벌인 학생들에 대하여 학교에서의 징계 논의가 진행 중이었는데 대부분의 단과대학 학생회장들은 공식, 비공식적인 사과와 반성을 표명한 반면 위 입학처 점거를 주도하였던 원고들 모두를 포함한 시위 주동자들은 학교의 징계를 저지하기 위하여 2006. 3. 2. 입학식장에서, 같은 달 10. 본관 앞에서, 같은 달 22. 본관 내부 3층 교무위원회 회의실 앞에서의 끊임없는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시위를 벌여 오던 중이었습니다.
4. 고려대학교 안암 본교에서는 2005. 11. 경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가 있었지요.
5. 증인은 2006. 3. 29. 보건대학에서 보건대학 2, 3학년들을 상대로 한 학생회장 선거 합동 유세가 열렸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건대학 2, 3학년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지요.
6. 학교의 입장은 2006. 3. 27. 자(병설 보건대학 재학생 학적에 대한 안내, 을제9호증의 1) 및 같은 해 4. 3. 자(보건과학대학 신설 안내, 을제9호증의 2) 각 안내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보건대학 2, 3학년들은, 2006년도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보건과학대학에 입학한 1학년들과는 다르게, 여전히 보건대학의 학적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지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의 학적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지요.
7. 보건대학 2, 3학년들에 대한 재학생명단 및 학적부 관리 등 학사행정은 안암캠퍼스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릉에 있는 보건대학에서 따로이 관리하고 있고 이들에 대한 수업도 안암캠퍼스가 아닌 정릉 캠퍼스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지요.
8. 그런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보건대학생 전체에게 선거권을 주기로 결정한 것은 06학번부터 본교생으로 인정하는 학교전체의 인식과 괴리된 것이라는 논란이 시작되었고,(을제5호증 2006. 4. 2. 자 고대신문 인터넷판)
9. 보건대 학생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을 맹비난하며 심지어는 법원에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하면 어떻게 될지를 문의하는 글이 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게재되기 시작하여(을제11호증의 1 내지 4) 학생처장인 증인으로서는 학교 전체가 혼돈에 빠질 가능성을 고려하여 각 선거본부에 대하여 보건대학2, 3학년들에 대한 선거권 부여에 관한 학교의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게 되었지요(을제7호증 4. 3. 자 고대신문 인터넷판).
10. 증인은 이러한 필요에 따라 2006. 4. 3. 학생처장실에서 각 학생회장 후보 및 선거관리를 책임진 동아리연합회 회장, 고대신문 기자들과 만나 보건대학2, 3학년들에 대한 선거권 부여에 관한 학교의 공식 입장을 밝히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① 선거시행세칙 제4조에는 ‘선거권은 고려대학교 안암총학생회 회원 모두에게 있음을 원칙으로 하며, 총학생회 투표일 전날까지 각 단대 교학과에 등록 확인된 재학생으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보건대학 2, 3학년들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의 선거권을 가질 수 없고,
② 이미 학교에서 공지한 2006. 3. 27. 자(병설 보건대한 재학생 학적에 대한 안내, 을제9호증의 1) 및 같은 해 4. 3. 자(보건과학대학 신설 안내, 을제9호증의 2) 각 안내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보건대학 2, 3학년들은, 2006년도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보건과학대학에 입학한 1학년들과는 다르게, 여전히 보건대학의 학적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지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의 학적을 취득하는 것은 아니며,
③ 보건대학은 2006학년도에도 이전과 다름없이 따로이 총학생회가 구성되어 존재하고 있고(회장 조재종), 총학생회 회칙도 고려대 안암캠퍼스와는 다르게 존재할 뿐 아니라, 학생회비도 고려대 안암캠퍼스에 내는 것이 아닌 보건대학등록금 고지서에 같이 부과되어 나가고 있으므로(을제10호증의 1 내지 2 2006학년도 제2학기 등록금 수납원부, 2006학년도 제2학기 기타납입금 수납원부, 을제10호증의 3 내지 5 2006학년도 제2학기 등록금 수납원부, 2006학년도 제2학기 기타납입금 수납원부, 2006학년도 제2학기 학생회비 수납원부)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의 학생이 아니고 따라서 안암캠퍼스 학생으로서의 선거권은 가질 수 없고,
④ 투표권 부여의 문제는 자격의 문제로서 선관위에서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었지요.
11. 이러한 증인의 설명에 대하여 비운동권이었던 학생회장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운동권 후보들, 특히 ‘액트 나우’ 선거본부의 총학생회 부회장 후보인 원고 서범진은 ‘불법이라도 좋으니 참견 말라.’, ‘학생처는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지원만 하면 되지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이 없다.’며 반발하였고 자체적으로 보건대학 재학생 선거인 명부를 작성한 뒤 투표를 실시하였던 것이지요.
12. 선거에 있어 보건대생의 투표 참여가 일반 학생들의 반발에 부딪히자(공대 학생회장은 선거후 개표를 거부하며 투표함을 선관위로 보내지 않음) 보건대생의 투표 강행을 주도한 운동권 3개 후보 선거운동원들은 보건대생의 투표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줄 것을 학교측에 요청하기로 결정하고 원고들을 포함한 선거운동원 50여명이 행동을 시작한 것이 4. 5. 교수 감금사태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지요.
13. 원고들을 비롯한 운동권 학생 100여명은 2006. 4. 5. 본관 앞에서 계속적인 모임을 가진 뒤 같은 날 14:35 경 위 학생들 중 원고들을 비롯한 50여명이 교무위원회 회의가 진행 중이던 본관 3층 제3회의실로 진입하였지요.
14. 그러나 당시 요구안을 가져온 학생들이 전체 학생들을 대표하는 지위에 있지도 않았고 또한 선거를 주관하는 선거관리위원장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단지 선거에 있어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있는 극히 일부의 운동권 학생들일 뿐이었던 것이지요.
15. 이들 중 원고 서범진(‘액트 나우’ 선거본부 부대표), 원고 오진호, 원고 주병준 등은 교무위원회에 본관 3층 교무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학생들의 요구안을 전달하겠다며 회의실로 들어가려고 하였고 직원들은 당시 회의가 진행 중이므로 들어갈 수 없다고 제지하자 실랑이가 벌어지게 되었고 이에 학생들은 회의실 밖에서 ‘보건대학 2, 3학년의 투표권을 인정하라, 학생자치권을 탄압하지 말라.’는 취지의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학생들의 요구안을 받아들여 달라고 소란을 피우게 되었던 것이지요.
16. 학생들의 요구안에 관하여는 위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이미 4. 3. 학생처장인 증인과 학생들과의 면담에서 학교의 공식적인 입장이 전달되었던 것으로 재론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지요.
17. 그런데도 교무위원회 회의실 밖에서의 소란이 벌어지게 되었으므로 증인은 보건과학대학장과 함께 회의실 밖으로 나와 ‘보건대학 학생들의 요구안은 보건과학대 학장님께 전달하고, 본교 학생들의 요구안은 학생처장실로 가져오면 받아주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학생처장실로 가려고 복도를 내려가는 도중 원고 오진호가 마치 어떤 지시를 받은 것처럼 2층으로부터 급히 올라오며 ‘막아’ 하고 소리치자 학생들은 일사불란하게 팔장을 끼고 본관 2층과 3층 사이의 계단 앞뒤를 위아래로 막아서며 보건과학대학장과 증인을 에워싸고 학생들의 요구안을 받아줄 것을 거칠게 요구하였던 것이지요.
18. 특히 원고 서범진은 보건과학대학장과 증인 및 이들을 수행하여 학생처장실로 가려던 학생지원부 직원 4명을 에워싸고 있는 학생들을 향하여 “좀 더 압박해야 요구안을 받아줄 것 같습니다. 뒤에 있는 학생들은 더 앞쪽으로 와서 얘기를 듣도록 합시다”라고 선동하였고 이에 시위 학생들은 감금된 증인 등을 몸으로 밀착하여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들었던 것이지요.
19. 모르는 사람들은 단순히 ‘학생들의 요구안을 수령하여 주면 될 것 아닌가’하고 증인이 요구안을 수령하지 않은 점에 관하여 의문을 가질 수 있으나 원고들이 요구한 것은 단지 요구안의 수령뿐만 아니라 이를 넘어 즉각적인 검토와 대화의 요청이었지요.
20. 그러나 학교의 공식적인 입장은 이미 확정되어 학생들에게 통보된 상태이고, 이러한 공식적인 입장을 바꾸려면 회의를 소집하여 내부의사결정을 변경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학생들이 요구하는 바와 같은 즉각적인 검토도 불가능하거니와 학생들이 대화를 하자고 요구하는 것도 말만 대화이지 실제로는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한정이 없고 아무런 쓸모없는 시간의 낭비를 강요하는 것 외에는 다름없는 것이었지요.
21. 학생들의 요구가 도의적이거나 법적 정당성을 가지려면, 교무위원회 방실 밖에 있던 직원에게 요구안을 전달하고 돌아 가 답변을 기다리거나, 학생처장실 또는 학생처에 요구안을 전달하고 학교 측의 답변을 기다리는 순리적인 절차를 거쳤어야만 하지요.
22. 그러나 학생들은 당일 교무위원회 및 연이어 계획되어 있던 통합 대학원 위원회, 각 교수의 강의일정 등 학교 또는 교수들의 행사 및 일정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요구안의 접수 및 즉각적인 검토와 대화를 요구하면서 위 교수들 및 직원들에 대한 감금을 시작하여 당일 예정되어 있던 교무위원회와 통합대학원 위원회는 무산될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23. 증인은 4. 3. 이미 학교의 입장을 통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소란을 피우고 당시 진행 중이던 교무위원회가 지장을 받게 되자 ‘학생처장실로 가자, 그곳에서 받아주겠다, 학생들의 일이므로 학생처로 가져 와야지 본관으로 많은 학생들이 집단으로 몰려 와 폭력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뒤 이를 배경으로 요구안을 받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받을 수가 없다, 100명씩 몰려오지 말고 대표가 가져오라.’고 요구하였으나 학생들은 ‘이 자리에서 받아 달라, 받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다.’며 보건과학대학장과 증인에 대한 감금을 시작하였던 것이지요.
24. 위와 같이 시작된 증인과 보건과학대학장에 대한 같은 날 15:30경부터의 감금은 약 2시간 가량 계속되었지요.
25. 학생들은 처장단이 올 때까지의 2시간 동안 ‘보건대학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학생자치활동의 탄압이다, 보건대학을 통폐합할 때는 다해준다 해놓고 지금 해준 것이 무엇이냐’는 등의 소리를 질러댔지요.
26. 17:00경 감금되어 있던 증인은 목이 말라 잠깐 회의실에 들어가서 물 한 컵을 마시고 나오겠다고 요구하였으나 거부당하였고 재차 “3층 회의실 안에 정수기가 있으니 물 한컵만 마시고 나오겠다. 내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 염려되면 핸드백을 맡기고 가겠다.”라고 하였으나 시위 주동자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옆에 서 있던 학생지원부 직원들이 처장님이 목이 마르시니 잠시 다녀올 수 있도록 부탁하였으나 원고 서범진은 “요구안을 받고 물 마시러 가십시오”라고 말하며 이를 거부하였지요.
27. 이 때 3층 복도에 있던 한 시위자 중 한사람이 자신이 마시던 한모금 남짓 남은 1.5 리터 생수 페트병을 계단 아래로 던져 계단 바닥에 떨어지자 아래에 있던 한 시위 학생이 이를 주워 증인에게 건네었지요.
28. 이러한 모욕적인 행동을 보고 증인이 마시지 않자 원고 서범진은 마이크에 대고 “학생처장이 남이 먹던 물이라 마시지 않겠답니다.”라고 외쳤고 시위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와”하고 환호하였지요.
29. 17:40 경 증인 및 보건과학대학장의 감금 소식을 전해들은 여섯명의 처장들(기획예산처장, 교무처장, 총무처장, 정보전산처장, 입학처장, 관리처장)이 올라와서 시위 학생들에게 “이게 뭣 하는 짓들이냐?”며 증인을 데리고 내려가려고 계단을 내려가자 이때 원고 오진호의 “막아”라는 구호를 시작으로 나머지 시위자들은 스크럼을 짜고 뒤에 온 처장들마저 나가지 못하게 막으면서 2층과 3층 사이의 한평 남짓한 층간 복도에 8명의 교수와 학생지원부 직원 4명을 감금하기 시작하였지요.
30. 이러한 상황에서 기획예산처장이 학생들과 학생들의 행위가 불법이며 적절치 않음을 지적하고자 마이크를 달라고 하였으나 원고 조정식이 야유와 함께 거절하였지요.
31. 기획예산처장이 운동권 사이에 ‘아치’라는 별명으로만 알려져 있던 원고 조정식에게 “자네, 혹시 나의 국제법 강의들었던 조정식군이 아니냐?”라고 묻자 원고 조정식은 비아냥거리는 투로 “우리 유명하신 박기갑 교수가 드디어 나의 정체를 파악했네요 ∼∼”라며 학생들의 야유를 유도하였지요.
32. 19:00경 찬 시멘트 바닥에 앉아있거나 서 있느라고 피곤으로 지친 처장들에게 직원이 사무실에서 의자 6개를 가져왔으나 부족하여 본관에 대기하고 있던 총무부 직원이 접개 의자를 가져 왔지요.
33. 접개 의자의 반입에 대하여 원고 서범진은 “이런 상황에서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느냐?”, “우리도 바닥에 앉아있는데 너무 편하게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하며 2층에 있던 학생들에게 “막아”라고 지시하여 반입을 저지시켰지요.
34. 이후 여성인 증인, 몸이 아픈 정보전산처장만 우선 2개의 의자에 앉고 보건과학대학장과 다섯명의 처장은 나머지 네 개의 의자에 서로 교대로 앉거나 서 있게 되었지요.
35. 19:30경 학생들이 저녁식사로 김밥, 햄버거 등을 주문하여 먹기 시작여 감금되어 있던 처장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오겠다고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지요.
36. 8시 대학원 세미나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감금으로 인하여 갈 수 없었던 기획예산처장은 연구실 조교인 소외 한승우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세미나는 불가능하니 모두들 돌아가라고 통화하였지요.
37. 지도교수의 감금 사실을 알게 된 대학원생 한승우는 감금현장으로 달려와 시위학생들에게 “왜 교수들을 감금하는가? 이것이 불법인지를 모르는가?”라고 심하게 항의하였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지요.
38. 위 한승우는 그 후인 밤 11시, 새벽 2시 경 등 여러 차례 시위 학생들과 다투었으나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었지요.
39. 21:00경 입학처장이 화장실에 가려는 것을 시위 학생들이 막자 입학처장은 “저는 입학처장 김인묵입니다. 내가 화장실에 가려 하는데 안된다고 합니다. 저 화장실 가려는데 안되겠습니까?”라고 크게 소리치자 원고들 중 1명이 다가와서 내용을 확인하고 허락하였지요.
40. 시위 학생들은 입학처장이 화장실을 감에 있어서도 대동하였고 볼 일을 보는 동안 화장실 밖에서 감시하였지요.
41. 그 후 다른 처장들이 화장실에 갈 때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뜻을 표명하고 한사람씩 허락을 얻어 시위자들의 감시를 받으며 화장실에 갔다 올 수밖에 없었지요.
42. 흡연을 하는 입학처장은 시위 학생들이 밖에서 담배피우는 것을 보고 시위자들에게 담배를 피우겠다고 얘기하니 화장실에서 피우라고 하여 “금연빌딩인데 화장실에서 피울 수 없다. 너희들도 나가서 피우지 않았느냐? 나도 나가서 피워야겠다. 너희들이 정 불안하면 나를 감시해도 좋다.”라고 말하며 부탁하였으나 원고 안형우로부터 거절당하였지요.
43. 21:20경 총무처장이 학생지원부 오영길 부장과 이재철 선생을 불러 “우리는 모두 남아 있을 터이니 여성인 증인과 환자인 정보전산처장을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부탁해 볼 것”을 권유하였으나 거절당하였지요.
44. 정보전산처장이 심한 감기 몸살로 온 몸에 열이 나고 오한이 들어 학생지원부 과장이 계단을 막고 있는 학생들에게 환자이니 보내드리자고 재차 요청하였으나 아래 계단을 막고 서 있던 시위자들로부터 “자신들은 대표가 아니므로 결정권이 없다”는 말로 거절당하였지요.
45. 이에 학생지원부 과장이 “사람이 아픈 위급상황인데 결정권이 없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 너희들은 사람이 죽어가는 위급상황에도 그 따위로 말할 것이냐?. 누가 결정권이 있느냐?”라고 화를 내며 소리쳤으나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하였지요.
46. 그 후 정보전산처장의 몸 상태가 점점 나빠져 대학원 학생에게 전화하여 연구실에 있는 약을 가져오라고 시켰고 대학원생 두 명이 약을 가져와서 먹이게 되었으며, 대학원생 또한 시위자들에게 교수님이 몸이 불편하시니 보내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였으나 이 역시 거절당하였지요.
47. 22:10경 시간이 흘러가면서 소강상태에 빠지자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한 듯 원고 서범진은 “교수님들이 이 상황에서 너무 편하게 계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불편하게 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며 학생들로 하여금 처장들에게 얼굴이 맞닿을 정도로 밀착 압박도록 시켰지요.
48. 학생들이 너무 가까이 밀착하여 오자 감금된 사람들은 비키라고 말하며 다가오는 학생들을 밀어내려고 했으나 역부족으로 당하지 못하고 밀착된 상태로 지냈지요.
49. 이후 학생들은 감금된 교수들의 앞에 지나다닐 틈도 없이 촘촘하게 앉아서 원고 김지윤, 원고 조정식, 원고 안형우, 원고 주병준 등은 교수 면전에서 소리지르고 삿대질하며 야유하고 빈정거렸지요.
50. 기획예산처장과 관리처장이 바로 코앞에 앉아 있던 원고 김지윤과 원고 주병준에게 “고려대 학생이라면 학번과 이름을 밝혀라”라고 하자, 원고 김지윤과 원고 주병준은 “우리를 짜르려고요?”라며 빈정거렸지요.
51. 기획예산처장이 계단에 앉아 있던 어려보이는 여학생들에게 “너는 06학번 신입생으로 보이는데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서 학업에 열중해야 할 것 아니냐”라고 충고하자, 이를 들은 원고 김지윤 등은 “얘들은 앞으로 우리의 대를 이어 일할 새로운 피에요. 가기는 왜 가요!”라고 맞대꾸하였지요.
52. 22:30경 보건과학대학장이 보건대학통폐합과 관련하여 보건대학 학생들의 질의에 답변하던 중 한 시위 학생이 “학장은 개가 아닙니다. 시키는 대로 하는 개가 되지 마십시오”라는 모욕적인 말을 하였지요.
53. 모욕을 받은 교무처장이 “누구야? 개라니? 누가 교수보고 개라고 그랬어?”라고 분개하였고 이에 학생들은 ‘그게 개가 아니고 뭡니까?’라고 맞고함 치며 소동이 있게 되었지요.
54. 23:00경 교무처장이 시위자들에게 “너희들이 지금 우리들을 감금하고 있다”라고 얘기하자 시위주동자 중 한명인 원고 서범진은 “방어적 폭력이다.”라고 대꾸하였지요.
55. 감금이 계속되는 동안 처장들에게는 말 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고 원고들이 교대로 마이크를 돌려가며 온갖 야유와 빈정거림으로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지요.
56. 원고 서범진, 원고 안형우, 원고 주병준, 원고 조정식, 원고 오진호, 원고 김지윤 등 시위 주동자들은 앉아 있는 단순 가담자들이 지루해하거나 졸거나 심심해하면 마이크를 잡고 학교가 무조건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중간 중간 학생들을 선동하는 발언을 하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할 수 있도록 발언시간대를 마련하기도 하는 등 교대로 마이크를 돌려가며 시위를 이끌어 나갔지요.
57. 처장들은 “우리에게도 마이크를 달라. 이 문제를 계속 이렇게 끌고 갈 수 없지 않느냐?”라고 얘기하였으나 주동자 중 한명인 원고 조정식은 “그러면 처장님들도 앞으로 마이크를 준비하십시오”라고 야유하였고 이에 시위자들이 크게 웃는 모욕을 당하였지요.
58. 이중 원고 조정식은 “오늘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밤을 새서라도 여기서 못나가게 하자.”고 소리치며 선동하였고 원고 조정식, 원고 서범진이 ‘교수님들이 우리보고 감금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감금입니까?’ 하면 다른 학생들은 ‘아니오’라고 일제히 소리치며 교수들에게 야유의 구호를 외쳤지요.
59. 4월 5일 23:30 - 4월 6일 01:30 경 당일 선거의 투표 집계를 마치고 문과대학 학생회장,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사대학생회장 등 일부 학생들이 뒤 늦게 달려와 잠시 시위자들과 이런 식의 감금이 선거 진행에 도움이 되는가? 이러한 방식은 옳지 않다는 등등 언쟁을 한 후 교수감금에 관하여 시위 참여 학생들 사이에 투표가 실시되었으나 원고들이 보건대 학생들을 상대로 ‘학교가 폐교되었다’는 취지로 감정을 자극하며 그 자리에서 교수감금을 계속하는 방향으로 선동하였지요.
60. 투표결과는 감금된 그 자리에서 요구안을 받게 해야 한다는 쪽이 우세하게 나왔고 이에 시위참여자 중 교수감금에 반대했던 일부 학생들은 본관에서 철수하였지요.
61. 24:00경 외부에서 처장단의 감금 소식을 들은 대외협력처장이 당일 24:00경 감금장소로 와 시위자들에게 대화를 요청하였지요.
62. 시위자들은 “보건대학 재학생들의 투표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하였고 대외협력처장은 학교의 입장을 지지하는 의사를 표명하였지요.
63. 대화 도중 자신들의 입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3층 복도에 있던 한 학생이 대외협력처장에게 “그만 집어 쳐!”라고 욕을 하였지요.
64. 그 욕설을 들은 대외협력처장은 “방금 이야기 한 학생 내려와서 사과하라.”, “방금 얘기는 실수일 수 있다. 사과를 하면 받아주겠다.”라고 얘기하였으나 아무도 내려오지 않았지요.
65. 이에 대외협력처장은 “이런 상황에서는 대화할 수 없다.”고 말하고 2층으로 내려가려고 하자 원고 오진호, 원고 주병진 등이 시위자들을 지시하여 못나가게 막아 대외협력처장은 “왜 막느냐? 들어올 때 마음대로 들어왔는데 나갈 때 왜 막느냐. 나는 나가겠다.”라고 말하자 위 원고들은 “못나간다.”고 하였고 대외협력처장은 “이렇게 감금해서 되겠느냐?”고 항의하였으나 “감금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무력으로 못나가게 막아 대외협력처장도 감금당하게 되었지요.
66. 4월 6일 00:10경 수술 후유증을 염려하여 교수감금 장소에 참여하지 않고 사태의 추이를 살펴보고 있던 연구처장이 2층 복도에서 보건전문대 학생들과 “이렇게 교수를 감금해서 되겠느냐?”라고 얘기하며 학생들을 설득하였으나 실패하였지요.
67. 연구처장이 휴대폰을 이용하여 처장단들이 감금된 장면 사진을 찍자 원고 강영만을 비롯한 학생들이 찍지 말라고 소리침과 동시에 연구처장의 앞을 손과 몸으로 가로막으며 달려들었고 이에 밀려 몸을 돌리던 연구처장의 몸에 자신의 몸이 스치게 되자 원고 강영만은 “구타를 당했다.”고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하였지요.
68. 이렇듯 감금이 계속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계단 아래 쪽에 앉아서 노트북을 사용 중이던 원고 강영만은 연구처장에게 “에이 씨팔, 가세요. 내보내 드렸으니까 그냥 가세요.”라고 말하여 연구처장은 “내보내 주긴 뭘 내보내 줘. 난 처음부터 감금되지도 않았는데”라고 대답하였지요.
69. 후에 연구처장은 원고들의 행동에 대하여 제자라기보다 마치 시장판에 싸움꾼들 같다고 느꼈다고 씁쓸한 소회를 밝혔지요.
70. 증인과 감금을 당한 사람들은 원고 강영만이 시위주동자들과 함께 모여 회의를 하는 광경을 목격하였을 뿐 아니라 마이크를 잡고 시위를 주도해 나가던 사람들이 원고 강영만에게 가서 무엇인가 지시를 받고 오면 그때마다 시위의 상황이 달라지는 것을 서너 차례 목격하고는 “아 저 학생이 모든 것을 주도하고 있구나” 라고 인식하고 있었지요.
71. 00:30경 늦은 시간에 갑자기 자장면 배달원이 자장면, 짬봉 등을 가져와 복도 바닥에 내려놓았지요.
72. 원고 서범진이 배달 통 속에 쪽지가 있다며 ‘사비를 털어 마련한 음식입니다. 중앙선관위 결정을 존중해 주세요.’라고 적힌 내용을 읽어 주고는 감금된 처장들에게 식사를 하라고 하였지요.
73. 처장들은 그동안의 감금과 모욕에 대한 분노와 자신들은 식사를 하면서도 스승들에 대하여는 12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식사를 배달한 점, 계단 바닥에 가져다 놓고 쪼그리고 앉아 식사를 하라고 한 점 등에 대하여 탄식하며 식사를 하지 않았지요.
74. 학생들은 “학생들이 성의로 마련한 음식인데 왜 하시지 않는 겁니까?” 라며 야유를 하였지요.
75. 02:00경 학생지원부 직원이 체온이 떨어지고 지친 상태에서 연세도 있으신 교수님들이 걱정이 되어 잠바 3개와 담요 한 개를 가져 왔으나 원고 서범진으로부터 ‘편하게 있으면 요구안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므로 옷과 이불은 줄 수 없다.’는 이유로 반입을 거부당하였지요.
76. 당시 원고 안형우가 직원으로부터 잠바와 담요를 빼앗았고 이에 교무처장이 격분하여 ‘너희들이 진짜 고대생이 맞는가‘ 라고 안형우를 크게 꾸짖자 원고 안형우는 이 말에 냉소적인 비웃음을 띄며 ’우리도 추워요‘ 라고 야유하였지요.
77. 위 직원은 몸이 아픈 정보전산처장에 대하여 “환자가 있다. 이러다가 큰 일 나면 어떡하겠느냐?”고 사정하여 약의 반입만은 허용되었지요.
78. 02:30경 바닥에 앉아 지친 듯 눈을 감고 있는 입학처장을 보고 원고 서범진은 “이 상황에서 잠이 와? 졸고 있네? 잠이 와?”라고 큰 소리로 야유하였지요.
79. 03:00경 원고 조정식의 지시에 따라 인원을 반으로 나누어 지키는 조와 휴식조로 나누고 지키는 조는 계속 출입을 막으며 대자보를 작성하였는데 대자보들 내용 중에는 “배때지에 기름 두르니 뵈는 게 없냐?”는 기재 및 욕설을 상징하는, 가운데 손가락을 펴고 있는 모습 등이 그려져 있었고, 학생들은 조별로 작성한 대자보들을 읽고 발표하면서 야유 및 환호로 교수들을 모욕하였지요.
80. 04:00경 기진맥진한 입학처장이 찬 바닥에 쓰러지듯 기대어 잠을 청하자 처장단이 “나이들어 찬 바닥에서 자면 얼굴 돌아간다.”, “큰 일 난다.”고 걱정을 하면서 직원으로 하여금 담요를 가져와 깔아드렸고 나머지 교수들은 벽에 기대어서서 또는 의자에 앉은 채로 졸게 되었지요.
81. 05:30경 KBS 기자를 비롯한 언론방송사 취재진들이 와 학생처장과 보건전문대 학생회장을 인터뷰하였는데 이때 시위주동자들인 원고들은 언론에 나서지 않고 주로 보건전문대 학생회장으로 하여금 나서게 하였지요.
82. 07:30경 외부언론 기관의 취재가 계속되자 시위 주동자들은 언론을 의식한 듯 갑자기 태도를 바꾸며 협상을 요청하여 왔지요.
83. 원고 강영만은 졸던 학생들을 깨우고 원고 서범진, 원고 안형우, 원고 조정식을 불러 회의 및 지시를 하였지요.
84. 원고들은 그동안의 태도(감금장소에서의 요구안 수령, 즉각적인 검토 및 대화)를 바꾸어 본관 앞에서 요구안을 제출하고 그 자리에서 즉시 처장단과 잔류하고 있던 학생 20여명이 토론할 것을 제안하였지요.
85. 이에 학생처장은 “어디서 받을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기에 앞서 우선 즉시 감금을 풀어라. 학생들과의 면담 시간, 장소는 내가 정하겠다. 그리고, 지금은 모든 처장들이 감금으로 지친 상태이니 본관 앞에서 즉각적인 토론을 하는 것은 어렵다.”고 답변하였지요.
86. 결국 학생처장은 오후 3시에 학생처장실로 오면 학생들의 질의에 답변하겠다고 제안하였고 학생들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감금사태는 종료되었지요.
87. 원고들을 포함한 시위학생들의 행위는 스승을 스승으로 여기지 않고 단지 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정상적인 절차를 통하지 않고 다중의 힘을 과시한 폭력으로써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한 불법적인 감금행위로써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것이나, 교수들은 차마 제자들을 형사고소하는 조치만은 취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88. 2006. 4. 6. 16:00경 4. 18. 기념관 2층 세미나실에서 처장단은 약속된 학생들과의 면담에서 ‘보건대학 학생투표권에 대하여는 학칙 상 문제가 있으므로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학교의 공식적인 답변을 학생 대표들에게 통보하였고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원고 오진호, 안형우, 조정식, 김지윤 등은 4. 18. 기념관 앞과 면담장 안에 있던 100여명의 학생들을 건물 1층 로비에 모아 놓고 ‘지금까지의 투쟁은 내가 주동한 것이며 나는 징계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투쟁은 정당한 것이며 징계를 당하더라도 계속 투쟁할 것이다.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투쟁을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고 선동하였지요.
89. 위 처장단과 학생대표들이 418기념관 206호실에서 회의를 하는 도중 원고 강영만이 방실로 들어 와 원고 서범진에게 귓속말을 하고 메모쪽지(을제13호증)를 건네 주고 나가자 회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어 “여러분, 더 이상 얻을게 뭐가 있겠습니까? 나가서 투쟁합시다”면서 회의가 중단되었지요.
90. 학생대표들이 모두 나간 후 바닥에 떨어진 쪽지를 주워 보니 “(밖에서 농성하던) 대오가 빠지고 있으므로 쉬는 시간 10분 가지고 우리 대오(부터) 우선 선동”하자는 내용이었지요.
91. 증인은 이 사건 감금사태 이전까지는 그동안의 학생운동에 있어서 누군가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 그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하고 있다가 교수 감금사태를 겪으면서 주변에서 노트북을 가지고 무언가 계속 작업을 하여 왔고 시위 주동자들이 그를 만나고 오면 분위기가 바뀌어 원고 강영만이 뒤에서 시위 주동자들을 조종하는 강한 심증을 갖게 되었다가 위 메모 쪽지를 보고서는 강영만이 다른 시위주동자들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인물로 확신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92. 2006. 4. 12. 14:00 제1차 상벌위원회가 학교 본관 1층 제1회의실에서 개최되었지요.
93. 상벌위원회는 학생처장을 위원장으로 하여 각 단과대 부학장과 학생상담센터장으로 구성되므로(학생 상벌에 관한 시행세칙 제10조 제3항), 학생처장을 제외하고는 감금장소에 있던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상벌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았고 징계의 결정에 있어서 위원장인 증인에게도 원칙적으로는 투표권이 있으나 본 사안의 경우에는 증인은 감금당사자인 입장에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고 회의를 진행함에 있어서도 학생들을 입장시키라는 지시를 직원에게 하였을 뿐 학생들 상대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고 상벌에 관한 하등의 의견도 제시하지 않았지요.
94. 위 위원회에서는
① 징계가 선호되어야 할 교육수단이 아닌 점에 관한 고려가 있었으나 필요할 경우에는 교육적으로도 징계가 필요하고,
② 학생의 본분을 벗어난 과격하고 폭력적인 행동에 대하여 학교의 대처가 지나치게 관용적인 것은 잘못된 교육방법이고,
③ 소수의 폭력적인 학생들로 인하여 대다수의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되어 교육의 정상화를 위하여 전원을 징계함이 불가피하다는 결정을 내리고,
단, 징계 전에 피징계대상자들에게 소명의 기회를 주어
① 그들이 교수감금에 관하여 반성을 하고 있는지,
② 교수감금이 심각한 교칙위반행위인 사실은 알고 있는지,
③ 향후 유사 상황 발생 시 동일 행동을 다시 반복할 것인지, 즉 1회성인지 아니면 그동안 반복적으로 하여 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인지
등의 여부를 확인한 후 그 반성의 정도에 따라 징계의 수위를 낮추어 결정하기로 전원 일치로 의사의 합의를 보았던 것이지요(을제17호증-제1차 상벌위원회 회의록).
95. 2006. 4. 17. 10:00~15:00 원고들을 포함한 피징계대상 학생 19명 전원이 출석한 가운데 제2차 상벌위원회가 개최되었고 학생들에게 소명의 기회가 제공되었지요.
96. 피징계대상자 19명 중 이소희, 신재석, 오민혜, 유재혁, 이유미, 이희태, 김경희(이상 7명 견책)은 교수감금사태에 대하여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여 유감’ 또는 ‘시위, 학생운동의 형태가 제대로 된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취지의 분명한 유감의 의사표시를 표명하였고, 김준효, 송재홍, 한우리, 민주혜, 나지현(이상 5명 유기정학)은 위 사태에 대해 후회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향후 유사한 사태의 발생 시 똑같은 행동을 하겠다는 의사 표명은 하지 않았지요.
97. 위 12명의 피징계자들과는 달리 원고들이 소명장소에서 보인 태도는 도저히 학생 또는 최소한의 민주시민의 행동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었지요.
98. 원고들은 모두 교수감금에 관하여 전혀 반성을 하지 않았고 자신들은 정당하며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더욱 더 강하게 투쟁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던 것이지요.
99. 원고들은 상벌위원들의 2006. 2. 입학처 점거사태 장소에 있었는지의 질문에 대하여 모두 ‘자신들이 그 장소에 있었다. 다 우리가 주동한 것이다. 모든 소요 사태에 다 참여했으며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진술하였고 특히 원고 강영만은 더 나아가 “선생님들이 모르는 것들도 있다. 2002년도 무슨 사건, 2004년도 무슨 사건…” 등의 학교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자신이 주도한 시위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나열하기까지 하였지요.
100. 원고들은 모두 4. 5.~4. 6.의 교수감금사태와 관련하여 앞으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 또 다시 같은 행동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상벌위원들의 질문에 대하여 “교수감금사태는 자신들이 주도하였고, 앞으로 그런 상황이 100번을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행동을 또 다시 할 것이며 더욱 강하게 하겠다”는 답변을 하였던 것이지요.
101. 이러한 원고들의 태도를 보고 상벌위원들은 반성을 유도하기 위하여 ‘중징계를 당할 수도 있는데 후회하지 않는가? 부모님도 알고 있느냐?’고 질문하였으나 원고들은 ‘부모, 형제를 앞세워 회유하고 협박하지 말라’며 대들었고 특히 원고 김지윤은 “부모님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맞받아치는 태도를 보였지요.
102. 위와 같은 천편일률적이고 동일한 취지의 답변에 더하여 원고들이 심사위원들을 경악시킨 태도는,
가. 원고 서범진은 상벌위원이 출석한 원고의 이름을 묻자 ‘나를 불렀으면 내 이름을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니냐? 그렇게 묻는 당신 이름부터 밝히라’고 요구하였고,
나. 원고 주병준은 ‘징계당할 이유가 없고 징계당할 사람은 처장단이다’이라고 주장하였으며,
다. 특히 원고 강영만은 들어오자마자 상벌위원들 테이블로 걸어와 박종원 교수 앞에 놓여있는 물을 집어 들고는 뚜껑을 따서 쭈욱 마신 뒤 자신이 앉을 의자로 걸어가서 눕듯이 기대어 앉아 턱을 들고 선생님들을 깔보듯이 내려다보는 태도를 취하며 답변에 임하였고,
상벌위원들의 규칙을 지켜야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하여는 원고들은 실정법을 지켜 이루어낸 혁명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였고, 특히 원고 강영만은 “프랑스 혁명, 4.19, 5.17 등은 실정법에 위반하였지만 이것의 정의는 훗날 역사가 증명해 주었다.”면서 상벌위원들에 대하여 “훗날 세월이 바뀌면 서로의 입장이 바뀌어 앉아 있을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이지요.
103. 원고 강영만은 교수감금사태 등이 실정법을 위반한 중대한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하여도 당당하게 “알고 있다. 그들의 혁명이 실정법을 지켜서 이뤄 낸 것이냐? 실정법을 어겨서 새로 만들어 낸 것이다”라고 대답하였지요.
104. 을제 호증을 제시하고,
이것은 학생처 직원들이 각 원고들의 경력 및 참가한 시위내용, 당시 상벌위원으로 참석한 교수들이 원고들이 한 행동을 기억을 더듬어 정리한 것이지요.
105. 학생에게 가능한 한 징계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당시 상벌위원인 교수들 누구에게나 있었고 상벌위원들은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반성을 하는 정만 엿보이면 관대한 처벌을 하려 하였지요.
106. 상벌위원들은 위와 같은 배려 하에서 분명한 유감을 표명한 학생에 대하여는 견책의 처분을, 조금이라도 유감의 뜻을 표하거나 적어도 동일 상황의 재발시 적극적으로 행동하겠다는 점에 관한 답변을 유보한 학생들에 대하여는 정학의 처분을 하는 결정을 하였던 것이지요.
107. 그러나 위 견책 및 정학처분을 받은 학생들과는 달리, 상벌위원들이 원고들로부터 충격적으로 받은 공통된 태도는 “학교는 배움의 대상이 아닌 투쟁의 대상이며 학교의 잘못된 부분은 계속적인 투쟁의 대상이고 학교를 나가게 되더라도 계속하여 투쟁하겠다”는 것이었고, 원고들은 학교를 인정하지 않고, 교수를 인정하지 않고, 교칙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108. 원고들은 스승을 감금하고 모욕과 조롱을 한 점에 관하여 전혀 반성을 하지 않았고 자신들은 정당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더 강한 투쟁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상벌위원들이 원고들의 위와 같은 태도로부터 얻은 결론은, 원고들은 학생이기를 포기하였고, 원고들에게 있어 교수들은 더 이상 스승이 아니었으며 이렇듯 존중을 받지 못하는 교수들로서는 더 이상 학생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109. 원고들이 학교를 꼭 다녀야 한다면 그 목적은 학업을 위한 것이 아니고 투쟁을 위한 것이었으며, 현재의 출교 철회 요구 역시 학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학교 측의 잘못을 인정하라는 것으로서 자신들의 투쟁을 위하여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적법한 절차와 과정은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러한 원고들에 대하여는 고려대학교가 추구하는 고대인의 상이든, 고려대학교 학생 이전에 최소한 기본적인 도덕성을 갖추어야 할 민주시민으로서의 상이든 어느 면에서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에 도달하였던 것이지요.
110. 상벌위원들은 원고들에게 특단의 처분을 취하지 않을 경우 원고들로 인하여 향후의 학교의 정상적인 학사운영이 심각하게 방해를 받게 되고 이로 인한 피해는 직접적으로 일반 학생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여 학교로서는 학업에 열중하여야 할 대다수의 일반 학생들에 대한 수업권 및 피교육권을 보장하고 이들에 관한 피해를 최소화하여야 할 의무로서 원고들에 대한 출교처분을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111. 상벌위원들이 원고들에 대하여 출교처분의 결정을 의결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교수들이 도저히 원고들을 더 이상 가르칠 자신이 없다는 의미이었던 것이지 원고들의 인생을 끝장내겠다는 그러한 보복적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었고 사실상 출교라는 조치는 충분히 다른 학교를 찾는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 또는 반성하면 다시 학교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는 것이지요.
112. 당시 상벌위원회에서 통보한 소명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의 4시간이었지요.
113. 그런데 원고들은 자신들이 단체로 작성한 한 장의 서류(을제20호증 학교의 징계대상자 발표에 대한 총학생회와 징계대상자들의 입장)가 이미 있으니 소명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면서 주어진 소명의 시간을 학교 당국에 대한 비난과 비판의 시간으로 할애하였던 것이지요. 상벌위원들의 본인 확인 후 사실 관계 확인 등을 하는 과정에서 원고들은 학교에 대한 비난과 비판 및 자신들의 시위 참가 그리고 계속적인 투쟁의사를 밝히는 등 자신들이 말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고 나갔던 것이지요.
114. 원고들은 학교로부터 출교처분 통지를 받은 후에도 투쟁방법의 일환으로 교내 본관 앞에 대형 천막을 치고 지금 이 시각까지 약 1년 수개월 이상 농성을 계속하고 있지요(을제21호증 사진).
115. 이들이 지금까지 보여 온 투쟁방법들에 비추어보면, 언제 어떠한 행동을 실행할지 모르므로 학교는 대외행정업무를 정상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지요.
116. 원고들이 학교 대내외 행정의 중심인 본관 앞에서 대형천막을 치고 농성하므로 외부적인 인사의 초청 및 방문이 매우 어렵게 되어 있고 실제로 총장님을 비롯한 보직교수들의 대외협력 업무는 모두 장소를 옮기어 타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지요(을제22호증 총장 주요인사 접견장소 변경 일정표).
117. 원고들은 학교 내에서 2006. 5. 5. 개교 101주년 기념식장 뿐 아니라 같은 해 5. 13. 연세대학교 121주년 기념식장과 같은 달 22. 숙명여자대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식장 등 타교에서의 본교 총장 행사참석을 방해하는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여 왔지요.
118. 학교는 학생들을 징계해서 얻을 수 이익이 아무 것도 없지요.
교수도 학생들을 징계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아무 것도 없지요.
징계를 하지 않는 일은 징계를 하는 일보다 훨씬 쉽지요
119. 감금현장에 있지 않았고 원고들을 전혀 알지도 못하던 교수들로 구성된 상벌위원들이 원고들에 대하여 이 사건 출교결정을 내린 것은 단지 감금이라는 중대한 학칙위반을 하였다는 사실을 넘어 그러한 잘못에 대하여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고 교수와 학교를 적으로 삼고 더욱 더 세찬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주장하는 원고들로 인하여 다른 학생들이 받을 피해와 학사행정이 지속적으로 마비될 이미 검증된 위험성을 고려한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던 것이지요.
120. 기타신문사항
어째서 이 증언들에 대해서는 넣지 않은 겁니까?
말해보시죠.
물론 이 답변들에 대한 성영신 전처장님의 대답은 예! 였겠죠?
저는 그렇게 생각이 되는군요.
정말 사실이라면 당신들은 고려대학교 학생을 떠나서
이미 학생의, 제자의, 스스로 부르는 출교자의 자격도 없을 것 같습니다.
고려대와 아무런 연관도 없었으면 좋겠네요.
내일 투표전에 들었으면 좋겠지만, 혹시나 목요일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총학생회 홈페이지라 답이 안달릴 가능성이 더 높겠군요.
하지만 수요일, 목요일 투표하기전에 이 증언들을 빼놓고 그냥 대자보가 나왔다는것을 학생들이 알았으면 좋겠군요.
너무 늦게 올린 것 같아 마음에 걸리네요.
무단으로 퍼와서 글쓴분께 사과드립니다.
학교 자유게시판에서 다들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출교자랑 학교랑 둘다 잘못한것이 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위 내용이 사실인가요? 정말 사실이면 출교도 이해가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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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퍼온글이구요.
역시 말바꾸기와 아전인수격 해석, 불리한점 쏙 빼놓고 말하기는 여전하네요.
썩을.
56544
총학 홈피에 있는걸 자게에 퍼온걸 보고 다시 고파스에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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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 홈페이지에서 퍼왔습니다.
대자보 보니 성영신 전 학생처장(맞나요?)이 증언한게 있더군요.
그래서 혹시나 정말 학교의 거짓인가 생각도했는데...
출교자~여러분! 그리고 돕는 사람들!
왜 그 증언만 넣은 건가요?
증 인 신 문 사 항
(증인 성 영 신)
1. 증인은 1987. 9. 경부터 현재까지 고려대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하고 있지요.
2. 증인은 이 사건 원고들이 보직 교수들을 감금할 당시 감금 장소에 있었고 상벌위원회가 개최되었을 당시 학생처장으로서 당연직 상벌위원장으로 참석하여 원고들에 대한 이 사건 출교처분이 이루어진 경과에 관하여 자세히 알고 있지요.
3. 교수감금 사태가 발생되기 직전까지 학교의 상황은, 2006. 2. 경에 있었던 입학처 불법 점거 및 폭력 시위를 벌인 학생들에 대하여 학교에서의 징계 논의가 진행 중이었는데 대부분의 단과대학 학생회장들은 공식, 비공식적인 사과와 반성을 표명한 반면 위 입학처 점거를 주도하였던 원고들 모두를 포함한 시위 주동자들은 학교의 징계를 저지하기 위하여 2006. 3. 2. 입학식장에서, 같은 달 10. 본관 앞에서, 같은 달 22. 본관 내부 3층 교무위원회 회의실 앞에서의 끊임없는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시위를 벌여 오던 중이었습니다.
4. 고려대학교 안암 본교에서는 2005. 11. 경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가 있었지요.
5. 증인은 2006. 3. 29. 보건대학에서 보건대학 2, 3학년들을 상대로 한 학생회장 선거 합동 유세가 열렸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건대학 2, 3학년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지요.
6. 학교의 입장은 2006. 3. 27. 자(병설 보건대학 재학생 학적에 대한 안내, 을제9호증의 1) 및 같은 해 4. 3. 자(보건과학대학 신설 안내, 을제9호증의 2) 각 안내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보건대학 2, 3학년들은, 2006년도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보건과학대학에 입학한 1학년들과는 다르게, 여전히 보건대학의 학적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지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의 학적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지요.
7. 보건대학 2, 3학년들에 대한 재학생명단 및 학적부 관리 등 학사행정은 안암캠퍼스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릉에 있는 보건대학에서 따로이 관리하고 있고 이들에 대한 수업도 안암캠퍼스가 아닌 정릉 캠퍼스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지요.
8. 그런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보건대학생 전체에게 선거권을 주기로 결정한 것은 06학번부터 본교생으로 인정하는 학교전체의 인식과 괴리된 것이라는 논란이 시작되었고,(을제5호증 2006. 4. 2. 자 고대신문 인터넷판)
9. 보건대 학생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을 맹비난하며 심지어는 법원에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하면 어떻게 될지를 문의하는 글이 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게재되기 시작하여(을제11호증의 1 내지 4) 학생처장인 증인으로서는 학교 전체가 혼돈에 빠질 가능성을 고려하여 각 선거본부에 대하여 보건대학2, 3학년들에 대한 선거권 부여에 관한 학교의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게 되었지요(을제7호증 4. 3. 자 고대신문 인터넷판).
10. 증인은 이러한 필요에 따라 2006. 4. 3. 학생처장실에서 각 학생회장 후보 및 선거관리를 책임진 동아리연합회 회장, 고대신문 기자들과 만나 보건대학2, 3학년들에 대한 선거권 부여에 관한 학교의 공식 입장을 밝히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① 선거시행세칙 제4조에는 ‘선거권은 고려대학교 안암총학생회 회원 모두에게 있음을 원칙으로 하며, 총학생회 투표일 전날까지 각 단대 교학과에 등록 확인된 재학생으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보건대학 2, 3학년들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의 선거권을 가질 수 없고,
② 이미 학교에서 공지한 2006. 3. 27. 자(병설 보건대한 재학생 학적에 대한 안내, 을제9호증의 1) 및 같은 해 4. 3. 자(보건과학대학 신설 안내, 을제9호증의 2) 각 안내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보건대학 2, 3학년들은, 2006년도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보건과학대학에 입학한 1학년들과는 다르게, 여전히 보건대학의 학적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지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의 학적을 취득하는 것은 아니며,
③ 보건대학은 2006학년도에도 이전과 다름없이 따로이 총학생회가 구성되어 존재하고 있고(회장 조재종), 총학생회 회칙도 고려대 안암캠퍼스와는 다르게 존재할 뿐 아니라, 학생회비도 고려대 안암캠퍼스에 내는 것이 아닌 보건대학등록금 고지서에 같이 부과되어 나가고 있으므로(을제10호증의 1 내지 2 2006학년도 제2학기 등록금 수납원부, 2006학년도 제2학기 기타납입금 수납원부, 을제10호증의 3 내지 5 2006학년도 제2학기 등록금 수납원부, 2006학년도 제2학기 기타납입금 수납원부, 2006학년도 제2학기 학생회비 수납원부)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의 학생이 아니고 따라서 안암캠퍼스 학생으로서의 선거권은 가질 수 없고,
④ 투표권 부여의 문제는 자격의 문제로서 선관위에서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었지요.
11. 이러한 증인의 설명에 대하여 비운동권이었던 학생회장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운동권 후보들, 특히 ‘액트 나우’ 선거본부의 총학생회 부회장 후보인 원고 서범진은 ‘불법이라도 좋으니 참견 말라.’, ‘학생처는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지원만 하면 되지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이 없다.’며 반발하였고 자체적으로 보건대학 재학생 선거인 명부를 작성한 뒤 투표를 실시하였던 것이지요.
12. 선거에 있어 보건대생의 투표 참여가 일반 학생들의 반발에 부딪히자(공대 학생회장은 선거후 개표를 거부하며 투표함을 선관위로 보내지 않음) 보건대생의 투표 강행을 주도한 운동권 3개 후보 선거운동원들은 보건대생의 투표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줄 것을 학교측에 요청하기로 결정하고 원고들을 포함한 선거운동원 50여명이 행동을 시작한 것이 4. 5. 교수 감금사태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지요.
13. 원고들을 비롯한 운동권 학생 100여명은 2006. 4. 5. 본관 앞에서 계속적인 모임을 가진 뒤 같은 날 14:35 경 위 학생들 중 원고들을 비롯한 50여명이 교무위원회 회의가 진행 중이던 본관 3층 제3회의실로 진입하였지요.
14. 그러나 당시 요구안을 가져온 학생들이 전체 학생들을 대표하는 지위에 있지도 않았고 또한 선거를 주관하는 선거관리위원장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단지 선거에 있어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있는 극히 일부의 운동권 학생들일 뿐이었던 것이지요.
15. 이들 중 원고 서범진(‘액트 나우’ 선거본부 부대표), 원고 오진호, 원고 주병준 등은 교무위원회에 본관 3층 교무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학생들의 요구안을 전달하겠다며 회의실로 들어가려고 하였고 직원들은 당시 회의가 진행 중이므로 들어갈 수 없다고 제지하자 실랑이가 벌어지게 되었고 이에 학생들은 회의실 밖에서 ‘보건대학 2, 3학년의 투표권을 인정하라, 학생자치권을 탄압하지 말라.’는 취지의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학생들의 요구안을 받아들여 달라고 소란을 피우게 되었던 것이지요.
16. 학생들의 요구안에 관하여는 위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이미 4. 3. 학생처장인 증인과 학생들과의 면담에서 학교의 공식적인 입장이 전달되었던 것으로 재론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지요.
17. 그런데도 교무위원회 회의실 밖에서의 소란이 벌어지게 되었으므로 증인은 보건과학대학장과 함께 회의실 밖으로 나와 ‘보건대학 학생들의 요구안은 보건과학대 학장님께 전달하고, 본교 학생들의 요구안은 학생처장실로 가져오면 받아주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학생처장실로 가려고 복도를 내려가는 도중 원고 오진호가 마치 어떤 지시를 받은 것처럼 2층으로부터 급히 올라오며 ‘막아’ 하고 소리치자 학생들은 일사불란하게 팔장을 끼고 본관 2층과 3층 사이의 계단 앞뒤를 위아래로 막아서며 보건과학대학장과 증인을 에워싸고 학생들의 요구안을 받아줄 것을 거칠게 요구하였던 것이지요.
18. 특히 원고 서범진은 보건과학대학장과 증인 및 이들을 수행하여 학생처장실로 가려던 학생지원부 직원 4명을 에워싸고 있는 학생들을 향하여 “좀 더 압박해야 요구안을 받아줄 것 같습니다. 뒤에 있는 학생들은 더 앞쪽으로 와서 얘기를 듣도록 합시다”라고 선동하였고 이에 시위 학생들은 감금된 증인 등을 몸으로 밀착하여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들었던 것이지요.
19. 모르는 사람들은 단순히 ‘학생들의 요구안을 수령하여 주면 될 것 아닌가’하고 증인이 요구안을 수령하지 않은 점에 관하여 의문을 가질 수 있으나 원고들이 요구한 것은 단지 요구안의 수령뿐만 아니라 이를 넘어 즉각적인 검토와 대화의 요청이었지요.
20. 그러나 학교의 공식적인 입장은 이미 확정되어 학생들에게 통보된 상태이고, 이러한 공식적인 입장을 바꾸려면 회의를 소집하여 내부의사결정을 변경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학생들이 요구하는 바와 같은 즉각적인 검토도 불가능하거니와 학생들이 대화를 하자고 요구하는 것도 말만 대화이지 실제로는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한정이 없고 아무런 쓸모없는 시간의 낭비를 강요하는 것 외에는 다름없는 것이었지요.
21. 학생들의 요구가 도의적이거나 법적 정당성을 가지려면, 교무위원회 방실 밖에 있던 직원에게 요구안을 전달하고 돌아 가 답변을 기다리거나, 학생처장실 또는 학생처에 요구안을 전달하고 학교 측의 답변을 기다리는 순리적인 절차를 거쳤어야만 하지요.
22. 그러나 학생들은 당일 교무위원회 및 연이어 계획되어 있던 통합 대학원 위원회, 각 교수의 강의일정 등 학교 또는 교수들의 행사 및 일정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요구안의 접수 및 즉각적인 검토와 대화를 요구하면서 위 교수들 및 직원들에 대한 감금을 시작하여 당일 예정되어 있던 교무위원회와 통합대학원 위원회는 무산될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23. 증인은 4. 3. 이미 학교의 입장을 통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소란을 피우고 당시 진행 중이던 교무위원회가 지장을 받게 되자 ‘학생처장실로 가자, 그곳에서 받아주겠다, 학생들의 일이므로 학생처로 가져 와야지 본관으로 많은 학생들이 집단으로 몰려 와 폭력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뒤 이를 배경으로 요구안을 받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받을 수가 없다, 100명씩 몰려오지 말고 대표가 가져오라.’고 요구하였으나 학생들은 ‘이 자리에서 받아 달라, 받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다.’며 보건과학대학장과 증인에 대한 감금을 시작하였던 것이지요.
24. 위와 같이 시작된 증인과 보건과학대학장에 대한 같은 날 15:30경부터의 감금은 약 2시간 가량 계속되었지요.
25. 학생들은 처장단이 올 때까지의 2시간 동안 ‘보건대학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학생자치활동의 탄압이다, 보건대학을 통폐합할 때는 다해준다 해놓고 지금 해준 것이 무엇이냐’는 등의 소리를 질러댔지요.
26. 17:00경 감금되어 있던 증인은 목이 말라 잠깐 회의실에 들어가서 물 한 컵을 마시고 나오겠다고 요구하였으나 거부당하였고 재차 “3층 회의실 안에 정수기가 있으니 물 한컵만 마시고 나오겠다. 내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 염려되면 핸드백을 맡기고 가겠다.”라고 하였으나 시위 주동자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옆에 서 있던 학생지원부 직원들이 처장님이 목이 마르시니 잠시 다녀올 수 있도록 부탁하였으나 원고 서범진은 “요구안을 받고 물 마시러 가십시오”라고 말하며 이를 거부하였지요.
27. 이 때 3층 복도에 있던 한 시위자 중 한사람이 자신이 마시던 한모금 남짓 남은 1.5 리터 생수 페트병을 계단 아래로 던져 계단 바닥에 떨어지자 아래에 있던 한 시위 학생이 이를 주워 증인에게 건네었지요.
28. 이러한 모욕적인 행동을 보고 증인이 마시지 않자 원고 서범진은 마이크에 대고 “학생처장이 남이 먹던 물이라 마시지 않겠답니다.”라고 외쳤고 시위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와”하고 환호하였지요.
29. 17:40 경 증인 및 보건과학대학장의 감금 소식을 전해들은 여섯명의 처장들(기획예산처장, 교무처장, 총무처장, 정보전산처장, 입학처장, 관리처장)이 올라와서 시위 학생들에게 “이게 뭣 하는 짓들이냐?”며 증인을 데리고 내려가려고 계단을 내려가자 이때 원고 오진호의 “막아”라는 구호를 시작으로 나머지 시위자들은 스크럼을 짜고 뒤에 온 처장들마저 나가지 못하게 막으면서 2층과 3층 사이의 한평 남짓한 층간 복도에 8명의 교수와 학생지원부 직원 4명을 감금하기 시작하였지요.
30. 이러한 상황에서 기획예산처장이 학생들과 학생들의 행위가 불법이며 적절치 않음을 지적하고자 마이크를 달라고 하였으나 원고 조정식이 야유와 함께 거절하였지요.
31. 기획예산처장이 운동권 사이에 ‘아치’라는 별명으로만 알려져 있던 원고 조정식에게 “자네, 혹시 나의 국제법 강의들었던 조정식군이 아니냐?”라고 묻자 원고 조정식은 비아냥거리는 투로 “우리 유명하신 박기갑 교수가 드디어 나의 정체를 파악했네요 ∼∼”라며 학생들의 야유를 유도하였지요.
32. 19:00경 찬 시멘트 바닥에 앉아있거나 서 있느라고 피곤으로 지친 처장들에게 직원이 사무실에서 의자 6개를 가져왔으나 부족하여 본관에 대기하고 있던 총무부 직원이 접개 의자를 가져 왔지요.
33. 접개 의자의 반입에 대하여 원고 서범진은 “이런 상황에서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느냐?”, “우리도 바닥에 앉아있는데 너무 편하게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하며 2층에 있던 학생들에게 “막아”라고 지시하여 반입을 저지시켰지요.
34. 이후 여성인 증인, 몸이 아픈 정보전산처장만 우선 2개의 의자에 앉고 보건과학대학장과 다섯명의 처장은 나머지 네 개의 의자에 서로 교대로 앉거나 서 있게 되었지요.
35. 19:30경 학생들이 저녁식사로 김밥, 햄버거 등을 주문하여 먹기 시작여 감금되어 있던 처장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오겠다고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지요.
36. 8시 대학원 세미나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감금으로 인하여 갈 수 없었던 기획예산처장은 연구실 조교인 소외 한승우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세미나는 불가능하니 모두들 돌아가라고 통화하였지요.
37. 지도교수의 감금 사실을 알게 된 대학원생 한승우는 감금현장으로 달려와 시위학생들에게 “왜 교수들을 감금하는가? 이것이 불법인지를 모르는가?”라고 심하게 항의하였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지요.
38. 위 한승우는 그 후인 밤 11시, 새벽 2시 경 등 여러 차례 시위 학생들과 다투었으나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었지요.
39. 21:00경 입학처장이 화장실에 가려는 것을 시위 학생들이 막자 입학처장은 “저는 입학처장 김인묵입니다. 내가 화장실에 가려 하는데 안된다고 합니다. 저 화장실 가려는데 안되겠습니까?”라고 크게 소리치자 원고들 중 1명이 다가와서 내용을 확인하고 허락하였지요.
40. 시위 학생들은 입학처장이 화장실을 감에 있어서도 대동하였고 볼 일을 보는 동안 화장실 밖에서 감시하였지요.
41. 그 후 다른 처장들이 화장실에 갈 때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뜻을 표명하고 한사람씩 허락을 얻어 시위자들의 감시를 받으며 화장실에 갔다 올 수밖에 없었지요.
42. 흡연을 하는 입학처장은 시위 학생들이 밖에서 담배피우는 것을 보고 시위자들에게 담배를 피우겠다고 얘기하니 화장실에서 피우라고 하여 “금연빌딩인데 화장실에서 피울 수 없다. 너희들도 나가서 피우지 않았느냐? 나도 나가서 피워야겠다. 너희들이 정 불안하면 나를 감시해도 좋다.”라고 말하며 부탁하였으나 원고 안형우로부터 거절당하였지요.
43. 21:20경 총무처장이 학생지원부 오영길 부장과 이재철 선생을 불러 “우리는 모두 남아 있을 터이니 여성인 증인과 환자인 정보전산처장을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부탁해 볼 것”을 권유하였으나 거절당하였지요.
44. 정보전산처장이 심한 감기 몸살로 온 몸에 열이 나고 오한이 들어 학생지원부 과장이 계단을 막고 있는 학생들에게 환자이니 보내드리자고 재차 요청하였으나 아래 계단을 막고 서 있던 시위자들로부터 “자신들은 대표가 아니므로 결정권이 없다”는 말로 거절당하였지요.
45. 이에 학생지원부 과장이 “사람이 아픈 위급상황인데 결정권이 없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 너희들은 사람이 죽어가는 위급상황에도 그 따위로 말할 것이냐?. 누가 결정권이 있느냐?”라고 화를 내며 소리쳤으나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하였지요.
46. 그 후 정보전산처장의 몸 상태가 점점 나빠져 대학원 학생에게 전화하여 연구실에 있는 약을 가져오라고 시켰고 대학원생 두 명이 약을 가져와서 먹이게 되었으며, 대학원생 또한 시위자들에게 교수님이 몸이 불편하시니 보내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였으나 이 역시 거절당하였지요.
47. 22:10경 시간이 흘러가면서 소강상태에 빠지자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한 듯 원고 서범진은 “교수님들이 이 상황에서 너무 편하게 계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불편하게 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며 학생들로 하여금 처장들에게 얼굴이 맞닿을 정도로 밀착 압박도록 시켰지요.
48. 학생들이 너무 가까이 밀착하여 오자 감금된 사람들은 비키라고 말하며 다가오는 학생들을 밀어내려고 했으나 역부족으로 당하지 못하고 밀착된 상태로 지냈지요.
49. 이후 학생들은 감금된 교수들의 앞에 지나다닐 틈도 없이 촘촘하게 앉아서 원고 김지윤, 원고 조정식, 원고 안형우, 원고 주병준 등은 교수 면전에서 소리지르고 삿대질하며 야유하고 빈정거렸지요.
50. 기획예산처장과 관리처장이 바로 코앞에 앉아 있던 원고 김지윤과 원고 주병준에게 “고려대 학생이라면 학번과 이름을 밝혀라”라고 하자, 원고 김지윤과 원고 주병준은 “우리를 짜르려고요?”라며 빈정거렸지요.
51. 기획예산처장이 계단에 앉아 있던 어려보이는 여학생들에게 “너는 06학번 신입생으로 보이는데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서 학업에 열중해야 할 것 아니냐”라고 충고하자, 이를 들은 원고 김지윤 등은 “얘들은 앞으로 우리의 대를 이어 일할 새로운 피에요. 가기는 왜 가요!”라고 맞대꾸하였지요.
52. 22:30경 보건과학대학장이 보건대학통폐합과 관련하여 보건대학 학생들의 질의에 답변하던 중 한 시위 학생이 “학장은 개가 아닙니다. 시키는 대로 하는 개가 되지 마십시오”라는 모욕적인 말을 하였지요.
53. 모욕을 받은 교무처장이 “누구야? 개라니? 누가 교수보고 개라고 그랬어?”라고 분개하였고 이에 학생들은 ‘그게 개가 아니고 뭡니까?’라고 맞고함 치며 소동이 있게 되었지요.
54. 23:00경 교무처장이 시위자들에게 “너희들이 지금 우리들을 감금하고 있다”라고 얘기하자 시위주동자 중 한명인 원고 서범진은 “방어적 폭력이다.”라고 대꾸하였지요.
55. 감금이 계속되는 동안 처장들에게는 말 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고 원고들이 교대로 마이크를 돌려가며 온갖 야유와 빈정거림으로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지요.
56. 원고 서범진, 원고 안형우, 원고 주병준, 원고 조정식, 원고 오진호, 원고 김지윤 등 시위 주동자들은 앉아 있는 단순 가담자들이 지루해하거나 졸거나 심심해하면 마이크를 잡고 학교가 무조건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중간 중간 학생들을 선동하는 발언을 하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할 수 있도록 발언시간대를 마련하기도 하는 등 교대로 마이크를 돌려가며 시위를 이끌어 나갔지요.
57. 처장들은 “우리에게도 마이크를 달라. 이 문제를 계속 이렇게 끌고 갈 수 없지 않느냐?”라고 얘기하였으나 주동자 중 한명인 원고 조정식은 “그러면 처장님들도 앞으로 마이크를 준비하십시오”라고 야유하였고 이에 시위자들이 크게 웃는 모욕을 당하였지요.
58. 이중 원고 조정식은 “오늘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밤을 새서라도 여기서 못나가게 하자.”고 소리치며 선동하였고 원고 조정식, 원고 서범진이 ‘교수님들이 우리보고 감금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감금입니까?’ 하면 다른 학생들은 ‘아니오’라고 일제히 소리치며 교수들에게 야유의 구호를 외쳤지요.
59. 4월 5일 23:30 - 4월 6일 01:30 경 당일 선거의 투표 집계를 마치고 문과대학 학생회장,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사대학생회장 등 일부 학생들이 뒤 늦게 달려와 잠시 시위자들과 이런 식의 감금이 선거 진행에 도움이 되는가? 이러한 방식은 옳지 않다는 등등 언쟁을 한 후 교수감금에 관하여 시위 참여 학생들 사이에 투표가 실시되었으나 원고들이 보건대 학생들을 상대로 ‘학교가 폐교되었다’는 취지로 감정을 자극하며 그 자리에서 교수감금을 계속하는 방향으로 선동하였지요.
60. 투표결과는 감금된 그 자리에서 요구안을 받게 해야 한다는 쪽이 우세하게 나왔고 이에 시위참여자 중 교수감금에 반대했던 일부 학생들은 본관에서 철수하였지요.
61. 24:00경 외부에서 처장단의 감금 소식을 들은 대외협력처장이 당일 24:00경 감금장소로 와 시위자들에게 대화를 요청하였지요.
62. 시위자들은 “보건대학 재학생들의 투표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하였고 대외협력처장은 학교의 입장을 지지하는 의사를 표명하였지요.
63. 대화 도중 자신들의 입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3층 복도에 있던 한 학생이 대외협력처장에게 “그만 집어 쳐!”라고 욕을 하였지요.
64. 그 욕설을 들은 대외협력처장은 “방금 이야기 한 학생 내려와서 사과하라.”, “방금 얘기는 실수일 수 있다. 사과를 하면 받아주겠다.”라고 얘기하였으나 아무도 내려오지 않았지요.
65. 이에 대외협력처장은 “이런 상황에서는 대화할 수 없다.”고 말하고 2층으로 내려가려고 하자 원고 오진호, 원고 주병진 등이 시위자들을 지시하여 못나가게 막아 대외협력처장은 “왜 막느냐? 들어올 때 마음대로 들어왔는데 나갈 때 왜 막느냐. 나는 나가겠다.”라고 말하자 위 원고들은 “못나간다.”고 하였고 대외협력처장은 “이렇게 감금해서 되겠느냐?”고 항의하였으나 “감금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무력으로 못나가게 막아 대외협력처장도 감금당하게 되었지요.
66. 4월 6일 00:10경 수술 후유증을 염려하여 교수감금 장소에 참여하지 않고 사태의 추이를 살펴보고 있던 연구처장이 2층 복도에서 보건전문대 학생들과 “이렇게 교수를 감금해서 되겠느냐?”라고 얘기하며 학생들을 설득하였으나 실패하였지요.
67. 연구처장이 휴대폰을 이용하여 처장단들이 감금된 장면 사진을 찍자 원고 강영만을 비롯한 학생들이 찍지 말라고 소리침과 동시에 연구처장의 앞을 손과 몸으로 가로막으며 달려들었고 이에 밀려 몸을 돌리던 연구처장의 몸에 자신의 몸이 스치게 되자 원고 강영만은 “구타를 당했다.”고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하였지요.
68. 이렇듯 감금이 계속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계단 아래 쪽에 앉아서 노트북을 사용 중이던 원고 강영만은 연구처장에게 “에이 씨팔, 가세요. 내보내 드렸으니까 그냥 가세요.”라고 말하여 연구처장은 “내보내 주긴 뭘 내보내 줘. 난 처음부터 감금되지도 않았는데”라고 대답하였지요.
69. 후에 연구처장은 원고들의 행동에 대하여 제자라기보다 마치 시장판에 싸움꾼들 같다고 느꼈다고 씁쓸한 소회를 밝혔지요.
70. 증인과 감금을 당한 사람들은 원고 강영만이 시위주동자들과 함께 모여 회의를 하는 광경을 목격하였을 뿐 아니라 마이크를 잡고 시위를 주도해 나가던 사람들이 원고 강영만에게 가서 무엇인가 지시를 받고 오면 그때마다 시위의 상황이 달라지는 것을 서너 차례 목격하고는 “아 저 학생이 모든 것을 주도하고 있구나” 라고 인식하고 있었지요.
71. 00:30경 늦은 시간에 갑자기 자장면 배달원이 자장면, 짬봉 등을 가져와 복도 바닥에 내려놓았지요.
72. 원고 서범진이 배달 통 속에 쪽지가 있다며 ‘사비를 털어 마련한 음식입니다. 중앙선관위 결정을 존중해 주세요.’라고 적힌 내용을 읽어 주고는 감금된 처장들에게 식사를 하라고 하였지요.
73. 처장들은 그동안의 감금과 모욕에 대한 분노와 자신들은 식사를 하면서도 스승들에 대하여는 12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식사를 배달한 점, 계단 바닥에 가져다 놓고 쪼그리고 앉아 식사를 하라고 한 점 등에 대하여 탄식하며 식사를 하지 않았지요.
74. 학생들은 “학생들이 성의로 마련한 음식인데 왜 하시지 않는 겁니까?” 라며 야유를 하였지요.
75. 02:00경 학생지원부 직원이 체온이 떨어지고 지친 상태에서 연세도 있으신 교수님들이 걱정이 되어 잠바 3개와 담요 한 개를 가져 왔으나 원고 서범진으로부터 ‘편하게 있으면 요구안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므로 옷과 이불은 줄 수 없다.’는 이유로 반입을 거부당하였지요.
76. 당시 원고 안형우가 직원으로부터 잠바와 담요를 빼앗았고 이에 교무처장이 격분하여 ‘너희들이 진짜 고대생이 맞는가‘ 라고 안형우를 크게 꾸짖자 원고 안형우는 이 말에 냉소적인 비웃음을 띄며 ’우리도 추워요‘ 라고 야유하였지요.
77. 위 직원은 몸이 아픈 정보전산처장에 대하여 “환자가 있다. 이러다가 큰 일 나면 어떡하겠느냐?”고 사정하여 약의 반입만은 허용되었지요.
78. 02:30경 바닥에 앉아 지친 듯 눈을 감고 있는 입학처장을 보고 원고 서범진은 “이 상황에서 잠이 와? 졸고 있네? 잠이 와?”라고 큰 소리로 야유하였지요.
79. 03:00경 원고 조정식의 지시에 따라 인원을 반으로 나누어 지키는 조와 휴식조로 나누고 지키는 조는 계속 출입을 막으며 대자보를 작성하였는데 대자보들 내용 중에는 “배때지에 기름 두르니 뵈는 게 없냐?”는 기재 및 욕설을 상징하는, 가운데 손가락을 펴고 있는 모습 등이 그려져 있었고, 학생들은 조별로 작성한 대자보들을 읽고 발표하면서 야유 및 환호로 교수들을 모욕하였지요.
80. 04:00경 기진맥진한 입학처장이 찬 바닥에 쓰러지듯 기대어 잠을 청하자 처장단이 “나이들어 찬 바닥에서 자면 얼굴 돌아간다.”, “큰 일 난다.”고 걱정을 하면서 직원으로 하여금 담요를 가져와 깔아드렸고 나머지 교수들은 벽에 기대어서서 또는 의자에 앉은 채로 졸게 되었지요.
81. 05:30경 KBS 기자를 비롯한 언론방송사 취재진들이 와 학생처장과 보건전문대 학생회장을 인터뷰하였는데 이때 시위주동자들인 원고들은 언론에 나서지 않고 주로 보건전문대 학생회장으로 하여금 나서게 하였지요.
82. 07:30경 외부언론 기관의 취재가 계속되자 시위 주동자들은 언론을 의식한 듯 갑자기 태도를 바꾸며 협상을 요청하여 왔지요.
83. 원고 강영만은 졸던 학생들을 깨우고 원고 서범진, 원고 안형우, 원고 조정식을 불러 회의 및 지시를 하였지요.
84. 원고들은 그동안의 태도(감금장소에서의 요구안 수령, 즉각적인 검토 및 대화)를 바꾸어 본관 앞에서 요구안을 제출하고 그 자리에서 즉시 처장단과 잔류하고 있던 학생 20여명이 토론할 것을 제안하였지요.
85. 이에 학생처장은 “어디서 받을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기에 앞서 우선 즉시 감금을 풀어라. 학생들과의 면담 시간, 장소는 내가 정하겠다. 그리고, 지금은 모든 처장들이 감금으로 지친 상태이니 본관 앞에서 즉각적인 토론을 하는 것은 어렵다.”고 답변하였지요.
86. 결국 학생처장은 오후 3시에 학생처장실로 오면 학생들의 질의에 답변하겠다고 제안하였고 학생들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감금사태는 종료되었지요.
87. 원고들을 포함한 시위학생들의 행위는 스승을 스승으로 여기지 않고 단지 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정상적인 절차를 통하지 않고 다중의 힘을 과시한 폭력으로써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한 불법적인 감금행위로써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것이나, 교수들은 차마 제자들을 형사고소하는 조치만은 취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88. 2006. 4. 6. 16:00경 4. 18. 기념관 2층 세미나실에서 처장단은 약속된 학생들과의 면담에서 ‘보건대학 학생투표권에 대하여는 학칙 상 문제가 있으므로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학교의 공식적인 답변을 학생 대표들에게 통보하였고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원고 오진호, 안형우, 조정식, 김지윤 등은 4. 18. 기념관 앞과 면담장 안에 있던 100여명의 학생들을 건물 1층 로비에 모아 놓고 ‘지금까지의 투쟁은 내가 주동한 것이며 나는 징계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투쟁은 정당한 것이며 징계를 당하더라도 계속 투쟁할 것이다.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투쟁을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고 선동하였지요.
89. 위 처장단과 학생대표들이 418기념관 206호실에서 회의를 하는 도중 원고 강영만이 방실로 들어 와 원고 서범진에게 귓속말을 하고 메모쪽지(을제13호증)를 건네 주고 나가자 회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어 “여러분, 더 이상 얻을게 뭐가 있겠습니까? 나가서 투쟁합시다”면서 회의가 중단되었지요.
90. 학생대표들이 모두 나간 후 바닥에 떨어진 쪽지를 주워 보니 “(밖에서 농성하던) 대오가 빠지고 있으므로 쉬는 시간 10분 가지고 우리 대오(부터) 우선 선동”하자는 내용이었지요.
91. 증인은 이 사건 감금사태 이전까지는 그동안의 학생운동에 있어서 누군가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 그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하고 있다가 교수 감금사태를 겪으면서 주변에서 노트북을 가지고 무언가 계속 작업을 하여 왔고 시위 주동자들이 그를 만나고 오면 분위기가 바뀌어 원고 강영만이 뒤에서 시위 주동자들을 조종하는 강한 심증을 갖게 되었다가 위 메모 쪽지를 보고서는 강영만이 다른 시위주동자들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인물로 확신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92. 2006. 4. 12. 14:00 제1차 상벌위원회가 학교 본관 1층 제1회의실에서 개최되었지요.
93. 상벌위원회는 학생처장을 위원장으로 하여 각 단과대 부학장과 학생상담센터장으로 구성되므로(학생 상벌에 관한 시행세칙 제10조 제3항), 학생처장을 제외하고는 감금장소에 있던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상벌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았고 징계의 결정에 있어서 위원장인 증인에게도 원칙적으로는 투표권이 있으나 본 사안의 경우에는 증인은 감금당사자인 입장에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고 회의를 진행함에 있어서도 학생들을 입장시키라는 지시를 직원에게 하였을 뿐 학생들 상대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고 상벌에 관한 하등의 의견도 제시하지 않았지요.
94. 위 위원회에서는
① 징계가 선호되어야 할 교육수단이 아닌 점에 관한 고려가 있었으나 필요할 경우에는 교육적으로도 징계가 필요하고,
② 학생의 본분을 벗어난 과격하고 폭력적인 행동에 대하여 학교의 대처가 지나치게 관용적인 것은 잘못된 교육방법이고,
③ 소수의 폭력적인 학생들로 인하여 대다수의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되어 교육의 정상화를 위하여 전원을 징계함이 불가피하다는 결정을 내리고,
단, 징계 전에 피징계대상자들에게 소명의 기회를 주어
① 그들이 교수감금에 관하여 반성을 하고 있는지,
② 교수감금이 심각한 교칙위반행위인 사실은 알고 있는지,
③ 향후 유사 상황 발생 시 동일 행동을 다시 반복할 것인지, 즉 1회성인지 아니면 그동안 반복적으로 하여 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인지
등의 여부를 확인한 후 그 반성의 정도에 따라 징계의 수위를 낮추어 결정하기로 전원 일치로 의사의 합의를 보았던 것이지요(을제17호증-제1차 상벌위원회 회의록).
95. 2006. 4. 17. 10:00~15:00 원고들을 포함한 피징계대상 학생 19명 전원이 출석한 가운데 제2차 상벌위원회가 개최되었고 학생들에게 소명의 기회가 제공되었지요.
96. 피징계대상자 19명 중 이소희, 신재석, 오민혜, 유재혁, 이유미, 이희태, 김경희(이상 7명 견책)은 교수감금사태에 대하여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여 유감’ 또는 ‘시위, 학생운동의 형태가 제대로 된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취지의 분명한 유감의 의사표시를 표명하였고, 김준효, 송재홍, 한우리, 민주혜, 나지현(이상 5명 유기정학)은 위 사태에 대해 후회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향후 유사한 사태의 발생 시 똑같은 행동을 하겠다는 의사 표명은 하지 않았지요.
97. 위 12명의 피징계자들과는 달리 원고들이 소명장소에서 보인 태도는 도저히 학생 또는 최소한의 민주시민의 행동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었지요.
98. 원고들은 모두 교수감금에 관하여 전혀 반성을 하지 않았고 자신들은 정당하며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더욱 더 강하게 투쟁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던 것이지요.
99. 원고들은 상벌위원들의 2006. 2. 입학처 점거사태 장소에 있었는지의 질문에 대하여 모두 ‘자신들이 그 장소에 있었다. 다 우리가 주동한 것이다. 모든 소요 사태에 다 참여했으며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진술하였고 특히 원고 강영만은 더 나아가 “선생님들이 모르는 것들도 있다. 2002년도 무슨 사건, 2004년도 무슨 사건…” 등의 학교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자신이 주도한 시위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나열하기까지 하였지요.
100. 원고들은 모두 4. 5.~4. 6.의 교수감금사태와 관련하여 앞으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 또 다시 같은 행동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상벌위원들의 질문에 대하여 “교수감금사태는 자신들이 주도하였고, 앞으로 그런 상황이 100번을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행동을 또 다시 할 것이며 더욱 강하게 하겠다”는 답변을 하였던 것이지요.
101. 이러한 원고들의 태도를 보고 상벌위원들은 반성을 유도하기 위하여 ‘중징계를 당할 수도 있는데 후회하지 않는가? 부모님도 알고 있느냐?’고 질문하였으나 원고들은 ‘부모, 형제를 앞세워 회유하고 협박하지 말라’며 대들었고 특히 원고 김지윤은 “부모님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맞받아치는 태도를 보였지요.
102. 위와 같은 천편일률적이고 동일한 취지의 답변에 더하여 원고들이 심사위원들을 경악시킨 태도는,
가. 원고 서범진은 상벌위원이 출석한 원고의 이름을 묻자 ‘나를 불렀으면 내 이름을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니냐? 그렇게 묻는 당신 이름부터 밝히라’고 요구하였고,
나. 원고 주병준은 ‘징계당할 이유가 없고 징계당할 사람은 처장단이다’이라고 주장하였으며,
다. 특히 원고 강영만은 들어오자마자 상벌위원들 테이블로 걸어와 박종원 교수 앞에 놓여있는 물을 집어 들고는 뚜껑을 따서 쭈욱 마신 뒤 자신이 앉을 의자로 걸어가서 눕듯이 기대어 앉아 턱을 들고 선생님들을 깔보듯이 내려다보는 태도를 취하며 답변에 임하였고,
상벌위원들의 규칙을 지켜야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하여는 원고들은 실정법을 지켜 이루어낸 혁명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였고, 특히 원고 강영만은 “프랑스 혁명, 4.19, 5.17 등은 실정법에 위반하였지만 이것의 정의는 훗날 역사가 증명해 주었다.”면서 상벌위원들에 대하여 “훗날 세월이 바뀌면 서로의 입장이 바뀌어 앉아 있을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이지요.
103. 원고 강영만은 교수감금사태 등이 실정법을 위반한 중대한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하여도 당당하게 “알고 있다. 그들의 혁명이 실정법을 지켜서 이뤄 낸 것이냐? 실정법을 어겨서 새로 만들어 낸 것이다”라고 대답하였지요.
104. 을제 호증을 제시하고,
이것은 학생처 직원들이 각 원고들의 경력 및 참가한 시위내용, 당시 상벌위원으로 참석한 교수들이 원고들이 한 행동을 기억을 더듬어 정리한 것이지요.
105. 학생에게 가능한 한 징계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당시 상벌위원인 교수들 누구에게나 있었고 상벌위원들은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반성을 하는 정만 엿보이면 관대한 처벌을 하려 하였지요.
106. 상벌위원들은 위와 같은 배려 하에서 분명한 유감을 표명한 학생에 대하여는 견책의 처분을, 조금이라도 유감의 뜻을 표하거나 적어도 동일 상황의 재발시 적극적으로 행동하겠다는 점에 관한 답변을 유보한 학생들에 대하여는 정학의 처분을 하는 결정을 하였던 것이지요.
107. 그러나 위 견책 및 정학처분을 받은 학생들과는 달리, 상벌위원들이 원고들로부터 충격적으로 받은 공통된 태도는 “학교는 배움의 대상이 아닌 투쟁의 대상이며 학교의 잘못된 부분은 계속적인 투쟁의 대상이고 학교를 나가게 되더라도 계속하여 투쟁하겠다”는 것이었고, 원고들은 학교를 인정하지 않고, 교수를 인정하지 않고, 교칙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108. 원고들은 스승을 감금하고 모욕과 조롱을 한 점에 관하여 전혀 반성을 하지 않았고 자신들은 정당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더 강한 투쟁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상벌위원들이 원고들의 위와 같은 태도로부터 얻은 결론은, 원고들은 학생이기를 포기하였고, 원고들에게 있어 교수들은 더 이상 스승이 아니었으며 이렇듯 존중을 받지 못하는 교수들로서는 더 이상 학생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109. 원고들이 학교를 꼭 다녀야 한다면 그 목적은 학업을 위한 것이 아니고 투쟁을 위한 것이었으며, 현재의 출교 철회 요구 역시 학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학교 측의 잘못을 인정하라는 것으로서 자신들의 투쟁을 위하여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적법한 절차와 과정은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러한 원고들에 대하여는 고려대학교가 추구하는 고대인의 상이든, 고려대학교 학생 이전에 최소한 기본적인 도덕성을 갖추어야 할 민주시민으로서의 상이든 어느 면에서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에 도달하였던 것이지요.
110. 상벌위원들은 원고들에게 특단의 처분을 취하지 않을 경우 원고들로 인하여 향후의 학교의 정상적인 학사운영이 심각하게 방해를 받게 되고 이로 인한 피해는 직접적으로 일반 학생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여 학교로서는 학업에 열중하여야 할 대다수의 일반 학생들에 대한 수업권 및 피교육권을 보장하고 이들에 관한 피해를 최소화하여야 할 의무로서 원고들에 대한 출교처분을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111. 상벌위원들이 원고들에 대하여 출교처분의 결정을 의결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교수들이 도저히 원고들을 더 이상 가르칠 자신이 없다는 의미이었던 것이지 원고들의 인생을 끝장내겠다는 그러한 보복적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었고 사실상 출교라는 조치는 충분히 다른 학교를 찾는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 또는 반성하면 다시 학교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는 것이지요.
112. 당시 상벌위원회에서 통보한 소명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의 4시간이었지요.
113. 그런데 원고들은 자신들이 단체로 작성한 한 장의 서류(을제20호증 학교의 징계대상자 발표에 대한 총학생회와 징계대상자들의 입장)가 이미 있으니 소명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면서 주어진 소명의 시간을 학교 당국에 대한 비난과 비판의 시간으로 할애하였던 것이지요. 상벌위원들의 본인 확인 후 사실 관계 확인 등을 하는 과정에서 원고들은 학교에 대한 비난과 비판 및 자신들의 시위 참가 그리고 계속적인 투쟁의사를 밝히는 등 자신들이 말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고 나갔던 것이지요.
114. 원고들은 학교로부터 출교처분 통지를 받은 후에도 투쟁방법의 일환으로 교내 본관 앞에 대형 천막을 치고 지금 이 시각까지 약 1년 수개월 이상 농성을 계속하고 있지요(을제21호증 사진).
115. 이들이 지금까지 보여 온 투쟁방법들에 비추어보면, 언제 어떠한 행동을 실행할지 모르므로 학교는 대외행정업무를 정상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지요.
116. 원고들이 학교 대내외 행정의 중심인 본관 앞에서 대형천막을 치고 농성하므로 외부적인 인사의 초청 및 방문이 매우 어렵게 되어 있고 실제로 총장님을 비롯한 보직교수들의 대외협력 업무는 모두 장소를 옮기어 타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지요(을제22호증 총장 주요인사 접견장소 변경 일정표).
117. 원고들은 학교 내에서 2006. 5. 5. 개교 101주년 기념식장 뿐 아니라 같은 해 5. 13. 연세대학교 121주년 기념식장과 같은 달 22. 숙명여자대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식장 등 타교에서의 본교 총장 행사참석을 방해하는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여 왔지요.
118. 학교는 학생들을 징계해서 얻을 수 이익이 아무 것도 없지요.
교수도 학생들을 징계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아무 것도 없지요.
징계를 하지 않는 일은 징계를 하는 일보다 훨씬 쉽지요
119. 감금현장에 있지 않았고 원고들을 전혀 알지도 못하던 교수들로 구성된 상벌위원들이 원고들에 대하여 이 사건 출교결정을 내린 것은 단지 감금이라는 중대한 학칙위반을 하였다는 사실을 넘어 그러한 잘못에 대하여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고 교수와 학교를 적으로 삼고 더욱 더 세찬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주장하는 원고들로 인하여 다른 학생들이 받을 피해와 학사행정이 지속적으로 마비될 이미 검증된 위험성을 고려한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던 것이지요.
120. 기타신문사항
어째서 이 증언들에 대해서는 넣지 않은 겁니까?
말해보시죠.
물론 이 답변들에 대한 성영신 전처장님의 대답은 예! 였겠죠?
저는 그렇게 생각이 되는군요.
정말 사실이라면 당신들은 고려대학교 학생을 떠나서
이미 학생의, 제자의, 스스로 부르는 출교자의 자격도 없을 것 같습니다.
고려대와 아무런 연관도 없었으면 좋겠네요.
내일 투표전에 들었으면 좋겠지만, 혹시나 목요일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총학생회 홈페이지라 답이 안달릴 가능성이 더 높겠군요.
하지만 수요일, 목요일 투표하기전에 이 증언들을 빼놓고 그냥 대자보가 나왔다는것을 학생들이 알았으면 좋겠군요.
너무 늦게 올린 것 같아 마음에 걸리네요.
무단으로 퍼와서 글쓴분께 사과드립니다.
학교 자유게시판에서 다들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출교자랑 학교랑 둘다 잘못한것이 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위 내용이 사실인가요? 정말 사실이면 출교도 이해가 가네요.
-------------------------------------
여기까지가 퍼온글이구요.
역시 말바꾸기와 아전인수격 해석, 불리한점 쏙 빼놓고 말하기는 여전하네요.
썩을.
56544
(다함께가 NL계열과 손잡은건 맞지만 정확히 NL계열은 아니라는) 그 말씀이 더 정확한건 맞습니다. 애초에 다함께는 맑시즘에 근거한 노선이었고, 본질상 PD 쪽에 좀 더 가깝긴 했으나 저때는 NL 과 뜻을 함께 했죠 (일심회 사건 때도 일관되게 NL을 지지했고, PD 계열이 민노당 탈당해서 진보신당 만들었을 때도 배신자라며 비난하곤 했죠) 한참 뒤인 2012년에서야 NL과 손을 끊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본질을 NL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 저때만큼은 일반 학우 입장에서는 NL 계열이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약하면 본질을 NL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 저때만큼은 일반 학우 입장에서는 NL 계열이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함께는 NL계열이랑은 전혀 상관없고,
PD계열 (얼마만에 써보는 단어들인지!) 중에서 상당히 익스트림리스트 or 펀더멘털리스트들 정도로 분류되면 되겠습니다.
주로 남들이 힘들게 조직해서 집회하면, 거기와서 다함께 신문 팔고 그런 일들을 많이 했죠.
어렸을 때는 남의 집회와서 뭐하는 짓이냐고 쫓아내고 그랬는데, 나중에는 뭐 그 쪽수도 아쉬워서.. 쩝쩝.
아무튼 NL 전혀 상관없습니다.
(물론 고려대학교에서는 일시적으로 보조를 맞춰서 뭔가를 했을 수도 있겠군요. 워낙 다함께가 그 판에서 마이너였기 때문에, 그냥 막... 더 보기
PD계열 (얼마만에 써보는 단어들인지!) 중에서 상당히 익스트림리스트 or 펀더멘털리스트들 정도로 분류되면 되겠습니다.
주로 남들이 힘들게 조직해서 집회하면, 거기와서 다함께 신문 팔고 그런 일들을 많이 했죠.
어렸을 때는 남의 집회와서 뭐하는 짓이냐고 쫓아내고 그랬는데, 나중에는 뭐 그 쪽수도 아쉬워서.. 쩝쩝.
아무튼 NL 전혀 상관없습니다.
(물론 고려대학교에서는 일시적으로 보조를 맞춰서 뭔가를 했을 수도 있겠군요. 워낙 다함께가 그 판에서 마이너였기 때문에, 그냥 막... 더 보기
다함께는 NL계열이랑은 전혀 상관없고,
PD계열 (얼마만에 써보는 단어들인지!) 중에서 상당히 익스트림리스트 or 펀더멘털리스트들 정도로 분류되면 되겠습니다.
주로 남들이 힘들게 조직해서 집회하면, 거기와서 다함께 신문 팔고 그런 일들을 많이 했죠.
어렸을 때는 남의 집회와서 뭐하는 짓이냐고 쫓아내고 그랬는데, 나중에는 뭐 그 쪽수도 아쉬워서.. 쩝쩝.
아무튼 NL 전혀 상관없습니다.
(물론 고려대학교에서는 일시적으로 보조를 맞춰서 뭔가를 했을 수도 있겠군요. 워낙 다함께가 그 판에서 마이너였기 때문에, 그냥 막 (이른바) 연대투쟁을 열심히 하고 다녔던 것으로는 기억됩니다. 암튼 뭐... 거기 활동가분들은 참으로 헌신적이었다. 정도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PD계열 (얼마만에 써보는 단어들인지!) 중에서 상당히 익스트림리스트 or 펀더멘털리스트들 정도로 분류되면 되겠습니다.
주로 남들이 힘들게 조직해서 집회하면, 거기와서 다함께 신문 팔고 그런 일들을 많이 했죠.
어렸을 때는 남의 집회와서 뭐하는 짓이냐고 쫓아내고 그랬는데, 나중에는 뭐 그 쪽수도 아쉬워서.. 쩝쩝.
아무튼 NL 전혀 상관없습니다.
(물론 고려대학교에서는 일시적으로 보조를 맞춰서 뭔가를 했을 수도 있겠군요. 워낙 다함께가 그 판에서 마이너였기 때문에, 그냥 막 (이른바) 연대투쟁을 열심히 하고 다녔던 것으로는 기억됩니다. 암튼 뭐... 거기 활동가분들은 참으로 헌신적이었다. 정도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SCV 님// 아, 제가 대충 폰으로 글 썼는데, 친절하게 답변을 ^^ (저 위에 다시 지우고 새 답변을 달았습니다. 그새)
아무튼 뭐 그렇습니다. '노선은 운동가로 보여진다'라는 말을 선배가 했었는데,
(이른바) '대중'은 저런 운동가들의 저열한 모습으로 그 투쟁의 정당성을 판단하게 되죠.
특히 학내에서 교수님이나 대학본부를 상대로 하는 경우에는 진짜 함부로 하면 안되는데 말이죠..
(그리고 뜻을 함께 했다기보다는 - 기본적으로 다함께는 북한을 넘나 싫어했죠. 넘나넘나넘나, 그냥 일시적으로 통전한 수준..? 우리식 용... 더 보기
아무튼 뭐 그렇습니다. '노선은 운동가로 보여진다'라는 말을 선배가 했었는데,
(이른바) '대중'은 저런 운동가들의 저열한 모습으로 그 투쟁의 정당성을 판단하게 되죠.
특히 학내에서 교수님이나 대학본부를 상대로 하는 경우에는 진짜 함부로 하면 안되는데 말이죠..
(그리고 뜻을 함께 했다기보다는 - 기본적으로 다함께는 북한을 넘나 싫어했죠. 넘나넘나넘나, 그냥 일시적으로 통전한 수준..? 우리식 용... 더 보기
SCV 님// 아, 제가 대충 폰으로 글 썼는데, 친절하게 답변을 ^^ (저 위에 다시 지우고 새 답변을 달았습니다. 그새)
아무튼 뭐 그렇습니다. '노선은 운동가로 보여진다'라는 말을 선배가 했었는데,
(이른바) '대중'은 저런 운동가들의 저열한 모습으로 그 투쟁의 정당성을 판단하게 되죠.
특히 학내에서 교수님이나 대학본부를 상대로 하는 경우에는 진짜 함부로 하면 안되는데 말이죠..
(그리고 뜻을 함께 했다기보다는 - 기본적으로 다함께는 북한을 넘나 싫어했죠. 넘나넘나넘나, 그냥 일시적으로 통전한 수준..? 우리식 용어로 Joint Venture?? ^ㅎ^)
피상적으로 남의학교에서 일어난 푸닥거리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글들을 보니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군요.. 흠.
아무튼 뭐 그렇습니다. '노선은 운동가로 보여진다'라는 말을 선배가 했었는데,
(이른바) '대중'은 저런 운동가들의 저열한 모습으로 그 투쟁의 정당성을 판단하게 되죠.
특히 학내에서 교수님이나 대학본부를 상대로 하는 경우에는 진짜 함부로 하면 안되는데 말이죠..
(그리고 뜻을 함께 했다기보다는 - 기본적으로 다함께는 북한을 넘나 싫어했죠. 넘나넘나넘나, 그냥 일시적으로 통전한 수준..? 우리식 용어로 Joint Venture?? ^ㅎ^)
피상적으로 남의학교에서 일어난 푸닥거리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글들을 보니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군요.. 흠.
CONTAXS2 님// 맞습니다. 북한 엄청 싫어하는 노선인데 (트로츠키 계열이니 어찌 보면 당연), 어째서 NL이랑 붙었는지는.. 말씀하신 것 처럼 조인트 벤쳐일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기존의 PD로 묶기도 힘든 카테고리에 있어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저때 사범대 학생회가 심하게 왼쪽이었던걸로 기억하고, 4개 선본중에 3개가 권, 1개가 비권이었는데 나중엔 권들마저도 다함께를 비토 했었죠. 권/비권을 떠나서 저런 추태에 빡친 일반 학우들이 공과대를 중심으로 해서 까만셔츠 -_- 를 입고 대거 모였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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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 사범대 학생회가 심하게 왼쪽이었던걸로 기억하고, 4개 선본중에 3개가 권, 1개가 비권이었는데 나중엔 권들마저도 다함께를 비토 했었죠. 권/비권을 떠나서 저런 추태에 빡친 일반 학우들이 공과대를 중심으로 해서 까만셔츠 -_- 를 입고 대거 모였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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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AXS2 님// 맞습니다. 북한 엄청 싫어하는 노선인데 (트로츠키 계열이니 어찌 보면 당연), 어째서 NL이랑 붙었는지는.. 말씀하신 것 처럼 조인트 벤쳐일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기존의 PD로 묶기도 힘든 카테고리에 있어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저때 사범대 학생회가 심하게 왼쪽이었던걸로 기억하고, 4개 선본중에 3개가 권, 1개가 비권이었는데 나중엔 권들마저도 다함께를 비토 했었죠. 권/비권을 떠나서 저런 추태에 빡친 일반 학우들이 공과대를 중심으로 해서 까만셔츠 -_- 를 입고 대거 모였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들의 뜻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합니다만 (폐교된 보과대생의 권익 보호의 필요 측면은 진짜 공감합니다) 다만 학적상 그사람들에게 안암총학 투표권을 줄 수는 없다는게 일반 학우들의 여론이었고 이를 무시하고 강행하다 보니 결국 이 사단이 난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디 보니까 가담자중 일부가 우익 학우들이 어쩌고 저쩌고 하던데 저랑 위의 95학번 선배들을 비롯한 구 자게사랑 멤버들은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헛짓거리(?) 하면 일단 붙고 보던 쌈닭들이었죠. 좌우하곤 상관 없는데 뭐 눈엔 뭐만 보이는지 ㅎㅎ
저때 사범대 학생회가 심하게 왼쪽이었던걸로 기억하고, 4개 선본중에 3개가 권, 1개가 비권이었는데 나중엔 권들마저도 다함께를 비토 했었죠. 권/비권을 떠나서 저런 추태에 빡친 일반 학우들이 공과대를 중심으로 해서 까만셔츠 -_- 를 입고 대거 모였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들의 뜻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합니다만 (폐교된 보과대생의 권익 보호의 필요 측면은 진짜 공감합니다) 다만 학적상 그사람들에게 안암총학 투표권을 줄 수는 없다는게 일반 학우들의 여론이었고 이를 무시하고 강행하다 보니 결국 이 사단이 난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디 보니까 가담자중 일부가 우익 학우들이 어쩌고 저쩌고 하던데 저랑 위의 95학번 선배들을 비롯한 구 자게사랑 멤버들은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헛짓거리(?) 하면 일단 붙고 보던 쌈닭들이었죠. 좌우하곤 상관 없는데 뭐 눈엔 뭐만 보이는지 ㅎㅎ
SCV 님// 다함께 친구들은 그런거에 되게 민감했던 것 같아요. 사상의 자유 침해같은거.
통진당은 제가 학생때 민노당원이었어서가 아니라 당연히 모든 진보진영이라면 연대했어야 마땅한 주제였던 것 같고 (심지어는 갸들이 뭐 정화수를 떠놓고 밤마다 김일성의 부활을 바라는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다함께는 익스트림리스트 or 펀더멘털리스트들 답게 통진당이 뭘 하는 애들이든, 너의 사상의 자유가 침해되면 싸워줄께. 라는 입장이었겠죠. (하지만 같이 묶이는거 노노해요.)
사실 당시는 학생자치가 천부인권적이고 신성불가침한 그런거라고 우리는... 더 보기
통진당은 제가 학생때 민노당원이었어서가 아니라 당연히 모든 진보진영이라면 연대했어야 마땅한 주제였던 것 같고 (심지어는 갸들이 뭐 정화수를 떠놓고 밤마다 김일성의 부활을 바라는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다함께는 익스트림리스트 or 펀더멘털리스트들 답게 통진당이 뭘 하는 애들이든, 너의 사상의 자유가 침해되면 싸워줄께. 라는 입장이었겠죠. (하지만 같이 묶이는거 노노해요.)
사실 당시는 학생자치가 천부인권적이고 신성불가침한 그런거라고 우리는... 더 보기
SCV 님// 다함께 친구들은 그런거에 되게 민감했던 것 같아요. 사상의 자유 침해같은거.
통진당은 제가 학생때 민노당원이었어서가 아니라 당연히 모든 진보진영이라면 연대했어야 마땅한 주제였던 것 같고 (심지어는 갸들이 뭐 정화수를 떠놓고 밤마다 김일성의 부활을 바라는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다함께는 익스트림리스트 or 펀더멘털리스트들 답게 통진당이 뭘 하는 애들이든, 너의 사상의 자유가 침해되면 싸워줄께. 라는 입장이었겠죠. (하지만 같이 묶이는거 노노해요.)
사실 당시는 학생자치가 천부인권적이고 신성불가침한 그런거라고 우리는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물론 경찰서 달려들어가면 학생처 선생님들께 (다들 80년대 한따까리씩 했던 학교 선배들이 거기서 교직원으로 일하신거였는데!) 뛰어가서 도움도 청하고 그랬었는데 말이에요!
아무튼 저 교수님의 증언을 읽다보니 저도 뭔가 화가 나긴 납니다. 뭐 근데 대부분은 양상이고, 그 양상이 표출되게 된 원인은 보과대와의 합병 과정에서 구성원들과 얼마만큼 그 미래를 공유하고 있었는 (심지어는 투표권같은 '짜잘한' 이슈까지도)지가 중요하겠죠. 특히 우리나라에서 학부라는 것은 정말 엄청난 개개인의 재산이 되곤하는데....
통진당은 제가 학생때 민노당원이었어서가 아니라 당연히 모든 진보진영이라면 연대했어야 마땅한 주제였던 것 같고 (심지어는 갸들이 뭐 정화수를 떠놓고 밤마다 김일성의 부활을 바라는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다함께는 익스트림리스트 or 펀더멘털리스트들 답게 통진당이 뭘 하는 애들이든, 너의 사상의 자유가 침해되면 싸워줄께. 라는 입장이었겠죠. (하지만 같이 묶이는거 노노해요.)
사실 당시는 학생자치가 천부인권적이고 신성불가침한 그런거라고 우리는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물론 경찰서 달려들어가면 학생처 선생님들께 (다들 80년대 한따까리씩 했던 학교 선배들이 거기서 교직원으로 일하신거였는데!) 뛰어가서 도움도 청하고 그랬었는데 말이에요!
아무튼 저 교수님의 증언을 읽다보니 저도 뭔가 화가 나긴 납니다. 뭐 근데 대부분은 양상이고, 그 양상이 표출되게 된 원인은 보과대와의 합병 과정에서 구성원들과 얼마만큼 그 미래를 공유하고 있었는 (심지어는 투표권같은 '짜잘한' 이슈까지도)지가 중요하겠죠. 특히 우리나라에서 학부라는 것은 정말 엄청난 개개인의 재산이 되곤하는데....
CONTAXS2 님// 사실 많은 학우들이 화난 이유가 '소통부재' 였다는게 아이러니죠.
잘못한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그렇지만 우리가 어떻게든 보과대 학우들 지켜주고 싶었다. 우리가 총학이 못되더라도 누군가 이들의 권익을 살펴주었으면 한다.
딱 이정도 워딩이었어도 누구나 납득했을 일입니다. 그런데 자기들 잘못은 죽어도 인정 안하고 일반 학우들을 다 수꼴 우익 명박이의 하수인 삼성의 개 등등으로 몰던 그 태도가 진짜 욕나오게 만들었죠.
모든 원인은 학교에서 출발했던건 맞습니다만, (그리고 저 역시도 학교의 잘못... 더 보기
잘못한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그렇지만 우리가 어떻게든 보과대 학우들 지켜주고 싶었다. 우리가 총학이 못되더라도 누군가 이들의 권익을 살펴주었으면 한다.
딱 이정도 워딩이었어도 누구나 납득했을 일입니다. 그런데 자기들 잘못은 죽어도 인정 안하고 일반 학우들을 다 수꼴 우익 명박이의 하수인 삼성의 개 등등으로 몰던 그 태도가 진짜 욕나오게 만들었죠.
모든 원인은 학교에서 출발했던건 맞습니다만, (그리고 저 역시도 학교의 잘못... 더 보기
CONTAXS2 님// 사실 많은 학우들이 화난 이유가 '소통부재' 였다는게 아이러니죠.
잘못한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그렇지만 우리가 어떻게든 보과대 학우들 지켜주고 싶었다. 우리가 총학이 못되더라도 누군가 이들의 권익을 살펴주었으면 한다.
딱 이정도 워딩이었어도 누구나 납득했을 일입니다. 그런데 자기들 잘못은 죽어도 인정 안하고 일반 학우들을 다 수꼴 우익 명박이의 하수인 삼성의 개 등등으로 몰던 그 태도가 진짜 욕나오게 만들었죠.
모든 원인은 학교에서 출발했던건 맞습니다만, (그리고 저 역시도 학교의 잘못이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학우들이 빡친건 세상을 더 낫게 만들고자 운동한다는 애들이 저러고 있다는것 때문이었죠.
잘못한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그렇지만 우리가 어떻게든 보과대 학우들 지켜주고 싶었다. 우리가 총학이 못되더라도 누군가 이들의 권익을 살펴주었으면 한다.
딱 이정도 워딩이었어도 누구나 납득했을 일입니다. 그런데 자기들 잘못은 죽어도 인정 안하고 일반 학우들을 다 수꼴 우익 명박이의 하수인 삼성의 개 등등으로 몰던 그 태도가 진짜 욕나오게 만들었죠.
모든 원인은 학교에서 출발했던건 맞습니다만, (그리고 저 역시도 학교의 잘못이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학우들이 빡친건 세상을 더 낫게 만들고자 운동한다는 애들이 저러고 있다는것 때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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